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사전> 시리즈로 어린이의 다채로운 일상과 감정을 섬세한 언어로 그려 많은 사랑을 받은 시인 박성우, 『모모모모모』, 『걱정머리』 등의 그림책으로 독보적인 개성을 선보이며 주목을 모은 작가 밤코가 만났다. 최고의 두 작가가 함께 만든 『엄마 어디 있지?』는 아이가 발달하는 동안 자연스레 나타나는 분리 불안의 모습을 실감 나게 담으면서, 엄마가 안 보이면 불안해하는 아이 마음을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상상으로 어루만지는 이야기다.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응원하는 동시에 가족의 든든한 사랑을 선물한다.
『엄마 어디 있지?』의 캐릭터와 배경 곳곳에서 작가님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만나 볼 수 있었는데요.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나 그리면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아빠 토끼가 등장하는 장면들을 참 좋아합니다. 침대 끝으로 밀려나 몸을 한껏 웅크리고 자는 장면, 서툴지만 최선을 다해 요리하는 장면, 빨래를 개고 아기 거미들을 돌보는 장면인데요.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아빠가 참 고단했겠다 싶네요. 아빠 토끼는 글에는 없었지만 우리집 풍경을 떠올리며 새로 구상한 캐릭터예요. 세 가족이 함께 잘 때면 아이는 엄마와 아빠 사이를 파고들었고, 저는 돌돌 말은 이불을 몇 개씩이나 안고 자는 습관이 있어서 남편이 침대 구석으로 밀려나고는 했어요. 그런 날 남편은 평소보다 조금 더 부스스한 모습을 하고는 짠한 목소리로 "가장자리에서 자서 가장이구나"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남편이 귀엽기도 미안하기도 한 마음이 불쑥 떠올라 침대 장면을 그렸어요. 특히, 아빠 토끼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모두 다정하고 상냥한 '아빠'를 생각하며 그렸는데요. 비좁은 가장자리에 있을지라도 언제나 따뜻하게 웃어주는 아빠라는 존재 덕분에 가족이 얼마나 큰 평온함을 느끼는지 그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어요. 마음과는 다르게 이렇게 짠내 폴폴 나는 아빠를 그리고 말았지만요.
작가의 말에 '엄마를 지켜 주는 용감하고 씩씩한 모든 아이를 응원합니다'라고 쓰셨어요. 특히, 어린 독자분들께서 『엄마 어디 있지?』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엄마 어디 있지?』를 작업할 동안 집 화장실 문이 고장 나는 바람에 꼼짝없이 갇혔던 적이 있어요. 마치 화장실 괴물에게 잡혀간 것처럼 옴짝달싹 못 하는 저를 구해준 건 바로 열 살 된 제 아이예요. 작은 고사리손으로 용감하고 씩씩하게 엄마를 구해준 거죠. 어린이는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힘과 용기를 가지고 있어요. 아기 토끼의 엉뚱한 상상이 현실이 될 수도 있는 거죠. 제 아이가 가진 여러 별명 중 하나가 바로 '용식'인데 '용'감하고 '씩'씩하다는 의미예요. 어떤 어려움이 와도 용감하고 씩씩하게 헤쳐 나가는 '용식' 용사의 마음으로 읽으면 좋겠어요.
아기 토끼의 상상 속에서는 엄마 토끼를 잡아간 악당으로 오해받은 왕거미가 사실은 아기 거미들을 돌보기에 여념 없는 엄마라는 반전, 한밤중에도 아기 거미들을 돌보는 아빠 토끼의 모습은 여운이 남고 뭉클한데요. 캐릭터를 묘사할 때 가장 중요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작은 역할일지라도 각자의 삶에서는 주인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느 캐릭터 하나 빠짐없이 애정이 듬뿍 들어가게 돼요. 그들이 가진 기쁨도 슬픔도 모두 보여 주고 싶은 욕심이 생기죠. 다만, 그림책의 짧은 호흡 안에서 캐릭터의 성격은 전체적인 줄거리를 헤치지 않아야 하고, 캐릭터가 가진 서사와 주제가 잘 어우러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캐릭터를 만들고 있어요. 깨알 같은 재미가 담긴 이야기 속의 이야기들도 잘 살펴봐 주세요.
만화 컷을 활용해 주신 게 재미있는데, 새로운 형식으로 작업하시는 데에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저는 만화책과 그래픽 노블을 좋아해요. 인물의 감정이 변하는 짧은 순간의 표정까지 볼 수 있어서 인물에게 깊게 동화될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에요. 『엄마 어디 있지?』는 좋아하는 장르의 형식으로 작업할 수 있어서 어려움보다는 즐거움이 컸어요. 아기 토끼와 가족들의 생생하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다양하게 담을 수 있어서 좋았고, 주변 인물들의 작은 이야기도 함께 보여 줄 수 있는 컷들이 있어서 행복했어요. 작업하는 동안 저도 이 세계에서 살다 나온 것처럼 유쾌하고 통쾌하면서 따뜻했습니다. 앞으로도 만화 형식으로 더 작업해 보고 싶어요.
아이가 태어나면서 일상에 큰 변화가 생겼을 것 같은데, 그림책 작가로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아이가 다섯 살일 때 첫 책이 나오면서 그림책 작가의 길을 가게 되었어요. 그래서 울음소리와 웃음소리가 있는 곳에서 작업하는 일이 너무나 익숙해요. 부엌에 설거지는 쌓여가고, 아이는 곁에서 "엄마, 배고파", "엄마, 놀자", "엄마, 뭐해" 종알종알 이야기하는 풍경이 저에게는 일상이죠. 그런 일상에서 틈틈이 시간을 쪼개 일하고 육아하고 살림을 해요. 고단하지만 이렇게 애쓰며 해내는 제가 자랑스러워요.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이 마음이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작가님의 작업실 풍경이 궁금해요. 혹은 작가님만의 특별한 작업 루틴이 있나요?
일상에서 제 루틴은 책상에 앉기 전 커피를 내려 마시는 일이에요. 저는 머릿속에 수많은 잡동사니가 어지럽게 널브러진 것 같은 느낌을 자주 받는데요. 도대체 이 많은 짐들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하고 생각하다 보면 짐만 더 늘어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머릿속이 어지러운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고는 해요. 그런 제가 하루 중 가장 차분해질 때는 바로 커피를 내리는 시간이에요. 일명 '커피 명상'이라고 하죠. 커피를 내리는 동안만큼은 고요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너저분한 대로 잘살아보자고 다짐해요. 그 짧은 고요함이 오늘 하루 작업의 시작을 알리는 방아쇠입니다.
작가님께서 좋아하는 그림책은 어떤 책인지 궁금합니다. 인상적으로 본 그림책이나 추천하고 싶은 그림책이 있다면요?
저에게는 가장 어려운 질문이에요.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좋은 그림책이 많거든요. 그런데도 한 권만 이야기하자면 존 버닝햄의 『지각대장 존』인데요.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주인공 존이 학교에 가다가 재미있는 상상에 빠져 자꾸 지각하는 이야기예요. 존이 학교 가는 길에는 악어가 튀어나와 존의 가방을 물고 놓아주지 않거나 사자가 튀어나와 존의 바지를 물어뜯기도 해요. 존이 지각할 수밖에 없는 재미있고 신나는 일들이 벌어지죠. 하지만 선생님은 존이 지각하는 이유를 듣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며 혼내기 일쑤예요. 존은 더 이상 상상하지 않는 어린이가 되고 맙니다.
『엄마 어디 있지?』의 아기 토끼도 상상과 현실을 끊임없이 넘나들며 자기만의 세계를 펼쳐 나가죠. 어린이가 바라보는 세상 속에서는 누구도 볼 수 없는 새로운 존재가 탄생하고 이야기가 만들어져요. 어린이의 상상은 마치 끝없이 펼쳐지는 지도 같아요. 이 지도가 얼마나 멀리 펼쳐질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어요. 자기 자신조차도요. 아이의 무한한 상상을 마땅히 믿어줄 수 있는 어른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죠. 어른이 아이를 믿어 주기만 한다면 더 먼 곳까지 멋지게 커다란 지도를 그릴 테니까요.
*밤코 (그림 작가) 대학에서 섬유미술을 공부했다. 낡고 버려진 물건을 좋아해서 틈나는 대로 수집해 작품으로 만들며 지낸다. 지금은 묻어 두었던 생각을 모아 그림책 만드는 일에 빠져있다. 여기저기 숨어 있는 생각 조각을 찾아내어 그림책을 만든다. 그동안 쓰고 그린 책으로는 2021 볼로냐 라가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 『모모모모모』, 『근데 그 얘기 들었어?』, 『사랑은 123』이 있고, 그린 책으로는 『무지개 파라솔』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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