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24 북클러버] 이다혜 “리베카 솔닛이 전하는 이야기의 힘”
경험을 돌아보기 위해 또 한 가지 굉장히 중요한 건 이야기예요. 많은 행동 가운데 무엇이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하지만 위인전은 저 사람이 성공한 이유를 과거 어딘가로부터 찾아내죠. 그게 이야기의 힘이에요.
글ㆍ사진 정의정
202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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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0일, 이다혜 작가의 북클러버 두 번째 모임이 예스24 중고서점 홍대점에서 열렸다. 매달 여성 작가의 책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북클러버 모임이다. 이번 모임에서는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에 관해 나누는 시간을 보냈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로 국내에도 이름을 알린 리베카 솔닛은 『멀고도 가까운』 에서 읽기와 쓰기, 고독과 연대, 병과 돌봄, 삶과 죽음, 어머니와 딸의 관계, 아이슬란드와 극지방을 이야기한다. 작가 주변의 여러 삶을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프로이켄의 『북극 모험』,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그리고 『백조 왕자』 『룸펜슈틸츠헨』 같은 동화를 활용해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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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법


이다혜 작가는 제목 ‘멀고도 가까운’이 의미하고 있는 바를 물어보면서 모임을 시작했다. 원제 또한 ‘The Faraway Nearby’로 한국에 소개된 제목과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다.


“무엇이 멀고도 가까울까요? 이 책과 비슷한 제목의 책으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이라는 미국 소설이 있어요. 이 책은 911 테러에 관해 쓴 책이에요. 911 테러에 관해 쓴 문학이나 영화를 ‘포스트 911 문학’이나 ‘포스트 911 영화’라고 묶을 때가 있습니다. 단순히 테러 이후 나왔다는 시기적인 분류뿐만 아니라 작품이 다루는 이야기가 사건으로부터 비롯한 것들을 다루고 있다고 보는 거죠. 한국에서는 세월호 사건 이후 나왔던 작품 중에서 ‘포스트 세월호’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들이 있을 거예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은 911 테러를 직접적으로 은유하는 제목으로 쓰이기도 했다. 현대 재난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형태로 사람들 옆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본토가 공격받은 적이 없던 미국에서 뉴욕을 상징하는 쌍둥이 빌딩이 공격받았다는 충격은 그대로 대중문화에 투영되었다.


“한 사회를 아우르는 커다란 사건이 발생하면 대중문화는 그 사건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중 하나가 2008년도 금융 위기입니다. 이후 나왔던 미국 드라마에서 많은 캐릭터가 실직을 당한 사건이 그려지죠. 리베카 솔닛의 에세이에서는 계속 죽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죽음은 우리와 멀기도 하고, 가깝기도 하죠. 모든 사람은 죽음이 자신에게 닥쳐오기 전에 미리 대리체험을 합니다. 가까운 사람이 죽는 과정을 통해 사람이 나이 들고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게 어떤 과정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거죠.”


한편 참가자 중 한 명은 ‘모녀 사이’가 멀고도 가까운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다혜 작가는 그 의견에 동의하며 리베카 솔닛의 어머니가 아들과 딸을 다르게 다루는 과정을 언급했다.


“엄마가 좋은 일 있을 때는 아들에게 연락하는데, 나쁜 일 있으면 딸에게 연락합니다.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죠. 집에 힘든 일이 생기면 딸에게는 어렵다고 이야기하는데, 아들은 같은 시기에 기르면서도 힘들다는 이야기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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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은 어머니가 충분히 좋은 보육환경을 제공하지 않았을 때 어떻게 살아갈지를 다룬다. 모녀 관계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최근 어머니와 딸의 심리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왔거든요. 왜 이렇게 이야기가 많아졌을까 생각해 보면 어머니와 딸이 친구 같은 관계라고 많이 이야기하는데, 그런 관계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죠. 여성에게 억압이 심한 나라에서는 어머니들이 자기가 못다 이룬 자신의 상을 딸을 잘 키워서 성공하는 걸 봄으로서 이루고자 합니다.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서 딸이 성공하면 그걸 자신의 성공으로 생각하는데, 다른 책에서도 엄마와 딸은 완전히 다른 관계고 타자로서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많은 경우 엄마는 딸을 자기 연장선으로 생각하고 그건 아들에게는 하지 않는 행동이라는 거죠.”


실제 생활에서 늘 모녀 갈등이 봉합되지는 않는다. 『멀고도 가까운』 에서는 엄마와 저자의 관계를 떠나 아이슬란드까지 가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보통 어머니와 딸이 갈등하는 이야기에서는 끝에 가서 어머니랑 화해하고 끝날 때가 많거든요. 솔닛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어요. 이 책은 ‘나는 엄마와 어떻게 잘 살 것인가’가 아니라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죠. 솔닛도 몸이 안 좋아지면서 투병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때 도와주는 사람은 남동생도 엄마도 남편도 아닌 자기 친구들입니다. 이 이야기는 솔닛이 어떻게 자기만의 삶을 개척해 나갔는지를 다루는 이야기이죠.”


리베카 솔닛은 ‘일단 해보는’ 자세를 강조했다. 삶을 통틀어서 모험이 닥쳤을 때, 이것저것 가능성을 따지고 위험을 회피하려고 새로운 일을 할 기회를 놓치기보다는 ‘일단 예스’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솔닛의 어머니가 가지는 후회의 태반은 하지 않았던 행동과 가지 않은 길에 있었다는 거죠. 우리는 거절할 이유를 잘 찾아요. 특히 사회에서 여자들에게 좀 더 신중하고 조심하라고 주문하잖아요. 우리 스스로도 어떤 제안이 왔을 때 좀 더 많이 생각하고 멀리 내다봐야 할 것 같죠. 그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멀고도 가까운』 에서 제가 좋아하는 부분은 우리가 행동을 할 때 결과를 다 예측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이에요.”


우리는 어떤 결과를 두고 단선적인 원인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기 쉽다. 하지만 많은 경우 과거에 많은 것들을 하다가, 어떻게 살다 보니 그중 일부가 결과가 된다. 지금 결정하는 것도 미래에 어떻게 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


“우리는 가능하면 실패하지 않고 한 번에 정답으로 가고 싶어 하기 때문에 계속 기회를 재요. 하지만 낯선 선택일수록 앞에서 고민을 한참 하다가 안 하는 게 좋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너무 많죠. 솔닛은 아주 좋은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웬만하면 다 해보라고 조언하고 있어요. 실제로 여행지에서 배를 탈지 안 탈지 중요한 게 아니라, 일단 모르는 분야여도 해보겠다는 근본적인 태도를 말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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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다른 참가자는 솔닛이 여행을 가서 처음에는 배를 타지 못했다가, 20년 후에 탄 이야기가 더 마음에 남았다고 전했다. 힘든 상황을 거치고 어느 순간 ‘여기까지 오기 위해 그 많은 일을 겪었구나’ 하는 느낌을 자신도 받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경험을 돌아보기 위해 또 한 가지 굉장히 중요한 건 이야기예요. 많은 행동 가운데 무엇이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하지만 위인전은 저 사람이 성공한 이유를 과거 어딘가로부터 찾아내죠. 그게 이야기의 힘이에요. 솔닛은 계속 같은 결과와 원인 가운데에서 어떻게 인과관계를 찾아서 엮을 것인지, 어떻게 자기 이야기를 만들 것인지, 또 그런 과정에서 어떻게 멀리 떠날 것인지를 이야기합니다. 떠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책을 읽는 것이고, 하나는 실제로 여행을 떠나는 거예요.”


자신이 경험한 내용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멀고도 가까운』 은 자기 어머니와의 관계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투병 생활을 이야기하기 위해 책 바깥의 콘텐츠를 끌고 온다. 프시케의 신화나 종교적인 이야기, 프랑켄슈타인의 메리 셸리 이야기 등 모든 바깥의 이야기가 솔닛의 서사를 완성한다.


“메리 셸리에 관한 이야기는 왜 들어갔을까요? 아이슬란드를 이야기하면서 나왔죠. 하지만 아이슬란드에 실제로 간 건 메리 셸리가 아니라 셸리의 어머니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였습니다. 메리가 극지방을 여행한 이유는 혹시 있어 보이는 글을 쓰면 당시 만나던 남자가 다시 돌아와 주지 않을까 생각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오히려 그 글을 보고 다른 사람이 사랑에 빠졌는데, 그 사람은 메리 셸리의 아버지가 된 윌리엄 고드윈입니다. 극지방에 대한 이야기를 끌고 오면서 근원에 있던 엄마 이야기까지 거듭 올라가는 거죠. 이 책에서 계속 살구 이야기가 나오는데, 살구를 날로 먹기보다는 조림을 해서 먹잖아요? 이 살구 조림 자체가 이야기라는 거예요. 살구를 날로 먹는 게 아니라 잘 보존해서 다른 사람도 먹을 수 있게 보존을 거치는 과정인 거죠.”


한 참가자는 나병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나병은 한센병을 칭하는 예전 병명으로, 피부나 신경계, 점막의 조직이 변형되고 감각이 없어지는 병이다. 에세이 속에서는 고통에 대한 은유를 설명하기 위해 나병이라는 단어를 썼다. 


 “고통이 없는 상태를 우리는 더 좋고 건강한 상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통증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몸을 하나로 인식할 수 있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거죠. 이것은 은유적이기도 하고, 실제로 그렇기도 해요. 어딘가 아프면 사람들은 ‘다 너 쉬라고 아픈 거야’라는 말을 하고는 하죠. 쉬어야 할 때 몸이 주는 신호가 통증인데, 문제는 이 통증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더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나병을 통해 은유하고 있습니다.”


고통은 ‘중요한 것’에 집중하라는 몸의 발언이다. 인생에서도 중요한 것에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을 해야 자기 인생이 풍요로워진다. 이다혜 작가는 최근 인터뷰에서 있었던 예를 들며, 지금 하는 일이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거라는 불안 속에서도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것을 조언했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때에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걸 하고 있으면 누군가 들어주는 때가 와요. 보통은 선택을 하면 바로 결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빨리 포기하는데, 결과론적으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지금 바쁜 일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가치가 더 중요해지는 때가 옵니다. 솔닛은 자기가 찾아온 가치를 어떻게 이루어왔는가에 대해서 자기만의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는 거죠.”

 

 

 

 



 

 

멀고도 가까운리베카 솔닛 저/김현우 역 | 반비
이야기들이 우리의 삶을 만들어내고 관계를 만들어내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세밀하게 관찰한다. 내밀한 회고록이지만 읽기와 쓰기가 지닌 공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유려하게 설명하는, 리베카 솔닛만이 쓸 수 있는 독특한 에세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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