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웅배 칼럼] 아무도 가지 못한 곳, 명왕성을 향한 외로운 여정
하트 모양의 평야 지형은, 처음으로 자신을 찾아와준 인류의 탐사선을 향해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명왕성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글ㆍ사진 지웅배(과학 칼럼니스트)
2021.01.06
작게
크게

ⓒ Courtesy MIT Museum

1969년 인류는 처음으로 지구가 아닌 달 위에 발도장을 찍었다. 이 역사적인 아폴로 11호 미션을 대표하는 사진을 꼽는다면 어떤 이미지들을 꼽을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뒤뚱뒤뚱 걸어가며 달 표면에 성조기를 꽂은 우주인의 모습이나 달 위에 찍힌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닐 암스트롱의 사진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우주복을 입고 있는 버즈 올드린의 전신사진 정도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아폴로 11호 미션을 잘 요약하는 가장 멋진 사진이 하나 있다. 

위 사진은 놀랍게도 달이 아닌 지구의 한 연구실 실내에서 찍은 사진이다. 바로 아폴로 11호 미션 당시 우주선의 항법 가이던스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코딩했던 프로그래머, 마거릿 해밀턴의 사진이다. 이 사진 속에서 해밀턴은 옆에 자기 키만큼 아슬아슬하게 높이 쌓인 서류 뭉치를 함께 세워 두고 해맑은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속 해밀턴과 함께 찍힌 서류 뭉치는 당시, 아폴로 11호가 지구를 떠나 달에 무사히 착륙하도록 해주었던 우주선의 프로그램 코드들을 인쇄해서 쌓아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닐 암스트롱이 달에 발자국을 밟던 그 강렬한 순간의 모습만을 기억하지만, 사실 아폴로 11호 미션은 발도장을 찍던 순간뿐 아니라 수많은 고민과 갈등의 시간들이 축적된 결과였다. 해밀턴이 옆에 쌓아둔 그 방대한 프로그램 코드 뭉치는 달에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서 얼마나 길고 섬세한 과정이 필요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보통 우주 탐사를 뉴스를 통해 접하면서, 탐사선이 실린 로켓이 멋진 화염을 내뿜으며 지구를 벗어나는 광경, 그리고 몇 년 뒤에 탐사선이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는 멋진 순간의 모습만 기억한다. 하지만 우주 프로그램은 단순히 탐사선이 발사되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어렵게 예산을 따내고, 효율적이고 안전한 탐사를 위해 온갖 디자인을 그려내고 장비들을 시험하는 그 모든 시간이 포함되어야 한다. 

또 더 거슬러 간다면, 처음으로 이 미션의 목적지를 결정하고, 까다로운 국회와 기관의 심의를 통과하기 위한 지난한 서류 작업과 프레젠테이션, 홍보 등 여러 다양한 사회적 과정까지 빼놓을 수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이 하나의 미션이 성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전문가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탐사선은 성공적으로 지구를 떠나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탐사선 하나가 발사되어 우주로 떠나는 동안, 사실 대부분의 언론과 시민들의 관심은 크게 두 순간에만 집중되어 있다. 장엄한 화염을 내뿜으며 인상적인 카운트 다운과 함께 로켓이 지구를 떠나는 순간, 그리고 로켓이 발사되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 다시 탐사선이 최종 목적지에 착륙을 시도하는 순간. 오직 이 두 가지 순간만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또 우주 탐사 미션은 오직 이 두 가지 순간의 이미지로만 각인되곤 한다. 

하지만 이런 하나의 미션이 굴러갈 수 있던 것은, 멋진 발사 순간과 착륙 순간 그 뒤에 숨어있는 수많은 스태프와 연구진들의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특히 가까운 우주정거장이나 달까지 가는 여정이 아니라, 아주 멀리 떨어진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는 긴 여정일수록 연구진들의 외로운 싸움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뉴호라이즌스, 새로운 지평을 향한 여정』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했고, 또 가장 외로웠던 여정, 태양계에 최후로 남아있던 지금껏 단 한 대의 탐사선도 방문하지 않았던 마지막 미개척지 바로 명왕성을 향했던 인류 최초의 여정이 걸어온 그 모든 이야기가 아름답게 담겨있다. 

2006년 그랜드 피아노만 한 크기의 작지 않은 탐사선이 지구를 떠났다. 그리고 9년이란 긴 시간 동안 탐사선은 예정된 궤적과 프로세스에 따라 목성을 스쳐 지나가고, 또 명왕성을 향해 하염없이 날아갔다. 그리고 인류는 1930년 희미한 점의 모습으로 처음 발견되었던 명왕성의 실제 모습을 드디어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마지막까지 단 한 대의 탐사선도 방문한 적 없었던 명왕성의 실제 모습은, 앞서 우리가 그동안 막연하게 상상해왔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훨씬 아름답고 경이로운 세계였다. 

특히나 명왕성의 남반구 중심에 커다랗게 그려져 있는 하트 모양의 평야 지형은, 처음으로 자신을 찾아와준 인류의 탐사선을 향해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명왕성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NASA/JHUAPL/SwRI

참 아쉽게도 9년을 날아가 명왕성에 도달했던 뉴 호라이즌스 탐사선은 그 빠른 속도를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명왕성 곁에 계속 머무르지는 못했다. 더군다나 덩치가 아주 작은 명왕성은 그 중력도 약하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탐사선을 붙잡고 그 곁을 맴돌게 할 수 없었다. 결국 9년을 날아가 명왕성에 도달했던 뉴호라이즌스 탐사선은 빠른 속도로 명왕성 곁을 지나가며, 단 하루의 조우만을 즐긴 채 명왕성 너머 또 다른 태양계 가장자리를 향해 빠르게 멀어졌다. 

반세기도 전에 훨씬 먼저 지구를 떠나 태양계 가장자리를 향해 날아갔던 보이저호 탐사선 선배들을 앞지르고, 뉴호라이즌스 탐사선은 곧 가장 멀리 까지 날아간 인류의 인공 물체의 신기록을 세울 예정이다. 그렇게 명왕성을 향해 날아갔던 탐사선은, 이제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진정한 미개척지, 새로운 지평선을 더 확장해나가기 위한 가장 외롭고 위대한 여행을 준비해가고 있다. 

먼 미래 언젠가 또 다른 존재에 의해, 태양계 바깥 우주를 표류하는 다 녹슬어버린 뉴호라이즌스가 발견된다면, 그 존재는 외로운 탐사선을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탐사선을 만들었던 인류란 존재가 얼마나 태양계를 벗어나고자 열망했는지, 그리고 그 열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구진들의 땀이 연료가 되어 이 탐사선을 우주로 띄워 보냈는지를 말이다. 



뉴호라이즌스, 새로운 지평을 향한 여정
뉴호라이즌스, 새로운 지평을 향한 여정
앨런 스턴,데이비드 그린스푼 저 | 김승욱 역 | 황정아 해제
푸른숲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예스24 #채널예스 #과학칼럼 #지웅배 #명왕성 #과학 #eBook
0의 댓글
Writer Avatar

지웅배(과학 칼럼니스트)

우주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알리는 천문학자. 『썸 타는 천문대』, 『하루종일 우주생각』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