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어떻게 편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자신의 상황과 전 인류의 문제를 연결 짓고, 비극적인 풍경들을 분석하면서도 끝끝내 회복과 소생의 경험을 상상하는 능력. 그저 엎드릴 수밖에.
글ㆍ사진 김이선 (엘리 편집자)
2021.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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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받을 권리』는 나치즘과 스탈린주의의 참상을 연구해온 독보적인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2019년 말부터 2020년 초에 이르는 병상 생활을 계기로 완성시킨 인권 선언문과 같은 작품이다. 이 책을 편집한 김이선 편집자와의 서면 인터뷰. 


『치료받을 권리』 출간을 결심하게 만든 결정적인 문장이 있었나?

들으면 화가 나는 말 중에 “병원에는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을 검토하던 중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했다. 이 책을 우리 독자에게도 소개하고 싶다고 생각한 데는 저 문장의 힘이 크다.

“뉴헤이븐의 병원에서 퇴원한 뒤, 나는 응급실에 있을 때 아내와 내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힘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하지 않은 것에 동료들이 굉장히 놀랐다는 말을 들었다. 우린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만약 시스템이 그런 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그렇게 작동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재력과 연줄로 의료보장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우쭐할 것이다. 자신들은 누릴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느낌은 건강에 대한 우리 인간의 관심을, 민주주의를 좀먹는 암묵적이지만 심각한 불평등으로 변질시킬 것이다. 거의 모든 선진국가에서 그러하듯, 누구나 최소한의 비용으로 적절한 의료보장을 누릴 수 있어야, 동료 시민들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것이 더 쉽게 가능해진다.”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가, 미국의 사상을 이끄는 최고 지성 중 하나가, 이런 생각을 하고 이렇게 행동했다. (우리 사회에 겉으로는 국민을 위한다면서 속으로는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높으신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가.) “병원에는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말 속에는 심지어는 인간의 기본 권리인 건강의 측면에 있어서도 우리 사회에 심각한 불평등이 내재되어 있고, 우리 모두가 암묵적으로 그러한 불평등에 동의하며 비관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 숨어 있다. 병원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더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인가? 병원에 가서도 나의 경제적 사회적 위치를 남과 비교당해야 하는 사회가 과연 ‘공정한’ 사회인가? 그러한 사회에서 계속해서 살아가고 싶은가?


편집을 마친 지금, 저자인 티머시 스나이더에 대한 당신의 감정은 무엇인가?

리스펙. 아프면 답이 없다. 질병의 고통이란 그 질병에 처하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오로지 혼자 겪어내야 하는 외로운 싸움이다. 이기적이 되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안타까운 상태이다. 그런데 저자인 티머시 스나이더는 끔찍한 고통의 와중에도 학자로서, ‘사유’라는 것을, ‘성찰’이라는 것을 해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을 지나가고 있음을 비판적이고 사변적으로 써내려가는 한편,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불완전한 우리 인간의 모습에서 새로운 희망과 자유의 가치를 찾으려 노력했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자신의 상황과 전 인류의 문제를 연결 짓고, 비극적인 풍경들을 분석하면서도 끝끝내 회복과 소생의 경험을 상상하는 능력. 그저 엎드릴 수밖에.


<더 뉴욕 타임즈>

티머시 스나이더 팬들이 밑줄을 가장 많이 그을 것 같은 문장은?

“나치는 ‘병’이라는 것을 인간과 인간 이하의 존재,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로 나누는 수단으로 삼았다. 우리가 타인을 질병의 보균자로, 우리 자신을 건강한 피해자로 여기고 만다면, 우리는 나치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나치의 악행들에 진정으로 반대하려면, 우리는 그 악행의 정반대, 즉 선의를 향해 나아갈 길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 노력의 일부가 바로, 모든 인간은 질병에 걸릴 수 있으며 평등하게 치료받을 권리가 있음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역사학자로서의 성찰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악한 무리를 보면서 ‘나치 같다’고 할 때가 있는데, 그 반대가 무엇인지는 생각하지 않거나 각자 다르게 생각할 것 같다. 티머시 스나이더는 이 책을 통해 그 반대가 무엇인지, 우리가 왜 그래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의학 드라마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면?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2가 시작됐다. 환자 드레싱을 하다가 산부인과 의사인 석형의 전화를 받는 레지던트 민하는 석형에게 자신의 전화는 환자 처치 먼저 하고 받아도 된다는 주의를 받는다. 환자에 대한 배려가 의료진의 의무임을 보여주는 멋진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 『치료받을 권리』에도 문제의 휴대전화가 등장한다. 물론 상황은 훨씬 심각했고.



이 책을 꼭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말해본다면?

아파보면 내 주변 사람이 어떤지, 의사와 간호사가 어떤지, 병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시스템이 뭐가 이상한지 알게 된다. 이 책은 아파본 사람의 얘기다. 아파서 외롭고, 아파서 분노해본 사람의 이야기, 망가진 의학 시스템, 부패한 정치 시스템, 만연한 차별의 논리의 폐해를 온몸으로 겪은 사람의 이야기다.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열렬한 간청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아프게 된다. 내가 아프기 전에, 혹은 우리 뒤에 아플 사람들을 위해, 바뀔 것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치료받을 권리
치료받을 권리
티머시 스나이더 저 | 강우성 역
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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