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가 물었다. "지금 내가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일상 속의 증거 같은 게 있을까요?" 봉현 작가가 답했다. 지금 곁에 있는 이불과 수건이 하얗고 보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 않다면, 잘 살고 있지 못한 거라고. 그 말을 듣고 김미라 편집자는 생각했다. 이 작가라면 일상을 지키는 루틴을 갖고 있을 거라고. 곧 기획안을 만들어 보냈고, 봉현 작가는 책의 가제에서부터 마음을 빼앗겼다. 그렇게 『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릴 거야』가 탄생했다. 작가를 단박에 사로잡았던 가제는 그대로 책의 제목이 됐다.
지난 1년여 동안 발행된 뉴스레터 '봉현읽기'에 담겼던 작가의 일상 이야기는 『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릴 거야』의 바탕이 됐다. 햇볕이 좋은 날 빨래를 하고, 창문을 열고 먼지를 털어내고, 전날 만들어둔 시원한 레몬차를 마시고, 그림일기를 기록하며 하루를 정리하고, 깨끗하게 준비해둔 침구와 잠옷으로 밤을 맞는, 소소하고 솔직한 이야기가 담겼다. 루틴으로 이어지는 일상은 곧 나를 돌보는 시간이다.
봉현 작가는 "'단정한 반복'도 좋지만 '나를 살릴 거야'라는 단어에 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 눈물만 흘리고 있는 사람이, 일어나서 이불을 개고 잠옷을 빨아 입으면서 힘낼 수 있는, 그런 책이었으면 좋겠다"고.
무너져도 상관없지 않나?
4년 만에 나온 에세이입니다. 그동안 작가님의 글과 그림을 만날 기회가 계속 있었어요. 그래서 공백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죠. 제가 일러스트레이터 활동을 계속 하니까 그렇게 느껴지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책은 안 내고 그림만 그렸었어요. 책 표지도 많이 그리고요. 오랜만에 책이 나왔다고 하니까 4년이나 됐냐고 놀라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제가 뉴스레터도 보내고 계속 글을 썼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낸 책이 『베개는 필요 없어, 네가 있으니까』였으니까, 생각보다 긴 공백이 있었어요.
뉴스레터 '봉현읽기'를 발행하신지 1년이 넘었죠?
네, 1년 4개월 정도 됐어요. 그림 일만 계속하다가 꾸준히 글을 쓰는 원동력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쓰다가, 사람들에게 계속 내보일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뉴스레터를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진짜 가벼운 마음으로 '구독자가 100명만 돼도 책임감이 생기지 않을까, 100명만 돼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첫 날에 300명이 구독해주셨어요. 지금은 2500명 정도 돼요. 무료 구독이라 많이 신청해주시는 것 같아요. (웃음)
구독료는 자유롭게 보내달라고 하셨더라고요.
그렇죠. (구독료 없이) 그냥 받아보셔도 저는 읽어주시는 것으로 좋아요. 그런데 생각보다 구독료를 많이 받았어요. 그것만으로 되게 감사해요. 제가 무료 구독을 하는 이유가 있는데, 돈을 얼마라도 받으면 무조건 그 날에 보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잖아요. 뉴스레터까지 마감에 대한 부담감이 강하면 일상생활이 흐트러질 것 같아서 조금 자유롭게 하고 싶었어요.
또 다른 이유는, 뉴스레터 구독자 분들 중에 청소년이 많아요. 그 친구들이 저한테 비밀 글을 남겨주기도 하는데, 학교생활이 너무 힘들고 미래가 불분명하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해요. 그럴 때 제 글을 읽고 응원을 받고 힘을 얻는다고요. 그런데 제가 그 친구들에게 돈을 받으면서 뉴스레터를 보내기가 좀 그래서 그냥 편하게 보시라는 마음이고요. 어른들이 돈을 냅니다.(웃음) 그 분들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구독료를 받고 있어요.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일도 아닌데 '마감해야 하는 일'을 스스로 만드신 거잖아요. 자기 관리를 잘 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요즘 MBTI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저는 ENFJ인데 J형 인간들이 계획하고 통제하는 걸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70%가 J형인데, 의외로 즉흥적인 부분도 많아요. 여행을 좋아해서 그런지 유도리 있게 하는 걸 잘하는 편인데요. 어떤 상황이 어그러진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아요.
뉴스레터도 마감일을 정해놓고 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텐데, 그러지 않고 '어쨌든 한다'라는 규칙과 틀을 정해두고 적당히 자유를 주는 식으로 하다 보면, 꾸준히 나를 통제하면서 자유롭게 글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책에도 썼듯이 제가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너무 엄격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자유롭게 풀어주지도 않는, 그런 적정한 선을 유지하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말씀하신 '균형'이 놀라운 부분이었어요. 그런 삶의 태도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만들어진 건가요?
저는 그렇다고 봐요. 제가 지금 9년차인데, 처음 일러스트 일을 할 때 출판사랑 주고받았던 메일들 보면 너무 부끄럽거든요. '아, 봉현아... 이게 무슨... 왜 그랬냐...' 이런 느낌이 있어요.(웃음) 당시의 저를 돌아보면, 처음 책을 내고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기 시작했는데 일이 그렇게 많이 들어오지 않았고요. 일의 기간을 얼마나 잡아야 하는가, 얼마를 받아야 하는가, 이런 것에 대한 개념이 없으니까 그냥 닥치는 대로 했어요.
어떻게 해야 될지 정리가 안 된 상태다 보니까 균형을 못 잡고 막연하게 시간을 보내거나 아니면 너무 빡세게 일하거나 하면서 생활이 늘어지는 거예요. 일도 많이 없고, 생활도 엉망이고, 돈도 못 벌고, 그런 상황이 유지가 됐어요. 1~2년 정도는 당황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러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이렇게 살면 인생에 풍파만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오래 이 일을 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후에는 어떻게 됐나요?
조금씩 균형을 맞춰나갔던 게, 아마 세 번째 책 이후였던 것 같아요. 그때 1년 넘게 매일 그림을 그렸거든요. 그게 저한테는, 뭐랄까요, 내가 매일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에 대한 실험적인 시도였던 것 같아요. 정말 하루도 안 빼놓고 그렸어요. 잠 자다가 '오늘 안 했다' 싶으면 일어나서 그리고, 길거리에서 그리고, 밥을 먹다가 그렸어요. 그게 어려운 일인 것 같지만, 10분이라도 잠깐만 시간을 내면 된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정말 하기 싫지만 하면 되는 거죠. 그때 이후로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것에 길을 들여보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고요. 그렇게 해야 프리랜서로서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구나, 라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루틴을 지키려면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죠. 그런데 작가님은 다르시더라고요. 실패해도, 내 기대치만큼 하지 못해도,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고 너그러우시던데요?
맞아요. 이 책이 루틴 에세이이고 반복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혹여나 제가 미라클 모닝 리더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좀 걱정했어요. 새벽 4시마다 칼같이 일어난다든가 하루의 시간표를 짜서 그대로 실행한다든가, 저는 그렇게 엄격하게 자신을 통제하면서 살고 있지 않거든요. 그래서 프롤로그에서부터 짚고 들어간 거죠.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매번 무너지고 또 한 번 해보고자 하는 그냥 평범한 사람입니다, 라고요.(웃음) 사실 저는 누구나 그렇다고 보거든요. 아무리 루틴을 짜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럴 때 저는 '무너져도 상관없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편인 것 같아요.
프리랜서의 루틴
마감 때문에 4박 6일 동안 밤을 새거나 24시간 동안 잠을 못 잘 때도 있다고 쓰셨어요. 그럴 때는 루틴이 유동적인가요?
프리랜서이니까 언제 일이 들어오거나 변경될지 몰라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루틴은 이런 거예요. 예를 들어서 일주일에 3일을 밤새야 되는 일이 있다면, 그동안은 정말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잘 수 있을 때 자는 시간이에요. 저는 그 3일을 통으로 보는 거죠. 마감이라는 하나의 큰 덩어리로 보고, 그게 끝나는 순간 휴식이라는 하루를 잡아요. 그러고 나서 이틀 정도 청소하고 집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또 하루는 밖에 나가서 산책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요. 그러면 딱 일주일이 되잖아요. 저는 이것도 하나의 루틴이라고 봐요.
어떤 때는 아예 일이 없어서 일주일 내내 놀 때도 있고, 또 어떤 때는 6일 동안 일을 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그걸 동일한 형태로 계속 가지고 가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어떤 일이든 약간씩 할 수 있거든요. 마감과 마감 사이에 하루는 쉬어준다든가 집 정리를 한다든가, 그렇게 하는 거예요. 시간을 쪼개고 체력을 끄집어내서 무리해가면서 하지 않는 게 저만의 행동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요.
여행은 어떤가요?
1년 단위로 봤을 때는 9~10개월 정도 열심히 일을 하고, 한두 달은 일을 안 해요. 여행을 갑니다. 글도 가끔 쓰고요. 그게 또 저의 루틴일 수도 있어요. 1년을 통틀어서 봤을 때 서울에서 10개월을 열심히 살고 두 달 동안 해외에서 자유롭게 놀고. 이것도 루틴이네요.
'스트레스를 받거나 무기력할 때 반드시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청소'라고 쓰셨어요.
네. 물론 청소하기 전에는 진짜 싫어요. 집이 엉망이잖아요. 그런데 청소도 시작하는 게 어렵지, 시작하고 나면 어떻게든 하는 거예요. 제가 청소를 하는 규칙이 하나 있는데, 집을 네모의 공간으로 생각하고 하나의 지점부터 시작해서 퍼져나가는 거예요. 예를 들면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점점 주방을 정리하기 시작하고, 그러다가 점점 범위를 넓혀서 침실로 갔다가 옷방으로 가고, 그런 식으로 집 전체를 조금씩 정돈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어느 샌가 집이 말끔해져 있는데, 말끔한 집의 상태를 너무 좋아하니까 그걸 생각하면서 청소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엄청나게 깨끗한 성격은 아니에요. 먼지나 머리카락이 굴러다니는 걸 못 보고 그런 성격은 전혀 아닌데요. 정리 정돈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모든 물건에는 제자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물건을 놓을 자리가 없으면 사지 않아요. 물건을 쓰자마자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다는 원칙이 있어요. 짐이 엉망이 돼 있을 때는 그게 흐트러져 있는 상태인 거니까, 뭔가 마음이 계속 불편해요. 정리를 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는 안정감이 드는데, 그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공간의 안정감이요.
잠들기 전, 준비해둔 잠옷을 입고 슬리퍼를 신으면서 '나를 챙겨주는' 이야기도 있어요.
쉴 때 제가 갖추고 있는 기본을 계속 유지하는 건데요. 슬리퍼는 고양이 '여백이'가 있었을 때 신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익숙해지니까 슬리퍼를 신지 않으면 되게 어색한 거예요. 그래서 친구 집에 하룻밤 자러 갈 때도 슬리퍼를 들고 가요.(웃음) 여행 갈 때도 들고 다니고. 평소에 입는 잠옷, 평소 신는 슬리퍼, 안대, 화장품 같은 걸 챙겨 가면 어디서든 집에서 자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걸 유지할 수 있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이 책을 읽고 나면 '무인양품 잠옷'이 궁금해지죠.(웃음)
(책을 보고) 무인양품 잠옷을 사셨다는 후기를 3개나 봤어요.(웃음) 무인양품 남자 잠옷 스몰 사이즈가 좋다는 팁을 드렸는데, 그걸 콕 집어서 사러 가셨더라고요. 예전에 무인양품에서 여성 파자마를 샀는데 차이나 칼라에 딱 맞는 사이즈였어요. 그런데 저는 헐렁하고 입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처음으로 남자 파자마 스몰 사이즈를 샀는데, 길이도 길고 품도 넉넉하고 너무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래서 종류별로 무인양품 잠옷을 있는데 아주 좋습니다. 미디엄 사이즈도 괜찮고요. 저는 여행갈 때도 챙겨갑니다.(웃음)
여백이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얼마 전에 '단이', '복이'를 새 식구로 맞으셨죠? 품종묘 새끼 고양이를 입양했다고 하셔서 '설마 펫샵에서...?' 하고 오해했습니다.
제가 펫샵에서 살 리가 없죠. 아이들을 일주일 동안 데리고 있으면서 SNS에 올리지 않았던 이유가, 되게 조심스러웠어요. 사실 지금도 조심스러워요. 어쨌든 제가 데리고 있는 애들이 품종묘니까 (SNS를 보고) '얘네 너무 예쁘다, 무슨 종이야?' 하면서 (펫샵에) 사러 가는 사람이 있을까 봐요. 내가 품종묘를 키우는 걸 전시하고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도 어떻게 해야 될지 잘 모르겠어요.
'단이'와 '복이'는 유기된 아이들이었죠.
지인이 (SNS에 아이들 소식을) 올린 걸 보자마자 데리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괜한 짓을 했나 싶을 만큼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딱 봐도 품종묘 아이들인데, 보호소에 간다는 거예요. (펫샵) 업자한테 걸리면 무조건 교배묘로 이용될 텐데, 일단 데려와서 내가 트위터에서 홍보를 하든 해서 입양을 보낼 수 있지 않겠나 싶었어요. 적어도 업자에게는 안 보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솔직히 저는 키울 생각이 없었어요.
'여백'이 보낸 이후로 동물을 데리고 올 생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입양 보낼 생각으로 일단 데려왔는데, 아이들이 발을 저는 거예요.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단이는 앞발이 부러져 있고 복이는 골반이 부러져 있는데, 방치된 지 2~3주가 지난 상태여서 단이는 이미 뼈가 붙어가는 중이었고, 복이는 더 큰 병원에 데려갔어요. 검사를 받았더니 뼈를 잘라내는 수술을 해야 된대요. 다행히 지금은 수술을 잘 끝냈어요. 단이는 뼈가 잘 붙어서 깁스도 풀었고요.
아이들 이름은 책 제목에서 따오신 거죠?
출간 날에 구조해서 데려왔거든요. 그래서 책 제목을 따서 지었죠. 그때는 키운다는 생각이 없었지만 일단은 불러줄 이름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품종묘 아이들이다 보니까, 계속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단이 복이를 통해서 펫샵이나 다른 데서 아이들을 유기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잘 키우면서 아이들에 대한 이런 이야기들을 꾸준히 언급하는 게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SNS에도 품종묘라서 좋은 점을 말하는 게 아니라, 품종묘라서 더 공부가 필요하고 관리해줘야 되는 부분이 많다는 걸 이야기하려고 해요. 실제로도 그렇고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쓴 것 같아요
일상에서 지키시는 원칙들 중에 '사람을 적게 만나고, 생각을 적게 할 것'이 있습니다.
제가 말을 많이 한 날은 집에 가서 말을 안 하는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일을 열심히 했으면 쉬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말을 많이 하거나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면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데, 어쨌든 저는 혼자 있는 시간 동안 뭔가 써야 되고 생각을 해야 되잖아요. 사람을 적게 만나면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지더라고요. 사람을 많이 만나고 외부 활동을 많이 하고 나면 스스로를 돌볼 에너지가 없어서 점점 저에게 소홀해지고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쓰고 배려하는 데에도 체력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나를 돌보는 일에 더 에너지와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잘 살려는 노력을 부끄러워하지 말 것'이라는 원칙도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아침마다 일어나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걸 매일 SNS에 올렸었어요. 그러면서 스스로 '이걸 혼자 해도 될 텐데, 나는 왜 굳이 SNS에 보여줄까?'를 생각했는데요. 내가 지금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절대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필요 없이 그냥 당당하게 보여주는 것도, 어찌 보면 글을 쓰는 것 이상으로 좋은 태도를 보여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일매일 나를 돌보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기록하고, 이런 시간을 계속 가지려는 것들에서 파생되는 것들이 다 그런 것 같아요. 청소, 글쓰기, 산책하기, SNS도 마찬가지고요. 이번 책에도 SNS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SNS를 지웁니다」라는 꼭지죠? 디지털 디톡스를 시도하셨던 이야기이고요.
인터넷에서 화제가 많이 됐던 글이 「프리하지 않는 프리랜서」랑 「SNS를 지웁니다」였어요. 그 글이 엄청나게 화제가 돼서 뉴스레터 구독자가 천 명이 늘었어요. 사전 연재 때부터 가장 반응이 좋았던 글이었고요. 그 글도 제가 앞서 이야기한 것과 동일한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현실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SNS에서 사람들을 계속 접함으로써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 자체가 점점 떨어져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구경만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느라 정작 나의 삶을 못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그래서 SNS를 완전히 끊은 거죠. 일주일 동안 끊고 살아봤는데, 처음에는 약간 불안했어요. 늘 하던 습관이 없어졌으니까. 2~3일 쯤 지나니까 되게 좋았다가, 막판에는 진짜 외로운 거예요. 세상과 완전 동떨어진 상황인 거예요. 이렇게까지 외롭나 싶을 정도로 고립감 같은 걸 느꼈거든요. 그러고 나서 SNS에 다시 들어갔는데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대로인 거예요. 그래서 많은 생각을 했죠. 내가 삶을 꾸려나가는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균형감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SNS에 너무 몰입해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아예 끊어내는 것도 나를 고립시키는 일이구나, 라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어요. 그래서 그 글을 썼어요.
균형의 중요성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를 하게 되네요.
루틴, 반복, 단정함, 이런 것들이 다 동일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책에서도 한쪽에 치우친 삶은 싫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어떤 것이든 치우치지 않게 하면서 나를 잘 꾸려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너무 우울해하지도 않고 너무 들떠 있지도 않고, 행복할 때도 있고 불행할 때도 있고, 일할 때도 있고 쉴 때도 있고, 돈 없을 때도 있고 있을 때도 있고. 그런 것들을 잘 맞춰나가는 게 필요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쓰지 않았나 싶네요.
독자들에게 어떤 반응이 돌아올 때 제일 기쁘세요?
뉴스레터를 계속하는 이유도 동일하다고 보는데요. 사실 돈을 벌기 위해서 뉴스레터를 하는 게 아니잖아요. 솔직히 책도 억만금을 벌 수 있는 일은 아니고요. 그런데 보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있잖아요. 예를 들면 후기 같은 걸 보면, 가끔 그런 분들이 있어요. 제 책을 보고 자기의 삶이 조금 바뀌었다고 말씀하시는. 저한테는 첫 책이 되게 의미 깊은 책인데, 20대 때 가장 방황하던 시기의 이야기잖아요. 그 책으로 저를 오랫동안 좋아해주신 독자 분들이 되게 많아요. 그 책을 읽고 유학을 가시는 분도 있고, 외국에 나가서 힘들 때마다 머리맡에 놔두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고, 제 책을 보고 산티아고 가신 분도 계시고, 산티아고를 갔던 게 자기 인생의 큰 터닝 포인트였다는 분도 계세요.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삶에도 뭔가 변화의 계기가 생겼다는 거잖아요.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에 제가 조금이라도 기여를 했거나 누군가의 삶에 요만큼이라도 제가 이로운 어떤 것을 줬다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건 되게 큰 거죠. 제가 의도해서 한 게 아닌데도 누군가의 삶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요. 그런 이야기를 보면 글을 잘 써야겠다, 그림을 잘 그려야겠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고요. 잘 살아야겠다, 나쁜 짓 하지 말고, 성실하게 열심히 건강하게 오래오래 잘 살아서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봉현 스무 살에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다 돌연 배낭 하나만 들고 2년간 세계 여행을 떠났다. 그때 쓰고 그린 이야기를 시작으로 프리랜서가 되어 지금까지 혼자서 일하고 있다. 일주일의 절반은 오후부터 새벽까지 작업방 책상에 앉아 다양한 분야에서 의뢰받은 그림을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가까운 카페에서 글을 쓰고 뉴스레터 '봉현읽기'를 발행한다. 집 안을 정리하고 소파에서 뒹굴뒹굴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배낭을 메고 1년에 한두 달씩 낯선 곳을 꼭 여행해야 하는 사람이다. 자유와 속박 사이, 일과 휴식 사이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프리랜서의 삶을 사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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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