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전문 저널리스트 박희아가 아이돌 한 명 한 명의
매력을 소개하는 <박희아의 비하인드 아이돌>은 격주로 연재됩니다.
우주소녀가 데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찍었던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여름은 민속촌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다. 이날 여름은 굿을 하는 무속인의 복장을 하고 지나가는 커플들에게 “손잡고 다녀! 그래야 오래 가!”라며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모습을 보였고, 만난 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결혼을 한다는 커플에게는 “좀 더 지켜봐.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라고 말하며 능청스럽게 굴었다. 1999년생, 올해로 만 21세인 여름은 당시만 해도 미성년자였다. “기독교인이에요. 절에 가본 적도 없어요”라며 호탕하게 웃던 시절이었다.
종교가 무엇이든, 능청스럽게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던 여름의 모습은 우주소녀의 막내로서 늘 애교를 부리던 모습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같은 그룹의 멤버들은 그를 마냥 귀여워하기 바빴고, 여름은 그에 순응하며 끊임없이 귀여운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보여주었다. 여성 아이돌에게 늘 요구되는 애교와 같은 요소를 막내라는 상징적인 역할과 결부시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그의 모습은 민속촌 아르바이트를 할 때만큼이나 적절하게 장소와 때를 맞춰 부각됐다.
그러나 민속촌 아르바이트를 할 때처럼, 10대 후반이었던 여름의 모습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화했고 그 변화는 무대 위에서 여름이 보여주는 모습으로 구체화 되어가고 있다. 데뷔 때부터 춤을 잘 추는 멤버이자 춤을 추는 모습이 눈에 띄는 멤버로 늘 언급되곤 했던 그는 우주소녀가 기존의 모습에서 좀 더 과감한 안무로 변신을 꾀한 ‘부탁해’ 활동 내내 ‘모든 언니들을 유혹하는 여름’이라는 농담 섞인 말로 회자되었다. 페어, 유닛 안무가 삽입되면서 여름이 우주소녀 멤버들 여러 명의 몸을 과감히 쓸어내리고 만지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여름이 이런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이유는 소위 중성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의 춤 스타일 덕분이다. 선배 그룹이자 보이그룹인 엑소나 몬스타엑스의 춤을 커버하면서, 여름은 멤버들 사이에서도 눈에 띌 만큼 자신의 성별을 퍼포먼스의 완급조절을 통해 탁월하게 감춘다. ‘러브샷’의 유명한 후렴구 동작이 하나의 예다. 그는 웨이브를 타며 여성의 몸을 강조해 상체를 활용하기보다 다소 건조해 보일지라도 정석적인 웨이브 동작에 힘을 가한 정도로만 상체에 힘을 준다. 또한 여성 아이돌의 춤에서 흔히 사용되는 골반의 움직임보다 간소화한 움직임으로 도리어 터프한 느낌을 낸다. 이런 그의 동작들이 지닌 무드는 ‘템포’, ‘전야’, ‘엘리게이터’ 등 유명한 곡들을 커버하는 데 있어서도 똑같은 효과를 낸다.
애교만 부리던 막내 멤버가 능청맞게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라며 결혼을 앞둔 커플에게 농담 반 진담 반의 충고를 건넬 때처럼, 여름은 애교 많은 모습에서 유추하기 어려운, 간결하면서도 터프한 움직임으로 퍼포먼스 안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수행한다. 주도적으로 멤버들을 리드하고, 남성 아이돌의 춤을 출 때는 적절한 수위와 표현법을 찾아 보여주는 것.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여름의 반대 모습을 지켜보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보아온 우주소녀의 막내 여름의 반대는 겨울이 아니라, 눈앞에 찾아온 계절의 핵심을 뽑아내는 영리함과 끼라는 것을 크게 소리 높여 얘기할 때까지, 여름은 계속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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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아
전 웹진 IZE 취재팀장. 대중문화 및 대중음악 전문 저널리스트로, 각종 매거진, 네이버 VIBE, NOW 등에서 글을 쓰고 있다. KBS, TBS 등에서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예능에 관해 설명하는 일을 했고, 아이돌 전문 기자로서 <아이돌 메이커(IDOL MAKER)>(미디어샘, 2017), <아이돌의 작업실(IDOL'S STUDIO)>(위즈덤하우스, 2018), <내 얼굴을 만져도 괜찮은 너에게 - 방용국 포토 에세이>(위즈덤하우스, 2019),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우주북스, 2020) 등을 출간했다. 사람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