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직장인처럼 일상이 선사하는 피로를 먹으며 풀던 저자. 담도암에 걸려 간과 쓸개를 빼앗기고 나서야 무언가 단단히 얹혔다는 것을 깨닫는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저녁이 되면 산책을 하는 암환자의 일상. 그 기록을 모아보니 소화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 저자는 항암 중 어떤 편집인의 유방암 투병기를 읽고 감상을 블로그에 썼다. 이를 계기로 편집인은 저자의 블로그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블로그의 토막 글들을 묶어 책으로 내자는 이야기가 오가던 무렵, 저자는 평소 업무에 도움을 아끼지 않던 한 디자이너의 유방암 투병 소식을 들었다. 셋은 모여 앉아 식사를 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눈물이 웃음이 되고 응어리가 울타리로 변했다. 얼마 후, 디자이너는 저자가 쓴 글 위에 표지를 얹어주었고, 편집인이 이를 받아 발간해 주었다. 『마음이 얹힌 거야』는 그렇게 암 경험자들의 연대로 만들어졌다.
블로그에 올리신 글을 보고 출판사의 출간 제의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17년간 공무원으로 일하고 계신데, 작가님께 글쓰기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요즘 유행하는 부캐 같은 건가요?
사실 17년간의 공무원 생활 동안 계속 보고서 류의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그 글들은 제 자신을 위하고 드러내는 글이 아니었지요. 아프고 나니 '일만하다 덜컥 죽음을 맞이한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긴 글은 숱하게 많지만, 그게 '나'와는 연결되질 않았어요. 저를 변호할 글은 한토막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대로 갈 수는 없다는 오기가 들었습니다. 아내, 그리고 특히 아들에게 사진으로만 남고 싶지는 않았어요. 적어도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기록으로 남겨보고 싶어졌지요. 그렇게 시작한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가 약이 되었어요. 나를 납득시키기도 하고, 나를 보듬어주기도 하고. 나를 위해주는 가장 중요한 의식이 되었지요. 그런 의미에서 아프고 나서 시작한 블로그 글쓰기는 제 부캐라기보다는 본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밥벌이도 못지않게 중요하지만, 그것이 제 존재에 맞닿아 있지는 않았으니까요.
'마음이 얹힌거야'라는 제목만 본다면 여성 작가의 에세이로 보여지는데 굵직한 남자 작가세요. 어떻게 이런 제목을 붙이게 되었나요?
실제 담도암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바로 얹힌 증세였어요. 무엇을 먹어도 소화가 잘 되질 않고 한참 위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 지속되어 병원을 찾아가게 되었거든요. 얹힌다는 느낌에서 이 모든 여정이 출발한 것이기에 제목으로까지 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엔 먹은 게 얹혔지만, 치료 과정에서는 결국 얹힌 게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 마음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삶은 치열하고 혹독하기에 부정적인 감정 자체를 피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대한민국 중년 남성들은 그 감정을 가까운 이들에게 이야기하거나 배출하는 연습이 되어 있질 않다고 느꼈어요. 눈물을 참듯 그저 삼키기만을 강요당했지요. 그래서 얹힌 분들이 많지 않을까요.
'담도암이 가르쳐준 불행의 소화법'이라고 하셨는데 불행을 어떻게 소화하라고 하나요?
표지를 보시면 모래시계 위에 얹힌 마음이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모래알처럼 흩어져 내려가는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표지 디자이너께서 직접 내셨어요. 저도 생각 못했던 측면인데, 정말 마음에 드는 설명입니다. 먹은 음식이 얹혔다면 소화제를 먹거나, 극단적인 경우 저처럼 수술을 해서 내려가게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예기치 않은 불행이 찾아와 얹혀버린 마음에는 가장 필요한 게 시간이더라는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제목은 불행의 소화법이지만, 사실 어떤 종류의 불행에도 통하는 만병 통치약이나 비법을 팔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은 담도암뿐이지, 다른 것으로 확장될 수 없습니다. 다른 병, 사고, 소중한 사람과의 예기치 않은 이별 등 각각의 불행은 각자의 지문처럼 고유해서, 내가 어떤 불행을 경험했다고 남의 고통과 불행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 말은 타인의 불행을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도 되지만, 동시에 불행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불가피하게 고독한 측면이 있다는 의미도 담고 있어요. 담도암은 결국 내게 닥친 불행은 내가 스스로 이해하고 납득하여 받아들여야 한다고 가르쳐 준 셈입니다.
치료받고 글쓰는 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항암제를 잘 견디는 분도 계시고, 지독한 부작용으로 힘들어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대체로 예전에 비해 힘도 빠지고 무기력해집니다. 특히, 1세대 세포 독성 항암제로 치료하게 된다면 더 그렇죠. 물론 다시 한번 강조드리지만, 항암의 과정에 경험하는 것도 암종마다,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저의 경우엔 치료 초기엔 아무것도 하기 힘든 무기력감에 눈으로 보는 행위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다 기운을 좀 차려 걷기 시작했고, 그러다 더 기운이 붙으면 사람들을 만나고. 이 책에 담긴 글들도 그런 자연스런 치료의 과정에 따라 할 수 있게 된 행위의 순서대로 분류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에는 필라테스 같은 운동을 하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냅니다.
작가님께서는 40대시고 40대면 이 사회와 가정에서 중추를 담당하면서 가장 열심히 사는 세대입니다. 또래 세대를 대하는 마음이 어떠신지요.
몸도, 정신도, 주위를 둘러싼 세상도 격변하는 세대라 측은할 따름입니다. 정신은 아직 자신을 젊은이로 생각하고 있지만, 예전처럼 일하기엔 체력이 달리죠. 그리고 예전 관행대로 살기엔 너무 낀 세대입니다. 고유의 어떤 문화를 창달하지는 못했으면서 우리 위의 소위 꼰대들에게 배웠던 삶의 방식을 후배들에게는 절대로 전달해서는 안 되는 사명만 가졌죠. 뭔가 억울하지만, 더 어려운 고개를 오르고 있는 어린 세대들을 보면, 내게도 위로가 필요하다는 말은 쉽게 내뱉기 어렵습니다. 실제로도 같은 세대끼리 대화하는 자리에서만 무언가 얹힌 것을 꺼내놓고 토로하곤 합니다.
치병기라고 생각했는데, 책과 영화 등을 보고 소감을 적은 글이 많습니다. 책과 영화가 치병에 도움이 되었나요?
불행의 고유성을 깨닫게 된 것, 결국 내가 일어나 걷고 만나며 풀어야 하는 숙제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이 책과 영화였습니다. 동시에 책과 영화는 다른 이들의 삶과 불행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면서 저를 그 자리에 세우는 매개였습니다. 타인의 불행을 바라보며, 나에게만 닥친 재수없는 일을 주위의 모든 이들이 하나쯤 품고 사는 아픔으로 상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책과 영화가 항암제만큼 중요한 치료제라고 생각해 밥벌이와 운동에 쓰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에세이를 계속 쓰실 생각이신지요?
우리 소설이나 영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우선 너무 재미있고요. 같은 현실에 발딛고 있기에 저를 소설이나 영화 어딘가에 세워두고 함께 따라가기에도 용이하지요. 제가 모르던, 아니 외면하던 현실의 그늘을 비출 때 르포같은 언론 보도도 좋지만, 문학이 가진 힘이 세다고 느낍니다. 평론가처럼 업으로 하긴 어렵겠지만, 꾸준히 제가 어떻게 작품에 공명했는지 기록하는 일반 독자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읽고 나서 쓰지 않으면 읽으며 스쳤던 생각들이 흘러가거나 흩어지기 쉽더군요. 그것들이 묶을 만한 것이 될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제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의미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황영준 자기 관리를 유난히도 못하던 직장인 남성이다. 한 직장에서 15년을 보내고 이제 반쯤 왔나 싶었던 2021년, 나이 마흔에 간내담도암을 진단받았다. 수술과 항암 치료를 마치고 현재는 3개월마다 정기 검진을 받으며, 제발 암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블로그에 일기를 쓰고 있다. 따로 자격증은 없지만, 기회가 닿는 대로 건강을 부르짖는 암 예방 전도사라고 자처한다. 사랑하는 아내,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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