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수학을 사랑한 이유』는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차별과 편견에 맞서 수학의 역사에 자신만의 성취를 남긴 여성 수학자 29명의 이야기를 모았다. 고대 그리스의 여성 수학자 테아노와 히파티아부터 마리 소피 제르맹, 에이다 러브레이스, 캐런 울런벡 등 수학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운 이들뿐만 아니라 영수합 서씨, 홍임식 등 지금껏 비교적 조명받지 못했던 한국 수학자들의 이야기까지 담았다. 21세기 한국에서 현역으로 활동 중인 여성 수학자 최영주와 오희의 이야기는 오늘날 수학을 공부하며 꿈을 좇는 학생들에게 더욱 생생한 롤 모델이 되어줄 것이다.
이 책에는 남성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기회 속에서, 수학을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여성이 버티고 개척해온 인생들 하나하나가 영화만큼이나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나아가 수학의 어떤 개념과 원리가 어떻게 우리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촘촘히 들려주는 수학의 역사이자 그로 인해 진보해온 인류의 역사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들의 삶이 그리고 그들이 바꾼 세상이 오늘날 수학과 관련한 일을 하는 이들에게는 영감을 주고, 앞으로 수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진로의 가능성을 열어주기를 기대한다. 수학에 대한 오롯한 사랑으로, 그리고 주변인과의 연대와 우정으로 어려움을 헤치며 용감히 걸어온 그들의 이야기가 오늘날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의 앞길로 이어지길 바란다.
작가님께서는 그동안 추리와 스릴러, 사극, SF에 관심을 보이며 만화·웹툰 스토리 작업과 소설 집필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작품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우리가 수학을 사랑한 이유』에서는 차별과 편견에 맞서 싸우며 자신만의 성취를 남긴 여성 수학자들을 문학적으로 접근하여 소개하셨는데요. 소설가로서 청소년 문학이 아닌 교양서를 쓰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사실은 『우리가 수학을 사랑한 이유』 외에도 작년과 올해에 걸쳐 『순정만화에서 SF의 계보를 찾다』와 『여성, 귀신이 되다』도 발표했습니다. 즉 최근 2~3년 동안 교양, 에세이 분야의 책을 연달아 쓰고 있는데요, 저는 오랜 순정만화 애호가이고, 제 데뷔작은 귀신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이야기였습니다. 또 저는 수학을 좋아해서 수학과에 갔고요. 이처럼 제가 오래 관심을 뒀던 분야들이 좋은 기회를 만나 자연스럽게 글로 풀려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작업들은, 『순정만화에서 SF의 계보를 찾다』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나는 이런 책을 읽고 싶어서 20년 동안 기다렸는데 다른 사람이 써주지 않아서 결국 내가 쓴다”는 마음으로 쓴 부분이 큽니다. 하지만 특히 수학에 대해서는, 어지간한 결심이 없으면 쓰겠다고 나서게 되기가 쉽지 않은데, 갈매나무 출판사의 대표님께서 한번 써보면 어떻겠냐고 권해주신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역사에 수많은 여성 수학자들이 활약해왔을 것 같은데요. 어떤 기준으로 소개할 수학자들을 선정하셨나요?
사실은 이 책에 소개된 여성 수학자들 중에는, 현대의 기준으로는 수학자가 아니라 다른 분야로 분류해야 하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메리 서머빌은 천문학에,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통계학과 보건정책에 업적을 남겼고, 에이다 러브레이스나 그레이스 호퍼, 마거릿 해밀턴은 컴퓨터공학의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작 뉴턴 이전에는, 물리학이나 다른 자연과학들 모두 수학이나 자연철학의 일부였습니다. 컴퓨터공학이 수학에서 독립해나간 것도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변화의 시대에, 여성들은 한발 앞서 그 분야에 뛰어들었습니다. 『우리가 수학을 사랑한 이유』에서는 마리아 아녜시가 뉴턴의 미적분학을 이탈리아에 소개한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에서는 근대과학 최초의 여성 과학자이자, 볼테르의 연인으로 알려진 에밀리 뒤 샤틀레 후작 부인이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프랑스어로 번역했습니다. 뉴턴의 미적분이나 『프린키피아』를 번역하고 소개했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이론을 번역했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코페르니쿠스에서 시작해 뉴턴으로 이어진 ‘과학 혁명’이 대륙으로 전파되었다는 이야기이고, 유럽의 역사가 근대로 완전히 접어들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변화의 시기에, 공식적으로는 공부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던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졌습니다. 아마도 남성들이 그런 자리, 그런 분야에 제대로 이름을 붙이기 전에 그 틈을 비집고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낸 이들의 역사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그 변화의 시기를 비집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관철한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변화의 시기를 비집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관철한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말씀이 참 와닿는데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많은 여성 수학자들의 생애와 업적을 조사하고 정리해 집필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집필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이나 특별히 신경 썼던 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사실 저는 대학 때 수학을 공부했지만, 벌써 20년 전의 일입니다. 또 설령 그때 열심히 공부했다고 해도, 학부 과정을 마친 학생이 알고 있는 것은 수학이라는 드넓은 바다에 뛰어들기는커녕, 백사장에서 돗자리만 막 깔아놓은 것 같은 상태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많은 분들의 업적과 일화를 소개하면서도, 바로 이 문제로 고생을 했습니다. 수학과에, 혹은 공대에 처음 들어간 학생들이 하는 농담 중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영어를 읽는 것도 어렵고 수학을 푸는 것도 어려운데 영어로 된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요. 이 책을 쓰는 동안의 제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 이건 엄청나게 멋지고 훌륭한 이야기인데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네” 정도가 아니었어요.
감수를 봐주신 이기정 교수님의 도움과, 청소년을 위한 수학책을 여러 차례 편집했던 출판사 편집부의 역량이 없었다면 어려움이 많았을 것입니다. 이 책이 제대로 꼴을 갖추고 세상에 나오는 데는,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지면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여성 수학자들의 이야기에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창작인지에 대해서도 독자들이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가령 마리 퀴리와 허사 에어턴이 나누는 대화는 실제를 바탕으로 한 것인가요? 집필하실 때, 창작과 사실관계의 비중을 어떻게 두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실제로 피에르 퀴리가 죽은 뒤 마리 퀴리는 남편의 제자이기도 했던 물리학자 폴 랑주뱅과의 스캔들에 휘말렸습니다. 그 스캔들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부당할 정도로 마리 퀴리를 비난합니다. 프랑스 여성의 남편을 빼앗은 폴란드 여자라고 비난을 받기도 하고, 집 근처에 사람들이 찾아와 마리 퀴리와 두 딸을 조롱하거나 위협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두 번째 노벨상을 사양하라는 압력까지 받게 됩니다.
비슷한 시기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부인인 밀레바 마리치를 두고 엘자와 공공연히 추문을 뿌리고 다니다가 마침내 밀레바 마리치와 이혼했을 때에도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을 그렇게까지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멀쩡히 아내가 있는 남성 과학자가 불륜을 저지르고 이혼한 뒤 불륜 상대와 재혼한 일보다도 이 일이 더 비난을 받았던 것은, 여성 혐오와 외국인 혐오, 특히 당시로서는 러시아에 나라를 빼앗긴 약소국 폴란드 출신의 여성이었기 때문에 받은 수모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때, 물리학자인 허사 에어턴이 마리 퀴리를 영국으로 초대합니다. 그는 이전에 마리 퀴리가 첫 번째 노벨상을 받았을 때, 사람들이 그가 피에르의 업적와 명성에 무임승차한 것일 뿐이라고 비난하자 지역신문 《웨스트민스터 가제트》에 “오류는 죽이기 어려운 것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여성의 업적을 남성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오류는 고양이보다도 더 많은 생명을 갖고 있는 법이다”라고 마리 퀴리를 변호하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노벨상을 받고 지쳐 있던 마리 퀴리를, 허사 에어턴은 영국의 해변가 별장으로 불러들입니다. 이 이야기는 에브 퀴리가 쓴 마리 퀴리의 전기에도 짧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또한 프랑스에서 결혼이민자로서 자신의 정치 성향을 가급적 숨겨왔던 마리 퀴리가 드물게 정치적인 입장을 갖고 서명했던 것 중 하나가 여성 참정권 지지에 대한 것이었어요. 허사 에어턴은 평생을 페미니스트로 살았고, 여성 참정권 운동에 적극적이었지요. 그런 데다 마리 퀴리와 허사 에어턴이 함께 휴가를 보내던 바로 이 무렵 허사 에어턴의 딸인 바버라는 갓 스무 살이었는데, 바로 이 여성 참정권 운동을 하다가 투옥되기도 했어요. 이 대목은 이런 사실들을 모아서 재구성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의 세부적인 대화는 창작이지만, 평소에도 여성 과학자의 업적이 축소되는 것에 대해 항의했고, 여성 참정권 문제에 목소리를 높여왔던 허사 에어턴이, 두 번째 노벨상을 받고도 프랑스 사람들에게 차별을 당하며 고통받던 마리 퀴리를 초대해 함께 휴가를 보냈다면, 그 과정에서 평소의 자신의 주의 주장을 들려주며 위로하는 것은 있을 법한 일인 것이죠.
서로 다른 시기와 장소에서 활약한 수학자들을 소개하셨는데요. 한 사람만 꼽기는 어렵겠지만, 작가님께서 가장 애정이 가는, 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수학자는 누구일지 궁금합니다.
소피 제르맹이 있겠네요. 대학 때 사이먼 싱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읽었는데, 그때 소피 제르맹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어요. 사실은 제가 처음으로 “여성 수학자도 있구나. 프랑스혁명 시기에 여성 수학자가 있었다니”하고 깨닫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당시에 처음 에콜 폴리테크닉이 세워졌을 때, 이 학교에는 남학생만 입학할 수 있었지만 혁명 정신에 의거해 누구든 강의록을 신청해서 공부하고, 또 자기가 공부한 내용을 논문으로 정리해서 검토받을 수 있었어요. 소피 제르맹은 ‘르 블랑’이라는 가명으로 이 학교의 강의록을 받아 공부했고, 당시 에콜 폴리테크닉의 교수였던 라그랑주의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는 편지를 통해 르장드르나 가우스 같은 당대의 수학자들과 교류했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증명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하지만 소피 제르맹이 죽었을 때, 프랑스에서는 그의 죽음을 위대한 수학자가 아니라 “특별한 직업이 없는 여성 상속인”으로 기록했지요.
수학과 책의 만남이라고 하면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해서 거리감을 느끼는 독자들이 많은데요. 수학을 못하고 어려워하는 사람도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요? 수학을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 책은 수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수학 이야기를 복잡하게 다루는 책은 아닙니다. 우리는 방사능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마리 퀴리의 이야기에 감동하고, 학자로서의 그의 노력과 함께, 나라 잃은 소녀의 슬픔, 파리에서 약소국 출신의 외국인이자 여성으로서 겪었던 일들에 대해 공감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최신 수학을 알지 못하더라도, 이란 혁명 직전에 태어나 그 나라에서 처음으로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간 여학생이 되었고, 다시 여성 최초로 필즈상을 받았지만 끝내 병마에 꺾이고 만 마리암 미르자하니의 이야기를 읽으며 때로는 안도하고, 때로는 슬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수학을 사랑한 이유』가 독자들에게 어떤 책으로 마음에 남길 바라는지 한 말씀 부탁드려요.
저는 여성 수학자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이분들의 이야기가 마치 별자리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형이나 선분을 이루는 것은 사실 수많은 점입니다. 어떤 점들이 하나의 선 위에 나란히 서 있지 않더라도, 마치 산포도 위에 찍힌 점을 보고 전체의 흐름을 짐작하듯이, 여러 개의 점이 찍혀 있는 것을 보고 그 형태를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지요. 사람의 관계나 기술의 발전으로 말하자면 누가 누구에게 배우고, 영향을 받고, 협력하고, 같이 다음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 같은 것을 그런 점의 형태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사실 수학에 대한 통사를 말할 때 가능한 부분입니다. 여성이 수학을 공부할 수 없는 것은 물론, 대외 활동도 가능하지 않았던 시기가 워낙 길었다 보니, 여성 수학자들이 서로 사제관계를 맺거나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대하는 모습도 기나긴 수학의 역사에서는 아주 짧은 기간, 현대에 와서야 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수학과 과학의 역사에서 여러 빛나는 순간에, 한계를 딛고 원하는 것을 위해 손을 뻗었던 여성들의 흔적은 선명한 기적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것들은 죽 이어져 있지 않아도 여전히, 땅을 딛고 있는 사람에게 하늘의 이정표 노릇을 하고 있지요. 그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바로 그 별자리들이 필요한 사람에게요.
*전혜진 소설가. 대학에서 수학과 기계공학, 컴퓨터과학을 전공했다. 2007년, 평범한 동사무소 직원들이 귀신을 잡거나 억울함을 풀어준다는 내용의 소설 『월하의 동사무소』를 발표하며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추리와 스릴러, 사극, SF 등에 관심을 보이며 만화/웹툰 스토리 작업과 소설 집필 양쪽으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0년에는 한국 SF 순정만화를 재조명하는 에세이 『순정만화에서 SF의 계보를 찾다』를 출간했고, 2021년에는 옛 귀신 이야기들 속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여성, 귀신이 되다』도 발표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책에도 관심을 가져 어린이책 『우리 반 마리 퀴리』, 『우리 반 에이다』를 쓰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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