소녀시대의 웃음: 한계를 확장해 온 12년의 흔적
고색창연한 편견이지만, 그렇다고 대중을 상대하는 연예인이 정색하고 맞서 싸울 수도 없는 노릇. 소녀시대는 조용히 자신들이 소화할 수 있는 콘셉트를 확장하고 활동영역을 넓히며 세상을 설득해왔다.
글ㆍ사진 이승한(TV 칼럼니스트)
201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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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파니 공식 인스타그램

 

 

10대의 끝자락에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했다는 건 온 청춘이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가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연습생이 되어 내부 트레이닝의 시간을 거치고, 데뷔조 안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가 하는 시간을 반복하는 것으로 10대의 시간을 빼곡히 채우지만, 그렇다고 데뷔한다거나 데뷔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 같은 건 없는 그런 시간.

 

20대 내내 최정상급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 살아왔다는 건 젊음의 가장 뜨거운 계절이 공공재처럼 유통됐다는 걸 의미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스타와 관련된 크고 작은 정보들을 모조리 상품화하는 산업이다. 무심코 내뱉은 말 한 마디에도 온갖 의미가 부여되어 대중의 평가 대상이 되는 것이다. 숨 쉬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세상의 인가를 받아야 할 일이 된다.
 
연차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산업 안에서 12년을 현역인 채로 지내왔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필이면 팀명 안에 ‘소녀’라는 단어가 포함된 탓에 데뷔 초 때부터 “나이 먹어 더 이상 소녀가 아니게 되면 어떻게 할 거냐”는 식의 무례한 농담을 들어왔던 소녀시대는, 1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이름의 유효기간을 갱신하는 중이다.


의상 콘셉트가 바뀔 때마다, 멤버의 연애사가 언론에 유출되어 가장 사적인 것이어야 할 개인사가 만천하에 밝혀질 때마다, 세상은 “너희는 더 이상 소녀가 아닌 것이 아니냐”는 식의 질문을 건넸다. 언뜻 별 다른 뜻이 없는 질문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달랐다. 걸그룹의 생명은 퍼포먼스의 완성도나 노래의 출중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린 여성의 육신이 제시하는 판타지’에 있고, 그것은 시간 앞에서 곧 꺼지지 않겠냐는 무례한 속내.
 
고색창연한 편견이지만, 그렇다고 대중을 상대하는 연예인이 정색하고 맞서 싸울 수도 없는 노릇. 소녀시대는 조용히 자신들이 소화할 수 있는 콘셉트를 확장하고 활동영역을 넓히며 세상을 설득해왔다. 애초에 ‘소녀시대’라는 팀명은 ‘소녀들이 평정할 시대가 왔다’는 의미로 지어진 것이지, 그 시대가 그들이 ‘소녀’인 시절에만 머물러 있을 것이란 의미는 아니었으니까.


‘마지막 앨범’이라거나 ‘해체’를 운운하는 세상 앞에서, 소녀시대는 멤버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며 꾸준히 스스로를 갱신해왔다. 태연은 음원차트의 절대강자가 됐고, 수영과 윤아는 올해 각각 <걸캅스>와 <엑시트>라는 굵직한 상업영화로 제 존재감을 과시했다. 티파니는 두 개의 조국인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K-POP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중이고, 써니는 여전히 소녀시대 내 예능의 기함으로 건재하다. 최전성기 때부터 멤버들이 개인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소녀시대는 K-POP 씬에서 걸그룹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그 한계를 확장하는 최전선에서 물러난 적이 없다.


움츠러들거나 변명하는 일 없이 나이 먹고, 세상의 무례한 속내가 그어둔 한계를 뛰어넘으며 걸어온 이들은 이제 누구보다 당당하게 웃는다. 그 웃음은 분명, 지난 12년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이들만이 지어보일 수 있는 표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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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 #이승한 #티파니 #12년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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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켓팅성공하길

2019.08.05

몇 년 전 글도 잘 읽었는데 이렇게 또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설득된 세상 속에서 우리 더 잘 버텨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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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