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작가의 글을 먼저 만난 독자들은 침이 고일 정도로 맛있는 문장과 희로애락이 담긴 솔직한 글을 통해 위로를 받았고 생기를 얻었다고 한다. 이에 강효진 작가는 화답한다. 보잘것없던 내 삶에 갓 지은 밥처럼 윤기가 흐르게 된 것은 오롯이 나를 대접하는 밥 한술에서 시작된 것 같다며, 그러니 당신도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 스스로를 잘 대접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오늘도 나를 대접합니다』를 통해 맛있고 건강한 삶이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는 바람도 함께 전한다.
책 제목이 재미있는데요. '오늘도 나를 대접합니다'는 어떤 의미를 담은 제목인가요?
가까운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면 이렇게들 인사하기도 하죠. "식사는 하셨어요?", "밥은 먹었어?" 같은 말들이요. 상대방이 건강히 지내기를, 아무리 바빠도 밥은 챙겨 먹으며 지내기를 바라는 포근한 마음이 담긴 말이라서 좋아하는 말이기도 해요. 그렇게 누군가에게 따뜻한 마음을 건네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끼니도 챙기지 않고 거르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인데 말이에요.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 이웃을 챙기고 대접하기 전에 나를 먼저 대접하며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정성껏 대접해야 할 존재는 바로 '자신'이니까요. 나를 잘 대접하고 나면 내 주변 사람들을 더 아껴줄 수 있는 여유도 생겨난다는 걸 꼭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특별히 『오늘도 나를 대접합니다』를 권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요?
세상을 미워하다가 결국 스스로가 미워진 사람, 자책하는 게 습관이 된 사람, 사람들과 잘 지내려고 할수록 자꾸 어긋나서 지친 사람에게 권하고 싶어요. 이 모든 모습은 사실 저의 모습이었어요.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조금은 알기에, 제 책을 읽으면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으실 수 있을지도 몰라요. 나만의 작은 행복을 찾고 싶은 사람, 하루하루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 나 자신과 잘 지내고 그래서 주변의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싶은 사람, 나만의 세상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어요. 제가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이 책 속에 담겨 있거든요.
스스로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책을 쓴 저부터도 스스로에게 가장 소홀했던 시간들이 있었어요. 라면이 너무 좋아서 밥하기 싫을 때는 각종 라면을 돌려가며 끓여 먹고,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하고요. 그런 생활이 간편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한 끼를 해치우고 나면, 그다음 끼니가 금세 돌아와 저를 귀찮게 했어요. 당장의 귀찮음을 해결하고 나면 그다음 귀찮음이 여지없이 찾아오는 거지요.
그러던 와중에 건강에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겼어요. 염증 질환이나 면역 질환 같은 것들이었는데, 이런 증상들은 딱히 원인을 알 수 없고, 뾰족한 치료법도 없잖아요. 한 가지 증상이 나아진다 싶으면 다른 증상이 나타나고, 조금 잠잠해진다 싶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실은 그때 제 생활도 하루하루 돌려 막기 하듯 가장 큰 문제들만 때우며 살아가고 있었거든요. 제 생활 자체가 거대하게 엉켜버린 하나의 문제 덩어리처럼 느껴졌어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어 막막했죠.
거의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어서는, 당장 먹는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먹는 거라도 알뜰히 챙겨 먹자 싶었죠. 제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점심만큼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를 직접 만들어 먹기 시작했어요. 함께 먹는 사람의 취향까지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맛있는 걸 누구와도 나누지 않고 혼자 다 먹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제가 식탐이 보통이 아니거든요. 하루, 이틀, 그렇게 날마다 저의 식탐을 채워주다 보니 그것이 저의 습관이자 일상이 되었어요. 이제는 '뭘 만들어 먹으면 맛있을까?' 혼자 궁리하는 게 큰 재미가 되었답니다.
나만을 위해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으면서 달라진 점이 있으신가요?
외식을 자주 하고 배달 음식을 좋아할 땐 잘 몰랐어요. 음식을 만드는 일도 하나의 명상이라는 걸요. 알록달록한 채소들을 손질하고, 다듬고, 잘 썰고, 익히고, 간을 보고, 그릇에 담는 모든 과정들이 머리와 마음을 비우는 효과가 있더군요.
친구를 만나고 돌아와 아주 속상했던 날이 있었어요. 정말 좋아하는 친구였는데, 그날 친구에게 차마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이 복잡하고 속이 상해버린 거예요. 그다음 날 산책을 하고 돌아와서 이른 점심을 먹으려고 파스타 면부터 삶기 시작했어요. 빨간 토마토와 보라색 가지를 천천히 썰고 올리브 오일에 채소들과 면을 볶다 보니 어느새 머릿속은 파스타 먹을 생각만으로 꽉 차 있더라고요. 좋아하는 치즈랑 후추를 잔뜩 올려서 파스타를 먹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속상했던 마음이 사라진 거예요. 그리곤 친구를 조금 더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보게 되더라고요. 저는 마음이 넓은 사람도 아닌데 말이지요.
저는 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려운 사람이었는데, 저 자신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모든 관계들이 서서히 달라진 것 같아요. 관계가 어려운 건 나만이 아닐 거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고요. 누군가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는 저 자신을 인정하게 되었어요. 이를테면 저의 대책 없는 식탐 같은 것 말이죠. 혼자 밥을 먹을 땐 제 식탐을 가릴 필요가 없으니 얼마나 좋던지요. 세상의 잣대에 맞춰야 한다는 마음도 느슨해지니, 세상에 너그러워지는 마음이 생겨났다고나 할까요.
아무리 배가 고파도 혼자서는 음식을 만들어 먹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단 음식을 만드는 일 자체가 번거로운 일이니까요. 나만을 위해 날마다 음식을 만드는 일상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이 있으신가요?
단연코 제 식탐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저는 자주 배고프고, 늘 먹을 궁리를 하는 편이거든요. 소설을 읽거나 드라마를 보다가도 먹는 장면이 나오면 넋이 나가요. 그러니 먹는 걸 잘 챙길 수밖에 없었어요. 또, 건강을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채소와 과일을 잘 먹어야 했거든요.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일주일치 식재료를 한꺼번에 사다가 냉장고나 뒤 베란다에 쟁여놓고, 일주일 동안 그 모든 것들을 다 먹는 저만의 목표를 세웠어요. 그걸 다 먹고서 다시 재래시장과 생협으로 장을 보러 갈 때면 기분이 참 좋더라고요. 재래시장에서 장을 볼 때마다 저렴한 채소와 과일 가격에 신이 나서 더 넉넉히 구입하다 보니 쇼핑 욕구도 좀 해소가 되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저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음식들, 그러면서도 만들기 쉬운 음식들을 만들어 먹었어요. 제가 면 요리를 정말 좋아하는데, 아침 저녁으로는 밥과 된장국에 나물 반찬을 먹더라도 점심만큼은 밀가루 음식을 마음껏 즐기기로 한 거죠. 그 대신 싱싱한 제철 재료들을 활용해서 만들어 먹었어요.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잔치국수, 비빔국수, 동치미국수, 메밀국수, 해물칼국수... 여튼 좋아하는 면 요리라면 무엇이든 만들어 봤어요. 그렇게 좋아하는 걸 실컷 먹을 수 있으니 제 식탐이 저를 가만 놔둘 리가 없었지요.
『오늘도 나를 대접합니다』을 읽어보면 각 에피소드마다 레시피가 들어있던데, 레시피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요리 솜씨가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오직 저 자신만을 먹일 수 있는 정도의 솜씨죠. 사실 제가 만든 음식에 '요리'라는 말을 붙이는 데에는 어쩐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요. 제가 만들 수 있는 음식이라면 누구라도 만들 수 있는 쉬운 음식이거든요. 그래서 누군가가 제게 레시피를 알려 달라고 하면 저는 겁부터 나요. 솔직히 책에 레시피를 담아 보자는 편집자님 제안을 처음 들었을 때는 너무 떨렸답니다.
저는 정확한 계량 없이 그때그때 간을 보며 음식을 만들고, 그래서 제가 만든 음식들은 같은 메뉴도 만들 때마다 맛이 달라요. 웃픈 이야기죠?(웃음) 그래서 책 속 레시피에 정확한 계량은 없어요. 아마 제가 좋아하는 입맛대로 계량을 적는다면 어떤 분에게는 너무 짜거나 어떤 분에게는 너무 싱거울 거예요. 레시피를 참고하시되, 나만의 취향에 귀 기울인다는 마음으로 적절히 각자의 입맛에 맞추어 만드시면 좋겠어요.
레시피에 적힌 재료들에도 너무 제한을 두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본인이 선호하는 재료가 있다면 그걸 선택해 보거나, 집에 있는 재료만을 활용해 만들어 보시는 것도 좋아요. 파스타에 넣을 머윗잎이 없다면 깻잎을 넣고, 김밥에 넣을 미나리가 없다면 시금치나 오이도 좋지요. 쌀국수가 떨어졌던 날 제가 당면을 넣어 똠얌꿍을 만들었던 것처럼요. 그것도 나만의 방식을 찾는 큰 재미인 것 같아요. 맛있는 걸 먹는데 이왕이면 재미있고 부담 없이 먹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무엇보다도 제 레시피를 통해 읽는 분들 각자가 자기만의 레시피를 만들어 가셨으면 좋겠어요. 책 속에는 음식 레시피도 있지만, 그날의 기분과 정서를 위한 레시피,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위한 레시피도 들어있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삶의 순간을 위한 레시피를 하나씩 만들어 나간다면 정말 근사할 것 같아요. 그것이야말로 삶의 맛을 아는 사람들을 위한 레시피가 아닐까요?
책 마지막 부분에 부록처럼 실려 있는 오나대('오늘도 나를 대접합니다'의 준말) 테스트도 재미있게 봤는데요. 맛있고 건강한 연대를 위한 오나대 모임을 실제로 준비하고 있는 건가요?
물론이에요. 어쩌면 제가 저의 글을 묶어 책을 만드는 동안 가장 꿈꾸었던 것이 바로 오나대 모임이었던 것 같아요. 자기 자신과 잘 지내는 사람이 타인과도 잘 지낸다는 걸 알고 계시죠? 오나대 친구들(나이 불문, 직업 불문)을 '오친'이라고 부르고 싶은데요. 저마다 가지고 있을 자기만의 '오친' 스토리를 듣고 싶어요. 저는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대접했지만, 자기 자신을 대접하는 방식은 저마다 모두 다를 것이 분명하니까요. 아무리 바빠도 새벽 달리기만큼은 포기하지 않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 깊은 밤 가족들이 잠들면 자기만의 방에서 심야 독서로 영혼을 채우는 사람, 일상에서 불쑥 느껴지는 순간의 정서를 테블릿 PC에 그림으로 그려나가는 사람, 누가 시키지도 않은 피아노 연습을 오직 스스로의 만족과 기쁨을 위해 날마다 열정적으로 해나가는 사람...
삶이 가지고 있는 외로운 얼굴을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열심히 삶을 가꾸는 사람들이 모이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마음의 연대가 이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삶을 존중하고, 내가 모르던 세계를 마주할 때면 편견 없이 배울 줄 알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도움을 아낌없이 주고요. 제가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저에게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SNS에서 만난 저의 랜선 자매들이 보여주었기 때문이에요. 제 책이 그런 만남의 매개가 된다면 그보다 뿌듯하고 행복한 일은 없을 거예요.
저의 책을 읽고 새로 가입할 '오친'을 만나고 싶어요. 아직 스스로와의 관계가 어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거나 '오친' 활동을 함께 할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분들 말이죠. 신입 오친들과 함께 새로 시작하는 연대의 즐거움을 나누고 싶습니다. 아, 물론 '오나대' 모임에는 맛있는 음식이 결코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강효진 대학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했다. 시가 좋아서 오랫동안 시만 읽고 썼다. 지금은 '시'라는 확대경으로 세상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시인의 눈을 닮고 싶어서 다시 시를 읽고 쓴다. 카페, 서점, 관공서, 건설 회사, 결혼식 피아노 반주 같은 다양한 아르바이트와 어린이 독서 수업과 중고등학생 국어 수업을 하면서 돈을 벌었고 무엇보다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오직 나를 위해 좋아하는 음식을 차리기 시작하면서 삶이 크게 달라졌다고 믿는다. 아침이면 숲길을 걷고, 점심엔 나를 위한 식탁을 차리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정성껏 깎은 연필로 빼곡히 적고 나면 특별한 하루가 남는다. 날마다 조금 더 나다운 사람이 되어 나다운 글을 써나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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