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은의 엉뚱한 장면 : 작품의 완성도 혹은 작품 전체에 대한 감상과는 무관하게 특정 장면이 엉뚱하게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그 순간은 대개 영화의 큰 줄기에서 벗어난 지엽적인 장면이 관람자의 사적인 경험을 건드릴 때 일어나는 것 같다. 영화의 맥락에 구애받지 않은 채, 한 장면에서 시작된 단상을 자유롭게 뻗어가 보려고 한다. |
아민은 그룹 ‘아하’의 노래를 들으며 누나의 치마를 입고 아프가니스탄 카불 거리를 뛰어놀며 텔레비전 속 장 클로드 반담을 남몰래 흠모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친소련 정부에 끌려간 아버지가 실종된 이래, 무자헤딘과 탈레반이 일으킨 내전은 이토록 유쾌하고 자유로운 영혼 또한 그 땅에서 추방하고 만다. 가족들과 함께 폭력으로 물든 고향을 도망쳐 지난한 도피 생활을 거듭하다 마침내 덴마크에 도착했을 때,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가족들은 유럽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아민은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그 사실을 숨긴다. 그는 여권을 찢고 가족들이 모두 죽었다고 거짓말한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치료’해보고자 상담도 받는다. 그를 이룬 모든 것을 부정한 채, 혹은 그것들을 포기한 채, 그의 육체만이 덩그러니 새로운 땅에 도착한 것이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이제는 덴마크에 정착해 학자가 된 아민이 감독에게 지난날의 기억과 비밀을 들려주는 목소리를 중심으로 그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다큐 애니메이션이다. 영화는 그가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덴마크에 이르기까지의 불안하고 위험한 여정의 면모는 재현하면서도 덴마크에서 난민의 신분으로 살아내고 견뎌내야 했던 시간은 자세히 묘사하지 않는다. 난민의 정착기를 공들여 들여다보지 않은 방식이 처음에는 일견 그 삶의 조건을 낭만화하는 회피의 태도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내 납득하게 된다. 이 영화는 그 시간을 한 인물의 특수한 과거가 아니라 오늘날 세계의 가장 시급한 질문으로 끌어안는다. 현재진행형의 질문을 상투적이고 편의적인 언어나 에피소드를 동원해 과거에 가두길 거부하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아민의 일상이 안정을 찾았어도 난민의 정체성은 심리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여전히 그 삶의 토대다. 아민의 건조하고 차분한 목소리에는 어쩌지 못하는 우울의 기운이 배어난다.
그 우울의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하면서도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가난과 고통의 기억을 유도하고 재현하는 대신 생을 향한 호기심과 욕망의 환희를 이 영화를 지탱하는 힘으로 곳곳에 틈틈이 새겨 둔다. 그때마다 긍정의 빛이 부정과 상실과 결핍의 서사를 일으켜 세운다. 이 영화 후반에 등장하는 놀라운 한 장면은 벼랑 끝에 위태롭게 선 한 삶의 서사를 그렇게 구원한다.
아민은 가족들과 헤어진 후 처음으로 마침내 스톡홀름에서 남매들과 만난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간의 회포를 풀던 가족들이 아민이 가장 두려워할 질문을 던진다. “여자친구는 없니?” 그는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밝히면 겨우 재회한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려 왔으나 어쩐 일인지 그들의 물음에 담담하게 말해버리고 만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형이 아민을 데리고 차에 오른다. 비 오는 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아민은 잔뜩 주눅 든 채, 마치 어떤 끝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어린 날의 추억들,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낯선 곳을 떠돌던 지난 시간을 떠올린다. 형이 차를 세우고 아민을 이끌고 간 곳은 인적없는 어두운 골목 앞, 장미 네온사인이 귀엽게 반짝이는 미지의 문 앞이다. 형이 아민에게 돈을 건네며 즐겁게 놀다 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나는 형의 내면을 너무 쉽게 단정하고 이후 문 안에서 펼쳐질 상황을 예상했다.
징집을 피해 먼저 타국에 망명해서 어렵게 번 돈을 가족들에게 보내던 희생적인 형은 동생의 고백에 충격을 받았겠지. 아프가니스탄 출신인 성인 남자가 동생의 성 정체성을 인정할 수는 없었겠지. 아민이 아버지도, 큰형도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낸 탓에 남성성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런 동생에게 “진짜 남성성”을 가르쳐줄 필요가 있다고 믿었겠지. 그래서 기꺼이 돈을 대주며 여자의 성을 사라고 강요하려는 거겠지.
‘그런 남자들’의 한국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일까. 그러나 문이 열리고 아민의 눈에 펼쳐진 광경을 마주한 순간, 짜릿한 희열과 해방감에 온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곳은 게이클럽이다. 홀을 가득 채운 각양각색의 게이들이 서로 눈을 맞추고 웃음을 터뜨리며 춤을 추고 사랑을 확인하고 욕망을 나누는 놀이터. 넋 놓고 그들을 바라보는 아민의 얼굴에 처음으로 ‘표정’이라는 것이 생긴다. 그가 형이 준 돈을 다시 내려다볼 때, 영화는 클럽 앞에서의 상황을 플래시 백으로 살짝 삽입한다. 문 앞에서 형이 아민을 포옹하며 짧게, 하지만 너무도 뭉클하게 말한다. “걱정하지 마, 우리는 알고 있었어.”
내 저열하고 경직된 상상력을 이보다 더 품위 있고 따뜻한 태도로 깨뜨리는 장면은 떠올릴 수 없을 것이다. 오랜 시간 게이 난민으로 고단하게 떠돈 아민은 그가 단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당당한 쾌락의 장소를, 그간 어디서도 받아본 적 없는 온전한 환대의 터전을 비로소 갖게 된 것이다.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행복을 감추지 못하는 젊은 아민의 모습 위로 그 놀라운 밤을 회상하는 나이 든 아민의 음성이 처음으로 천진하게 깔깔댄다. 집과 고향을 잃은 자들의 해결할 수 없는 상처와 슬픔이 영화 저변에 흐르고 있을지라도 형의 대범함과 게이 클럽의 천진한 활기, 그리고 아민의 쾌활한 웃음소리가 이 영화가 거주하는 튼튼한 장소라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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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은(영화평론가, 매거진 필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