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철, 세진 '칵테일 파라다이스'
처음 본 사람과 친구가 되고, 숨겨왔던 진담을 꺼내고, 연애가 시작되고... 술은 각종 마법을 부린다. 평소 각별한 술 친구인 재즈피아니스트 윤석철과 옥상달빛 세진이 만든 '칵테일 파라다이스'는 이런 술의 신비와 기쁨이 오롯이 담았다. 즐겁게 업되다가 끝내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환상적인 순간, 흔들리고 뒤엉키는 취기까지도 말이다.
칵테일은 다른 맛의 재료가 섞여 새로운 맛을 낸다. 세진의 톡 쏘는 '청량함'과 윤석철의 크리미한 '부드러움'이 어우러져 산미와 당도가 조화롭다. 늘 '적당히'가 어려운 법인데, 리듬과 멜로디, 보컬이나 가사 어디 하나 어설프거나 어색함이 없다. 두 사람의 유쾌한 블렌딩이 가장 최신의 보사노바이자, 웰메이드 팝을 탄생시켰다.
'피나콜라다 모히또, 아이리쉬 커피, 올드패션 맨하탄 블루하와이' 같은 이국적인 단어는 독특한 어감을 만들고, '한 잔 더' 하며 반복되는 후크도 알싸하고 시원하다. 피아니스트 윤석철의 노래도 사뭇 인상적이다. 피아노처럼 맑고 투명한 목소리가 음정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어나가듯 유려하게 한 음 한 음을 오르내린다.
칵테일의 성서로 불리는 데이비드 A. 엠버리(David A. Embury)의 <칵테일의 예술(The Fine Art Of Mixing Drinks)>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다.
"칵테일은 예술이자 재미다. 제대로 섞여야 맛이 나고, 일희일비한 순간을 선사해야 한다."
멋진 칵테일을 음악에 담았으니, 그저 듣고만 있어도 '좋은 사람들과 한 잔'이 간절해진다.
너드커넥션(Nerd Connection) 'I robbed a bank'
야성적으로 질주하는 전기 기타와 드럼, 심드렁하면서도 날 선 보컬, 모든 걸 시원하게 부숴버리겠다는 메시지까지. '좋은 밤 좋은 꿈', '조용히 완전히 영원히'와 같이 잔잔한 멜로디가 먼저 떠오르는, '어지러운 세상, 따뜻한 음악'을 전하던 감성 밴드 너드커넥션이 앰프가 찢어질 만큼 출력을 최대로 높였다.
신조만은 굳건한 일탈이다. 전술한 그룹 슬로건의 핵심은 지키되 그 혼란에 대처하는 방식만 공격적으로 돌린 것. 질서가 무너진 자본주의 사회 속 화자는 체계의 중심인 은행으로 향했고 나아가 '은행을 털겠다(I'm robbing a bank)'고 거칠게 선언한다. 극단으로 치닫긴 하지만 관조를 멈추고 직접 현장으로 뛰어든 너드커넥션. 투쟁 주체로 올라선 이들의 새 문법에 온기를 넘어 열기가 느껴진다.
메타. '모조'
오로지 랩으로만 승부를 본다. 일렉트로닉 단 톤 사운드 위에 '찾아내야지, 잡아내야지, 내 모조'란 묵직한 메시지가 뚝뚝 떨어지며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한다. 힙합 1세대 가리온의 MC 메타가 '메타.'이란 새 이름으로 발매한 싱글로 2000년대 초반부터 활동해 온 테크노 뮤지션 트랜지스터헤드(Transistorhead)가 작곡을 맡아 무채색의 강렬한 노래를 완성 시켰다.
누군가에겐 요새 힙합과 다른 밋밋함이 심심하게 다가올 수 있겠지만, 몇 번을 곱씹으면 단정한 사운드 너머의 꼿꼿한 시선, 신념 등에 금방 마음을 뺏긴다. 후반부 날카로운 전자음 사이 빽빽하게 내뱉는 래핑이 곡의 포인트. 힙합의 기본은 랩과 가사라는 듯 최소한의 재료로 탄탄한 결과물을 뽑아냈다. '형'의 귀환을 알리며 발매를 앞둔 정규 음반을 기대하게 하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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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