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간 한국문학 특집] 번역, 그보다는 번역 이후
양과 질에서 한국문학의 번역은 이미 일정 궤도에 올랐다. 바라건대, 다음 관심은 이곳을 향해야 한다. 번역된 한국문학은 해외 독자들에게 어떻게 ‘같고 다르게’ 읽힐까!
글ㆍ사진 안서현(문학평론가)
2021.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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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국립 대만대학교 앞에 있는 페미니즘 서점에 방문했을 때 그곳의 서가에서 『82년생 김지영』의 번역판을 만났다. 반가웠다. 그보다 더 반가웠던 것은 서점에서 만난 이 책의 대만 독자와 나눈 대화였다. 대만 독자는 소설 속 현대 여성이 경험하는 교육과 현실의 괴리감에 특히 공감한다고 말했다. 

문학 번역에 관한 기사를 볼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다. 그 안에 필사적인 인정 욕망이나 패권적인 야심을 숨기고 있을 것만 같아 어딘가 음험한 느낌을 주는 ‘K-문학’이라는 말 때문만은 아니다. ‘국가 주도’의 뉘앙스 때문만도 아니다. 그 이야기의 고정된 패턴 때문이다. ‘해외로 뻗어가는 K-문학’ 같은 전형적인 표제 아래, 어떤 작품이 번역 출간됐다거나 상을 탔다는 내용만이 중점적으로 기사화된다. 거기에는 ‘자부심’이라는 기계화된 반응이 뒤따른다. 그런데 그렇게 ‘뻗어간’ 후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텍스트가 작가의 손을 떠나면 그만이듯, 번역가의 손을 떠나면 그만인 것일까?

이제 ‘K-문학’이 해외로 뻗어간다는 이야기는 새삼스럽다. 한국문학의 번역은 이미 전기를 맞이했다. 수백 종의 작품이 번역 출간되고 있고 그 경로도 다양하며 주목받는 작품도 많다. 다음 단계의 이야기가 있었으면 한다.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 작품이 번역문학으로서 어떻게 읽히고 세계의 독자들과는 어떻게 만났는지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가령 지난해에는 『82년생 김지영』의 영어판이 출간되면서 영어권의 리뷰를 많이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예상대로 그들의 반응은 달랐다. 『82년생 김지영』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김지영의 ‘침묵’이다. 그 끝에 그녀는 ‘빙의’되어 그동안 하지 못한 말들을 쏟아낸다. 억압된 것의 귀환이다. 그리고 그 ‘증상’을 분석하려는 의사가 등장해 김지영의 삶을 추적한다. 그가 서술하는 김지영의 삶은 그녀의 증상 원인이라 할 수 있지만,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 전형화하는 ‘서술’의 방식 또한 그 증상의 원인 자체인 것이다. 그런데 이 증상이 ‘침묵’이라는 형태로 드러나는 것은 사실 사회문화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영어권 독자들은 김지영이 왜 침묵하는지, 왜 현실에 저항하지 않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에게 침묵은 그녀의 ‘증상’이 아니라, 그 모든 일의 ‘원인’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같은 책, 다른 느낌’인 셈이다. 반면 대만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독자들은 그 ‘침묵’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한다. 일본의 독자들은 특히 이 책을 읽고 ‘눈물’을 많이 보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했는데, 이러한 일본 독자들의 ‘눈물’은 ‘침묵’에 뒤따르는, 사회문화적으로 결정된 또 다른 ‘증상’의 형태가 아닐까.

또 번역가나 해외 독자들이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하는 것이 바로 ‘맘충’이라는 표현이다. 매끄럽게 번역되지 않는, 번역될 수 없는 이 문제 지점, 여기에는 2010년대 우리 사회를 휩쌌던 혐오의 정동이 흔적을 남기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이 『타임』지 올해의 책에 이름을 올린 것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영화제 수상을 한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K-문학’과 ‘자부심’이라는 지루한 이야기 패턴을 택하는 대신, 이 텍스트들에 공통적으로 흔적을 남기고 있는 혐오 정동이란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도 더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요컨대, 이제는 문학 번역에 대한 다른 이야기 패턴이 필요하다. 물론 자국의 문학작품이 많이 번역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읽히는(被讀)’ 경험을 통해 질문과 대화, 더 풍부한 이야기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의 번역 소식 자체에는 습관적인 ‘자부심’의 회로를 작동하는 대신 조금은 태연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 역시 번역문학을 즐겨 읽지 않는가. 대신 어떻게 번역되었는지와 어떻게 읽히는지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그 ‘읽힘’은 우리가 읽은 것과는 어떻게 같거나 다른지, 그 같고 다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풍성한 읽음과 ‘읽힘’들의 만남과 교차가 이야기를 얼마나 더 풍성하게 만드는지에 관해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진짜 반가운 ‘K-문학’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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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서현(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