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키드 애자일』 북토크 현장
저성장 시대를 맞은 기업들은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혁신안을 내놓고 있다. 각 기업의 신년사에도 이런 풍토가 반영되면서 ‘애자일’ 방법론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하지만 수많은 기업과 그들을 컨설팅하는 기업, 미디어 모두가 애자일과 관련해 단편적이고 평면적인 이야기를 하거나 본질과 어긋난 오류를 쏟아낸다. 혁신을 위한 애자일이 애먼 조직과 조직 구성원을 귀찮게 할 가능성이 높다.
애자일이 제대로 시도되기도 전부터 왜 이런 우려가 더 지배적일까? 저자들은 애자일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애자일을 조직에 제대로 이식시키기 위해서는 애자일 방법론보다는 애자일이 가진 기본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한다. 애자일을 독립된 실체라기보다는 테일러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경영 철학, 사고, 개념과 도구의 연결을 상징하는 ‘포스트 테일러리즘’의 메타포로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네이키드 애자일』 에서는 ‘애자일은 문화’라는 기본 가정을 바탕으로 조직 운영에서 애자일 경영과 일반 경영(테일러리즘)이 갖는 가정, 이론, 개념 들을 비교해 제시한다. 그리고 애자일 경영 기업이 어떤 조직구조와 제도 및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조직을 운영하는지 들여다본다.
네이키드 애자일, 제목에 담고 싶었던 의미가 무엇인가요?
장재웅 : 지난 몇 년 동안 국내 기업들의 애자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애자일 전환을 시도하는 기업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최근에는 단순히 소프트웨어 개발 영역을 넘어 기업 경영의 영역에까지 광범위하게 쓰이는 용어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애자일이 갖는 근본적인 철학과 속성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외국 기업의 성공 사례들을 무작정 베끼려는 시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제와 달리 애자일 전환 실패 사례들이 많이 쌓이게 되어 일부에서는 애자일이 과연 한국 기업에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했죠. 특히 우리가 가장 경계하는 부분은 애자일이 마치 조직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 같은 존재로 다뤄지는 것입니다. 애자일이 가진 근본적인 속성과 애자일 전환 시 흔히 범할 수 있는 오류 등까지 가감 없이 전달해 독자들이 있는 그대로의 애자일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바람을 ‘네이키드’라는 표현을 사용해 제목에 담았습니다.
애자일 경영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세요.
상효이재 : 필자들이 책을 통해 주장하는 애자일 경영은 애자일 소프트웨어 방법론과는 다릅니다. 후자가 조금 더 방법론적 성격에 가깝다면 애자일 경영은 방법론보다는 조직 체계의 근간이 되는 철학과 현실적인 조직 운영의 맥락에서 ‘조직의 애질리티’를 높이기 위한 모든 생각과 행동을 의미합니다. 애자일 경영에서는 전통적인 애자일 관점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직구조도 조직의 애질리티를 높이기 위해서는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스티브 발머 시절의 마이크로소프트 본사 조직은 매트릭스 역할 조직이었죠. 제품과 서비스 기반의 매트릭스 구조는 애자일 방법론 측면에선 좀 더 타당한 구조였지만 2013년 나델라 체제가 단행한 조직구조는 전통적인 기능중심 구조로의 회귀였습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애자일과 모순되는 행보라 여겨질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구조개편은 애자일 전환에 무엇이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알려주는 강력한 메시지죠. 바로 ‘가치와 문화의 통합’입니다. 사티아 나델라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적어도 구조적으로는 단순하고 중앙 집권적인 전통조직 구조의 특성을 활용해 취임 초기 강력한 가치와 문화 중심적인 조직 통합에 주력했습니다. ‘하나의 마이크로소프트(One Microsoft)’, ‘성취 (Achievement)’, ‘성장(Growth)’, ‘공감(Emphaty)’이라는 가치 중심적 키워드를 비즈니스와 조직/인사 관리 시스템 전반에 이식함으로써 기업의 ‘정신’을 통합하고자 힘썼죠.
전통구조를 활용하는 대신 그 내부의 층위는 상당부분 없애고, 메시지 통로를 Top-Down 일변도가 아닌 상호 적극적 피드백이 가능한 쌍방 통로로 재구축함으로써 ‘역설적인’ 효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흩어져 있던 정신, 상황맥락을 고려해 단기적으로 과감히 중앙 집권화 조직으로 만든 다음 결과적으로 ‘조직의 애질리티’ 자체를 높인 것이죠.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애자일 경영은 특정 ‘방법론’이 아닌 기존의 테일러리즘을 극복할 수 있는 철학을 내재화해 기업이 속한 환경, 상황 맥락에 맞는 주체적인 의사결정과 행동을 취할 수 있는 태도와 역량을 갖게끔 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국내외 애자일 사례를 연구하면서 가장 성공적이었다 혹은 실패했다라고 생각된 사례를 뽑을 수 있을까요?
상효이재 : 가장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이 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질문에 답하기가 가장 어렵죠. 일단 성공을 규정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 애자일은 긴 호흡으로 변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지 애자일 방법론으로 프로젝트 한 두개 성공했다고 조직이 애자일해졌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섣부르게 성공 사례라고 말하는 것이 자칫 어설픈 벤치마킹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이 책에 다수의 성공 사례를 공유하긴 했지만 이는 해당 기업이 처한 상황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얻었다는 것임을 이 자리에서 밝히고 싶네요. 그럼에도 국내 기업들, 그 중에서도 대기업들이 참고할만한 가장 현실적인 케이스는 앞서도 언급했던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포스 등과 같이 완전히 새로운 조직이론이나 조직운영을 시도하지 않고 매우 전통적인 조직구조를 활용해 조직의 애질리티를 확연히 높였기 때문에 참고할만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장재웅 : 사실 현시점에서 어디가 성공이다 실패다 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특히 필자들이 주장하는 광의의 애자일의 개념에 부합하는 사례는 많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넷플릭스 사례가 상당히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넷플릭스는 자사의 문화기술서인 ‘넷플릭스 컬쳐 덱(Netflix Culture Deck)’에 기술된 전략적 우선순위 내에서 직원들이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하고 행동하도록 했습니다.
이 문화기술서에는 회사의 철학에 대한 주요 질의응답과 효율성보다 유연성을 더 중시하는 회사의 철학에 대한 설명과 규칙을 최소화하기 위한 지침 등이 적혀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큰 틀에서 조직원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정해놓은 후 그 틀 내에서는 직원들에게 자율성을 줌으로써 조직의 유연성과 애질리티를 높이는 방법을 쓴 것이죠. 직원이 회사의 철학을 100% 이해하면 아무리 자율성을 부여해도 회사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거죠. 이를 ‘프레임워크 내 자율’이라고 표현하고 애자일 경영의 속성을 잘 드러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 국내 사례 중 가장 성공적이라고 생각되는 기업이 있을까요?
장재웅 : 사실 국내 기업 중 아직 애자일 전환에 성공한 기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국내에 애자일이 단순 방법론을 넘어 기업 경영의 수준으로 논의가 넘어온 것이 채 몇 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죠. 아직도 애자일은 많은 기업들에게 생소한 개념일 것입니다. 책에 언급했던 사례이기도 한데 국내 대기업 중에 참고할만한 사례로 삼성SDS를 들 수 있습니다. 삼성SDS는 협의의 애자일 관점에서 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과 도입에 필요한 시스템, 소프트스킬을 애자일 전담조직인 ACT팀을 통해 조직 내에 점증적으로 확산해 나가고 있습니다. 조직 전체의 애자일 전환은 아니지만 분명히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상효이재 : 스타트업 중에는 토스가 있습니다. 토스는 넷플릭스의 기조와 상당히 닮았습니다. 토스에서 가장 강조하는 점이 재무적 성과 이전에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자유와 책임이라는 문화적 프레임 안에서 가치 중심적인 행동을 강조하고 평가 역시 가치에 기반하죠. 흔히 기업이 성과주의(Meritocracy)를 강화하기 위해 강조하는 개인 성과평가가 토스에는 없습니다. 대신 조직 공동의 성과를 위한 협력을 위해 회사 전체 목표달성을 강조하고 이에 따른 공동의 인센티브가 존재합니다. 아직 수익을 내고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업계의 혁신을 선도하고 공격적 성장, 가시적 성과를 이루고 있는 것에는 분명 이런 조직문화의 힘이 작용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최근 토스가 인재 유입을 위해 파격적인 인센티브안을 내놨는데, 인재 영입 시 현 연봉의 약 1.5배 지급을 약속하며 시장의 최고를 모시겠다고 천명한 것이죠. 기본적으론 최고의 인재를 최고 대우로 영입한다는 넷플릭스 모델과 유사하긴 하지만 의도와 다르게 보상 부분만 강조되다 보니 시장에서는 한 몫 챙기기 좋은 회사, 돈에 대한 대가로 서로 과로를 경쟁하는 회사라는 냉소가 일부 들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책에 언급되어 있지만 심리학, 행동경제학 연구에서 과도한 ‘금전적 인센티브’의 강조와 집행은 구성원의 내적 동기를 빼앗는다는 측면에서 이 같은 전략이 언제까지나 순기능만 가져다 줄 리는 없기에 내적 모순, 갈등을 잘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도 점점 애자일을 시도하고 있긴 하지만, 한국 정서상 애자일이 한국 사회에 앞으로 잘 정착할 수 있을까요?
상효이재 : 우리는 ‘문화’를 문제의 원인이라기보다 ‘결과’로 인식해야 합니다. 전략과 구조, 리더십, 구성원의 인식, 프로세스 등 조직 경영을 구성하는 요소가 유기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문화로 나타나기 때문이죠. 결국 문화는 흔히 우리가 접근하듯 커뮤니케이션 캠페인이나 단순한 교육만 가지고 개선되거나 정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방법론을 억지로 들이민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다시 말해 전략과 구조, 리더십, 구성원의 인식, 프로세스 등 조직 경영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총체적으로 움직여야 제대로 된 변화가 가능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애자일은 물론 어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처럼 유교적 정서도 일부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보다 정착이 어려운 이유는 앞서 말한 변화에 대한 인식 때문이죠. 좀 더 냉철하게 말하면 조직 구성원들에게 물들어버린 평면적 사고가 애자일 적용을 막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기업 현장의 모습을 보면, 기업의 경영진에서 먼저 ‘애자일’을 도입하라고 외치지만 정작 그 스스로 ‘애자일’이 가진 철학을 내재화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저 담당 부서에게 하명을 내릴 뿐이죠. 그럼 애자일 도입 부서는 그 다음부터 ‘성공 사례’, ‘벤치마킹 대상’ 등을 찾기에 바쁘고, 하지만 성공 사례라는 것은 늘 그 기업의 상황 맥락이 일시적으로 고려된 것이기에 자신의 기업에 제대로 맞을 리가 없을 뿐더러 그런 담당부서는 권한도 없습니다.
조직문화 담당부서에서 구조조정, 전사적인 조직개편을 해봤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나요? 애자일 경영, 나아가 조직문화에 대한 변화관리라는 것은 결국 성역 없는 총체적인 시도를 의미하는 것인데 지금은 모든 것이 다 나뉘어 있고 서로 ‘내 일이 아니라’라 생각하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애자일 자체가 오해하기 쉬운 부분들이 많은데 기업이 애자일을 적용하려고 할 때, 가장 명심해야 할 염려스러운 부분은 무엇인가요?
장재웅 : 앞에 답이랑 비슷한데요. 요즘 애자일에 관한 문의를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하는 말이 우리 대표가 혹은 임원이 “‘애자일하게 일하라’고 하는데 도대체 애자일하게 일하는 게 뭐죠?”라는 질문이더라구요. 재밌는 점은 경영진들이 이해하고 있는 애자일은 굳이 따지면 “내가 시키는 일을 지금보다 빠르게 하라”는 주문 정도죠. 이는 실제 애자일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고 조직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러다보니 앞에 5번 질문에서 나왔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죠. 또 한 가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점은 ‘애자일을 도입하면 빠르게 결과물을 보여주기 때문에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애자일은 속도나 비용과는 크게 관련이 없습니다. 애자일 경영의 목적은 변화무쌍한 환경에 대응하는 ‘완전 자율경영 조직’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상황이 바뀌어도 각 조직이 변화된 상황에 맞게 적응력을 키워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어떤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장재웅 : 결국 조직의 문화를 바꾸는 키를 쥔 조직 내 의사결정자들이 읽어야 할 책입니다. 애자일 경영은 과거의 애자일 방법론하고는 다른, 조직 전체의 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원대한 프로젝트죠. 때문에 경영진들의 각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상효이재 : 동감합니다. 애자일 경영은 총체적 조직문화의 문제와 더불어 이에 대한 변화관리라는 측면에서 그 시작은 담당부서, 담당자가 아닌 경영진이 우선 제대로 인식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관련 조직의 조직/인사 담당자, 전략 담당자가 읽어보면 좋겠죠. 나아가 변화관리는 총체적 인식과 공감의 문제라는 차원에서 조직에 속한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일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도 설명하고 있어 교양서로서 누구나 읽어도 좋은 책이라고 자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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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키드 애자일장재웅, 상효이재 저 | 미래의창
‘어떻게 하면 애자일에 대한 오해를 없애고 기업들이 각자의 상황에 맞는 자율경영 조직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지’에 대한 저자들의 고민이 엿보인다. 그래서 더더욱 ‘답’을 제시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애자일이 가진 기본 철학을 제대로 이해시키는 데 중점을 뒀다. 애자일에는 정답이 없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