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싶었다.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지는 몰랐지만 그랬다. 누구에게든 언제든 그럴듯한 꿈을 강요받는 시기가 있지 않은가, 행복은 그때 자신을 닦달해 얻어낸 답 같기도 하다. 인생에 갈림길이 많이 자주 나타나던 시절이다. 최근에는 곁가지로 잘게 난 길들은 웬만해서는 잘 통과하니 그 갈래길 앞에서 어땠는지 감각이 옅어졌지만 그때는 매번의 선택이 어렵고 무거웠는데, 그러면서, 갈림길들 중 더 나은 것 또는 덜 나쁜 것을 선택하면서 종국에 닿아야 할 곳은 ‘행복한 삶’이라 여겼다. 어딘가에 있겠지만 분명하게 잡히지는 않았던 그것 말이다.
흐릿하게 잘 보이지 않던 행복은 유독 거대하게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존재는 기대를 먹고 무럭무럭 더 자랐다. 그것은 좋은 직업과 좋은 집과 좋은 차와, 그런 것이었을 거다.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상상력이 부실했으니 아마 맞을 거다. 그것 자체를 원했다기보다는 그려볼 수 있는 행복한 장면들은 직접적이지는 않아도 대부분 저런 것들을 기본 배경으로 두고 있는 것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하지만 어디에든 척척 찰떡같이 붙는 저 ‘좋은’은 얼마나 모호한 수식인가. 어른들은 내가 좋은 성적을 받고 그런 좋은 일을 하고 그런 좋은 인생을 살기를 바랐지만, 지금에 와 나는 다른 좋은 일을 하고 이런 좋은 인생을 꿈꾼다. (좋은 성적은 의미가 분명한데, 미안합니다.) 아무렴 어떤 ‘좋은’이든 그때의 ‘행복’은 끝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커 보였다. 그것이 내 삶 전체를 아우르는 지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커서야 원, 나는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꿀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도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벌도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이 자연법칙의 유일한 주제는 생존이다. 꿀과 행복, 그 자체가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 둘 다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간단히 말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_서은국, 『행복의 기원』 9쪽
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의 내용과 지금까지의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총체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_같은 책, 192쪽
『행복의 기원』은 많은 부분에서 공감과 생각의 전환을 경험하며 읽었지만 한편으로 씁쓸했다. 행복의 개인차를 크게 좌우하는 것은 유전적 특성이고, 대부분의 인간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에서 행복감을 느낀다니. 나는 필요한 특질을 타고나지는 않은 것 같았고 인간을 좋아하는지도 의문이었다. 점을 보러 갔는데 듣고 싶은 이야기를 안 해준다. 원하는 말이 나올 때까지 다른 점집을 찾아다닐까 하다가 일단 멈췄다. 포기이기도 했고 후련해서이기도 했다. 입에는 쓰니까 몸에는 좋은가? 이 말대로면 나는 어쩌면 좋지? 아니다, 나는 틀렸구나. 근원적으로 나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타고나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 행복에 집착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마침표를 찍었다.
그런데 수개월이 지나고 이 책을 꽂아둔 책장을 가만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책이 말하는 사람, 관계와 음식, 유전적인 부분까지도, 어쩌면 그것들을 이제는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는 이미 괜찮은 것일 수도 있겠다. 이것이 바로 정신승리인가. 그래도 나쁠 것은 없겠지.
행복하고 싶다. 방법은 여전히 모르겠다. 나는 태생부터 그른 것 같다는 진심 반 장난 반의 생각도 여전하다. 다만 안개는 조금 걷힌 기분이다. 안개 너머를 굳이 애써 보려 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는데, 그 너머에 무엇이 있든, 여기서 방 안에 가만히 누워 멍하니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고, 작은 동네를 구석구석 걸어서 공원과 극장과 맛있는 식당을 찾을 수 있어 좋다. 초콜릿이 필요하면 초콜릿을 먹는다. 행복이 작아진다. 기쁘게도.
초콜릿을 우습게 생각하는 이들이 꼭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 자료들을 보면 행복한 사람들은 이런 ‘시시한’ 즐거움을 여러 모양으로 자주 느끼는 사람들이다.
_같은 책, 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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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욱(도서 PD)
책을 읽고 고르고 사고 팝니다. 아직은 ‘역시’ 보다는 ‘정말?’을 많이 듣고 싶은데 이번 생에는 글렀습니다. 그것대로의 좋은 점을 찾으며 삽니다.
coro80
2020.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