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환자들은 정신질환자이자 범죄자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차승민의 일터는 국립법무병원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치료감호소’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국립법무병원은 정신질환 범법자의 전문 치료와 재활을 위해 법무부에서 운영하는 정신과 병원이다. 치료감호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교도소 대신 이곳에 수용되어 치료를 받는다. 법원, 검찰, 경찰 등은 국립법무병원에 정신감정을 의뢰하기도 한다.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 진주 방화사건 피의자 안인득 등이 이곳에서 정신감정을 받았다.
차승민 전문의는 지난 4년간 국립법무병원에서 일하며 직접 만났거나 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혹시 이 책을 읽고 누군가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의 목록에서 지우거나, 덮어놓고 미친 사람으로 매도하거나 비난하지 않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정신질환 범법자를 치료하는 사람으로서, 그동안 숱하게 들었던 질문들과 논쟁적 테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그의 말은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추천사를 쓴 이다혜 기자는 “이 책은 범죄자를 무조건 이해하고 받아들이라는 뜻에서 쓰이지 않았다. 이 책의 진정한 힘은, 범죄에 대한 처벌과 그 사람이 앓는 질병에 대한 치료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차분한 설득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차승민 저자는 충남대학교 병원에서 노인정신건강의학 전임의를 지냈다. 이후 국립법무병원으로 이직, 현재까지 범법정신질환자를 돌보는 주치의로 일하고 있다.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은 국립법무병원의 내부 이야기를 담은 첫 대중서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정신질환과 범죄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정확한 원인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나는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생활형 정신과 의사다” 라고 쓰셨어요. “아마 내가 애초에 사명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면 오히려 더 지쳐서 나가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고 하셨고요.
처음에는 정신과 의사로서 나한테 맞는, 그리고 생활인으로서 롱런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병원의 수익에서 조금 자유롭고 야간에 불려나가지 않을 병원을 찾고 싶었어요. 직장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돈을 1순위로 생각했으면 다른 병원을 알아봤겠지만, 당시에 저는 시간적 여유로움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어쨌든 국립법무병원은 공무원 조직이다 보니까 공무원 복무 시스템 안에서 제가 지킬 부분만 지키면 간섭이 없어요. 연가병가를 쓰고 싶을 때 쓰면 되고요. 여러 명의 의사들이 근무하고 있고 또 외래 환자가 많이 기다리고 있는 병원이 아니라서,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면 다른 선생님이 백업을 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에요. 그걸 되게 크게 봤죠. 왜냐하면 아이들이 갑자기 아플 수도 있고 급한 집안일이 생기면 뛰어가야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런 면을 보다 보니까 국립법무병원을 선택했고, 아직까지 일하고 있는 이유는 그게 만족되기 때문이에요.
'워라밸'이 괜찮은 편인가요?
그렇죠. 좋지는 않지만 제가 원하는 수준으로 맞는 것 같아요. 시간을 돈 주고 산 느낌이라고 할까요. 급여는 많지 않지만, 그만큼 저에게 시간적인 여유를 주는 곳이니까요. 그 외에 환자를 보면서 느끼는 부분들은 처음에는 저의 1순위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일을 하면서 '이게 누군가는 해야 되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국립법무병원이 더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매력을 느끼는 병원이 되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해요.
의사들조차도 국립법무병원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요. 처음 이직을 고려하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법무부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법무부는) 병원 시스템을 잘 모르니까 의사 말을 더 경청해주지 않을까, 그런 환상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웃음) 그렇지는 않았고요. (웃음) 저는 환자들이 무서울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무섭기로 치면 일반 정신과 환자들도 마찬가지거든요. 어차피 증상들은 다 있는 거니까요. 전공의 수련할 때도 환자가 무섭게 느껴진 적이 있었는데, 정신과 의사들은 누구나 다 그런 경험이 있거든요. 그런 정도이겠거니 생각을 했지, 더 무섭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가끔 그런 생각은 들죠. '만약에 국립법무병원이 관리가 안 되면 심란하기는 하겠구나.' 이곳에 있는 환자들은 이미 범죄를 저질렀으니까, 만약 이 병원이 문을 닫게 되면 교도소로 가겠죠. 그러면 과연 치료가 될까, 케어가 될까... 그런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면 조금 심란해지기는 하죠.
책을 읽어 보니, 국립법무병원의 근무 환경이 굉장히 열악하더라고요.
어쨌든 의사도 먹고살아야 하고, 또 자기가 투자한 시간에 대한 보상을 원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그런데 (다른 병원들과) 급여가 너무 차이 나니까 남자 외벌이 선생님이 오시기에는 약간 부족한 느낌이 있어요. 혼자 가계를 책임지셔야 되니까요. 사실 지금도 원장님을 제외하고는 다 여자 선생님이에요. 파트타임 선생님이 아닌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전문의들은 다 아기 엄마예요. (워킹맘은) 연가병가에 대한 아쉬움을 알기 때문이죠. 아이 방학 때는 하루라도 더 쉬고 싶고, 또 그게 필요하니까요. 의사들의 급여를 올리려고 노력은 하지만, 어쨌든 공무원의 임금 체계나 처우 체계에 묶여 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아요. 그래서 (의사) 구인 공고를 많이 내지만 안 오죠.
“정신건강복지법에서 규정하는 정신과 병원의 의사 일인당 적정 환자 수는 60명” 이라고 하는데, 국립법무병원에서는 3배 정도 많은 환자를 담당하죠?
네. 말씀하신 대로 규정에는 일인당 60명까지 진료를 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 민간병원들은 50명 정도로 맞추는 추세예요. 외래 환자도 봐야 되고, 의사들이 너무 많은 환자를 보면 진료의 질이 떨어지니까요. 그런데 국립법무병원에 와서 보니까 담당 환자 수가 너무 많더라고요. 제가 입사하고 초반에만 해도 지금보다 의사들이 조금 더 많아서, 의사 일인당 환자 수가 80명 정도까지 떨어진 적이 있었는데요. 점점 늘어나더니, 정말 많을 때는 거의 190~200명이 된 적도 있었어요. 지금은 퇴원한 환자들도 많아서 160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고민이 많으셨다고요.
어쨌든 수용돼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이 사람들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이 있잖아요. 제 입장에서는 환자들이 상처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고, 또 내부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조직에 문제가 되는 것도 바라지 않았어요. 그런 여러 가지 고민들이 있었죠. 사실 처음에는 엄청난 걸 해보자는 생각보다는, 사람들이 이곳을 너무 모르는 것에 대한 갑갑함이 있었어요. 제가 언제까지 여기에서 일할지는 모르지만, 있는 동안에 기록으로 한번 남기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제목에 '애처로운'이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는데, 누군가는 책을 읽기 전에 오해할 수 있겠어요. '아무튼 범죄자 아니냐'고 생각하는 거죠.
네, 그렇게 생각하시더라고요.
‘혹시 그들을 두둔하는 것으로 오인되지 않을까’ 걱정되셨을 것 같아요.
그런 것도 있죠. 그런데 제 입장에서는 '왜 이들이 이런 행동을 했는지' 정확한 원인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게 핵심이었어요. 일례로, 안인득의 재판이 진행될 때 그 사람의 극악무도함만 보도가 되고 그 사람이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다뤄졌잖아요. 정신과 의사라면 누가 봐도 치료를 안 받고 제때 약을 먹지 않아서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난 건데, 우리 사회는 자꾸 결과만 보고 이 사람을 나쁜 놈 만들면 끝나는 게 돼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제2, 제3의 안인득이 나오는 걸 막을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알려주고 싶은 거죠. 지금의 상황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 잘못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는 걸. 그거에 대해서 정신과 의사들은 계속 경고를 해왔는데, 재미있지 않은 이야기니까 다들 보지 않으려고 하잖아요.
정신질환을 앓았다고 무조건 심신미약은 아니에요
안인득의 경우는 동료 의사가 정신감정을 했죠?
저는 조금 속상했던 게, 저희 의료부장님이 안인득의 정신감정을 하셔서 재판에 증인으로 가셨었어요. 그런데 검사님이 구형을 하면서 감정이입을 하셔서 막 우셨다는 거예요. 물론 저희도 피해자들이 안 됐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그렇게 감정으로 흘러갈 일이 아니거든요. 사실 제가 안인득을 직접 면담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해서는 그냥 사건의 범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저희 의료부장님은 계속 안인득이 되게 안타깝다고 하세요. 감정을 하면서 그 사람을 속속들이 알고 난 후라서, 상황이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게 되게 짠한 거예요. 제가 책에서 김성수에 대해 약간 애잔한 마음으로 썼듯이. 안인득이 한 행동은 나쁘죠. 하지만 그렇게 나쁜 사람 만들고 끝내면 뭐해요. 또 비슷한 일들은 계속 벌어질 텐데. 그러니까 정확한 원인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거에 대해서도 쓰고 싶었어요.
'안인득이 안타깝다', '김성수를 만나보니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라는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어요.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는 거죠.
서사 부여라고 하는 게, 그 사람한테 어떤 변명거리를 만들어주는 거잖아요. 그런데 김성수는 (정신과 의사들이) 다들 심신건재 판정을 낼 거고, 저도 그렇게 냈어요. 안인득의 경우에는 심신미약이 나왔고요. 그러니까 정신감정을 하는 저희는 '이 사람이 이렇게 행동하게 된 원인이 뭘까'를 생각하는 거거든요. 안인득처럼 정신병적 증상이 매우 심한 사람들은 자기가 만든 세상에 살고 있는 거예요. 김성수는 그런 정신적 증상은 없었어요. 정신감정을 할 때 병이 있다고 무조건 심신미약으로 보는 게 아니에요. 조현병이라고 해도 약물치료를 받았거나 시간이 많이 지나서 정신병적 증상이 나아졌을 때 범죄를 저질렀다면 심신건재로 봐요.
정신질환자의 경우와 달리, 사이코패스는 판단과 의사 결정 능력에 문제가 없잖아요. 그런데도 범죄를 저지른 거니까 서사를 부여하면 안 되겠죠.
사이코패스 같은 경우에는, 본인의 이득을 위해서 남을 이용하는 게 너무 명확하게 보이다 보니까, 절대 서사를 부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하나하나 사람을 들여다보면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지점들이 있잖아요. 그게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김성수는 심신건재이기는 하지만, 저는 조금 마음이 갔던 이유가, 어린 시절에 그런 상황에 처한 건 그 사람이 어떻게 하지 못하는 일이었잖아요. 자신의 의지랑 상관없이 벌어진 상황에 있었던 거죠.
김성수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심각한 폭력에 노출됐다고요.
네. 그리고 같은 의사들도 정신과 의사가 아니면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데, 약을 먹지 않은 것부터 그 사람의 책임이 아니냐고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약을 먹지 않은 것부터가 증상이거든요. 약을 안 먹고 증상이 악화된 건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병 때문에 생긴 상황이에요. 물론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부분은 의사도 사람인지라 이야기를 듣고 나면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요. 안인득을 감정하셨던 저희 의료부장님도 너무 안타까우니까 안인득은 원래는 착한 사람이라고 하시는데, 저희가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오해 받아요' 그렇게 이야기해요. 그런데 안인득의 경우는, 감정하면서 약물 치료를 같이 했는데, 약을 먹고 났더니 눈빛부터 달라지더라고요. 약물 치료를 계속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치료감호형을 받지 못해서 국립법무병원에 오지는 못하고 계속 교도소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안인득은 심신미약이 인정됐는데도 치료감호형을 받지 못했나요?
심신미약이라고 무조건 다 치료감호형을 받는 건 아니에요. 판사님이 치료감호형을 내릴 때만 국립법무병원에 올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 교도소에 엄청나게 많은 정신질환자들이 있고, 그것 때문에 교도관님들이 되게 힘들어 하세요. '법무샘'이라는 법무부 인트라넷이 있는데, 거기 있는 게시판에 정신질환자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냐는 하소연 글이 엄청 많이 올라와요. 교도관님들이 많이 답답하시겠죠. 일반 수용자만 보기에도 과밀화 돼있고 힘든데 행동 조절이 안 되는 사람들까지 보려니 이해도 안 가시고 너무 힘드실 거예요. 최근에는 어떤 교도관님이 자유게시판에 글을 쓰셨는데, 교도관들이 제 책을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추천을 해주셨더라고요. 그 분은 수형자가 제 책을 읽는 걸 우연히 보시고 빌려 읽게 되셨대요. 그 글을 보고 너무 감사하다고 생각했어요.
교도소 안에서는 약물 치료나 상담이 잘 이루어지지 않잖아요. 그러면 증상이 더 악화된 상태로 출소하게 될 텐데, 환자 본인에게도 공동체에도 위험한 일이에요.
네, 그냥 출소시키면 끝이니까요. 그런데 여력이 없어요. 진주 교도소라고 정신질환자들을 모아놓은 교도소가 있는데, 거기도 포화 상태라고 하더라고요. 정신과 의사들이 저희 병원에도 취직을 안 하는데 교정기관은 더 그래요. 병원이 아니다 보니까, 의사들이 자신이 충분히 진료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취업을 잘 안 하는 실정이에요. 그래서 외부에서 촉탁의 시스템으로 오거나 화상 진료를 하게 되는데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죠. 의사가 상주해서 봐주면 좋겠는데 그런 게 안 돼요. 실제 저희 환자들의 병력이나 과거력을 보면 한두 번의 전과가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까 사건이 점점 커져서 결국에는 큰 사건이 돼서 와요. 그런 점이 많이 우려돼요.
사법입원제도의 도입을 주장하는 이유
최근 정신과 병원의 입원 기간이 짧아지고 있는 추세인가요?
점점 퇴원이 빨라지고 있기는 해요. 제가 대학병원에서 전공의로 수련을 받을 때는 대학병원에서도 두세 달씩 입원 치료를 많이 했는데, 지금 수련하는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달이면 길게 있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급한 증상만 빨리 치료하고 퇴원시키는 게 맞기는 한데, 그러다 보면 분명히 관리가 안 되는 환자들이 있을 거거든요. 그에 대한 대책이 너무 없지 않은가 생각돼요. 저도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에 대해서 항상 경각심을 갖고 있어야 될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제 책을 읽고 변호사님이 메일을 보내주셨어요. 한 지방법원에서 국선 변호사로 일하시는 분인데, 국선 형사 사건을 맡으면서 '왜 자꾸 나한테만 정신질환자들의 사건을 맡기지? 일부러 몰아주나?' 하는 생각을 하셨대요. 그런데 이야기를 해보면 실제로 사건 수가 늘어나는 것 같다는 거예요.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정신보건법이 개정된 후에 조현병 환자들이 국립법무병원으로 오는 경우가 증가했나요?
실제로 점점 환자 수가 늘었어요. 10년 전만 해도 600명 정도 수준이었다고 하는데, 매해 조금씩 늘어서 지금은 900~1000명 정도가 있어요. 정신보건법이 정신건강복지법으로 개정되면서 민간병원에 입원하기가 까다로워졌어요. 입원을 연장하는 것도 그렇고요. 예전에는 6개월에 한 번씩 입원 연장 심사가 있었는데 그 기간이 3개월로 줄었어요. 여러 가지 사회 시스템이 바뀌면서 병원 밖으로 나오게 된 환자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물론 환자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고 사는 게 최종 목표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준비가 됐을 때 나와야 되거든요. 그냥 나오면 지금처럼 재활 공간이라든지 그룹홈 같은 것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환자들을 다 소화하지 못하니까 결국에는 그냥 집에 있게 되고요. 또 가족들은 생업이 있으니까 24시간 붙어있지 못하잖아요. 그러면서 가족이나 주변인들이 피해자가 되기도 해요.
정신질환을 초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면 범죄 가능성은 현격히 낮아지잖아요. 입원이 어려워지면 사회적으로 큰 난관이 될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런 이유로 정신과 전문의들이 '사법입원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거죠?
임세원 교수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윤일규 전 국회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하신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서울 시내의 대학병원에서 의사가 환자 칼레 찔려 죽었다니, 너무 끔찍하고 공포스럽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정신과 의사들은 '결국 터질 게 터졌구나' 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윤일규 전 의원님과 사법입원제도 도입을 추진했던 건데, 결국 도입되지는 않았죠. 그런데 미국, 일본, 호주 같은 곳에서도 오롯이 정신과 의사와 보호자만 입원을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사법제도 안에서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해요. 그러면 보호자나 의사의 부담이 조금 덜어지니까요.
국립법무병원의 환자들은 사법부의 결정으로 입원한 거잖아요. 그래서 의사나 보호자에 대한 원망이 덜하다고 하셨는데, 사법입원제도가 필요한 이유인 것 같습니다.
그렇죠. 환자들이 자꾸 보호자한테 꽂히거든요. '나는 약 먹기 싫고 입원하기 싫은데 엄마가 또 나를 입원시키지 않을까' 하면서 엄마한테 피해망상이 생기기도 해요. 그런데 엄마의 입장에서는 자식이 아픈데 입원을 안 시킬 수 없잖아요. 그런 과정에서 자꾸 보호자들의 부담감이 커지게 되고, 보호자가 피해자가 되거나 환자가 방치되는 경우가 많아요. 의사들도 타깃이 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 되게 커요. 외래 환자를 볼 때 '나한테 왜 입원하라고 해, 나를 가두려고 그러는 거지?' 이런 반응들을 보거든요. 그런데 국립법무병원에 와보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내가 입원시킨 게 아니고, 판사님이 여기에 오라고 했잖아요'라고 말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판사에 대한 원망은 안 해요. 재판이라는 과정이 명확한 실체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판사님은 익명 같은 느낌이 드는 건지, 판사님한테 피해망상이 생기는 경우는 없더라고요.
그래서 사법기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거군요.
좀 도와줘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자의로 입원하는 환자가 많아지는 게 제일 좋기는 하지만 병의 특성상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거든요.
정신질환자의 경우 병식(病識, 병에 걸려 있다는 환자 스스로의 깨달음)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네. 그리고 입원을 할 정도로 증상이 악화됐다면 나라가 조금 더 시스템을 만들어줘서 보호자도 덜 힘들고 정신과 의사도 덜 힘들게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는 데에도 예산이 들고 판사도 더 많은 수를 뽑아야 되니까 분명히 어려움이 있겠죠. 그래도 어쨌든 개선하려는 노력 자체는 해봐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정신질환 범죄자들을 덜 무서워했으면 좋겠어요
조두순 사건 발생 10년 후인 2018년에 형법 제10조 1항이 바뀌었습니다. '심신미약을 인정받으면 형을 감경한다'에서 '감경할 수 있다'로 바뀌었는데, 시민들의 분노와 이의 제기가 영향을 미친 걸까요?
그렇죠. 당시 판결한 판사님이 되게 억울해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법 조항이 '감경한다'로 되어 있어서 자신은 어떻게 하지 못하고 법에 따른 거라고요. 지금은 '감경할 수 있다'고 되어 있어서, 감경을 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사실 저희가 심신미약으로 감정해도 판사님들이 심신미약이 아니라고 판결하시는 경우도 많아요. 저희는 법원에서 정신감정을 신청하니까 저희 의견을 보내는 거고, 법정에서는 많은 증거들 중 하나로 여겨져요. 제가 논문을 쓰면서 실제 판결문이랑 정신감정서를 대조해봤는데, 알코올 중독 같은 애매한 부분들의 경우, 정신과 의사들은 심신미약으로 봤던 걸 판사님은 심신미약이 아니라고 판결하신 경우도 상당수 있었어요. 자신이 술을 먹고 한 짓이니까 책임을 져야 된다는 거죠.
지금은 정신과 의사들이 음주를 심신미약으로 보지 않죠?
네, 많이들 그렇게 생각하시죠. 실제로 법정신의학 교과서에서도 '자발적으로 한 약물 중독이나 음주로 일어난 일들은 심신미약으로 보면 안 된다'고 쓰여 있어요.
흔히 '화학적 거세'로 알려져 있는 '성충동 약물 치료'의 경우, 현재까지 재범률이 0% 라고 하셨어요.
성충동 약물 치료를 받는 기간에는 재범률이 없어요. 그런데 평생 하는 치료는 아니니까, 치료가 끝나고 나면 호르몬 수치가 다시 돌아와요. 이 치료에 쓰이는 약물은 성조숙증 치료에 쓰이는 것과 똑같아요. 성호르몬을 억제하는 거예요. 자궁내막증, 전립선암이 있는 사람들한테 쓰기도 해요. 높아진 성호르몬을 낮추는 역할을 하니까요. 3년 동안 치료를 하고 끝내면 한두 달이 지난 후에 다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올라가요. 그런 경우에는, 아직 확실하게 아는 건 아니지만, 재범률이 거의 없다고 보지만 생길 수도 있을 거예요. 그래도 약물 치료를 아예 안 하고 출소하는 것보다는 3년 동안이라도 재범률을 낮추면 그 기간 동안 피해자를 안 만드는 거니까요.
정신질환 범죄자의 경우, 일단 치료를 받아야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책임도 지고 반성도 할 수 있겠죠?
그렇죠. 일단 뭘 알아야 '내가 잘못했나?' 하는 생각도 들 거 아니에요. 치료가 안 되면 계속 딴소리를 해요. 아직도 증상이 많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재판 자체가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아요. 아예 인정을 안 하면 어떻게 반성을 하겠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 없으세요?
정신과 의사들조차도 국립법무병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환자들이 이곳에 어떻게 오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알려주고 싶었어요. 정신과 의사들이 한 번쯤 관심을 가지면 좋겠고, 그러면서 이곳에 조금 더 많은 의사들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게 시작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국립법무병원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다들 놀란 표정으로 보는데, 그러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 책이 작은 변화를 일으키면 좋겠다는 바람은 없으신가요?
그건 너무 큰 바람 같아요. 정신질환 범죄자들을 덜 무서워했으면 좋겠고요. 치료만 잘 받으면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자꾸 무서워하니까 편견이 생겨서 더 병원에 못 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정신과 병동이 그렇게 무서운 곳이 아니거든요. 정신과 외래도 그렇고요. 우울증부터 시작해서 더 심한 정신질환까지 치료를 받아야 되는 병이고, 쉽게 병원에 갔으면 좋겠어요.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라에서도 국립법무병원에 투자를 좀 했으면 좋겠고요. (웃음) 저희 병원뿐만 아니라 교정시설에 수용되고 있는 정신질환 범죄자들에게도 꾸준히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차승민 국립법무병원(치료감호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충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충남대학교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충남대학교 병원에서 노인정신건강의학 전임의를 지냈으며 돈보다 시간이 중요한 워킹맘으로 일과 육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국립법무병원으로 이직, ‘공무원’ 의사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워라밸을 누리며 살 줄 알았던 국립법무병원에서 매일 170명에 육박하는 범법 정신질환자를 돌보는 주치의로 지금까지 4년간 일했다. 이 책은 ‘치료감호소’로 널리 알려진 국립법무병원의 내부 이야기를 담은 첫 대중서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정신질환과 범죄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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