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미술관』 , 『십자군 이야기』 등을 펴낸 만화가 김태권이 신간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 를 출간했다. “고기를 먹으면서도 왜 고기 먹는 게 불편할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한 책은 처음엔 갈 곳을 잃은 듯 보였다. 이 물음에 대한 결론이 “그래서 고기를 먹자는 거냐, 말자는 거냐”로 귀결될 위기가 닥칠 때마다 마음을 졸였다. 딱 잘라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닐뿐더러 이게 과연 어떤 문제란 말인가? 고기를 먹고 말고가 문제처럼 보이는 건 우리 사회가 고기로 앓고 있는 ‘문제’가 많아졌기 때문은 아닐까? 공장식 축산, 아마존 밀림 파괴, 최근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까지 고기를 먹는 게 불편해진 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이 책이 독자들에게 환기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적어도 양심적으로 시작했다(고 믿는다). “그래, 사실 우리 고기 먹으면서도 고기한테 미안해.” 양심 선언으로 바턴을 이어받은 책은 인류 문명에 깃든 육식의 문화사를 훑고 현대로 넘어갔다. ‘치킨’을 통해 공장식 축산과 그 너머 서민들의 고깃값 문제도 잠깐 살폈다. 들여다 보니 적어도 이 점은 충분히 알겠다. ‘우리는, 우리가 먹고 있는 고기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 더 궁금한 이야기는 김태권 작가의 인터뷰로 만나보자.
이 책을 펼치는 순간, 그림이 하나 등장하는데요. 아이가 자신의 뱃살을 향해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어떤 의미가 있나요?
그림을 꼼꼼히 봐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 첫 번째 그림은 2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하나는 아이가 썰어 먹으려는 살은 자기 자신의 살입니다. 인간이 동물의 살을 먹을 때, 먹는 자와 먹히는 자는 사실 아주 가까운 사이며, 어찌나 가까운지 인간이 제 살을 먹는 일이나 다름이 없다는 이야기가 하나지요. 다른 하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인간은 고기를 먹는다는 이야기가 또 하나입니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말이죠. 그림 속 아이는 참 맛있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어요. 마치 육식에 홀린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물을 죽이고, 그 살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생명이 있고, 그들에게도 아빠와 엄마 그리고 자식이 있다는 사실을요. 작가님은 어떤 계기로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니고요, 어릴 때 다들 읽으시는 동화를 저도 읽었어요. 그런데 읽다 보니 이상했지요. 어떤 이야기는 사자나 거미가 주인공입니다. 이야기 속 동물들은 자기네가 무서워 보이지만 사실 무섭지 않으니 싫어하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하더군요. 한편 어떤 이야기는 양이나 나비가 주인공이에요. 무서운 짐승이나 거미가 자기네를 잡아먹을까 두려워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죠. '대체 어떤 이야기에 장단을 맞추란 말이지?' 먹는 쪽도 먹히는 쪽도 모두 친구라면 우리는 어느 편을 응원해야 할까요? 이런 고민을 하다가 책까지 쓰게 된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고기에는 무수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책을 쓰면서 특히 인상 깊었던 역사적 사실 혹은 이야기가 있나요?
이 책을 쓰기 전에 읽은 이야기예요. 간디는 청소년 시절 영국사람과 맞서려면 영국사람을 따라 해야 우리도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영국사람처럼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친구의 설득으로, 전통이 금지한 육식을 했다가 죄책감(!)을 느끼고 토해버린 이야기가 인상 깊었어요. 다른 지역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읽었거든요. “서양처럼 강해지려면 우리도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지금 우리 눈으로 보면 이상해 보이기도 하는 주장이 아시아 전역에 널리 퍼져 있었구나 싶었지요. 그때 사람들에게 근대화란 얼마나 절실한 문제였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작가님께서는 두 아이를 키우고 계십니다. 아이들은 아마 고기가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한 채 먹지 않을까 싶은데요. 나중에 아이들이 좀 더 크면 ‘고기’를 어떻게 가르쳐줄 생각이세요?
먹는 규칙은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해주고 싶어요. 아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동물원과 농장 등에 가서 "네가 먹는 고기는 사실 저 친구의 살"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려고 해요. 실은 비슷한 일이 벌써 있었어요. 큰아이가 만 네 살인데요, 일전에 저와 함께 '고소애'(식용밀웜) 말린 것을 먹어본 적이 있어요. 얼마 전에는 ‘갈색거저리 유충(밀웜)’을 산 채로 만져보는 곤충 체험을 했어요. '혹시 저러다 입에 집어넣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지만, '먹는 곤충'과 '함께 노는 곤충'을 아이 스스로 구별하고 있더군요.
이 책을 쓰기 위해 식용곤충과 식물 고기를 드셨더라고요. 앞으로도 육식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음식을 몸소 체험해볼 생각이신가요? 혹시 지금 당장 도전해볼 음식도 있으신지?
먹어는 봤지만 책에 적지 않은 고기들도 여러 종류 있습니다. 타조고기, 물고기 부레, 개구리고기, 비둘기고기, 달팽이, 기타 등등도 먹어보았어요. 그런데 하나하나 다 글로 쓰자니, "나 이런 것도 먹어봤다"는 괴식 체험이 될까 봐 걱정이더라고요. ‘먹기 차력’처럼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다 쓰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아직 맛이 궁금한 음식이 있습니다. 실험실에서 배양한 배양 고기죠. 육식의 대안으로 거론되더군요. 이 맛이 어떠냐에 따라 육식의 미래가 바뀔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배양육의 맛이 좋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의 살이라는 걸 알고 먹는 게 뭐가 중요하냐고 말이죠. 혹은 그래서 “고기를 먹자는 거냐, 말자는 거냐”와 같은 물음에 답해주길 원할지도 모르고요. 이런 독자들에겐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요?
네, 이 책에서 저는 딱 부러지게 결론을 내리지 않았죠. 글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답을 얻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쓰다 보니 생각이 변하더라고요. 아직은 이 문제에 관한 사회적 고민이 합의에 도달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구나 싶었습니다. 말이 좀 복잡한데, 쉽게 말해 '모든 사람이 수긍할 만한 답을 얻기는 아직 힘들겠구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으로서는 개개인의 결단에 맡기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기를 먹자는 거냐 말자는 거냐" 묻는다면, "그 문제라면 알아서 하십시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네요, 지금은요.
소와 돼지 혹은 닭이 자기 살을 먹으라며 손짓하는 간판이 자주 보입니다. 이런 간판이 바뀌는 것도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길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고기는 남의 살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먹는 것’과 더불어 실제로 거리에서, 사회에서 행할 수 있는 작은 실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해맑게 웃는 돼지 가족의 간판 같은 것이 많죠. 그런데 보기에 따라 반대의 의미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육식의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을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간판이니까요. "지금 먹는 동물은 이 간판처럼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지, 하지만 당신이 먹어버렸어!"라는 말을 듣는 듯합니다. 물론 이런 간판이 좋은지 아닌지는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것 같긴 합니다.
실천의 문제에 대해 물어봐주셨기 때문에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더 비싼 값을 물더라도 동물복지 인증이 된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 고기를 먹자"가 아니라 "먹을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말씀드린 이유는, 마주치기가 쉽지 않아서 그래요. 저는 육식을 끊지 못하고 있는데요, 대부분의 고기를 이미 가공되거나 요리가 된 상태에서 먹고 있습니다. 이미 음식물의 상태가 되어 있다 하더라도 동물복지나 공정무역을 통해 확보한 재료를 사용했다는 표시가 찍혀 있다면 선택하게 될 것 같아요. 이런 것을 마케팅에 반영하는 회사나 제도화하려는 정치인은 없을까요? 자기가 먹는 것에 대해 자기가 한 번 더 생각하는 기회를 더 많은 사람이 가지면 좋겠습니다.
*김태권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희랍어와 라틴어로 된 서양 고전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2002년 『문화일보』 「장정일 삼국지」의 일러스트와 프레시안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만화로 데뷔한 이후, 여러 매체에 연재했다. 지은 책으로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어린왕자의 귀환』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히틀러의 성공시대』 『불편한 미술관』 등이 있고, 『철학학교』 『장정일 삼국지』 『에라스무스 격언집』 『문화로 먹고살기』 등에 일러스트를 그렸다. 현재 『한겨레』에 「나는 역사다」를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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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김태권 저 | 한겨레출판
인류 문명에 깃든 육식의 문화사에 대해 서술하는 동시에 고기는 결국 남의 생명을 빼앗는 일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미안한 마음 없이 고기 또는 고기 비슷한 먹을거리를 즐길 날까지 우리 모두 잊지 않기를. 먹히는 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