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편안한 방식으로 비거니즘을 이야기하는 『나의 비거니즘 만화』 , 추억을 떠올리는 즐거움이 있는 책 『우리는 원래 더 귀여웠다』 , ‘농장 생활툰’이 들려주는 색다른 이야기 『백성귀족』 을 준비했습니다.
톨콩(김하나)의 선택
『나의 비거니즘 만화』
보선 저 | 푸른숲
오랜만에 만화책 한 권 가지고 왔습니다. 『나의 비거니즘 만화』 라는 책이고요. 부제는 ‘어느 비건의 채식&동물권 이야기’라고 되어 있습니다. 표지를 보시면 파스텔 톤으로 색감이 여리여리하고, 표지에 나와 있는 ‘아멜리’라고 하는 캐릭터가 표정도 아주 차분하고 평온하고, 그리고 선의 느낌이 아주 귀엽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봤을 때는 ‘비거니즘을 실천하다가 실패하기도 하는, 귀엽고 아기자기한 이야기이겠거니’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이 책은 너무너무 성실하고 진지한 책이었어요. 그리고 정말 지적인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많은 비거니즘 담론들을 최대한 담아내고, 그것을 젠체 없이 ‘이것을 사람들에게 가장 쉽고 편안한 방식으로 전달하겠다’라고 하는 작가님의 성정 같은 게 반영이 되어 있는 것 같아요.
머리말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먼저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비거니즘은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기 위한 가치관이 아닙니다. 저는 채식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도덕적인 결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육식 뒤에 어떤 불편한 진실이 있다고 해서 그 진실이 여러분의 삶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진실을 마주하는 데 두려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말투도 정말 친절해요. 그리고 생활툰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자기 이야기, 자기 친구들의 이야기부터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는데요.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다가 중간에 한 동물씩-소, 닭, 돼지, 개 등-어떻게 농장 안에서 살아가고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지 나오는데요. 적나라하게는 나와 있어요. 보기 힘드니까 가감한다든가 하는 게 없어요. 끔찍하기는 하죠. 그런데 저자의 그림체와 태도가 그것을 누그러뜨려주는 면이 있어요. 그 부분에 있어서 저는 아주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요. 너무 격앙되거나 내 안의 어떤 것이 무너져 내릴 정도로 이것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장치를 많이 마련해주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서도 현실을 또렷이 직시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님이 스스로 감내하는 게 굉장히 많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의 선택
『우리는 원래 더 귀여웠다』
자토 저 | 창비교육
제목부터 너무 깜찍해서 반한 책이었어요. 『우리는 원래 더 귀여웠다』 이고요. 부제는 ‘새콤달콤 레트로 탐구 생활’입니다. 표지 그림을 보면 세 명의 아이가 걸어가고 있는데요. 손에는 리코더와 컵볶이, 신발주머니, 요요를 들고 있어요. 머리 위에는 우유팩이 올려져있고요. 언제 적 감성인지 아시겠죠? 뒤표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호랑이는 담배를 피우고 우리는 아폴로를 빨았지!” 그 문장 아래로는 아폴로를 깨끗이 빨아먹기 위해서 손바닥에 올려놓고 열심히 비비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도 있고요. 소독차를 따라다니고, 다마고치를 키우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이 책에는 자토 작가님이 초등학생 시절에 겪었던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요. 학교 앞에서 병아리, 메추리를 사다 키우면서 울었던 일들, 새콤달콤을 친구와 나눠 먹었던 일, 수련회 장기자랑과 촛불 의식(?) 등 공감할 만한 이야기가 정말 많은데요. 이야기 뒤에는 에세이 형식의 글이 실려 있어요. 그 시절의 우리는 무엇을 하든 신났던 것 같은데 어른이 되면서 ‘신남’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오고요.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 중 하나를 읽어드릴게요.
“비는 지켜볼 때 참 좋다. 막상 우산을 들고 빗속에 들어가면 귀찮고 힘든 일이 그득하다. ‘추억’도 비 오는 날과 같아서 떠올릴 때면 참 좋아 보인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쓰다 보니 나의 조그마한 세상이 무척이나 평온해 보여서 그리워진다. 막상 그 안에 있는 어린이는 어떨까. 걱정도 고민도 많은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그마한 세상이라 더욱 힘겨웠을지도. 그러니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비 오는 날이 너무 좋아서 빗속으로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과 같다. 여기서 지켜보는 게 가장 좋은지도 모르고.”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즐거웠는데요. 왜 그랬는지 생각해 보면, 지나간 그때의 일들을 같이 이야기할 수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단호박의 선택
『백성귀족』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김동욱 역 | 세미콜론
저도 오늘 만화를 가지고 왔는데요. 『백성귀족』 입니다. 지금 날짜 기준으로 6권까지 나와 있는 만화책이에요. 현재 일본에서 연재 중이라고 하고요. 조금의 시차를 두고 우리나라에서도 계속 단행본이 발간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라카와 히로무 작가님은 『강철의 연금술사』 도 그리셨어요. 이 분의 작품 중에 『은수저』 라는 작품이 있는데, 농업고등학교에 다니는 친구들 이야기예요. 제가 그 작품을 되게 좋아해서 계속 챙겨보고 있었는데, 이 작가가 『강철의 연금술사』 의 작가일 거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림체가 비슷하기는 한데, 워낙 『강철의 연금술사』 는 소년 만화로 불리고 스토리가 생활툰의 느낌과는 다르기 때문에 같은 작가일 거라는 상상은 안 했었거든요.
작가님이 홋카이도의 농가에서 태어나서 그 지역에서 쭉 자란 이력이 있어요. 본인이 실제로 농업고등학교를 다니기도 했어요. 『은수저』 도 그렇고 『백성귀족』 도 그 경험에 기반 해서 쓴 책이고요. 『백성귀족』 은 생활툰에 가까운 내용입니다. 작가님이 어릴 때부터 집에서 농사일을 도왔는데요. 집안은 낙농과 농업을 동시에 하는 낙농가였어요. 처음에는 만화를 그리는 수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농업고등학교를 다니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는데, 여러 가지 문제로 수의사는 포기하게 됐고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계속 농업과 축산업 일을 하다가 등단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도쿄로 상경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됐는데요. 작가님이 농업고등학교 출신이다 보니까 상상도 못 할 에피소드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옵니다.
『백성귀족』 이라는 제목의 의미에 대한 설명도 나와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백성’이라고 하면 계급적인 걸 나타내잖아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백성’이 ‘농민’이라는 말로도 쓰인데요. 그러니까 『백성귀족』 은 농민 귀족 혹은 귀족 농민 같은 뜻이 되는 거죠. ‘백성’이라는 말에 약간 비하의 의미도 담겨 있다고 하는데, 일본의 농민들은 스스로를 ‘백성’이라고 부르고 비하의 의미를 담지 않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자존감의 표현으로 이런 제목을 고르신 것 같아요.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