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윤경의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 내 머릿속의 타이어
타이어처럼 단단하고 질긴 뇌의 단호한 저항감...
글ㆍ사진 심윤경
2023.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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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_이희찬 

작품은 작가의 많은 것을 담는다. 특히 첫 작품은 더 그러하다고 믿는다. '자전적'이라는 딱지를 달고 나온 나의 첫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내가 어린 시절에 살던 청와대 부근 산동네 특유의 분위기를 담고 있어, '이것은 인간 심윤경의 실제 인생을 담은 소설'이라는 오해를 사기에 알맞았다. 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들이 대부분 허구의 산물임을 기회가 닿는 대로 해명했지만, 알고 보니 그 소설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나 자신을 닮아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 동구는 난독증을 앓는 것으로 그려졌는데, 그것은 훗날 그대로 자기 충족적 예언이 되었다.

초등학생 시절, 늘 탐독하던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난독증'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고 매혹되어 언젠가 소설을 쓰게 된다면 그것을 소재로 활용할 계획의 씨앗을 심었다. 소설가 지망생의 열정으로 불타던 20대의 나는 도서관을 뒤져가며 '난독증'이라는 낯선 질병을 열심히 공부해 소설로 옮기면서 그것이 나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모른 채 그저 흐뭇하기만 했다. 30대였을지 40대였을지 모를 어느 날 난독증이라는 증세가 나에게 발현되었을 때 나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까맣게 눈치채지 못한 채 10년이 넘는 시간을 쩔쩔매기만 하면서 흘려보냈다. 난독증이라니, 그런 건 소설에서나 들을 법하지, 실제 발생하기엔 너무 드물고 난데없는 일이 아닌가.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난독이란 이 세상에서 가장 먼 단어일 것이다. 동구처럼 어린 시절부터 난독증으로 고통받고 어려움을 겪은 케이스가 아니었기에 나는 내가 난독을 앓을 수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읽고 쓰기를 어려워하기는커녕 가장 자신 있고 즐거워하던 활동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동료 작가들에게 책이 잘 읽어지느냐는 이상한 질문을 던지고 다니면서도 내가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난독증은 교활하게도 난시나 원시와 비슷한 증상으로 자신을 위장했다. 몇 줄 읽다 보면 눈이 아프고 뒷골이 뻣뻣해서 책을 덮어버리게 되는 식이다. 실은 이 정도면 이미 중기를 지났다고 볼 수 있다. 초기에는 그냥 '아, 요새는 책이 재미가 없네' 하는 식으로 시작된다. 예전 같으면 즐겁게 읽었을 텐데 시큰둥하게 덮어버리는 책들이 점점 많이 쌓여간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내가 책과 멀어져간다는 두려움과 죄책감도 함께 쌓인다. '책을 읽어야 할 텐데, 나처럼 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작가라는 직업이 합당한가?' 하는 자책과 부담이 쌓여가면서 차츰 책을 펴기만 하면 눈이 피로하고 뒷목 근육이 뻣뻣해지는 증세로 발전되었다. 하지만 난독증을 불러온 이런 생각과 증상들은 노화의 증세들과 교묘하게 겹치면서 근원적인 질문들을 회피하고 인식되지 못한 채 점점 심해져 갔다.

사람은 몸에 이상이 생기면 그제야 그 신체 기관의 존재와 기능을 인식한다. 평소에 내 위장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다가 소화 기능이 떨어지면 그제야 불편한 감각을 전달하는 '위'라는 기관이 내 복강에 있음을 깨닫고, 밥을 먹었는데도 내려가지 않고 위장이 세 시간째 터질 듯 빵빵하게 부풀어 있음을 인식하는 식이다.

난독증은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진행되어 갔다. 본격적으로 문제가 발생한 것은 2011년 무렵이거나 심지어 그 이전일 것으로 추측하는데, 오랫동안 나는 그냥 두통이나 노안이라 여기고 넘겼다. 나에게 실제로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건 2017년 이후였다. 그 무렵 나는 내 뇌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일단 내 두개골 안에 뇌라는 기관이 존재하고 있음을 항상 인식했던 것만으로도 이미 무언가 일상을 벗어난 상태였다. 나의 뇌는 소화력을 잃은 위장처럼 불편한 감각으로 존재를 과시했다. 뭐랄까, 뇌가 좀 많이 부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좁은 두개골 안에 갇혀 있다가 어느 틈새론가 폭발해 터져 나오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뭔가를 열심히 읽는데도 머릿속으로 진입이 안 되는 경우에는, 꽤 좌절감을 느낀다. 마치 내 뇌가 말랑말랑한 생체 조직이 아니라 단단하고 탄성이 넘치는 고무질로 되어 있어서 고무공을 손가락으로 찌르는 것처럼 벽에서 튕겨 나가기만 하고 안쪽으로는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불쾌한 느낌이랄까. 타이어처럼 단단하고 질긴 뇌의 단호한 저항감...

2011년 12월 27일의 일기에 처음으로 '뇌가 타이어 같다'는 표현이 등장했다. 정상적인 시기에 나의 뇌가 몽글몽글하고 따뜻한 메밀묵 같은 유연한 상태였다면, 난독증 상태의 뇌는 타이어처럼 질기고 단단한 무엇이 되어 두개골 안에서 버둥거렸다. 눈으로 글자를 따라가기는 하지만 문장이 전달하는 정보를 뇌 안쪽으로 전달하지 못했다. 이후 상태가 더욱 악화되자 눈으로 글씨를 따라가는 것도 어려워졌다.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하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나는 글씨들을 소리 내어 읽으며 내가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생각해 보면 이건 꽤나 이상한 상태다. 눈으로 입력되는 활자의 의미는 해석하지 못하면서 소리로 옮길 줄은 안다. 소리로 전환된 정보를 들으면 해석할 수 있다. '읽을 수 있다와 읽을 수 없다'의 어중간한 사이에서 나는 이게 뭔가 하면서 매우 오래 쩔쩔맸다.

물론 뇌 안쪽에서 만들어진 나의 생각이 밖으로 인출되는 작업에도, 그러니까 글을 쓸 때도 타이어의 비협조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굳이 난독이 아니더라도 원래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읽기의 어려움만큼 낯설고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십여 년간 나는 '타이어 같은 뇌'와 싸우는 절망적인 느낌과 싸워야 했다. 뻣뻣하게 굳어버린 나의 뇌가 다시 부드럽고 몽글몽글한 조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어느 날 누군가 나타나 나의 두개골을 열고, "뭐야! 여기 타이어가 들어 있잖아!"라고 외치며 나를 인간이 아닌 어떤 존재들을 수용하는 외딴 곳으로 보내버릴 것 같았다.

다시 동구에게 돌아가 보자면, 동구의 난독을 인식하고 그를 도운 고마운 담임 교사 박영은 선생님은 어느 날 동구에게 '아버지는 제주도에 가셨습니다.'라고 써보라고 시킨다. 동구는 칠판에 'ㅏ바시으 수재 가야스슴나다.'라고 썼다. 그것이 동구가 쓸 수 있었던 최선이었다. 동구가 겪은 난독 증세는 글자의 철자가 해체되고, 받침이 탈락되고, ㅏ와 ㅓ의 반전을 구분하지 못하는 방식이었다.

박영은 선생님은 동구가 '공부 못하는 돌대가리'가 아니라 난독증이라는 특이한 증세로 괴로워하는 아이임을 알아내고 동구를 도울 방법을 찾아내려 애쓴다. 선생님은 동구를 방과 후에 따로 남게 하고 기역 니은 디귿 자음부터 하나하나 다시 가르치기 시작하는데, 자음의 모양과 흔한 사물을 연관 지어 외우도록 한다. '지읒은 쥐포' 하는 식으로 동구가 먹어본 친숙한 간식의 이름을 떠올리도록 하는 식이다.

자음과 사물을 연관 지어 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이런 교육법이 실제로 있는지, 이런 방식이 난독증 아동에게 도움이 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언어 치료사나 특수 교사가 아니다. 하지만 1970년대의 평범한 초등학교 교사였던 박영은 선생님도 전문가적 접근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고, 그저 평범한 한 선생님이 안타까운 아이를 돕고자 할 때 시도해 보았을 법한 방식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동구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고자 노력해 읽기와 쓰기에 눈에 띄는 진전을 보인다. 그것은 박 선생님의 교육법이 신묘해서라기보다는 처음으로 만난 믿음직한 어른에게 동구가 바쳤던 절대적인 감사와 신뢰 덕분이었을 것이다.



내 머릿속에 완고하게 자리 잡고 나를 괴롭히던 질긴 타이어가 마침내 폭발했을 때 나는 『영원한 유산』의 초고를 쓰던 중이었는데, 노트북 모니터에 타이핑하던 글자들이 부들부들 떨리다 못해 완전히 부서져 훨훨 날아가는 모습을 망연히 보았다. 마치 글자로 불꽃놀이를 하는 것처럼, 눈앞에서 글씨들이 폭발해 자음은 왼쪽으로 모음은 오른쪽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훨훨 날아갔다. 나의 글자들이 모니터에서 흔들흔들 춤을 추고 지낸 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나는 그것을 집중력 부족 혹은 노안이라고 해석하고 거의 체념한 지 오래였다. 하지만 글자들이 폭발해서 따로따로 날아가는 게 노안이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글자들이 일렬 인쇄된 물리적 상태를 파괴하고 탈주해 버리는 상태를 경험하면서 나는 놀라움 속에서 한 단어를 떠올렸다.

이것은 난독증이다. 직장에 다니며 처음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초등학교 3학년이 되도록 한글을 읽지 못해 구박과 조롱을 받던 소년 동구의 이야기를 쓰면서 난독증의 증세를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때 분명히, 활자가 부서지고 폭발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는 신기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고 그것은 난독증의 매우 심한 단계에 나타나는 증상의 하나였다. 2020년 여름에 내가 난독증의 그 단계에 이른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영원한 유산
영원한 유산
심윤경 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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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경

소설가. 장편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 『영원한 유산』, 『설이』 등과 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