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이 돌아왔다. 2개월 만의 반가운 재회다. 휴식을 마친 <유퀴즈>가 첫 번째로 선보인 것은 '한 우물 특집'이었다. 열한 살의 나이에 줄넘기 주니어 국가 대표가 된 하준우 선수, 9년째 MBC 라디오의 <싱글벙글쇼>를 만들고 있는 24년차 방송 작가 김신욱, 10년의 준비 끝에 영화 <명량>, <한산>, <노량>에 이순신의 이야기를 담아낸 김한민 감독, 그리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이자 27년 연기 경력을 가진 박은빈 배우가 출연했다.
이들이 한 우물을 파게 된 사연은 모두 달랐다. 하준우 선수에게는 순수한 즐거움과 몰입의 기쁨이, 김한민 감독에게는 의미를 찾고 좇으려는 의지가 동력이 됐다. 김신욱 작가는 라디오 작가를 꿈꾸지 않았으나 20년 넘게 한 길을 걷고 있고, 박은빈 배우는 '언제든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자기 안의 소리에 집중했던 시간들이 오히려 지금의 자신을 있게 했다.
어떤 우물이든, 파기 전에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그 우물을 왜 파려고 하는가. 그때의 대답은 크게 중요치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치 않을 수도 있지만 중간에 달라지는 일도 허다하기 때문에. 그리고 김신욱 작가처럼 거창한 포부 없이 시작했어도 한 눈 팔지 않는 사람이 있고, 박은빈 배우처럼 다른 길을 열어뒀지만 쭉 한 길을 걷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건 '왜 그 우물을 계속 파는가?'하는 것이다.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파던 우물을 계속 팔 수 있다.
일을 하다 보면 누구에게나 그 시기가 찾아온다. 나는 왜 이 일을 계속 하는가, 에 답해야 하는 때. 나의 경우에는 3년차 즈음이 그랬다. 딱히 진로 변경을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그냥 멈춰선 것에 가까웠다. 딴 생각에 잠겨서 길을 걷다가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처럼. 일의 슬픔과 괴로움은 가시지 않는데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면, 그것이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라면,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나도 모르는 내 선택의 이유를 찾아야 했다. 덕분에 알게 됐다. 나는 이런 것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이 일을 지속하고 있었구나. 그제야 우물 파기에 다시 집중할 수 있었다.
만약 스스로 납득할 만한 답을 찾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딴 우물을 찾아 떠났을 게 틀림없다. 그게 아니라면, 파던 우물에 남아 울면서 계속 삽질을 했을 텐데,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다. 과거의 박은빈 배우가 그랬던 것처럼, 그때의 나도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를 잃고 싶지 않다. 돌이켜 보면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력 질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풀에 지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만둘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는 생각으로 버틸 수 있었다. 딴 우물을 염두에 두었기에 한 우물을 팔 수 있었던 역설이랄까.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끝까지 이 우물만 파겠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했다면 결과도 지금보다 더 좋았을 거라고. 나의 대답은 이렇다. 하얗게 불태워봤자 남는 것은 재인데, 재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이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렇게 적당히 한 우물만 파면서 얻은 건 무엇인가. 답을 찾다 한 마디를 떠올린다. "하면 는다."는 김하나 작가의 말. 그 말을 붙잡고 싶고 그 말에 기대고 싶다. 뭐라도 나아졌겠지, 하고 자신을 달래지 않으면 두려움과 공허함에 잡아먹힐 것 같다. 파고 내려간 우물이 깊어질수록 더 그렇다. 그래서 오늘도 꿋꿋하게 되뇐다. 계속하는 것도 능력이다. 느리게 파도 우물은 우물이다. 물론 이런 말도 읊조린다. 괜찮아, 딴 우물도 있어!
시청 포인트
#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휴방이 아쉬웠다면
#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면
# 다시 찾아온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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