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된 텍스트들이 어떤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도착하는지 말할 수 있다면, 자기의 시대를 잘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시절에는 문학잡지가 문학적으로뿐만 아니라 사상적으로도 젊은 세대를 매료시켰다. 문학 계간지와 월간지는 그들을 성실하고 열정적인 독자로 묶어두는 유효한 매체였다. 2000년대에 진입하면서, 오프라인 매체의 강고한 결속력은 온라인에 의해 빠르게 대체됐다. 한때는 온갖 문화 장르의 웹진이 성행했다. 어느 때에는 읽을 만한 거의 모든 글이 블로그나 유명 온라인 카페에 있었고, 그것들은 차곡차곡 쌓이다 책으로 묶이곤 했다. 그리고 바야흐로 선공개 문학 플랫폼이라는 낯설고 적극적인 도구가 등장했다.
선공개 문학 플랫폼은 작가들이 에세이나 소설을 주기적으로 온라인 발행한다는 점에서 웹진의 형태를 취한다. 플랫폼을 통해 공개된 작품은 하나씩 모여 책으로 출간된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문학동네가 운영하는 <주간 문학동네>다. 지난해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 심채경 작가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등이 플랫폼에서 미리 공개된 뒤 책으로 묶인 작품이다. 최근에는 박솔뫼 작가의 『미래 산책 연습』이 선공개 연재를 마친 뒤 책으로 나왔고, 김언수 작가의 ‘빅아이’, 정지돈 작가의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김인숙 작가의 ‘더 게임’, 슬릭·이랑 작가의 ‘괄호[과:로]가 많은 편지’ 등이 연재가 마무리된 작품 리스트에 올라 있다.
지금은 이슬아·남궁인 작가의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심보선 시인의 ‘쓰지 않는 저녁’, 이지선 작가의 ‘꽤 괜찮은 해피엔딩’ 등이 해당 요일에 맞춰 선공개되는 중이다. 밀리의서재 사례도 있다. 김영하, 김훈 작가처럼 스타 작가의 작품을 선공개하면서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최근에는 김초엽 작가의 첫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을 미리 공개했다.
선공개 문학 플랫폼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이들은 단연 MZ세대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SNS 활용이 자유로운 이들은 문화콘텐츠에 대한 소비 역시 매우 참여적이고 능동적이다. 굳이 레거시 미디어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콘텐츠에 매달리지 않는다. 그것이 꼭 완결된 형태를 갖추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이를테면, 인기 드라마의 본방송분 외에도 선공개 클립이나 메이킹 필름에 열광하고, 작품의 일부만으로도 충분히 전체를 상상하며 즐긴다.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데서 끝나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입할 때도 많다. 플랫폼에 선공개되는 작품들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그들은 SNS를 통해 작가와 작품에 피드백을 할 뿐만 아니라 자발적인 바이럴 마케터까지 되어준다.
<주간 문학동네>를 담당하고 있는 김영수 편집자(문학3팀)는 “문학에 대한 접근이 편리해졌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적극적으로 SNS에 활발하게 추천하고 공유하는 현상이 눈에 띄게 나타난다”고 말한다. 동시간성을 즐기는 MZ세대답게 혼자 읽는 동시에 함께 읽고 있다는 정서적 공감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결국 새로운 세대의 독자들은 하나의 콘텐츠가 완성형이 되어가는 과정을 울타리 바깥에서 기다리지 않고, 챙겨 읽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열정적인 지지자가 되어준다. 그 과정에서 대중적으로 덜 알려진 작가, 젊은 작가들이 관심 작가 혹은 스타 작가로 발돋움하기도 한다.
최근 창비는 기존에 운영하던 ‘클럽 창작과비평’을 새로운 플랫폼으로 통합한 앱 ‘스위치’를 오픈했다. 선공개 연재 코너인 ‘매일연재’를 통해 요일별로 작가의 새로운 글을 만날 수 있다. 최근 연재를 완결한 장류진 작가의 『달까지 가자』는 스위치 한정판 에디션으로 출간됐는데, 가상화폐를 소재로 다룬 소설이라는 점까지 작용해 2030세대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현재 황석영 작가의 철학동화 ‘별찌에게’, 은유 작가의 르포르타주 ‘있지만, 없는 아이들’, 정원 작가의 웹툰 ‘뉴 서울’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은 물론 황정은, 김혜진, 천선란 등 입소문 난 작가들의 글이 연재되고 있다. “스위치 이용자 중 MZ세대가 70%를 차지하고, 40대가 그 뒤를 잇고 있다. MZ세대에서 선공개 연재 글을 읽거나 ‘클럽 창작과비평’, ‘북클럽 필라멘트’ 등의 온라인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비율도 매우 높다.” 창비 홍보팀 이정원 씨의 귀띔이다.
전통적인 방식이라면,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가장 나중에 있는 존재들이었다. 작가와 편집자 사이의 일은 그들만의 프로세스가 따로 있었고, 독자들은 책을 구매하는 행위로만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새로운 시대의 독자들은 텍스트가 쌓이는 과정까지를 즐김으로써 그걸 문화적 행위로 만든다. 기록된 텍스트들은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 그 운명을 다할 것이라는 비관적 예측이 허다했다. 섣부른 패배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세대들은 콘텐츠를 자기 손에 넣기 위해 최선을 다해 디지털을 활용하고, 즐긴다. 생산자 곁에 바짝 다가서거나 스스로 생산자가 된다. 텍스트 앞에서 기도하지 않고, 텍스트 앞에서 마냥 서성거리지도 않는다. 텍스트 제공자들과 함께 기꺼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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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