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주 화요일, 이승훈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가 우리가 꼭 알아둬야 할 의학 상식을 소개합니다. |
'보약(補藥)', 즉 '허약한 신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약'은 의학에서는 없는 개념이다. 어린 시절 필자는 몇 년마다 한 번씩 어머니가 사온 보약 때문에 한참 씨름을 하곤 했다. 때론 급격하게 살이 찌는 부작용을 경험하면서 오랜 고민 끝에 다시는 보약을 먹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고, 그 결심은 지금까지 잘 지키고 있는 상태다. 필자는 과학적 의학의 신봉자로 이런 행동이 가능했지만, 일반인들이 동일한 판단을 내리기는 참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가 과거부터 한약, 영양제 등 다양한 건강 기능 식품(건기식)을 서로 챙겨주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보니 이를 과학적으로만 판단하는 것이 정서적으로 매몰차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의 유행으로 인한 가짜 건강 정보의 범람은 과거 '안아키 사태'와 같은 큰 사회적 물의를 다시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항상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요즘엔 줄어들었지만 2020년까지는 크릴오일이 열풍이었다. 당시 필자는 외래 방문 환자들이 마치 서로 약속한 것처럼 크릴오일을 문의하는 상황에 어안이 벙벙했다. 홈쇼핑을 보지 않는 필자는 나중에 이게 모두 홈쇼핑, 소셜 미디어 때문에 일반인들이 휘둘린 상황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더니 작년부터는 오메가3 열풍이다. 원래부터 영양학적으로 잘 알려진 불포화 지방산인데 지금 와서 이 난리들인지, 업자들의 상술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크릴오일이나 오메가3나 주요 영양 성분은 '오메가3 지방산(omega-3 fatty acid)'으로 동일하다. 이는 화학 구조에서 말단 메틸기로부터 3번째 탄소 원자에 이중 결합이 존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다불포화 지방산으로, 자연계에 아주 널리 분포하는 지방산이다. 필수 지방산인 α-리놀렌산은 포유류에서 합성할 수 없는 오메가3 지방산이기 때문에, 반드시 음식을 통해 섭취되어야만 한다. 여기까지 들으면 오메가3가 없으면, 마치 의학적으로 큰 일이 날 것 같은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런데, 이미 언급했지만 오메가3는 평상시 먹는 음식에 대단히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건강한 일반인이 영양제로 보충해가면서 먹을 필요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러 연구들이 오메가3가 심혈관계 질환 등에 효과가 있는지 보기 위해서 진행된 바 있다. 2018년까지 약 10개 정도의 오메가3 연구를 종합한 메타 분석에 의하면, 오메가3의 섭취는 심혈관계 질환 예방에 추가적인 도움이 '전혀' 되지 않았다. 그런데, 2018년 발표된 REDUCE-IT 연구는 에틸 에이코사펜타에노산(ethyl eicosapentaenoic acid: E-EPA) 4g과 스타틴을 복용한 군에서 대조군에 비해 심혈관계 질환의 발생 및 사망률이 감소된 결과를 발표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용한 E-EPA는 천연 오메가3 지방산이 아니고, '아마린(Amarin)'이라는 제약 회사가 오메가3 지방산 중 하나인 EPA를 에틸화하여 가공한 약물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오메가3가 모두 좋다는 연구 결과가 아니라는 얘기다. 게다가 이 연구는 심혈관계 고위험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연구라, 미국에서도 이 약물을 해당 환자들에게만 허가한 상태다. 게다가 이 약물은 아직 국내에는 도입되지도 않아서, 국내에는 전혀 '없다'. 정작 주인은 국내에 없는데 업자들이 만든 온갖 오메가3 잡것들이 날뛰는 형국이다. 의사 출신 인사들이 영양제 회사 임원이나 건강 정보 유튜브 채널 운영자들로 활동하면서, 오히려 가짜 정보 유포를 더 부추기고 있다. 그들 역시 돈 벌기 위해 그런 활동을 하는 것이니, 기존 업자들보다 윤리적으로는 더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사는 환자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 존재하는 고귀한 직업이다.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정보를 호도하는 부류가 아니란 말이다.
약 두 달 전 필자도 드디어 코로나19에 걸렸다. 아마도 지금 유행 중인 오미크론 BA.5 변이인 듯하다. 내 저서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20여 년 전 감기와 독감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게 된 이후 필자는 지금까지 한 번도 발열이 발생한 적이 없었는데, 오래간만에 만난 지인과의 저녁 식사 한 번으로 그 자신감은 쉽게 허물어져 버렸다. 의사인 필자가 아무리 지식으로 무장을 해도, 필자 역시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류의 일원이었다. 필자는 증상 발생 후 약 3-4일간 발열과 인후통(咽喉痛)에 힘들었는데 코로나19에 벗어났다는 느낌이 든 건 약 20일 정도가 걸렸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지속적인 잔기침이 멈추지 않았고, 코데인(codeine)이 함유된 진해제도 증상을 완전히 억제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던 차에, 내 증상을 걱정한 아내가 '도라지배즙'이라는 건기식을 구입해서 주길래, 별 기대 없이 먹었다가 잔기침이 다음 날 완전히 사라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건기식에 부정적인 필자도 완전히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뚜렷한 약효였고, 애초에 약효에 대한 기대도 없었기에 플라시보 효과는 아니었던 게 확실하다. 필자 인생 처음 건기식의 약효를 경험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런 경험으로 모든 건기식이 도움이 된다는 성급한 일반화는 곤란하다. 이미 많은 부정적 연구 결과가 있는 비타민과 오메가3가 도라지배즙 때문에 특효약으로 바뀔 수는 없다는 얘기다. 좋은 성분이 천연물에 있다면 이런 성분을 추출하고 정제해서 좋은 약물로 만드는 것도 현대 과학의 힘이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약물들 중에도 천연물에서 힌트를 얻고 정제되어 만들어진 것들이 대단히 많다.
다시 말하지만, 영양제와 건기식을 일반인들은 '전혀' 먹을 필요가 없다. 우리가 평상시 먹는 음식물에 과다할 정도로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나, 영양이 결핍된 환자나 노인들은 일정 기간 이를 보충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외에는 밥 잘 먹고 건강 생활하면 된다. 영양제가 여러분의 병을 예방하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 근무하는 의사들이 왜 대부분 영양제에 부정적일까? 도움된다는 연구 결과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런 데이터가 있으면 의사가 전문 의약품으로 보험 처방하지, 왜 민간에 놔둘까? 잠깐 생각해 보면 당연한 사실을, 여러분들이 단지 소셜 미디어 인플루언서들의 농간에 휘둘리는 것은 아닌지,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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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병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저자. ㈜세닉스바이오테크 대표이사, (사)한국뇌졸중의학연구원 원장 및 뇌혈관대사이상질환학회 회장을 겸직하고 있다. 의학자로서 뇌졸중의 기초와 임상에 관한 200여 편의 국외 논문을 발표했으며, 대한신경과학회 향설학술상, 서울대학교 심호섭의학상, 유한의학상 대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관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및 보건복지부 장관표창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