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이수 “이 에세이는 소설창작 과정이 담긴 ‘메이킹 픽션’”
이번 에세이는 ‘어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이게 독자들에게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글ㆍ사진 신연선
2021.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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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해 소설가로 활동한 지 올해로 꼭 21년이 되는 해이수 작가. 작가생활 20년을 정리하며 한 권의 에세이집을 품에 들었다. “소설을 출간할 때는 늘 에너지가 고갈되던 것과 달리 에세이를 펴내는 지금은 모든 것이 양호하고 충만하다”(218쪽)고 쓴 작가는 자신의 첫 에세이집 『기억나지 않아도 유효한』에서 바다와 사람, 작가의 고독하고 분투하던 시절을 한 데 모아두었다. 무엇보다 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 안에 들어온 것들을 모두 기억하기란 불가능하지만, 기억나지 않아도 그것은 우리 안에서 유효하게 작동한다”는 것. ‘과정 자체가 전부’라고 말하는 소설가 해이수는 『기억나지 않아도 유효한』에서 그가 솔직하게 고백한 “막막해서 불필요한 통증에 시달린 시간”을 독자가 읽고, 부디 불필요한 통증을 떨치길 바란다고 말했다. 



숫자로는 따질 수 없는 소중한 것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작가생활백서’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어요. 첫 산문집인데요. 책을 묶을 때 어떤 이야기를 담아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네, 작가생활백서 맞아요. 어떤 일을 할 때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잖아요. 작가생활 20년의 재무제표를 보니 확실히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래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담은 거죠. 소설을 쓰는 행위가 가만히 앉아 글자를 심는 게 아니거든요. 여러 곳을 돌아다녀야 하고, 사람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하고, 그 중에서 좋은 글감을 골라내고, 효과적으로 스토리를 디자인해야 해요.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저는 다양한 삶을 살았고, 그 안에서 풍요로워졌어요. 재무제표라고 표현을 했지만 숫자로는 따질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작가생활을 통해 얻었기 때문에요. 내가 만난 사람, 그들의 이야기와 배운 것 등을 한 자리에 모으고 싶었어요.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작가가 영향 받는 것에는 소재나 주제뿐 아니라 작가가 만난 사람, 작가가 가지고 있던 고민, 그밖에 세계로부터 받은 모든 것들이 담기는 것이라는 말을 책에 풀어내고 싶으셨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럴 수 있을 거예요. 소설의 씨앗이 떨어지고 그것이 성장하기까지 많은 것들이 작용하지요. 작가가 당시에 하던 고민의 스펙트럼, 주변 사람들의 영향, 사회의 분위기,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의 용량 혹은 운용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거든요. 당시 그 씨앗을 둘러싼 다양한 요소들이 모두 모여서 서로 관계를 맺고 화학작용을 일으키지요. 영화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물을 ‘메이킹 필름’이라고 한다면, 그런 측면에서 이 에세이는 소설창작 과정이 담긴 ‘메이킹 픽션’쯤 될 거예요.

자세히 보면 10년 전에 쓴 편지도 있던데요. 얼마의 기간 동안 쓴 글들이 모인 건가요? 

20년 동안의 글이죠. 사실은 세 권 분량의 글이 나왔는데 선별 작업을 했어요. 편지글도 실은 더 많아요. ‘편지 쓰는 작가 모임’이 전에는 활발했는데 저도 거기 멤버였어요. 편지글은 대개 발신자와 수신인이 한 명이잖아요. 독자가 한 명뿐인 글이지요. 그런데 대중이나 다수를 위해 쓴 글보다 때로 파급력이 큽니다. 저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도 좋지만 서간문을 훨씬 자주 읽거든요. 오로지 ‘개인적 진실’ 하나를 무기로 삼는데 그게 그렇게 세요.

‘지은이의 말’에서 “소설을 출간할 때는 늘 에너지가 고갈되던 것과 달리 에세이를 펴내는 지금은 모든 것이 양호하고 충만하다”고 쓰셨잖아요. 소설과 에세이가 어떻게 달랐는지 더 듣고 싶어요. 

소설은 아무래도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크죠. 완성도에 대한 부담도 있고요. 특히 장편의 경우 2-3년 내외의 집필시간이 걸리는데 들인 공력에 비해 저평가 되면 어쩌나 걱정하게 돼요. 평가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 퇴고 작업도 무척 신경이 곤두서고요. 작품을 출간하고 판매가 저조하면 맥이 쫙 빠져요. 그에 반해 이번 에세이는 ‘어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이게 독자들에게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쓰고도 기분이 좋고, 묶고 나서도 신이 났어요. 더욱이 작가생활 스무 돌 기념 에세이는 왠지 폼이 나잖아요. 

작가가 되기 직전, 작가 초년생 시절 등 오래 전에 품었던 치열한 고민을 솔직하게 기록하셨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는 마음은 어떤 것이었는지도 궁금했어요. 이 솔직한 기록이 부담되진 않았나요? 

부담은 없었어요. 아마도 제 고민이 깊었기 때문일 거예요. 예전부터 인상적인 작품을 읽고나면 이 작품이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 때문인지 산문을 쓸 때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고민을 솔직하게 적게 됐어요. 장편 『탑의 시간』(2020)을 출간하자 사람들에게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왜 배경이 미얀마인지, 어떻게 쓰였는지, 하는 질문 말이에요. 『기억나지 않아도 유효한』은 제가 쓴 여러 소설에 대해 제가 해야 하는 답변들을 에세이화한 것이라 볼 수도 있어요. 따라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하는 부담보다는 작품에는 쓰지 못했지만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했던 것들을 쓰는 기쁨이 있었어요. 어떤 분들은 정작 작품보다는 뒷얘기를 더 좋아해요.(웃음) 



기억나지 않아도 그것은

당시에는 그저 시간을 겪었을 뿐이었지만 글을 쓰고 나니 해석이 되었던,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어떤 것인지 궁금한데요. 

요가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장편 『눈의 경전』(2015)을 쓸 때 집필 기간이 3년 반이 넘어가니까 막판에는 너무 힘이 들었어요. 건강도 나빠지고 조급증도 조절하기 어려웠어요. 스트레스가 쌓이니까 술담배도 많이 했죠. 이렇게 죽으면 ‘장편 한권 없는 작가’로 남는다는 두려움도 컸어요. 그러다 하루 한 시간만 스트레칭을 하면서 놀자는 생각으로 요가를 시작했죠. 요가를 배우던 당시에는 ‘왜 나는 저 동작이 안 되지?’(웃음) 같은 생각뿐이었어요. 지나서 보니까 요가를 하면서 배운 게 많더라고요. 이를테면 불필요한 힘을 빼는 게 그랬어요. 힘을 주지 않아도 되는 곳에 안간힘을 쓰면서 힘들어 했던 거죠. 거기에 힘을 들이지 않아야 제대로 하는 것인데 거기에 힘을 들이지 않으면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수련 3년이 지나자 ‘균형’이라는 개념을 몸으로 처음 알았어요. 그러니까 요가 에세이를 쓰면서 이런 것들이 정리되고 해석된 것이죠. 

제목은 ‘기억나지 않아도 상당히 유효한’이라는 챕터에서 가져온 것이죠? 첫 에세이라 제목 고민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제목에 어떤 마음을 담은 것인지 들려주세요.  

우리 안에 들어온 것들을 모두 기억하기란 불가능하지만, 기억나지 않아도 그것은 우리 안에서 유효하게 작동하거든요. 요가도 마찬가지예요. ‘시르사사나(거꾸로 서기)’를 완성하지 못하더라도 그 동작까지 가기 위해 수련한 순간만은 유효하거든요. 30분을 더 호흡한 사람은 반드시 달라요. 가시적인 숫자로 성과가 나타나진 않지만 우리 안에 들어온 것들은 모두 유효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즉 ‘과정 자체가 전부’라는 건데요. ‘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안은 바로 ‘나란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전부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 과정의 끝에 있는 한 단어만 정답이라고 쉽게 오해해요. 얼마 전에 고등학교에 강연을 갔는데, 이 친구들이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해요. 그래서 “나란 말이죠, ‘나란 누구인가를 찾는 과정의 나’밖에 없다”고 말했어요. 나를 찾는 과정이 바로 나인 거죠.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을 낱낱이 기억할 수 없어도 유효한 영향을 끼친다는 뜻입니다.

표지 그림은 모딜리아니의 <젊은 견습생>잖아요. ‘문턱을 넘지 못한 자의 시간’이라는 글에도 이 그림에 담긴 작가님의 일화를 쓰셨거든요. 말씀을 듣고 보니 그 시간에 대해서 쓴 것 역시 과정에 대한 관심에서 온 것이란 생각도 들어요. ‘견습생’의 시간이 나에게 아주 유효했다는 거죠. 

시드니 유학 당시의 경험인데, 모딜리아니를 좋아했고 <젊은 견습생>이라는 그림도 알았어요. 미술관에서 모딜리아니 전시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간 거죠. 그림을 마주하는데 문턱을 넘지 못한 자의 쓸쓸함과 우울을 이 그림에서 발견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제 내면의 모습이 벽에 걸려 있었던 거예요. 저는 당시 대학원생도 아니고, 대학원 준비생이고 현지인 회사의 비정식사원 신분이었거든요. 등단은 했지만 고작 단편을 세 편 발표한 상태니까 책 한 권이 없어서 작가라 하기에도 애매했지요. 시작을 안 한 사람은 아닌데 정식 인가를 받은 사람도 아닌, 어떤 마디나 틈에 끼인 신분이었어요. 실제로 정식이 아닌 위치에 놓인 사람들이 사회에 많잖아요. 취업준비생, 부사수, 2급, 인턴, 계약직 같은 개념들이 너무 많고요. 어쩌면 이런 상황은 삶이 지속되는 한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게 보면 우리는 뭔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견습생이다가 끝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방금 말씀은 그 시절의 나에게 건네는 말처럼도 들리고, 그런 시절에 있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말처럼도 들려요. 

고인의 위패를 모실 때 ‘학생부군신위(學生府君神位)’라고 쓰잖아요. 여기서 ‘학생’은 삶의 시작과 끝을 배움을 통해서 사셨다는 뜻이거든요. 보통 배우는 자는 쉽게 단정짓거나 판단하지 않아요. ‘견습생 정신’을 갖는 사람들은 단번에 눈에 띄진 않고 일면 위축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어요. 그러나 길게 보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어요. 문턱을 넘는 과정에서 우리는 계속 새롭게 배워야 하거든요. 많은 분들이 문턱을 넘으려고 애를 쓰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잘해볼까?’ 고민하는데요. 그 고민과 태도를 문턱을 넘더라도 계속 가지고 있길 바라요. 또 문턱을 넘으면 안정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계속 다른 뭔가를 새롭게 배워야 해요. 어떤 면에서 계속 견습생이 되는 것이지요. 견습생 정신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말을 저를 포함해서 다른 분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어요. 

좌절과 고민의 순간에 ‘어휘선택놀이’를 하면서 그 끝에 “나는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긍정적이고 제일 달콤한 낱말을 고를 것이다”(26쪽)라고도 하셨죠. 

그건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혁명』이라는 책에서 발견해서 활용한 놀이인데요. 스스로를 다잡기 위한 속삭임 같은 것이죠. 지금 너무 힘든 상태인데 마음 속에서 ‘달려’와 ‘쉬어’라는 단어가 동시에 떠올랐을 때, 스스로 ‘쉬어’를 선택하면 어쩔 수 없이 쉬는 게 아니라 자발적 쉬기가 되는 거예요. 이건 일을 하기 싫어서 쉬는 것과는 달라요. 자발적 판단과 선택에서는 쉼이 부끄럽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앉아/일어서’ 중 ‘일어서’가 늘 긍정의 단어는 아니에요. 이 놀이는 자신이 궁극적으로 되고 싶은 모습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요. 그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해요. 만일 제가 지금 어떤 중요한 일을 하고 싶다면 저는 ‘수동/능동’ 중에서 ‘능동’이 더 근사하고 ‘포기/완수’ 중에서 ‘완수’가 더 달콤하다는 판단이 들어요. 

어떤 단어를 선택할 것인지는 나를 잘 관찰한 후 나에게 가장 긍정적인 단어를 자발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나를 관찰하는 것,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나랑 좀 친해져야 해요. 자기가 어떤 생각과 어떤 감정, 어떤 기분을 가지고 있는지 묻는 경우가 드문데요. 자신을 좀 면밀하게 관찰하고 스스로 얘기하는 시간을 가져야죠. 타인을 관찰하고 평가하듯이 자신에 대해 자주 써보는 일도 중요하고요. 에세이집에 히말라야 트래킹 에피소드가 몇 군데 등장하는데요. 스무 날 동안 셰르파와 단 둘이서 눈 쌓인 산길을 걸었어요. 새벽에 일어나 걷고, 아침 점심을 먹고 또 걷고, 자고 일어나서 계속 걷는 거예요. 히말라야 산길은 거대한 나선형으로 이어져 있는데 길을 오를수록 저 자신을 많이 보게 됐어요. 높이 오를수록 제가 보기 싫었던 저의 모습이 열리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관찰하면서 제가 몰랐던 저를 이해하게 되고 전보다 친해지게 되었어요. 일상에서 이런 순간을 만들기 쉽지 않지만 살면서 이런 끓는점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혼자 있을 때, 명상을 할 때,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비교적 용이하게 만들어지겠지요.

 


매일 쓰는 게 훌륭하다

“수첩은 몸 밖에 꺼내 놓은 뇌이자 심장이다”(55쪽)고 할 정도로 수첩을 애용하시는데요. 지금도 변함이 없나요? 

물론이죠, 올해도 수첩을 다섯 권 샀어요. 매년 그 정도 구입하지요. 이번 에세이에 실린 글들은 전부 수첩에 쓰였던 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흔히 글을 쓴다면 노트북이나 데스크 탑을 열어서 ‘빈 문서’를 켜고 시작하는 모습을 상상하잖아요. 저는 처음부터 글은 어디서든 쓸 수 있도록 습관을 들였어요. 지하철 안에서도 생각 나면 바로 쓰고, 사람들을 기다리면서도 쓰죠. 술을 마시다가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적어요. 글을 쓰는 특별한 시간을 만들지 않고 틈이 나면 자주 적는 것이죠. 그렇게 쓴 수첩들이 책장 가득해요. 

“문학을 머리 위에 높이 두고 숭배하던 시절이 있었다”(12쪽)고도 했는데 그 시절의 작가와 지금의 작가는 어떻게 다른가요? 

지금은 머리 위는 아니에요. 그래서는 안 되기도 하고요. 지금까지 머리 위에 문학을 두고 있다면 좀 이상해지지 않았을까요.(웃음) 문학은 많이 내려와서 일상으로 들어왔어요. 곁에 있고요. 그것을 알고나서 표정이 편해졌어요. 전에는 마감이 있으면 잠을 못 잤어요. 잘 써야 하니까요. 각각의 작품은 과일로 비유하면 망고이고, 사과이고, 배잖아요. 등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저는 등수가 있다고 착각한 거죠.(웃음) 지금은 잠도 잘 자고 일어나서 써요. 문학을 창작하려는 학생들에게 제일 많이 하는 얘기가 ‘일상적 글쓰기’예요. 매일 50분 정도 몰입하며 글을 쓰는 태도를 권하죠. 단편집필을 위해 식음전폐 사흘 밤낮을 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매일 50분씩 지속적으로 몰입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말해요. “훌륭하게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다만 매일 쓰는 게 훌륭하다”고 강조해요. 그 시간만큼 훌륭해지니까요. 50분을 통째로 내기 힘들면 25분씩 두 번을 내면 되고요. 그래야 오래 쓸 수 있어요.


 

케냐에서 쓴 편지 부분에서 “내 사전 최고의 문장은 ‘보고싶다’”(135쪽)라고 했잖아요. 현재 작가의 최고의 문장을 하나 꼽는다면 무엇이 될까요? 

‘너와 함께 읽고 싶다.’ 혹은 ‘네가 읽는 모습을 보고 싶다.’(웃음) 많이 읽혔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인터뷰에서 주고 받은 이런 생각들을 사람들이 전해 듣고 불필요한 심적 고통을 덜 받았으면 좋겠어요. 29편의 에세이 중에는 우는 장면이 간혹 등장해요. 이유는 저도 잘 모르고 막막해서 불필요한 통증에 시달린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러한 심리적 부담이 이 책을 읽으면서 줄어들면 좋겠어요.




*해이수

2000년 [현대문학] 중편 부문으로 등단하여 소설집 『캥거루가 있는 사막』과 『젤리피쉬』, 장편소설 『눈의 경전』과 『십번기(十番棋)』가 있다. 심훈문학상, 한무숙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재직 중이다.



기억나지 않아도 유효한
기억나지 않아도 유효한
해이수 저
뮤진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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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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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inuri

2021.04.24

인터뷰 기사마저 한 편의 에세이 같습니다. 해이수 작가님이 해주시는 말씀 하나하나가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줍니다.
작가님, 저도 ‘너와 함께 읽고 싶다.'의 마음으로 주변 분들과 [기억나지 않아도 유효한]을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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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