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경력의 가족상담 치료의 대가, 이남옥 교수가 정신과 의사가 된 딸을 키우면서 느꼈던 깨달음과 3만 회 이상 가족상담을 하며 느꼈던 생각들을 바탕으로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자산이자,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전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이에게 주는 감정 유산』은 아이가 실패와 시련 속에서 성장의 기회를 발견하고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며 내면이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 존재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부모의 근본적인 힘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또한, 아이 내면의 가장 좋은 것을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공감 대화의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우리가 놓치고 있던 가족의 힘을 아이와 재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 성장의 새로운 통찰을 얻게 한다.
『아이에게 주는 감정 유산』이라는 제목이 강렬하고 뭉클한 느낌을 줍니다. 이 제목 안에 담긴 의미를 듣고 싶습니다.
제가 가족심리학자와 가족치료 전문가로 40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면서 제 안에 가진 자원을 돌이켜보니 부모님에게 받은 것이 참 컸습니다. 전쟁과 굽이굽이 어려운 시기를 겪은 분들이었지만 항상 긍정과 존중의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셨거든요. 그래서 전 오랜 시간 수많은 상담을 하면서 어떤 아픔과 극한의 상처에서도 긍정의 요소를 찾아낼 수 있었어요. 또한, 저는 부모님에게 받은 것을 아이를 키우면서 고스란히 전해주었는데, 저와 마찬가지로 아이가 굉장한 든든함을 느끼더라고요. 살아가면서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도 부모님에게 받은 정서적 힘은 살아가면서 너무나 큰 힘이 되었어요. 정말 부모로서, 상담자로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지탱해주고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든든하고 단단한 힘을 담고 싶었습니다.
감정 유산을 주는 방법 중에 '탄생 신화'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부분을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삼남매 중에 첫째인데, 부모님은 삼남매 모두에게 탄생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저는 우연찮게 크리스마스에 성당에서 태어났는데, 제가 성장하면서 항상 부모님이 "너는 우리에게 찾아온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말을 늘 들려주셨어요. 그런데 그 말이 아무리 수천 번을 들어도 들을 때마다 좋더라고요. 지금도 저를 보면 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들을 때마다 편안하고 든든한 기분이 온몸에 전해져요. 그래서 저희 딸에게도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1월 1일에 태어난 탄생 배경에 맞추어 "하느님이 간절한 소원을 듣고 보내준 천사"라는 아이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아이 역시 이 탄생에 얽힌 '탄생 신화'를 들을 때마다 너무 좋아하고 든든해해요. 자기 존재에 대한 인정과 긍정인 거죠.
'탄생 신화' 와 더불어 '가족 신화'에 대한 설명도 매우 흥미로웠는데요. 일상 속에서 자주 하는 말이라 아차 싶기도 했고요.
'가족 신화'는 가족으로부터 이어진 자신의 뿌리를 긍정적으로 느끼는 힘이에요.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너는 엄마 닮아서 게을러", "피는 못 속여. 너 하는 것 보니 딱 아빠 피야", "역시 그 집안 자식이네" 등 부정적인 것을 끌어와서 아이에게 말하는데요. 가족과 아이에 대한 것을 말할 땐 절대 부정적인 것은 멀리 하고, 긍정적인 것을 가져와야 해요. 이것은 무의식중에 깊게 자리 잡아 끈질기게 우리를 괴롭히고 행동으로 이끌거든요.
뿌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으면 그 파워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정말 제가 강조하는 부분이에요. 모든 사람에게는 다 다양한 면이 있습니다. 그 사람만의 긍정적인 요소가 분명히 있고요. 그 부분을 아이와 연결시켜줘야 해요. "너는 할아버지 닮아서 성실하고, 할머니 닮아서 센스 있고, 외할아버지 닮아서 똑똑하고, 외할머니 닮아서 다정해. 또 아빠 닮아 집중력 있는 모습이 좋고, 엄마 닮아 감성적으로 하는 예쁜 말이 참 사랑스럽다"고 들려주면 아이는 자신의 뿌리와 자기 존재에 대해 긍정적인 상을 가지게 됩니다. 자신의 존재에 힘을 듬뿍 실어주는 작업입니다.
지금은 잘 성장한 딸이지만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문화적 충돌과 이질적인 사회 속에서 좌절과 혼란을 겪는 딸과의 대화도 기억에 남습니다.
사실 모든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독일에서 태어나 쭉 생활하다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한국에 왔어요. 한국말이 서툴렀던 아이가 말이나 학습 등 여러 가지로 적응하기 어려웠고, 또래 집단에서 섞이는 것도 처음에는 참 힘들었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또 제가 개입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으니까요. 제가 한 것은 그저 그 시간 동안 아이 옆에 있어준 거예요. 그때 들려준 말은 "엄마 아빠는 늘 너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이 시간을 함께 견디겠다"였어요. 결국, 아이는 아이 나름의 방식으로 그 시간을 통과했고, 성큼 자랐어요. 아이에게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저 역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믿음이 있었어요. 이 힘든 시간은 아이를 성장하게 만드는 기회일 거라고요.
감정을 잘 다루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장 과정에서 감정의 이해를 받은 아이는 어떤 점이 다를까요?
감정을 다루는 것은 어른도 힘든 부분이에요. 감정에는 수만 가지의 모습이 있거든요. 자신에게 다가온 감정이 어떤 것인지 정의내릴 수 없는 부분도 많습니다. 다만, 그 감정이 무엇이든 이해받을 필요가 있어요. 감정에는 옳고 그름이 없어요. 그 감정이 생길 때 다 이유가 있는 거거든요. 아이에게 감정이 올라올 때 그 감정을 억압하면 부정적인 요소가 더 강화됩니다. 분노, 불안, 두려움, 짜증 등의 감정에 대해서도 "울지 마", "불안해하지 마", "슬퍼하지 마"로 그 감정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그 감정을 바라보고 직면하게 해주는 거죠. 아이 내면에 있는 다양한 감정과 상황을 인정하는 것이 부모에게는 필요합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빨리 해결책을 찾아주고 싶어 해요. 그래서 부모로서 여유가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많은 케이스들을 보면 감정을 잘 다루는 아이는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가는 힘이 있어요.
부모 자녀 관계의 바람직한 방향은 잘 연결되고, 잘 놓아줄 수 있는 관계라고 하셨어요. 그 의미를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늘 하는 말이기도 해요. 아이를 키우는 것은 '연결하기'와 '놓아주기'의 과정이거든요. 잘 연결되어 있는 관계를 보면 놓아줄 시기가 될 때가 와도 편안합니다. 아이를 잘 성장시켜서 한 명의 인격체로 세상 속에서 잘 살아가도록 놓아주는 거예요. 잘 놓아주는 관계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자주 보지 못해도, 부모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여기서 또 중요한 것은 부모 자신이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야 돼요. 부모가 스스로 잘 살아가야지 자녀가 자유롭거든요. 부모가 잘 살지 못하면 자녀들은 무겁고 버거워요. 벗어날 수가 없는 거죠. 자라는 동안에는 부모 품에서 자유롭게 성장하고, 아이가 커서는 아이만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인정하고 지지해줄 수 있는 관계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아이에게 주는 감정 유산』에서 행복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어요.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 무엇일까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정말 수많은 상담자들을 만났는데, 안타까운 것은 행복의 기준을 너무 높게 두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정말 행복은 소소한 일상에서 찾아옵니다. '행복은 극적인 것이 아니라 밋밋하다'. 행복에 대한 저의 정의입니다. '나는 이것을 하면 불행하다'라는 회피 모드보다는 '나는 이것을 하면 행복하다'는 접근 모드의 삶을 살아가면 훨씬 삶이 풍요로워져요. 행복의 요소는 우리 주위에 수없이 있거든요. '아침에 아이가 일어날 때 나를 향해 웃는 것'. '함께 산책하며 좋은 공기 마시는 것', '한 번도 못 넘던 줄넘기를 잘하게 되는 것' 이렇게 작은 요소들에 집중하면 정말 행복할 일이 너무 많아요.
오히려 극적인 것만을 생각하면 각박해져요. 행복 접근 모드를 예민하게 가동시켜보는 것, 아이를 키우면서, 또 상담을 하면서 늘 말하는 부분이에요. 제가 만난 대다수의 많은 부모들이 훌륭한 분들이었어요.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스스로의 힘을 믿고, '행복'을 찾아가는 것에 민감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단순한 진리지만 행복한 부모가 좋은 부모임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남옥(레지나) 가족상담 치료의 대가이자, 명실상부한 가족상담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이다. 독일 올덴부르크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독일에서 부부 가족치료 전문가, 가족 갈등 관리·조정 전문가로 일했다. 2004년부터는 한국에서 활동하며 가족치료와 가족 세우기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치료과정을 대중적으로 발전시켰다. 35년 동안 3만 회 이상의 상담을 진행하였고, 현재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교수, 서울부부가족치료연구소 소장을 지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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