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는 글
나는 독자를 생각하고 글을 써본 적이 없었다. 모든 글은 일차적으로 나를 위한 것이었고 그것만 충족되면 세상에 내보냈다.
글ㆍ사진 박주연
2020.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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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를 하나 보았다. 제목은 “소셜 딜레마”.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은 IT기업이 가진 영향력에 대해 말하는 내용으로, 이용자들이 더 자주 더 오래 서비스를 이용할 때 기업이 더 많은 광고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을 추천하는 알고리즘이 점점 더 발달하고 있다고 한다. 진실을 보여주는 것보다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더 수익에 효과적이기에 셀 수 없이 많은 가짜 뉴스가 유통된다. IT기업들이 이용자 맞춤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가짜 뉴스에 노출된 사람들은 추천 알고리즘에 의해 해당 뉴스를 믿는 다른 사람들과 그 밖의 다른 문제에 있어서도 같은 입장을 공유하게 된다. 이용자는 자신이 중립적인 웹사이트에서 중립적인 검색과 중립적인 이용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를테면 우리는 “자신이 선택했다고 믿지만 기업이 설계해준, 광고 최적화형 온라인 사회”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개인이 접하는 추천 알고리즘에 따라 사회적 이슈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양극단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다큐멘터리는 설명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자신의 의견을 가진 개인도, 다른 의견을 가진 집단과 교류할 의지가 있는 집단도 찾아보기 힘들다. 사람들은 점점 보여주는 대로 믿고 그것만이 참이라고 주장한다. 인터넷은 넓고 자유로운 세상을 제공할 줄 알았는데 그것과 동시에 폐쇄적이고 극단적인 집단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전문가들의 말대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동시에 있는 셈”이다.

평소 쓰던 글과 성격이 아주 다른 글을 쓴 적이 있다. 널려 있는 자료를 분석하고 정리하는 일종의 보고서로, A4 10매 정도 길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해내야 하는 과업이었기 때문에 시작했던 그 글이 나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제출하면서 나는 어떤 피드백에도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내가 마음을 주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어디 가서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신경이 쓰일 것 같지 않았다. 이런 걸 보고 내놓은 자식이라 부르나 생각했다. 글을 제출한 뒤 내 글을 읽은 사람이 나를 불러 나직하게 말했다. “글을 쓸 때는 독자가 왜 이 글을 읽어야 하는지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해.” 나는 아킬레우스가 되고 말았다. 절대 상처받지 않는 몸을 가졌으나 단 한 군데의 약점을 찔려 회복하기가 어려웠다. 그의 피드백은 내놓은 자식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독자를 생각하고 글을 써본 적이 없었다. 모든 글은 일차적으로 나를 위한 것이었고 그것만 충족되면 세상에 내보냈다. 그의 피드백은 내 모든 글을 향해 있었다. 그 모든 글들은 일기였던 것이다.



“혼자 보시는 일기는 아무렇게나 써도 좋은데, 책으로 나올 글이라면 역시 화를 조금 다스리신 다음에 써야 하지 않을까요? 근데 책을 출간하는 게 아드님한테 과연 괜찮을지 잘 모르겠어요. 공개적으로 욕을 하는 모양이라면요.”

“그 생각은 안 해봤네요.”

“저도 그 부분이 늘 어려워요.”

『심신단련 : 이슬아 산문집』

독자와 독자에게 나아갔을 때를 예상하고 구상하는 글은 어떻게 다를까. 아직도 그런 글을 쓸 자신이 없다. 글이 갖추어야 할 최고의 미덕을 솔직하고 쉬운 것으로 삼은 나는 여전히 모든 글을 나를 향해 쓴다. 내게 좋은 것이 남에게도 좋을 거라는 마음가짐은 아니다. 나와 소수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과 교류하는 방법을 모르는 느낌에 가깝다. 쓰고 보니 어찌나 폐쇄적인 사람인지. 나는 설득보다 질문이 많은 글을 쓴다. 내게 중요한 이 문제가 당신에게는 어때요? 나는 설득보다 부탁이 많은 글을 쓴다. 나는 이 문제가 너무 힘드니까 조심해주세요. 이 방식으로는 멀리 가지 못한다. 사회는 설득으로 움직여야 한다. 더 많이 읽혀서 더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면 설득하는 글 역시 써야 한다.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아찔함이 느껴진다. 나에게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내 안에 있던 것을 글로 꺼내던 순간의 첫 용기가 다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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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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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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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

2020.09.21

진심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진심은 결국 전달되나봅니다. 이렇게 제가 댓글을 쓰고 있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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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