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는 짧은 연애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기에게 찾아온 느낌들, 생각들, 마음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마치 재물을 지키듯이 지켜내고 사는 사람들은 조용히 빛난다. 내가 만난 인터뷰이들은 그걸 삶으로 가만가만 해내는 분들이었고, 그들 앞에서 나는 자주 뜨거워졌다. 사고와 행동방식이 교정됐고, 주변에 보이는 것이 달라졌다. 사람에게 반하거나 영향받는 일이 나이가 들수록 드물어지는데 인터뷰라는 작업이 있어서 나는 설렘의 감각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 사랑의 능력이 퇴화하지 않도록 내 앞에 나타난 인터뷰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은유 작가님의 인터뷰집 『크게 그린 사람』에서 읽었습니다. 저는 너무 뻔뻔한 사람 때문에, 몰염치한 사람 때문에, 나를 두렵게 하고 분노하게 만드는 사건 때문에, 그리고 때때로 너무 약한 나 때문에, 사랑하는 일을 가끔 그만두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 저를 비롯해서 우리 사회의 누군가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잃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을 잃었다, 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최전선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을 만나 질문하고 대답을 듣고, 그들의 질문을 듣고 그걸 기록하는 은유 작가님의 글을 읽어가는 일은 최전선의 싸움이 지금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생각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저는 사랑하기를 그만두는 일을 그만둘 수 있었습니다. 사랑의 능력이 퇴화하지 않도록 글쓰기를 통해 삶을 삶으로 연결하는 사람. 오늘은 그 사람을 만나보겠습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인터뷰 - 은유 작가 편>
오늘 모신 분은 인터뷰가 ‘사람의 크기를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작가입니다. 크게 그리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그 이야기를 책에 담으셨어요. 인터뷰집 『크게 그린 사람』을 쓴 은유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황정은 : 인터뷰 단행본을 여러 권 내셨는데요. 이번에 쓴 『크게 그린 사람』은 “특정한 의제로 묶이지 않는” 인터뷰집으로는 처음 펴낸 형식의 책입니다. 그간의 작업들하고는 다른 점이 있었을 것 같아요. 어땠나요?
은유 : 제가 (지금까지 출간한 책이 10권인데) 그중에 5권이 인터뷰집이에요. 『크게 그린 사람』 포함해서. 그런데 4권은 다 특정한 주제로 묶인 책들이거든요. 제가 워낙 인터뷰를 되게 좋아했고 인터뷰집을 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블로그를 할 때 제목을 ‘21세기 민중 자서전’으로 해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블로그에 올리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비난을 한 거죠. 너무 올드하다고. (웃음) 제가 인터뷰 다니면서 평범해 보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에 굉장히 애정을 갖고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작업이 이제 나왔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제 마음속의 제목은 ‘민중 자서전’이기도 한 책이에요. 그래서 의미가 있습니다.
황정은 : 책 제목인 『크게 그린 사람』은 조지아 오키프의 산문에서 영향을 받아서 지은 제목입니다. 말머리에 내용이 인용되어 있더라고요. 혹시 읽어봐도 될까요?
은유 : 네, 좋아요.
황정은 : “어느 누구도 꽃을 보지 않는다. 진정으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너무 작아서다. 그리고 우리는 늘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꽃을 볼 시간이 없다. (…)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내 눈에 보이는 걸 그리련다. 그 꽃이 나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그리련다. 엄청나게 크게 그려 그 꽃 한 송이를 보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리면 모두가 놀랄 것이다.” 대단히 단순한 산문인데 마음을 많이 움직이는 그런 글 아닙니까? 좋았어요, 되게.
은유 : 저도 이 글을 이제 리베카 솔닛의 책에서 봤을 때 ‘바로 이거야’ 이런 생각이 들면서 제 인터뷰 작업이 떠올랐어요. 연결이 되더라고요. ‘인터뷰도 이건데?’ 이런 생각이 딱 들었고, 서문에 인용을 했습니다.
황정은 : 이 산문의 내용을 알고 나니까 이 책의 제목으로는 『크게 그린 사람』이라는 제목이 더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유 : 제목 제가 지었어요. (웃음)
황정은 : 그러셨을 것 같아요.
은유 : ‘민중 자서전’의 업그레이드 버전. (웃음)
황정은 : 조지아 오키프의 글을 인용하시면서 인터뷰는 “사람의 크기를 바꾸는 일”이라고 하셨어요. ‘너무 가까워 보지 못하고 안 보이던 사람을 보이게 하고, 또 잘 보이던 사람을 낯설게 하는 일’이라고 하셨는데요. 이 책을 통해서 어떤 사람들을 크게 그리고 싶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은유 : 이 책의 (인터뷰이인) 열여덟 분을 어떤 공통점으로 설명해야 될지, 저한테 항상 좀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민중 자서전’을 처음에 생각했을 때도 그렇고, 만나고 싶었던 분들은, 책에 부제가 ‘세상에 지지 않고 크게 살아가는 18인’이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지지 않고’ 보다 ‘길들여지지 않고’ 살아가는 분들이에요. 우리가 삶에 대한 상상력이나 이런 것들이 좀 좁은 편이잖아요. 소위 말하는 정상성의 삶의 규범도 너무 경직되어 있고, 고통당하면 되게 불행한 것 같고, 어떤 삶의 사건이 있으면 또 삶이 나락으로 너무 떨어지는 것 같고.
이렇게 좀 단순하게 되어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서 저한테 굉장히 힘을 주신 분들이에요. 저는 ‘모두 다 획일적으로 살 필요는 없고 그렇게 살아가지 않는다’라는 이야기가 세상에 좀 더 많았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많지는 않잖아요. 삶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는 서사가. 그래서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했고요. 어떻게 보면 자기 길을 되게 묵묵히 가시는 분들이죠. 그런 분들한테 제가 잘 반하고, 그래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황정은 : 인터뷰이를 섭외하는 과정이 궁금한데요. 의제를 먼저 주목하고 사람을 찾는 편이세요, 아니면 사람을 먼저 주목하고 의제로 들어가는 편이세요?
은유 : 보통 같이 오는 것 같아요. 저는 사람이 더 보이는 (것 같은데) 저 사람이 저 얘기를 하니까 들리는 경우가 많이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동시에 오게 되는 경우가 많고. 『크게 그린 사람』에 나온 인터뷰들은 제가 <한겨레> 신문에 연재했던 작업이라서 담당 기자 두 분하고 저하고 단톡방을 만들어서 의논하면서 정했어요.
황정은 : 김진숙 위원장을 직접 인터뷰하고 싶어서 장문의 메일을 쓴 적도 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성사가 안 됐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기회가 와서 하게 되신 건데. 누군가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 저는 궁금하기도 했어요.
은유 : 그냥 그 삶이 저한테 이렇게 확 들어올 때가 있거든요. 김진숙 지도 위원 같은 경우는 복직 투쟁을 다시 시작했잖아요. 그전에 암 투병을 했던 이야기도 들었고 해서, 너무 자세히 듣고 싶은 거예요. 뉴스에는 단신 기사로 나오니까. 왜 다시 복직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지 상세히 듣고 싶다, 그래서 인터뷰하고 싶었고요. 그전에도 ‘나라면 저렇게 못할 것 같은데? 저렇게 할 수 있었던 힘과 그 절실함이 뭘까?’ 이런 게 궁금하고 ‘저분의 삶에는 무엇이 중요한 걸까?’ 이런 것도 궁금하고.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황정은 : 사람이 늘 궁금하신 것 같아요. 본인을 ‘데이트 생활자’라고 하셨잖아요, 사람 만나는 거 너무 좋아해서.
은유 : 네. (웃음) 제가 사람을 만나면 힘과 기운을 받는 것 같아요. 평소에 삶을 좀 정직하게 들여다보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있잖아요. 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짓눌리는 순간들도 있고 허무해지는 때가 있는데, 그런 저를 살려내는 건 사람 이야기인 것 같아요. '맞아 저런 의미가 있지, 살아야 하는 이유는 저런 거 아닐까' 하면서 힘을 받는 것 같아요.
*은유 (김지영) 글 쓰는 사람. 누구나 살아온 경험으로 자기 글을 쓸 수 있을 때 세상이 나아진다는 믿음으로 여기저기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한다.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 시민 단체 활동가 등과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하며 사회적 약자들이 목소리 내는 일을 돕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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