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출판사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안전가옥에서 앤솔러지를 시리즈로 꾸준히 발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전가옥에서는 작가와 함께 이야기를 개발하는 과정을 ‘스토리 프로덕션’이라고 칭한다. 원천 스토리를 확보해 드라마, 영화, 웹툰 같은 2차 콘텐츠로 확장하는 일을 하는 ‘스토리 PD’가 생각하는 앤솔러지의 매력은 무엇일까? 반소현 안전가옥 스토리 PD에게 들어보았다.
『무드 오브 퓨처』의 ‘프로듀서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다섯 명의 여성 작가가 상상하고 고민한 근미래 로맨스 앤솔러지’라는 PD님의 한 줄짜리 기획에서 시작되었다고요.
2034년까지의 영국 사회를 다룬 〈이어즈 앤 이어즈〉라는 드라마를 인상 깊게 봤고, 그래서 〈이어즈 앤 이어즈〉의 로맨스 버전이라는 콘셉트를 먼저 떠올렸어요.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머지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해보면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겠다고 생각했죠.
개인적인 관심사가 앤솔러지 기획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물론 스토리 PD 본인이 해보고 싶은 이야기에서 출발하기도 하지만, 동시대에 의미가 있는 주제이기도 해야겠죠. 안전가옥은 굉장히 고도화된 프로덕션 과정을 거쳐 스토리를 개발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최종 결과물은 스토리 PD 한 명이 처음 기획한 대로 똑같이 나온다고 할 수는 없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작가를 섭외하고 계약을 하면 먼저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원고 집필 전에 대략의 내용을 정리한 시놉시스부터 주고받아요. 장편은 세부 사건을 정리한 기획안인 ‘트리트먼트’도 오가는데, 앤솔러지와 같은 단편일 때는 생략합니다. 시놉시스로 협의가 되면 작가가 원고를 집필하고 이것이 끝나면 담당 PD가 1차 리뷰를 해요. 출간 전에는 안전가옥의 모든 스토리 PD가 원고를 보고 피드백을 하는 전체 리뷰도 있어요. 각자의 시선에서 열심히 의견을 보태고, 작가와 같이 스토리를 완성하는 거죠. 저희는 스토리를 판매하는 일도 하기 때문에 출간 후에는 원천 스토리가 필요한 파트너사에게 작품을 소개하기 위한 글도 스토리 PD가 작성합니다.
정말 많은 단계를 거치는군요. 가장 어려웠던 과정은 무엇인가요?
작가를 섭외할 때가 가장 어려워요. 거절당하면 어쩔 수 없이 실망하기도 하고요. 프로덕션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일정 관리가 가장 어렵습니다. 어떤 작가의 원고가 늦게 들어오면, 먼저 원고를 주신 분들께 죄송해서 독촉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늦게 주신 분도 일부러 늦는 게 아니라 사정이 있거든요. 양측에 마음의 빚이 쌓여가는 거죠.
『무드 오브 퓨처』의 작가 섭외 과정도 궁금해요.
드라마와 에세이, 영화 시나리오와 희곡처럼 다른 분야의 글을 쓰는 작가들이 많은데요. 제가 출판이 아닌 영화계에서 일을 하던 사람이라는 점도 영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안전가옥은 출판사가 아니라 확장성이 있는 스토리를 만드는 데에 주력하는 회사여서 소설에서 끝이 나는 게 아니니까, 대본 개발까지 염두에 둔 섭외를 했어요. 윤이나 작가는 드라마 극본을 써왔고, 이윤정 작가는 김효인 작가의 소설 「우주인 조안」을 원작으로 한 SF 드라마의 감독이었어요. 한송희 작가는 희곡 작업을 했고요. 대본 개발이 가능한 분들이니 확장의 가능성이 더 많아질 거라는 기대가 있었어요.
〈안전가옥 앤솔로지〉라는 이름으로 이미 여덟 권의 앤솔러지를 냈는데요. 『무드 오브 퓨처』는 〈FICPICK〉이라는 앤솔러지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에요. 기존 앤솔러지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안전가옥 앤솔로지〉 시리즈는 2018년부터 열린 안전가옥 스토리 공모전, 2020년부터 파트너인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과 함께 주최한 공모전의 수상작을 모아놓은 작품집이에요. 『호러』, 『뉴 러브』, 『슈퍼 마이너리티 히어로』 등이 있습니다. 『무드 오브 퓨처』는 처음으로 공모전이 아닌 자체적으로 기획을 한 뒤에 기획 방향에 맞는 작가를 모아서 낸 작품이기 때문에 새로운 시리즈로 소개를 하게 되었어요. 〈FIC-PICK〉 시리즈에선 앞으로도 주제를 선정해 앤솔러지를 계속 출간할 예정이에요.
어떤 작품이 예정되어 있나요?
고전 동화를 재해석한 『모던 테일』이라는 앤솔러지, 도시에서 우리가 느끼는 공포를 포착한 이야기를 모은 『도시 청년 호러 』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작가들이 스토리 PD에게 먼저 제안을 해서 진행하게 된 작품도 있는데, 살짝 공개하자면 ‘여성 퀴어’를 주제로 한 앤솔러지 그리고 여성 장르 작가들의 ‘미스터리 스릴러’ 앤솔러지입니다.
안전가옥은 냉면, 스타, 편의점, 히어로 등 정말 다양한 주제로 앤솔러지를 출간했죠. 이처럼 앤솔러지를 많이 출간한 이유가 있을까요?
앤솔러지는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좋은 그릇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다양한 작가를 만날 수 있고요. 사실 작가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저희와 장편을 개발하는 건 부담스러울 수도 있잖아요. 안전가옥이 어떤 회사인지 잘 모르고, 스토리 프로덕션의 과정도 낯설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그럴 때 앤솔러지는 장편에 비해 작업 부담이 덜해서 장벽이 낮아지는 것 같아요.
스토리를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앤솔러지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같은 키워드라도 다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 기획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다양하게 묶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 입장에서도 책 한 권으로 여러 편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좋고요.
『무드 오브 퓨처』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 아직 읽지 않은 독자에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두둠칫 스테이션〉이라는 팟캐스트에서 책을 소개하며 소설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음악을 모은 플레이리스트도 공유했더라고요. 정성이 가득한 리뷰여서 정말 감사했어요. 먼저 부담 없이 팟캐스트를 들으며 어떤 책인지 알아보셔도 좋을 것 같고요. 한 줄 소개를 덧붙이자면 ‘가난한 마음의 선물 같은 책’이라고 요약하고 싶네요.
*반소현 안전가옥 스토리 PD. 안전가옥 옴니버스 픽션 시리즈 〈FICPICK〉의 첫 번째 앤솔러지인 『무드 오브 퓨처』를 기획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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