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계를 마주한 오늘, 비투비(BTOB) 이창섭
간혹 좋은 배우들은 작품을 통해 자신이 몰랐던 어두운 세계에 대해서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고백한다. 그리고 아마도, 이창섭 또한 그럴 것 같다. 믿음을, 응원을 보낸다.
글ㆍ사진 박희아
202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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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영의 악의 기원> 포스터 _서울예술단 제공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의 핵심 문구는 다음과 같다.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짓고 어른이 된다.” 동명의 원작이 자랑하던 방대한 분량을 155분이란 길지 않은 시안 안에 압축시키면서도, 놓친 서사 없이 꼼꼼하게 각색된 대본에 작곡가 박천휘의 극적인 음악들로 채워놓은 이 작품은 초연 때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재연까지도 배우 최우혁이 원 캐스트로 다윈 영을 맡아 진행했던 이 공연은 삼연에 이르러 커다란 변화를 꾀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심지어 서울예술단의 정체성에 반하는 것만 같은 의외의 캐스팅. 작품은 시작 전부터 관심을 받았다. 사실상 관심이라기에는 의심과 비판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그 중심에 비투비의 멤버 이창섭이 있었다. 2017년부터 <꽃보다 남자 The Musical><나폴레옹>, <애드거 앨런 포>, <아이언 마스크>에 이어 그는 2021년에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배우 윤형렬과 함께 홍계훈을 연기했고, <마리 앙투아네트>에서는 민우혁, 이석훈, NCT 도영과 함께 악셀 폰 페르젠 백작을 맡았다. 그는 꾸준히 뮤지컬 무대에 올라 비투비 활동만으로는 보여주기 어려웠던 면들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런 노력은 팬들만이 아는, 뮤지컬 팬들이나 대중에게는 그저 뮤지컬에 발을 들인 아이돌 한 명의 모습으로만 비춰지고 있었다. 아마도 <다윈 영의 악의 기원>에 그가 다윈 영 역할로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뮤지컬 팬들이 날을 세웠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멋진 넘버로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 뮤지컬을 보고 나서 반드시 원작을 읽고 싶어지는 작품. 이런 수식어를 지닌 작품에 매 시즌마다 아이돌들이 여럿 투입되는 <마리 앙투아네트>에 참여했던 그가 이름을 올렸다는 점은 분명 놀랍고,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작품이 시작되고 나서 관객들의 반응은 조금씩 달라졌다. 문화부장관을 아버지로 둔 아이, 상위 1지구 엘리트 학교인 프라임스쿨의 모범생 다윈 영은 사회의 부조리함을 알아가면서 늘 우상처럼 멋지기만 했던 아버지에게서 악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십대 중반의 어린 나이에 악의 기원을 마주한 소년이 내리는 선택은 결국 아버지와 똑같이 극악으로 치달은 선택이다. 이처럼 쉽지 않은 역할에 도전한 이창섭을 보며 놀라웠던 것은 그가 첫 공연 이후로 꼼꼼한 모니터링을 통해 자신의 단점들을 매 회차마다 극복해나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첫 공연 때 의식적으로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는 반응이 있고 난 뒤, 그가 만들어낸 두 번째 다윈 영은 아이의 순수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절대 악행을 저지르지 않을 것 같은 차분한 소년이었다. 앞선 시즌에서 호평받은 배우의 다윈 영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성실하고 빠르게 단점들을 개선해나가면서 작품이 지닌 무게를 짊어지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이창섭이라는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가 쉽지 않은 작품을 택한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비투비 <아웃사이더> 콘셉트 포토 _큐브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실 이창섭이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같은 역할을 맡았던 배우 민우혁, <명성황후>에서 같은 역할을 맡았던 윤형렬과 이 작품에서 부자지간으로 만났다는 점은 뮤지컬 산업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촌극이다. 그래서 <다윈 영의 악의 기원>과 같이 무겁고 슬픈 울림을 주는 작품에서 자신만의 역할을 따내기 위해 그가 노력했던 모습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산업의 부조리한 흐름 안에서 연출된 촌극 안에서도 뮤지컬 배우로 당당하게 자리 잡고 싶은 열망을 보여주고 싶었던 이창섭의 오늘이기에. 이창섭의 오늘이 기록된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막을 내렸지만, 세상에는 끔찍한 현실을 마주하고 무너져내리는 소년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 소년들이 더 끔찍한 일을 저지르며 어른이 되기도 하는 세계 또한 존재한다. 언제나 장난기 많고 능청스러운 모습으로 비투비의 무대와 영상 콘텐츠 속에서만 살았던 그가 이 작품과 함께 한 발짝 더 나아간 어른이 되었기를 바라본다. 간혹 좋은 배우들은 작품을 통해 자신이 몰랐던 어두운 세계에 대해서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고백한다. 그리고 아마도, 이창섭 또한 그럴 것 같다. 믿음을,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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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아

전 웹진 IZE 취재팀장. 대중문화 및 대중음악 전문 저널리스트로, 각종 매거진, 네이버 VIBE, NOW 등에서 글을 쓰고 있다. KBS, TBS 등에서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예능에 관해 설명하는 일을 했고, 아이돌 전문 기자로서 <아이돌 메이커(IDOL MAKER)>(미디어샘, 2017), <아이돌의 작업실(IDOL'S STUDIO)>(위즈덤하우스, 2018), <내 얼굴을 만져도 괜찮은 너에게 - 방용국 포토 에세이>(위즈덤하우스, 2019),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우주북스, 2020) 등을 출간했다. 사람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