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평론가 김소미가 극장에서 만난 일상의 기술을 소개합니다. 서울을 살아가는 30대로서 체감한 영화 속 삶의 지혜, 격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
*<클로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클로즈>의 소년들은 늘 달린다. 때로 시간이 그들을 내모는 것보다 더 빠르게. 프레임을 유유히 벗어나며 횡단하는 이들의 이름은 '레오'와 '레미'이다. 벨기에의 주목받는 젊은 감독 루카스 돈트는 자신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풍경을 떠올리며 꽃밭의 수확이 한참인 어느 봄날의 시골 마을로 돌아간다. 영화에서 두 소년의 관계는 오프닝 신에서부터 상징적으로 그려진다. 둘만의 아지트에 모인 레오와 레미는 요새를 에워싼 80여명의 군인들과 아슬아슬하게 대치하고 있다. 그들은 숨을 죽이고 작은 창 너머로 적진을 관찰한다. 즉흥적으로 생성된, 이 보이지 않는 전투. 그리고 들리지 않는 갑옷 소리가 자연스럽게 약속을 이룬다. 영화의 카메라는 빛과 어둠이 절묘하게 스며든 아지트의 고요한 내부를 찬찬히 훑으면서, 꿈 속의 내용을 복기하는 것처럼 어딘가 비밀스럽다. 그런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클로즈>의 이 장면은 이상한 상실감, 혹은 기시감을 유발한다. 아마도 영화 바깥에서 추동된 감정일 것이다. 화면 속 소년들을 제외한 모두가, 그들보다는 이미 훨씬 나이가 들어버린 관객들까지 실은 알고 있는 것 같다. 유년의 특권같은 이 진귀한 역할 놀이가 머지 않아 전혀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름다운만큼 고통스러운 성장의 궤적을 그린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간 소년들은 이전에 한번도 처해본 적 없는 질문들 앞에서 길을 잃고 만다.
"너희들 사귀는 사이야?"
한 방에서 자고, 서로의 허리나 어깨에 팔을 두르고, 피부를 맞닿는 일이 이상하지 않은 소년들은 어떤 '의심'에 처한다. 인물의 감각 가까이 최대한 다가가지만, 오히려 그 내면에 들어찬 감정은 은밀하게 남겨두는 이 영화 <클로즈>에서, 소년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성에 대해 얼마나 인식하기 시작했을 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그들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적 압력과 먼저 맞닥뜨렸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지점에서 <클로즈>가 조금 더 관심을 갖는 쪽은 정체화 과정의 혼란과 통증이 아니다. 철저히 사적이고 맹목적인 관계를 외부 사회의 제도적 압력이 침범할 때의 변화가 소년들을 휘감는다. 슬쩍 손을 밀치거나 몸과 몸 사이의 간격을 넓히는 일, 당연했던 제안과 약속을 뭉개버리는 일들이 레오와 레미 사이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둘이 아니면 그 누구도 알아차리기 힘든 일들이다.
사회적 편견이 파괴하고 마는 관계의 비극을 그리는 성장담에서 언제나 회고의 열쇠를 쥐는 쪽은, 말하자면 '강자'다. 어울리지 않는 연인, 배척받는 관계, 준거 집단이 수군거리는 두 사람. 영화에서 사랑은 이렇게 크고 작은 금기 위에서 펄떡거리며 탐구의 대상이 된다. <클로즈>에서 살아남기로 택한 쪽은? 중학교에서 시선을 받는 것이 부담스럽고 또래 집단에서 탈락하고 싶지 않은 레오다. 그래서 소년은 레미를 밀쳐낸 뒤 갑옷같은 아이스하키복을 입고 남자답다고 불리우는 세계에 뛰어든다. 이때 레오의 마음 속에는, 레미와 자신 사이에 발생한 거리감이 잠깐의 타협 혹은 적응일 뿐이라는 자기 합리화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한편 레미의 닫힌 방은 관객의 상상을 촉구한다. 역할 놀이가 끝났다. 아지트는 황량해졌고 둘은 더이상 서로의 몸에 기대 잠들지 않는다. 이 모든 관계의 변화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레미는 어떻게 될까? 어느 날 레미는 분노에 차서 레오에게 달려든다. 눈물만 솟구칠 뿐 레미에게선 어떤 말도 나오지 않는다. 제지하는 선생님과 친구들에 의해 가로막힌 채, 그럼에도 여전히 레오를 향해 필사적으로 돌진하는 레미는 물에 빠진 사람이 어떻게든 물 밖으로 나오려는 — 레오 없는 곳에서 있는 곳으로 가려는 — 것 처럼 필사적이다.
두 인물이 쌍을 이루는 영화일 거라는 기대와 달리 <클로즈>에서 어느 순간 레미는 사라진다. 대신 레오의 시선에 남는 것은 레미의 엄마 소피(에밀리 드켄)다. 동일한 상실의 대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이한 친밀감의 근원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클로즈>에선 깊은 침묵만이 감돈다. 소년들의 세계에서 소리없이 오고간 변화를 온전히 알아차리지 못한 소피는 상실감과 자책, 그리고 풀리지 않는 의구심의 꼬인 실타래를 푸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 무엇보다 레오는 생애 처음 느끼는 거대한 죄의식 앞에 서 있다. 소년은 애써 고개 돌리며 겨울 한 철을 보낸다.
이 영화에서 레오의 엄마를 연기한 익숙한 얼굴은 현대 벨기에 영화의 가장 중요한 계보들을 생성한 다르덴 형제를 있게 한 배우, <로제타>(1999)의 에밀리 드켄이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또래 소년을 강물에 빠트렸던 소녀 '로제타'가 <클로즈>에 필요했는지 후반부의 한 장면에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후반부에 레오는 그동안 내내 회피했던 소피를 찾아간다. 한번은 맥 없이 안부만 나눈 채 돌아오고, 두번째에 이르러서야 어느 숲길을 지나는 차 안에서 토로한다. 레미를 죽게 한 것이 어쩌면 자신의 이기적인 행동 때문일 지 모른다고. 이어서 레오는 갑자기 차문을 열고 도망친다. 소피가 레오를 한참 뒤따라가 깊은 숲속에 도달했을 때, 이 영화가 끄집어내려는 인간의 심연이란 무척 애처롭다. 겁 먹은 레오가 나뭇가지를 들고 소피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소년은 한 몸 같은 삶의 동반자를 잃은 슬픔에 더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 나아가 이를 고백함으로써 소피가 자신을 단죄할지도 모른다는 생존의 위협을 차례로 느낀 것이다. 두 소년의 찬란한 우정이나 사랑의 역학을 다룰 것 같은 겉보기와 <클로즈>는 생존의 역학을 다룬다. 그리고 나아가 이것은 학교의 친구들이, 사회의 어른들이 나를 용납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성장기의 두려움에 관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안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누군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일. 약하기만 한 유년기에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런 생존 본능 앞에서 고민하고 상처받는다. 특히 잔인하거나 비겁한 쪽이 나일 때, 삶은 예상보다 조금 더 빨리 우리를 유년의 끝으로 데려간다. '성장'이라는 이름의 잔혹한 생존 동화를 관통하는 <클로즈>는 결국 가장 자신다웠던 순간을 뒤늦게 인정하면서 홀로 화원을 가로지르는 레미의 모습으로 문을 닫는다. 함께 달렸던 그 자유롭고 희열 가득한 몸짓이 곧 자기 자신이라고 뒤늦게 인정하면서, 나아가 잊지 않겠다고 뒤늦게 고백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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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미 <씨네21> 기자
보는 사람. 영화를 쓰고 말하는 기자. <씨네21>에서 매주 한 권의 잡지를 엮는 일에 가담 중이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독립 영화잡지 <아노>의 창간 에디터, CGV 아트하우스 큐레이터 등으로 일했다. 영화의 내면과 형식이 만나는 자리를 오래 서성거린다.
카민
2023.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