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윤이 칼럼] 바꾸고 싶지 않은 표지
책 디자인 의뢰를 받았을 때 한 일주일을 머리 뜯으며 고민했던 시간은 까마득히 잊히고. 매번 스스로에게 하는 말 ‘고민은 그만하고 일단 그려라'.
글ㆍ사진 석윤이(그래픽 디자이너)
20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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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때였던 것 같다. 처음 『리버 보이』의 표지를 접하고 강하고도 신비로운 느낌의 타이틀과 일러스트에 사로잡혀 표지만 보고 책을 사고서는 뒤늦게 읽어보게 되었는데, 큰 감동이 내 안에 남았다.

담당 편집자는 『리버 보이』와 함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개훔방’이라고 말해서 ‘네?’하고 몇 번을 물었다)도 리커버 디자인 하기를 원했다. 청소년 문학이라고 해서 꼭 학생들 취향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보아도 읽고 싶은, 예전의 이미지보다는 조금 더 밝고 대중적인 이미지이기를 바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두 권이 함께 리커버가 되다 보니, 나란히 두었을 때 세트 같은 느낌이 들어야 하고 각 내용에 맞는 컬러를 써야 하겠기에 디자인이 들어가기도 전에 먼저 컬러를 고민하게 되었다. ‘나란히 있었을 때 서로를 보완해 줄 컬러 조합은 무엇일까?’ 디자인도 나오지 않았는데 컬러를 나열하고 있는 자신이 조금 우스웠지만, ‘기존의 좋은 디자인을 어떻게 상큼하게 바꾸지...’ 라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종의 마음 다스리기, 워밍업 같은 과정인 듯하다.



작은 네모 안에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과정

일단 리버 보이의 원서들을 찾아보자.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년의 이미지가 강조된 표지들이 대부분이었고, 헤엄치는 강물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어찌 보면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배경이기 때문에 이 요소를 꼭 넣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문제는 소년의 이미지가 참 어렵다는 것이다. ‘또 사람의 얼굴인 것인가!’ 가장 어려운 얼굴을 넣어야 하는 상황. 수영하는 소년을 그려보고 싶어 스스로 자유형을 하는 모습도 취해보았으나, 소년과 또 다른 주인공인 소녀의 이미지를 한 번에 넣는 구도가 잘 나오지 않았다. 

역시 여러 가지를 다 넣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네모 표지는 너무나 작다. 책표지가 A3 이상이면 다 넣을 수 있을까. 이렇게 풀리지 않을 때는 타이틀부터 다듬어보기로 한다. 이미지가 차지하는 영역이 작아도 타이포를 사용한 디자인으로 『리버 보이』와 함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연결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에 리버 보이 타이포를 만들어보았다. 

기존의 타이포로는 타이틀을 살릴 느낌을 찾기가 어려워 헤엄치는 물결 모양을 그려 만들어보았는데, 딱딱 떨어지는 선과 물결의 선이 만나 마음에 드는 타이포로 정리가 되었다. 

타이포가 마음에 들게 정리되니 나머지 영역에서의 조합을 좀 더 가뿐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는데, 표지에서의 타이틀과 지은이, 원제, 로고 등의 위치는 균형을 맞추는 데 큰 역할을 하기에 두 권에 연결되는 느낌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셈이다. 



처음에는 러프하게 스케치를 해본다. 소녀의 뒷모습, 숲, 강물 등을 그려보기도 하고 사각형이나 아치형의 프레임에 넣어보기도 하면서 이미지를 발전시켜 본다. 서 있는 소녀의 모습이 조금 딱딱하거나 강해 보여 배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바꾸고,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하면서 내가 상상한 숲, 강물, 떠오르는 태양의 구도를 정리한다. 소년의 이미지가 빠질 수 없기에 고민하다가 환타지 요소를 복합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소년의 얼굴이 하늘이 되도록 넣어보았다. 태양에서 번져 나오는 빛을 그라데이션으로 처리하고 맑은 하늘은 새벽의 색을 사용하여 그 하늘에 별과 달이 보이도록 하나씩 총총 박아보았다. 이 별과 달을 넣을 때 비로소 이미지의 균형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말을 여기에 설명할 수 없지만(?) 내가 해석한 이중적인 의미를 표현하고자 한 것인데, 말할 수 없다니 답답하다. 

띠지도 넣기로 하여, 띠지 컬러와 함께 속표지의 패턴 작업도 함께 세트로 구상하여 컬러를 정리했고,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리버 보이 의 레이아웃에 맞추어 작업을 시작했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에서 넣고자 하는 이미지는 처음부터 확실했다. ‘개’와 ‘소녀’. 처음엔 어떤 모습의 개를 그려야 할까 싶어 이렇게 저렇게 그려는 보았으나, 사람 얼굴보다 어려운 것이 동물의 얼굴이구나...를 깨닫고 처음 표지 시안에서는 어색하게도 로봇 같은 얼굴과 표정을 그려버렸다. 그리고 개를 훔치는 소녀는 얼굴을 그리고 싶지 않아서인지 하반신만 그려 넣어 시안을 보냈다.(그리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없어서...) 역시나 피드백은 예상했던 대로. 개의 앉아 있는 자세와 표정 등의 실루엣을 수정했고, 개를 훔치는 소녀의 하반신만 그린 것이 어색하다고 하여 상반신이 있는 모습으로 변신. 나중에 저작권사 컨펌 과정에서 소녀의 머리색이 까만색이라고 하여 수정했다가 다시 오렌지 컬러로 통일해서 진행하게 되었다. 타이틀은 리버 보이와 맞추어 라인으로 정리, 조합한 타이포를 만들었다. 



두 권의 속표지를 마무리하는 것은 너무나 행복했다. 이제 표지 컨펌이 났으니 홀가분하게 체크 패턴의 컬러를 맞추고, 책등에 각 타이틀 위치와 전체적인 느낌을 맞추는 일만 남은 것이다. 겉표지와 속표지가 따로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어 디자이너에게는 즐거움인 것 같다. 게다가 양장으로 제작되면 밝고 경쾌한 컬러들이 좀 더 차분하게 정리되어 보이는 효과가 있다.

처음에 의도했던 대로 책의 첫인상이 청소년과 성인(아이와 어른?)이 보았을 때, 밝고도 재미있는 느낌으로 다가왔으면 했다. 나에게는 동심이 가득하기에 어린이책을 꼭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그 바람을 조금이나마 적용해본 것 같아 만족스러운 작업이었다.

책 디자인 의뢰를 받았을 때 한 일주일을 머리 뜯으며 고민했던 시간은 까마득히 잊히고. 매번 스스로에게 하는 말 ‘고민은 그만하고 일단 그려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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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 보이
리버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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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윤이(그래픽 디자이너)

열린책들에서 오랫동안 북디자인을 했다. 현재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