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멀어진 시대에 소설가 박재현의 에세이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조금 긴 여행을 했었어』는 그가 2년 동안 여행하며 마주한 세계를 다양한 이야기로 담아낸 책이다. 이야기엔 풍경도 있지만 만남이 더 많다. 그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을 만나 웃고 놀라고 마음 흔들리고 만다. 간결하고 솔직한 문체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그곳에 서 있게 될 것이다. 글과 곁들여진 따뜻한 색감의 사진은 여행의 감상을 더 부풀려 준다.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이에게 분명한 대안이 되지 않을까.
왜 1년도 아니고 2년이나 여행을 한 건가요? 긴 여행을 한 권에 담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처음엔 1년에서 1년 반 정도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고 싶은 곳을 다 적어 보니 그걸로는 부족하더라고요. 찍고 가는 여행을 했다면 몇 달이면 가능했을 거예요. 저는 한 곳에서 며칠은 머물면서 천천히 움직이는 걸 선호해요. 관심 있는 명소에 가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곳 사람들이 사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걸 더 좋아하죠. 그러니 찍고 갈 수 없었어요. 그 덕에 2년간 수많은 이야기가 쌓였어요. 그중 흥미로웠던 에피소드나 감상만 담았어요. 밋밋한 이야기는 다 뺐습니다. 아까운 글도 있었지만 과감하게 자를 때 책이 더 빛날 거라 믿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궁금해요.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를 걸을 때였습니다. 우연히 한 건물의 창으로 의자 고치는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어요.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으니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더라고요. 그 공간은 집이자 작업실이었어요. 아저씨는 컴퓨터로 번역기를 켜 저와 소통하려 했어요. 안에 있던 부인도 나와서 반가워하며 커피와 과일을 내왔고요. 아저씨와 아줌마 모두 집이 작고 지저분하다며 난처해했지만 제 눈엔 멋스럽기만 했죠. 여러 질문이 오가다 제가 작가라고 하니, 아저씨가 반색하며 집에 책이 무척 많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가장 좋아하는 화가의 화집을 꺼내, 한국에서 온 영광스러운 손님에게, 라고 적곤 선물이라며 줬어요. 자꾸 받기만 해 미안하고 또 고마웠어요. 두 분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하니, 두 분도 저의 여행과 결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고요. 집을 나오면서 자꾸 뒤를 돌아봤어요. 꼭 어떤 책 속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었어요.
전체적으로 글이 간결해 가독성이 좋습니다. 기존의 스타일인가요?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좋은생각’에서 편집자로 일했습니다. 그곳은 다른 곳보다 훨씬 교정에 공을 들입니다. 쉽게 읽히는 책을 만들려고요. 저 역시 일하면서 군더더기 덜어내는 맛을 알게 되었지요. 그 덕에 전보다 훨씬 간결해졌습니다. 이 책을 만들 때 앞에 나온 두 책보다 세네 배는 더 교정을 보기도 했고요. 책을 출간하는 데 오래 걸린 이유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좋은생각 사장님께서 책을 정말 흥미롭게 봤다며, 정성을 들인 게 보인다고 전화를 해 줘 긴 고생에 대한 보상이 되었어요.
사진은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유독 많아 따뜻한데요. 어떻게 찍었나요?
풍경은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수두룩하게 나오잖아요. 워낙 중복되는 걸 싫어해 저만의 사진을 찍고 싶었어요. 사람이 있으면 유일한 사진이 되더라고요. 미적으로 사진이 더 풍성해지기도 하고요. 평소보다 용기를 내 다가갔어요. 보통은 카메라를 들어 눈으로 허락을 구했죠. 대부분 허락해 줬어요. 정색하며 거절하는 것보단 부끄러워하면서 결국 좋다고 한 경우가 더 많았지요.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좋은 필터가 된 듯합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 태어나고 싶은가요?
베를린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예술의 도시답게 가 볼 만한 곳이 넘쳤어요. 미술관을 비롯해 독립 서점과 편집샵, 트렌디한 카페와 공연장 등 골라가는 재미마저 있었죠. 공원도 남달랐고요. 너른 건 둘째 치고 사람들이 주말을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독일인이라 하면 딱딱하고, 열심히 일만 할 거라 생각하는데, 놀기도 참 잘 놀더라고요. 고기 구워 먹고 흥겨운 음악에 춤추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흥겨워졌어요. 웅장한 자연 경관에다 맛있는 음식과 인정이 넘치는 조지아도 살고 싶은 곳입니다.
책 속에서 특별해 보이는 순간이 많았어요. 작가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인가요? 일반 독자도 그런 감상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런 것도 일부 있다고 생각해요. 좀 더 섬세하게, 때론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었겠죠. 풍경을 예로 들어 볼까요. 단순히 멋지다, 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풍경을 바라봤던 옛 사람들도 떠올려 보았어요. 대체로 멋진 경관은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거든요. 그들이 되어 바라보면 같은 풍경도 달리 보이곤 했어요. 더불어 좀 다른 감상이 가능했던 건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갔기 때문일 거예요. 제가 마음을 열고 다가갔을 때 환영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어요. 마음을 나누면서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곧잘 일어났고, 특별한 감상들이 찾아왔어요. 단편적인 경험이 많긴 하지만, 세상엔 참 좋은 사람이 많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릴게요.
저는 다행히 코로나 전에 긴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어요. 그 행운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는데요. 제가 누렸던 행운을 많은 분들이 즐겼으면 좋겠어요. 단절될수록 소통과 만남을 원하잖아요. 이 책을 통해서 여행의 갈증은 물론 만남에 대한 갈증도 해소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다시 세계와 마주하는 날을 함께 기다릴게요. 감사합니다.
*박재현 1987년에 태어났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데 끌리는 편이다. 재미까지 있으면 더 좋고. 소설이나 여행처럼. 농담을 좋아하며, 옛날 음악에 빠져 산다. 좋은 시절은 늘 곁에 있다고 믿는다. 여행을 다녀올 때면 좋은 사람도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미구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스토리문학』에서 소설 부문 신인상을 받았고, 장편소설 『당신만 모르는 이야기』, 에세이 『송창식에서 일주일을』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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