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간 한국문학 특집] 번역이라는 초심, 번역가라는 진심 - 한국문학 번역가 안톤 허
안톤 허는 3년 차 전업 번역가다. 총 7권의 책을 번역한 그의 커리어에는 한국문학 번역가로 산다는 것의 기쁨과 좌절과 인내와 아쉬움이 날줄과 씨줄로 얽혀 있다.
글ㆍ사진 문일완
202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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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번역가 안톤 허

안톤 허는 3년 차 전업 번역가다. 총 7권의 책을 번역한 그의 커리어에는 한국문학 번역가로 산다는 것의 기쁨과 좌절과 인내와 아쉬움이 날줄과 씨줄로 얽혀 있다.

한국문학 번역가의 길에 어떻게 접어들었나? 

어려서 외국 생활을 할 때 영어가 능통하지 않은 어머니를 대신해 통역과 번역을 하는 습관이 들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문학 번역에 매력을 느껴 시작하게 됐다. 

당겨 질문하면, 그 결정에 대한 소회가 궁금하다. 

비문학 번역과 달리 문학 번역은 의도적인 노력과 준비가 필요한 분야다. 희생하는 시간도 많다. 배우 같은 삶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연기하는 일도 어렵지만 배역을 따내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의 장단점을 어필해야 하는 과정들이 닮았기 때문이다. 문학 번역가 세계도 굉장히 경쟁적인데, 막상 번역가가 되더라도 번역권을 따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매년 번역가가 새로 배출되는데, 한 해에 번역되는 한국 소설은 10편이 될까 말까다. 그래도 이 결정에 후회는 없다. 

신경숙 작가의 『리진』이 첫 번역 작품이라고 알고 있다. 지금까지 번역한 작품 리스트를 소개한다면? 

맞다. 신경숙 작가 작품을 시작으로 강경애의 『지하촌』, 황석영의 『수인』,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 정보라의 『저주토끼』, 신경숙의 『바이올렛』까지 번역했다. 지금은 베트남계 미국 시인 오션 브엉의 『Night Sky with Exit Wounds』를 한국어로 옮기는 중이다.

번역권을 따는 게 쉽지 않다고 했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 작품을 선택하나. 

평소 한국문학을 많이 읽는데, 깊은 감동을 느낀 작품을 체화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그 과정이 번역이다. 그런 책을 만나면 번역권을 누가 갖고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만약 번역되지 않은 작품이라면 샘플 번역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출판사나 작가에게 전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단, 샘플 번역을 했다고 최종 번역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책을 출간하는 영미권 출판사에서 최종 컨펌을 해줘야 한다. 샘플 번역만 하고 끝나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다. 정작 번역하는 시간보다 번역을 하게 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리는 셈이다.

우여곡절의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다. 

샘플 작업만 하고 뺏긴 일?(웃음) 나는 번역 욕심이 많다. 모든 문학작품을 번역하고 싶다. 하루 종일 번역을 하다 보면, 작가가 앞에 앉아서 얘기를 해주는 느낌이 든다. 매일 작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기분이랄까. 작가에겐 일개 번역가일 수 있지만, 자기 작품을 믿고 맡긴다는 건 마음의 선물, 신뢰를 주는 일이다. 그런 이유로 최선을 다해 번역하려고 노력한다.

번역한 작품 중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는 결이 조금 달라 보이는데, 어떻게 작업하게 됐나? 

거대한 역사소설을 작업한 후라 조금 다른 작품을 하고 싶었다. 와우북 페스티벌에 갔다가 아작 출판사 부스에서 『저주토끼』를 보고 너무 좋아서 아작 ‘대장님’에게 번역권을 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그 자리에 정보라 작가도 함께 있었다. 일단 샘플 작업 권리를 얻고, 해외 여러 출판사에 제안하던 중, 『지하촌』을 냈던 ‘Honford Star’에서 현대적인 작품이 없냐고 묻길래 『저주토끼』를 보여줬고 계약하게 됐다. 한 가지 덧붙이면, 『저주토끼』가 국내에서도 많이 읽히고 평가도 좋았지만, 번역권을 팔았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다시 읽히는 효과가 생겼다는 점이다. 일종의 선순환이다.

한국문학 번역가 커뮤니티인 ‘스모킹 타이거즈’를 운영한다고 들었다. 

한국문학의 국제적 위상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다. 해외 영미권 출판사들은 한국문학이 역사를 많이 다루고 묵직하다는 생각과 기대를 갖고 있다. 물론 한국처럼 역사소설을 잘 쓰는 나라가 별로 없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문학은 훨씬 풍요롭고 다양하다. 스모킹 타이거즈에서 한국 SF, 판타지를 번역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조금 거창하지만, 한국문학의 다양한 면모와 앞서나가는 이미지를 만들겠다는 사명감과 포부를 담고 있다. 

번역과 관련해 ‘안톤 허 스타일’이 있다면 어떤 걸까? 

책을 읽은 사람들은 창조적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원문에 굉장히 충실한 편이다.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걸 전달한다는 차원에서 번역보다는 통역이라고 생각한다. 구어체에 가까운, 통역에 가까운 스타일.

번역가란 한국문학과 외국 독자 사이에 놓인 언어의 장벽을 지우는 최전선에 서 있는 존재다. 한국문학에 대한 외국 독자들의 반응에도 촉각을 세울 것 같은데. 

조금 과장하면, 세상의 모든 리뷰를 다 읽는 편이다. 번역가인 내가 느끼는 걸 독자도 그대로 느끼고 있구나 싶을 때 신기하다. 그게 한국 작가들의 파워인 것 같다. 한국문학의 힘이기도 하고. 자신이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된 희열을 말하는 경우도 많은데, 핵심 키워드는 ‘감동’이다. 덧붙이면, 해외로 간 한국문학 작가들의 경우, 번역문학을 많이 읽은 덕분에 세계문학의 흐름을 잘 알고 항상 밖을 내다보는 작가라는 사실이다.  

최근 한국문학의 해외 수상 소식이 자주 들린다. 우수한 작품과 우수한 번역이 빚어낸 성과라는 평가가 많은데. 

개인적으로 한국문학의 번역 수준은 최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바탕에는 작가들의 훌륭한 작품이 있다. 번역가들은 시대적인 상황과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문학번역원과 출판문화진흥원의 지원이 있었다. 무엇보다 독자들이 있었다. 영미권 독자와 달리 한국 독자들은 정말 부지런하다. 아무리 난해하고 실험적인 작품도 꼼꼼히 읽고 의미를 찾아내고 블로그에 서평을 올린다. 그런 것들이 한국문학의 진정한 인프라라고 생각한다. 

번역가 입장에서, 외국 문학상 수상 등 최근 성과를 지속하려면 어떤 점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문학상도 중요하지만, 더 시급한 건 해외 독자층을 구축하는 일이다. 한국문학이라면 표지라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독자가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국제상을 타기 전만 해도 한국 작품, 아니 아시아 번역 작품은 아예 읽지 않았다. 5~6년 동안 정말 많이 바뀐 셈이다. 지금부터는 독자층을 넓히는,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작업이 절실하다.

‘한국문학 번역가’ 타이틀은 당신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나? 

쉽지 않은 질문이다. 지금까지의 커리어만으로 상황이 좋다고 말하는 젊은 번역가들이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첫 책을 번역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9년이다. 번역할 책은 많지 않고, 그마저도 캐스팅이 어렵다. 한국문학에 기여하는 건 영광스럽지만, 이 타이틀이 얼마나 한시적인지 뼈저리게 느끼기 때문에 항상 아쉽다. 그럼에도 나에겐 여전히 번역하고 싶은 작품 리스트가 빼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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