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시간 가게』 를 통해 입시라는 미래의 목표를 위해 ‘지금’을 유예시켜도 되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졌던 작가 이나영이 새로운 작품으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불규칙한 디딤돌을 조심스레 밟으며 나아가는 용감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담긴 『블루마블』 이다. 차갑고 비틀린 현실의 틈을 감지하는 예리한 시선과 그 속에서 분투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알아차리는 작가의 감수성은 『블루마블』 속 여섯 편의 이야기를 고요히 압도한다. 그가 건네는 여섯 개의 빛나는 구슬에 가까이 다가서 보자.
첫 작품 『시간 가게』 를 발표하신 이후로 그동안 꾸준히 동화와 청소년소설을 써 오셨지만, 단편집으로는 『블루마블』 이 처음입니다. 언제부터 모아 오신 이야기인지 궁금합니다. 첫 단편집을 출간한 소감은 어떠신지도 묻고 싶어요.
여섯 편의 단편 중에 가장 오래된 이야기가 「블루마블」이에요. 2014년 가을에 계간지 『어린이책 이야기』 에 발표되었으니까, 작가의 길에 들어서면서부터 쓴 이야기를 모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특별한 계획 없이 이야기가 다가올 때마다 집중해서 쓴 것 같아요. 그래서 오래 걸리기도 했고요. 책으로 엮이고 다시 읽어 보면서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작가 생활을 뒤돌아볼 수 있었고 앞으로 나아갈 힘도 얻은 것 같아요.
새봄이 벌써 성큼 왔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모두가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하거나, 가까스로 상황을 견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요?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안부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저 역시 올해 상반기에 계획되어 있던 여러 강의와 강연이 취소되거나 무기한으로 연기된 상태예요.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손을 맞잡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어요. 밀렸던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또 그만큼 대응을 잘 하고 있기에 곧 일상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우리 친구들도 그날까지 건강 잘 챙기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즐겁게 보냈으면 좋겠어요.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 나가다 보니 『블루마블』 은, 매우 다양한 결의 감정들이 담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짧은 이야기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오래 곱씹었어요. 그러고 보니 모든 작품의 주인공이 여자아이들이더라고요! 『시간 가게』 나 『붉은 실』, 『열세 살의 덩크슛』 등 지금까지의 다른 이야기들도 주로 그래 왔던 것 같아요. 여자아이들의 이야기에 특별히 집중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왜 하필 동화일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어요.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도 결국 도달한 곳은 ‘어린 나’ 였어요. 제 어린 시절은 도무지 풀 수 없는 엉킨 실타래였어요. 감히 어쩌지 못하고 훌쩍 어른이 되었죠.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실타래가 풀리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때 힘이 되었던 게 우연히 접한 동화였어요. 제가 동화를 쓰는 이유 중 하나가 제 어린 시절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위로해 주기 위해서예요. 그런 면에서 여자아이들의 이야기를 쓰는 건 어쩌면 당연했는지 몰라요. 아직 제 안에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의미도 되고요.
그리고 그 실타래 안에는 여자로서, 여자였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차별과 편견들이 있었죠. 지금까지는 여자아이들이 내는 목소리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목소리를 넘어 행동하는, 나아가 연대의 힘을 보여 주는 글을 쓰고 싶어요.
너무 다른 두 친구 혜나와 은서 사이에서 어지러울 정도로 아찔한 심리전을 펼치는 「블루마블」의 주인공, 재방송처럼 반복되는 현실의 갈피에 자기만의 기쁨을 알뜰하게 끼워 넣는 「봄날의 외출」 속 주인공, 당차고 힘차게 사랑의 감정을 탐색해 가는 「내 남자의 그녀」의 연수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함부로 위로하거나 봉합할 수 없는 고통을 소재로 다룬 「검정 가방」이나, 도저히 탈출구를 찾을 수 없는 아이의 마음을 감각적인 판타지로 다룬 「어느 날, 고래가」처럼, 무겁고 엄혹한 상황을 다룬 작품들도 가슴에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이 작품들을 쓰실 때 마음에 두었던 생각이 있다면요?
글을 쓸 때 이런 소재, 이런 주제로 써야겠다고 미리 정해 두진 않아요. 이야기가 저를 찾아오고, 그것이 제 것이 되기까지 꽤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렇게 한 편 한 편 다가올 때마다 쓴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었는데요. 계획하지 않았는데 지나고 보니까 계획한 것 같을 때가 있잖아요? 제게는 『블루마블』 이 그런 것 같아요. 작가의 말을 쓰기 위해 다시 찬찬히 읽어 보는데 ‘목소리’가 떠올랐어요. 고군분투하며 나름의 목소리를 내는 아이들. 결국 문학은 누군가의 간절함이 담긴 목소리를 듣고 대신 전해 주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서로의 목소리를 들어 주고, 기억하고, 마음을 헤아리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어요.
“햇빛 하나 들지 않던 작은 다락방에서도, 좁은 골목길 구석에서도, 부모님이 일하시던 정신없는 시장통에서도 책을 읽고 책 속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또 내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목소리를 알아채고 기다려 준 친구들도 있었지요. 겨울마다 향긋한 귤피차를 끓여 내주던 친구, 예쁜 편지지와 색깔 펜을 건네던 친구, 눈 오는 날 비탈길을 내려갈 때 손을 잡아 주던 친구까지. 그 친구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누군가의 작은 목소리를 들으려 애쓰고, 또 목소리를 내어 글을 쓰는지도요.”
『블루마블』 의 작가의 말에서, 선생님의 어린 시절을 조금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어린이였는지, 살짝 들려주시겠어요?
동굴 안에서 치열하게 나 자신과 싸웠어요. 지금 생각하면 온전히 어른들의 잘못인데, 그 원인을 나에게로 돌렸던 것 같아요. 마음의 병이 단단하게 들었던 거죠. 그런 내 결점을 보이기 싫어 더 착하고 똑똑하고 어른스러운 아이여야 했어요.
어느 날, 엄마와 함께 닭튀김집에 갔는데 주인 아줌마가 저를 보고 ‘어린아이 얼굴이 왜 이렇게 어두워?’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처음 보는 아줌마였는데 깜짝 놀랐죠. 가슴이 뻐근하도록 울렁거렸던 기억과 오래된 기름 냄새가 지금도 선명해요. 옛날 통닭을 먹을 때마다 그 주인 아줌마가 종종 떠오르고 감사함을 느껴요. 내 속마음을 알아봐 준 거니까요. 이후에도 많지는 않지만, 내 마음을 알아채고 기다려 주고 손잡아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껏 버텨 온 것 같아요.
『시간 가게』 는 2013년에 출간되었지만 지금까지도 정말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꾸준한 사랑과 지지가 이어지고 있는데, 작가로서 이 이야기가 이렇게 오랫동안 읽히는 힘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첫 작품으로 지금껏 사랑을 받고 있으니, 다시 생각해도 정말 운이 좋은 사람 같아요. 중학교에 강연을 가서 『시간 가게』 를 쓴 작가라고 소개를 하면 초등학교 때 읽었다면서 엄청 반가워해요. 초등학교 다닐 때, 작가와의 만남에서 저를 만났다면서 알은체하는 아이들도 종종 있고요. 그럴 때는 저도 반가워서 함께 손을 잡고 제자리에서 폴짝거려요. 잘 자라 줘서 대견하고, 시간이 지났어도 기억하고 알아봐 주어서 고맙더라고요. 강연마다 빠지지 않고 ‘작가님은 어떻게 그렇게 우리들의 마음을 잘 아세요?’라는 질문을 받는데요. 그만큼 아이들이 공감하는 이야기로 다가간 것 같아서, 그리고 글로 전한 내 진심이 아이들에게 잘 전달이 된 것 같아서 보람됩니다. 8년째, 『시간 가게2』를 써 달라는 이야기를 듣는데, 쉽지 않아요. 10년차가 되면 쓸 수 있을까요? 행복한 고민 중에 하나예요.
다음 이야기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올지 궁금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들려주세요.
글을 쓰면서도 두려운 것 중에 하나가 ‘다음 이야기가 다가오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거예요. 다행히도 계속해서 쓰고 싶은 이야기가 떠오르니까, 앞으로도 꾸준히 성실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하루빨리 마스크를 벗고 친구들을 만날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블루마블』 과 함께요. 제 바람이자 계획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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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블 이나영 글/유경화 그림 | 문학동네
불규칙한 디딤돌을 조심스레 밟으며 나아가는 용감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담겼다. 차갑고 비틀린 현실의 틈을 감지하는 예리한 시선과 그 속에서 분투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알아차리는 작가의 감수성은 『블루마블』의 전편을 고요히 압도한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