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의 탄생] 왜 하필 이 제목이죠? (14)
가제목이 그대로 최종 제목으로 확정 난 (편집자로선)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글ㆍ사진 엄지혜
2021.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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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은둔 사이』

김대현 지음 | 오월의봄



때로는 가제 이상의 제목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기도 한다. 출간 계약을 하며 후루룩 써넣은 가제가 그대로 제목이 된 이 책처럼 말이다. 게이로서 관계 맺는 세상에 대해 써 내려간 책이지만, 역사연구자인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를 둘러싼 사회적·역사적 사실을 끊임없이 가져온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여러 사실들 사이에 나란히 두고, 이게 과연 ‘나’의 이야기에 그치는 것인지,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소수자를 둘러싼 억압의 문제는 아닌지를 독자에게 질문한다. 세상과 은둔 사이에서 살고자 발버둥 치는 이야기에, 벽장 안팎을 오가야만 하는 이가 쓴 이 글들에 더 좋은 제목이 있었을까. 도무지 모르겠다. 한의영(오월의봄)



『일곱 번째 노란 벤치』

은영 글, 메 그림 | 비룡소



가제목이 그대로 최종 제목으로 확정 난 (편집자로선)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주 무대인 동시에, 작품의 메시지인 연결과 이어짐이 이루어지는 공간. 흔하고 친숙한 ‘벤치’ 앞에 따뜻한 행운을 의미하는 숫자와 색상이 덧붙여져 구체성을 띠는 순간, 누군가의 추억이 깃든 특별한 장소를 상징하게 된다. 꼭 통통 튀는 제목이 아니더라도, 읽기 전에는 궁금증을 자아내고 읽은 후에는 잔잔한 여운을 주었으면 했다. 일상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이 동화에서 느껴지는 다정하고 따스한 기운을 머금었으면 했다. 어린이들에게 성장하는 데 힘이 되어 줄 자기만의 추억이 잔뜩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책이니까. 김선영(비룡소)



『신령님이 보고 계셔』

홍칼리 지음 | 위즈덤하우스



할 말이 많아도 너무 많은 책이었다. 무당에 대한 편견에 균열을 내는 동시에 퀴어, 비거니즘, 페미니즘, 기후위기까지 말하는 책이라니. 제목안을 쓰려고 노션을 열어놓고는 빈 문서 위에 깜빡이는 커서를 한참 바라보다 외쳤다. “신령님!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 ……어? 『신령님이 보고 계셔』? 쓰고 보니 ‘무당’이라는 단어의 무거운 이미지를 한결 가볍게 해주면서도 원고의 따뜻하고 다정한 분위기를 잘 반영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사주팔자에 딱 들어맞는 여덟 글자 제목이 아닌가. 덕분에 사내에선 “신령님 하나 받을 수 있을까요?” “신령님 재밌더라” 하는 다소 불경한(?) 대화가 오가지만, 우리 신령님이라면 너그러이 봐주시지 않을지? 이은정(위즈덤하우스) 



『예술가의 일』

조성준 지음 / 작가정신 



사람들은 각자의 일을 한다. 화가, 건축가, 배우, 가수, 피아니스트, 무용가, 영화감독, 사진작가 등 세상을 들썩이게 한 예술가들도 자신의 일을 했다. 그들의 일은 조금 남달랐다. 주어진 일이 아니라 발견한 일이었고, 남이 시켜서 한 일이 아니라 자신이 정한 일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일들은 세상으로부터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의 재능은 재주나 기예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꿈을 꾸게 했던 것이다. 저자는 예술가들이 어떤 일을,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 궁금해서 이 글을 썼다고 밝혔고, 지금의 제목을 제안했다. 괴짜, 이단아, 추방자로 불렸지만 고유한 영역을 개척하여 전설이 된 33인의 예술가. 그들의 일은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한 무언가에 대한 순전한 몰입이 주는 경이로움으로 가득하다. 이제 예술가들의 일이 어떤 것인지 들여다보는 ‘일’이 또 우리에게 주어졌다. 황민지(작가정신)



『프레시니스 코드』

조엘 킴벡 지음 / 리더스북



팬데믹 위기 속에서도 승승장구한 글로벌 패션, 뷰티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을 분석한 이 책의 제목은 개발 과정에서 완전히 방향을 바꾼 케이스다. 2019년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트렌드’를 주제로 저자의 집필이 시작됐으나, 원고가 완성 단계에 이르렀을 때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던 것. 이후 뉴욕을 중심으로 업계의 마케팅 전략이 전면 수정되는 상황 속에서 저자는 원고 대부분을 새로 쓰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 위기를 기회삼은 글로벌 패션하우스들의 전략을 ‘프레시니스 코드’라는 하나의 프레임 속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판단 하에 현재의 제목을 얻게 됐다. 김예원(리더스북)



세상과 은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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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저
오월의봄
일곱 번째 노란 벤치
일곱 번째 노란 벤치
은영 글 | 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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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님이 보고 계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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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칼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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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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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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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니스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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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킴벡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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