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선택
우춘희 저 | 교양인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한 1500일’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고요. 우춘희 저자가 여성주의저널 <일다>에서 2021년 1월부터 5월까지 쓴 9편의 기사에 내용을 덧붙여서 낸 책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미국에서 박사 과정으로 연구를 하다가 농업 생산에 관심을 두게 되었대요. 이 관심이 한국의 농업 생산자로 향하게 되면서 이주노동자 문제로 관심이 연결되었다고 하는데, 이 과정을 저자는 필연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한국 뿐만은 아닌데 이제는 전 세계의 농업 자체가 이주노동자 없이는 농사를 못 짓는 상황이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저자의 소개 그대로 이 책은 우리 밥상 위의 인권, ‘밥상 인권’에 관한 책입니다.
이주노동자들을 향한 혐오와 편견으로 우리가 흔하게 접하고 또 말하는 내용들이 있죠. 내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 그리고 건강보험 재정을 축낸다, 두 가지인데 둘 다 사실이 아니에요. 한국에서는 2004년부터 고용허가제가 시행이 되어서 이주노동자들이 브로커가 아니라 정부기관의 취업 알선을 통해서 들어오고 있는데요. 고용허가제에서는 고용주가 선주민(내국인) 구인을 고지하도록 의무적으로 규정이 되어 있다고 해요. 애초에 이주노동자들부터 고용을 하는 것이 아니고 선주민이 하지 않는 일을 이들이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고요. 이주노동자들이 건강보험 재정을 축낸다는 거짓말의 실상은 이렇습니다.
한국에는 ‘건강보험 당연 가입 제도’라는 것이 있어서 6개월 이상 체류하는 외국인은 반드시 가입을 해야 해요.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분야 중에서 농축산 그리고 어업 분야의 사업장들은 대개 5인 미만의 사업장이거나 고용주에게 사업자등록증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이 업계에서 일하는 거의 모든 이주노동자들은 지역가입자로 보험료 전액을 본인이 부담합니다. 내국인은 소득과 재산 수준에 따라서 보험료가 산정되잖아요.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은 내국인 보험 가입자의 평균 보험료를 내요. 책의 내용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의 월평균 근로소득이 내국인의 67%인데, 보험료는 내국인 기준으로 똑같이 내는 거죠.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더 적게 벌고 더 많이 내는 상황입니다. 강제성도 강해서 보험료가 3회 이상 체납되면 비자 연장이 안 되고 출국 조치를 당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차별적으로 부과되는 높은 수준의 보험료를 내고도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18년부터 3년간 건강보험료 재정수지 누적 흑자 규모가 1조 원인데, 이 중에서 외국인이 건강보험료로 낸 돈보다 보험 급여를 적게 받아서 발생한 흑자의 액수가 천억 원대예요. 2018년에는 2346억 원, 2019년에는 3736억 원, 2020년에는 5875억 원입니다.
책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어떤 공간에서 살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는데요. 대개는 일터인 비닐하우스 옆에 설치된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 등의 가건물이 숙소라서 재난에 취약하고 또 범죄에 취약합니다. 고용주는 이런 숙소로 월세 장사도 하는데요. 고용주가 알아서 기숙사비를 걷으라는 정부의 지침이 있다고 합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숙식비를 아끼려고 함께 모여 사는 경우가 많은데 월세를 방 하나당 받는 게 아니에요. 1인당 받습니다. 이렇게 고용주와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직접 기숙사를 제공하는 일의 문제점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이주노동자가 고용주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되고 고립이 된다는 것이 정말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책의 제목이 『깻잎 투쟁기』인데요. ‘왜 깻잎인가?’라는 제목의 챕터도 있습니다. 농가에서의 생활은 농번기와 농한기로 나뉘어 있잖아요. 그런 환경에서는 노동자 상시 고용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깻잎은 비닐하우스에서 일 년 내내 재배를 합니다. 노동 집약도가 높아서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기가 유리하고, 단위 면적당 소득이 높은 작물이라고 해요. 또 수확해서 팔면 현금이 바로 들어와서 자금 회전율이 높기 때문에 요즘은 농가에서 다른 채소보다 깻잎을 선호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춘희 저자가 만난 깻잎 밭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하루에 깻잎 1만 5천 장을 따는데, 깻잎 천 장을 한 상자로 묶어서 하루에 열다섯 상자를 작업합니다. 고용주가 제시하는 목표치가 하루 8시간 작업이 아니고 열다섯 상자예요. 깻잎으로 열다섯 상자를 채우려면 열 시간이 넘게 작업을 해야 합니다. 열 시간 넘게 일하는데 임금은 여덟 시간을 받는 거예요. 하루에 두 시간씩 공짜 노동을 합니다. 그리고 깻잎 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대부분 20~30대 여성들입니다. 성추행과 성폭력 위험에도 노출이 되어 있어요. 이주노동자는 성폭력 피해가 있을 때는 고용주의 동의가 없어도 사업장을 변경할 수가 있는데요. 성폭력이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을 해야 하고, 신고했는데 입증을 하지 못하면 허위 신고로 출국 조치 당합니다.
1년에 약 5만 5천 명의 이주 노동자가 고용허가제를 통해서 16개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데요. 우춘희 저자는 ‘인력이 아니고 사람이 오는 것’이라는 점을 사회와 제도가 함께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요청합니다.
마지막 챕터에서 저자는 불법 체류자가 아닌 ‘미등록 이주민’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제안하는데요. 이 제안은 이미 전부터 국제사회와 국제기구들이 해온 것이기도 하답니다. 불법 체류자라는 말이 불법적 존재로 사람을 낙인찍어서 혐오를 조장하는 면이 있다는 의견인데요. 사람의 존재 자체가 어떻게 불법이 됩니까. 그래서 책에는 ‘체류 기간을 넘어서 체류하는 것, 초과 체류는 행정절차 위반이지 형사상 범죄가 아니다. 교통법규 위반자를 불법 운전자라고 하지 않듯이 불법 체류자라고 할 필요가 없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저자는 코로나19를 계기로 국경 안에 누가 사는지, 지역사회와 마을 안에 누가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말하는데요. 우리가 밥상에 올려 먹는 깻잎 같은 농산물들이 어떻게 왔을까를 생각하고 또 이렇게 책을 통해서라도 공부를 하는 일이 바로 그런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을 저는 이 책을 다 읽고 했습니다.
단호박의 선택
나종호 저 | 아몬드
저자는 한국에서 심리학과 의학을 공부하고 뉴욕 대학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거친 정신과 의사라고 해요. 사람 도서관이라는 게 덴마크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의 일환이래요. 도서관에서 사람을 빌릴 수가 있는 거예요. 책을 빌리듯이 사람을 빌려서 그 사람과 3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던 거죠. 저자는 이 아이디어에서 힌트를 얻어서 자신이 뉴욕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환자들도 ‘사람 책’처럼 자신이 사서 역할로 소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이런 책을 저술했다고 합니다.
출판사가 이 저자를 발견하게 된 계기도 뜻깊은데요. 이분이 故 설리 씨가 사망한 이후에 여러 가지 기사를 보게 된 거예요. 기사 제목들이 대부분 ‘극단적 선택’이라든지 ‘설리는 어떻게 하다가 이런 선택을 하였나’라는 식의 제목이 많은 걸 보고 정신과 의사로서 이런 풍토에 문제 제기를 해야겠다 싶어서 브런치에 글을 올리게 됩니다. ‘극단적 선택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글이었어요. 자살이 선택이 아니고 어떤 환경에서 병에 의해서 한 필연적인 과정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렸던 글이고요.
책에서는 정신과 질병에 관한 이야기도 하지만 ‘사람 도서관’이라는 제목처럼 ‘어떻게 사람들과 공감하고 사람들에 관한 편견을 줄일 수 있을 것인가’가 주요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저자 본인도 가지고 있었던 편견이 있었는데 그것을 편견이라고 깨달은 순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편견을 깨면서 다른 고민이 생겼대요. ‘나와 비슷한 요소가 있는 사람에게는 공감을 할 수 있지만, 나와 완전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하고는 어떻게 공감할 수 있을까’ 같은 고민이 생긴 거죠. 예를 들어서 어떤 무슬림 사람이 병원에 왔을 때 백인 의사들이 자신을 차별하는 것 같아서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동양인 의사가 오는 것을 보고 ‘당신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겠지’ 하면서 마음을 여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렇다면 ‘나와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없는 사람의 경우라도 내가 공감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동정을 넘어서 공감하는 법과 공감이 학습 가능하다는 것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요. 영어로 ‘동정’은 ‘sympathy’라고 하고 공감은 ‘empathy’라고 하는데,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동정은 ‘함께’라는 뜻과 ‘감정’이라는 뜻이 함께 붙여진 거라고 해요. 이게 어떤 사람의 바깥에서 고통을 함께 느끼고 이해하는 거라면, 공감(empathy)은 ‘em-’이 ‘안’이라는 뜻이래요. 누군가의 안에서 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 이런 뜻으로 해석을 합니다. 동정심은 아픔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쨌든 바깥인 거예요. 그래서 고통이 타자화 된다고 저자는 생각을 했는데요. 공감은 ‘고통을 겪는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 레지던트로 일하면서, 약물이나 이미 검증된 방법의 상담이 문제가 아니라, 진심 어린 공감이 타인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주는 경험을 계속하게 되는 거죠. 심리 치료에서 가장 큰 치료 효과를 보이는 요인이 약도 아니고 상담도 아니고 치료자의 공감 능력이었다고 저자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고 공감도 학습 가능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데요. 공감 전문가이면서 임상 심리학자인 사람이 공감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 것인가라고 정리를 했을 때 세 가지 방법을 짚었대요. 첫 번째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가치 있는 일이다, 라는 걸 깨닫는 게 먼저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내가 모든 관심의 중심이 되지 않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 대요. 어떤 경우에라도 내가 중심이 아니라 그 사람이 중심이 된 상태로 공감을 시도해야 된다는 거죠. 마지막으로는 특히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일수록 배울 것이 많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차이를 존중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과정이 곧 공감이 된다’라는 말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다 읽고 나면 ‘사람 책’을 여러 권 읽은 기분이 나는 책이었고요. 평이하게 쓰여져 있고, 저자가 공감하기 위해 굉장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냥의 선택
오사 게렌발 글·그림 / 강희진 역 | 우리나비
오사 게렌발은 스웨덴의 대표적인 여성 만화 작가이고요. 국내에도 다수의 책이 출간이 됐는데 그중에 『7층』이라는 그래픽 노블이 유명하다고 해요. 이 작품은 ‘2015년 부천만화대상’에서 상을 받기도 한 작품이고, 데이트 폭력 을 고발하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오사 게렌발 작가는 주로 전적 이야기로 작품을 그리고 있다고 해요.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이 책은 주인공이 출산을 앞두고 준비하는 모습에서 시작됩니다. 첫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자신이 어렸을 때 썼던 아기 침대를 다시 사용하려고 조립합니다. 그런데 귀퉁이에 긁힌 것 같은 흔적이 있는 거예요. ‘내가 그랬거나 다른 아이가 그랬겠지’ 치부하고 넘어가는데, 그 흔적이 자꾸 신경이 쓰여요.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겪은 친구들을 만날 때 듣는 이야기 중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어요. ‘엄마가 이번 주말에 아이를 대신 봐줬어’, ‘이번 주말에 부모님 댁에 가서 육아는 맡겨두고 나는 좀 쉴 거야’ 이런 이야기들을 듣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거예요. ‘부모에게 아이를 맡긴다고? 말도 안 돼, 그래도 되는 일인 거야?’ 싶은 거예요. 또 주변의 친구들이 엄마의 죽음을 경험하고 너무 슬퍼할 때 공감할 수가 없어요. 마음속에서 ‘네 자식이 죽은 것도 아니고 네 엄마가 죽은 건데 그거 가지고 이렇게 난리야?’라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거예요. 이 부분까지 읽으면서 독자들은 ‘과연 이 주인공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거고, 지금 어떤 마음의 작동이 일어나고 있는가’ 궁금해지는데, 그 지점부터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어린 시절의 주인공은 ‘모든 것을 내가 혼자 해결해야 한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해서는 안 된다, 질문해서도 안 된다,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 근거를 들여다보면, 부모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마지못해 나를 대하고 있다는 느낌이 전해지고 내가 질문을 하면 부모가 자리를 떠나는 경험들이 누적되어 온 거예요. 그래서 혼자 많은 것들을 터득해 나가는데 그중에 하나가 자전거 타기였어요. 그 모습을 본 부모가 너무 흡족해 합니다. 이 아이는 부모의 칭찬에 목말라 있었고, ‘나 혼자 해낼 거야’라는 생각이 더 강화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서 주인공의 부모가 항상 회피와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아이를 대해왔다는 것이 드러나고, 그 가운데에서 아이가 항상 애정에 굶주리고 외롭고 혼자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정서 상태로 성장하는 이야기가 나와요.
성인이 돼서 독립을 한 이후에도 두려움과 어둠이 자기 안에 계속 남아 있었기 때문에 중독 증상에 빠지기도 하고요. 관계에서도 계속 스스로를 버려두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밑바닥까지 닿고 나서야 다시 올라가려는 노력을 하는데, 그 과정도 그려져 있어요.
거기에서 나올 수 있었던 건 자신만의 둥지가 생겼고 그 안에서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아이도 가졌고 가정도 있고 이곳에는 사랑도 있는데, 다시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거예요. 내 아이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마음 한 구석에서는 어린 시절의 ‘나’가 소리치는 거예요. ‘그런데 왜 나는? 왜 내 곁엔 아무도 없었어? 나는 왜 아무도 바라봐주지 않아?’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거죠. 주인공은 자신이 점점 더 우울한 상태에 빠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상담을 받기 시작합니다. 유년기와 청소년, 청년 시절에도 상담을 여러 번 받았었어요. 그때마다 아주 다양한 (의학적) 감정이 내려졌는데 뾰족한 해결책은 없었던 거예요. 그런데 다시 상담을 시작했을 때 드디어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의 정확한 이름을 갖게 됩니다. ‘당신이 경험한 것은 정신적인 방임이다.’ 그와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면서 이게 바로 내 이야기구나, 내 케이스구나, 라는 걸 알게 돼요. 그리고 치유로 나아갑니다.
이 모든 과정이 가능했던 이유를 주인공 스스로가 말하는데 참 인상적이었어요. “내가 정신줄을 놓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아주 작지만 굳은 신념 하나를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실제로 건강하고 병든 건 내 주변 환경이라는. 마음속 깊이 어딘가 자리한 이런 작고 굳은 확신이 한결같이 나는 건강하다고 되새겨 주었다. 이 확신이 나를 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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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