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오은): 오늘 주제가 ‘이 작가의 다음 책을 기다립니다’예요. 한 마디로 우리가 사랑하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는 마음이었어요.
프랑소와 엄: 와, 정말 멋진 주제죠. 이 주제를 캘리 님이 제안하셨는데 통했다고 생각했어요. <월간 채널예스> 12월호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특집 중 하나가 딱 이 주제예요. 독자 여덟 분께 ‘이 작가가 내년에 꼭 책을 냈으면 좋겠다’라는 주제로 글을 청해 받았거든요.
캘리: 그렇게 가져온 세 권의 책 모두 국내 작가의 책이라 반가워요.
캘리가 추천하는 책
홍은전 저 | 봄날의책
홍은전 작가님의 칼럼집이에요. 작가님은 세월호 가족의 육성을 기록한 책 『금요일은 돌아오렴』, 형제복지단 피해생존자의 목소리를 담은 책 『숫자가 된 사람들』, 화상경험자를 인터뷰한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구술 기록집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등에 참여한 분이에요. 벌써 이 목록만 봐도 작가님의 실천적 면모가 눈에 띄는데요. 실제로 활동가이시죠.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셨거든요. 책을 읽는 내내 그분의 시선을 빌려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어 진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작가님은 "싸우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건 세상의 차별과 고통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이 곧 망할 거라는 징조"(27쪽)라고 얘기하는데요. 그 부분을 읽으면서 좋아하는 글귀가 생각났어요. 김규항 작가님의 "평화는 무작정 조용하고 온순한 상태가 아니다. 때론 평화를 위한 노력이야말로 가장 소란스럽고 사나울 수 있다."는 말을 좋아하는데요. 누군가가 문제 제기를 하거나 저항하거나 시위를 할 때 사람들은 왜 이렇게 화를 내느냐, 평화롭게 대화로 해결하자, 천천히 하나씩 바꿔가자, 같은 말을 하잖아요. 그러면서 오히려 문제 제기를 하는 네가 평화를 해치고 있다고 말을 해요. 하지만 그 말, 너무나 엄청난 억압의 말이고 폭력의 말이죠. 저는 차별 받던 사람이 저항하는 '온 우주와 맞서는' 그 순간에야말로 평화가 좀 더 가까워지는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 사회가 그런 분들에게 정말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했어요.
작가님이 비유를 하나 했는데 참 좋았어요.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어딜까요? 흔히 심장, 뇌 등을 떠올릴 텐데요. 작가님은 심장이 아니라, 몸에서 가장 아픈 곳이라고 말하거든요. 상처 난 곳으로 나쁜 것들이 들어오고, 그로 인해 몸 전체를 망가뜨리게 되니까요. 따라서 사회의 약한 고리, 그 부분을 살펴보고 그 부분에 연대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말 와 닿았고요. 책을 읽는데 그동안 뉴스에서 만났던, 숫자로 보던, 내가 제대로는 알지 못했던 한 명 한 명의 살아 있는 혹은 살아 있던 사람들의 생생한 얼굴을 보는 기분이었어요. 그 얼굴을 들여다 보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진짜 책을 읽어보지 않으면 몰랐을 것 같아요. 가벼운 책인데, 정말 무거운 책이에요.
불현듯(오은)이 추천하는 책
이원 저 | 마음산책
저는 이원 시인의 문체를 정말 좋아해요. 가령 이런 건데요. 이번 책의 책 날개에 작가 소개글을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시 쓰는 생물이라고 적어본다. 시가 제일 어렵고 점점 모르겠고 그런데 사랑을 거둘 수 없다고도 적어본다. 시가 알려준 것들로 상당 부분을 지탱시키며 시간을 통과한다. 인간이 만든 색과 향을 좋아하며, 다름의 동시성이 깃드는 ‘모순’을 자주 뒤척인다. 마음의 등불이 꺼지는 순간이 있어 성냥을 모은다. 파란 머리를 가진 성냥인데 통마다 향이 다르다. 성냥이 곁에 있으면 불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 책은 이원 시인이 모 일간지에 연재한 글을 묶었는데요. 연재 당시에는 시 한 편을 두고 그 아래에 이원 시인이 글을 썼어요. 그런데 이 책에는 시가 담겨 있지 않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중요했던 이유는 시 없이 시를 만나보는 체험을 우리에게 가능케 하기 위함이었을 것 같아요. 시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읽기가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시가 없는 상태에서 그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독자는 그 시를 상상하게 되잖아요. 덕분에 좀 더 시적인 순간을 일으킬 수 있는 글로 변모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 책은 제목이 『시를 위한 사전』이지만 시에 접근할 때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아요. 그냥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는지가 제일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이 책은 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저도 한 편의 시가 있는데 열 명의 사람이 다 다르게 읽을 때 그 시가 더 많이 가치 있어지는 것이 아닐까, 얘기하곤 하는데요. 저는 제가 시를 썼을 때의 마음과는 아예 다르게 시를 읽어주셨을 때가 제일 좋아요. 그 시가 또 하나의 생명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쓸 때도 마찬가지로 전혀 이상한 곳에 당도한 시가 더 사랑스럽더라고요.
게다가 이원 시인은 비단 시뿐 아니라 일상의 어떤 면들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만들어줘요. 이 책은 어쩌면 ‘삶을 위한 사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처음에는 시가 없기 때문에 글 한 편을 읽고 시를 찾아봤는데요. 결국 저는 여기에 소개된 시를 다 찾아서 파일로 만들어두었어요. 조금 지치신 분들, 시가 어려워서 시와 멀어진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어요.
여행은 즉각적으로 자유로 연결되지요. 자유가 생기는 것은 온통 모르는 속에 놓이기 때문이지요. 모르는 도시, 모르는 강, 모르는 장소는 나를 둘러쌌던 안전한 장소를 잊게 만드는 힘을 발휘하지요. 모르는 곳에서 온전하게 모르는 사람이 되게 해주는 것은 언어지요. 모르는 언어가 내가 알고 있던 언어를 한 순간에 잊게 해요. 생각이 중지되는 곳에서 나도 한 포기 모르는 구름 이상의 것이 아니었구나, 느끼게 되는데 슬프지 않고 좋아요.
프랑소와 엄이 추천하는 책
김이경 저 | 서해문집
김이경 작가님이 『시의 문장들』이라는 책을 펴내셨을 때 만난 적이 있어요. 그 책을 워낙 좋아했는데요. 나도 책을 쓴다면 이런 느낌의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최초로 했던 책이었어요. 그러다 이 책이 나와서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어요. 작가님이 막내인데 아버지께서 아흔한 해를 살다 돌아가셨어요. 마흔 즈음에 다치셔서 불편한 다리로 평생을 사셨는데요. 힘든 가운데에도 삶에 대한 부지런함, 긍지를 잃지 않으신 분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요즘 어른스러운 사람들에 대한 갈망이 너무 컸는데요. 이 책을 보면서 작가님이 아버지를 떠나 보내고 왜 그렇게 아버지와 이별하는 게 힘들었을까 알 것 같더라고요.
작가님은 아버지를 이렇게 표현했어요. “서른이 되기 전에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마흔 전에 지팡이를 짚어야 했던 시원찮은 몸으로, 갈수록 팍팍해진 세상에 너희를 낳아서 미안하다 하셨던, 지독한 비관을 품고도 단 한 번도 죽고 싶다는 투정 한 마디 없이 아흔한 해를 살았던”이라고요. 한 번은 작가님이 아버지한테 이런 말을 해요. “죽을 때 괴롭고 아픈 게 겁나지 않으세요? 요즘 사람들은 그걸 많이 걱정하고 그래서 자다 죽으면 좋겠다고 하는데요.”라고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정도 살고, 이런 저런 재미도 보았으면 죽을 때 좀 괴롭기도 해야지. 어떻게 영 안 아프길 바라겠니? 나랑 종종 바둑을 두는 친구가 있다. 나이는 나보다 적지만 사람이 참 점잖아. 그이가 교회 장로인데 하루는 나에게 “지금이라도 하나님 믿고 천당 가라” 이렇게 전도를 하더라. 그래서 내가 “이 나이까지 이정도 누리고 살았으면 죽은 다음에 천당 가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천당이 있으면 거기엔 이승에서 나보다 더 힘들게 산 사람들이 가야지, 내가 천당까지 욕심내면 안 된다”고 했지. 그러니까 그이가 다시는 교회 가란 말을 못 하겠다고 하더구나.”
작가님의 아버지는 이순(60) 이후로 자녀들이 쓸데 없는 말을 기억하지 않도록 오랜 시간 공들여서 자신의 말씀을 헤아리고 말을 하셨대요. 작은 실수로 자녀들이 오래 아프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신 거죠. 죽음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 누군가를 애도하고 있는 분들이 읽으시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예전에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크게 위로 받았던 문장이 있는데요. 그 문장이 이 책에도 나와서 마지막으로 소개를 할게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야. 슬퍼하고 있잖아. 그거 아주 힘든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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