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우리집 앞에 쓰레기 산이 솟는다면 어떨까? 이 끔찍한 생각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환경 운동가이자 환경 인플루언서인 홍다경은 지난 2019년, 경북 의성에 쓰레기 산이 있다는 CNN의 보도를 보고 직접 그 장소를 찾았다. 아파트 8층 높이의 쓰레기 더미를 보자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는 불법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쓰레기 산 앞에서 춤을 추고, 다양한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홍다경은 "책 쓰기는, 두렵지만 기대가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첫 책 『쓰레기 산에서 춤을!』을 통해 자신과 뜻을 함께할 친구를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꿈꾼다.
'쓰레기 산 OUT'을 외치는 이유
인터뷰 이틀 전이 환경의 날(6월 5일)이었죠. 그날 무얼 하셨어요?
환경부 탄소 중립 서포터즈라서 환경부에서 주최한 캠페인 행사에 참여했다가 실망하고 돌아왔죠.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 투성이의 행사였어요.
어떤 면에서요?
'바이바이 플라스틱'이 캠페인의 핵심이었거든요. 그래서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옷을 입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분들이 계셨는데, 사실 페트병을 재활용해서 만든 원단은 세탁할 때마다 미세 플라스틱이 나와서 환경을 오염시켜요. 또, 행사장으로 가는 길목에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다닥다닥 붙어있더라고요. 현수막 원단은 폴리에스테르나 PET 재질이잖아요. '바이바이 플라스틱' 행사에서 새 플라스틱을 이렇게 많이 만들어낸다는 게 모순이었어요. 이런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쓰레기 산을 만드는데 사람들은 그걸 쉽게 간과하죠.
실제로 우리나라에 쓰레기 산이 400여 개나 있다고요. 책에서 이 내용을 보고 너무 놀랐어요.
2022년 기준으로 460여 개의 쓰레기 산이 있었는데, 지금은 절반 이상 처리가 되었어요. 그래도 여전히 30만 톤 이상의 쓰레기 산이 남아 있죠.
처리된 쓰레기들은 어디로 가나요?
시멘트 보조 연료로 쓰이거나, 소각장에서 태우거나, 매립지로 보내져요. 사실 전국의 소각장과 매립지가 포화 상태이기 때문에 대부분 시멘트 보조 연료로 쓰이죠. 문제는 쓰레기를 시멘트 보조 연료로 재활용 할 때 다이옥신이 발생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대기 오염을 감수하더라도 그렇게 처리하는 수밖에 없어요. 현실에서는 그게 최선이거든요.
근본적인 의문이 들어요. 쓰레기 산이 왜 생기는 건가요?
쓰레기 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토지 주인이 자기 땅에 폐기물을 계속 쌓아서 쓰레기 산을 만드는 경우죠. 거기서 나오는 악취, 대기 오염, 수질 오염 등으로 마을 주민들이 피해를 입지만 개인 사유지이기 때문에 마땅히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
더 큰 문제는 쓰레기 투기범들에 의해 생기는 쓰레기 산이에요. 쓰레기 처리 비용을 아끼려는 배출자가 불법 투기업자에게 돈을 주고 폐기물을 맡겨요. 그럼 투기업자들은 사업을 한다고 속여서 땅을 임대한 뒤 폐기물을 버리고 도망치죠. 나중에 이 광경을 발견한 토지 주인은 그 땅을 쓰지도 못하고, 쓰레기 처리 비용까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해요. 현재의 폐기물법상으로는 토지 주인에게도 폐기물 처리의 책임이 있거든요.
토지 주인도 피해자가 되는 거네요.
그렇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경 변호사로 일하셨던 이소영 국회 의원이 귀책 사유가 없는 토지 주인을 부정 폐기물 처리의 책임에서 제외하는 폐기물 관리법 개정안을 지난 6월 1일에 대표 발의하셨어요. 이렇게 무고한 토지 주인의 피해를 막는 것도 쓰레기 산을 없애는 시작이 될 수 있죠. 저는 한발 더 나아가 현재의 폐기물 관리법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5톤 미만의 폐기물은 별도의 신고 의무가 없거든요.
500킬로그램이 아니고 5톤이요?
네, 말도 안 되죠?(웃음) 결과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쓰레기 산의 피해자예요. 국민의 세금으로 쓰레기 산을 처리해야 하고, 환경 오염의 피해까지 입어야 하니까요. 제가 쓰레기 산을 알리려고 노력하는 이유예요.
쓰레기 산을 배경으로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댄스 챌린지를 개최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것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함이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Seaspiracy)> 덕분에 사람들이 상업적 어업으로 인한 환경파괴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잖아요. 해양쓰레기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요. 이렇게 다수가 알아야 변화가 일어나요. 그러려면 접근이 쉬운 콘텐츠여야 하기 때문에 뮤직비디오, 댄스 챌린지 등의 콘텐츠를 떠올렸어요. 열심히 활동하지만 효과는 아직 미비해요. 저는 시민들이 전국에 쓰레기 산이 있다는 것도, 쓰레기 산이 처리되었다는 소식도 모른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꿀벌은 왜 사라질까요?
고등학교 2학년 때, 급식 반찬으로 나온 스마일 감자가 잔반으로 버려지는 것을 보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조리사 선생님을 찾아가고, 교육감에게 메일을 보냈다고요. 문제를 인식하는 것과 실천하는 건 다른 일인데, 용감하다고 생각했어요.
무턱대고 일을 저지르는 스타일이에요.(웃음) 저는 공부 머리가 별로 없는 편인데요. 그럼에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타고난 자신감과 대안학교에서 받은 교육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대안학교를 다니며 '나는 누구이고,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저의 가장 큰 목표는 내가 사회에 어떤 가치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고 싶은지에 대해 찾는 거였어요. 그때 찾은 가치가 '환경'이었고요.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세요? 고3 진학을 앞둔 딸에게 '청소년 시기에는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대안 학교에 전학가기를 권유하신 대목을 보며 남다르신 분들이라고 느꼈어요.
저희 부모님은 유아 숲 해설사로 일하고 계세요. 저희 엄마 별명이 '개미 선생님'이죠.(웃음) 개미의 더듬이, 다리가 몇 개인지 어린이들이 직접 관찰할 수 있게 하고, 나비 애벌레를 키워서 하늘에 날려보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세요. 그만큼 산과 자연을 좋아하는 분들이라 저도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함께 자랄 수 있었죠. 환경 문제를 피부로 느끼고, 분노할 수 있는 건 이런 부모님 아래서 자란 덕분이에요. 저는 설산(雪山)이 사라지는 게 정말 충격적이에요. 제가 고등학생일 때만 해도 매년 3개월은 설산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한 달도 채 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일상에서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행동 요령을 몇 가지 소개해 주세요.
물티슈 대신 손수건을 쓰면 좋겠어요. 물티슈로 식탁도 닦고, 아이 엉덩이도 닦아주는 분들이 많은데요. 사실 물티슈 원단이 미세 플라스틱 덩어리예요. 결국, 플라스틱으로 몸을 닦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환경뿐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손수건을 쓰는 게 훨씬 좋습니다. 또, 수돗물 마시는 걸 추천해요. 찝찝하다면 '브리타' 같은 간이 정수기를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우리나라 수돗물은 마셔도 될 만큼 깨끗합니다. 67가지 항목의 수질 검사를 하는데, 전 세계와 비교해도 뛰어난 수준이에요. 사실 수돗물이 안 좋다는 건 생수 회사의 마케팅이기도 해요. 환경 운동을 하다 보면 기업의 이해 관계가 환경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죠.
책을 읽으며 이번 여름 휴가 때는 해변에서 '쓰레기 줍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기쁜 리뷰네요.(웃음) 탄피를 많이 주워주세요. 해변에서 폭죽놀이 하는 사람들이 떨어뜨리는 탄피가 정말 많거든요. 폭죽 10연발짜리를 쏘면 탄피가 10개 나오는데, 폭죽 터뜨리기만 하고 탄피를 줍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또, 휴가철을 맞아서 한 마디 더 덧붙인다면, 최대한 짐을 적게 들고 가시면 좋겠어요. 차가 무거운 채로 이동하면 탄소 배출이 더 많이 되거든요. 여유가 된다면 제로웨이스트 숙소를 찾아 묵으시면 더 좋고요.
환경 운동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있게 느껴지는 성과가 무엇인가요?
더 많은 분들이 쓰레기 산의 존재를 알아주시고, 저에게 방송이나 강연 요청이 올 때 변화를 느껴요. 또 제가 만든 환경동아리 '지지배(지구를 지키는 배움터)'에 180명의 활동가가 있고, 꾸준히 저와 목소리를 내며 공부하는 멤버도 20여 명 가량 생겼다는 것도 큰 힘이 돼요. 얼마 전부터는 친동생이 제 일을 함께 돕겠다고 나섰어요. 지금껏 여러 활동을 하면서 저와 환경 운동을 떠나 일상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참 많은데, 동생은 변함없이 저를 응원해 주었거든요. 동생이 이 일을 함께 하게되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굉장한 의미예요.
사회적인 차원에서 느껴지는 변화가 있다면요?
1987년에 오존층 파괴 물질 배출량 감축을 목표로 하는 '몬트리올 의정서'가 UN에서 채택되었잖아요. 덕분에 전 세계가 함께 노력한 결과, 2040년 무렵에는 오존층이 상당 부분 회복된다고 해요. 저는 이 소식을 듣고 가슴이 활짝 열리는 느낌이었어요. 아마 환경 운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기쁜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우리가 다 같이 뜻을 모으면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니까요. 일각에는 "노력한다고 그게 되겠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가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면 또 한 번 IPCC 보고서의 반전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환경 문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시급히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매일 인터넷에 환경에 관한 기사가 많이 올라오거든요. 그중 한 가지라도 읽어보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이를테면 요즘 꿀벌이 자꾸 사라진다고 하는데, 왜 그런지 한 번쯤 찾아보시기를 바라요. 이렇게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소식을 찾아보는 것도 환경을 위한 노력이에요. 시민들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정부가 올바르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어렵거든요. 정책을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게 잘 지켜지는지 감시하는 일이죠. 환경운동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가 시간은 어떻게 보내세요?
환경에 관한 책을 읽거나 마케팅 공부를 해요. 마케팅을 잘 알아야 더 쉽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고민이 많은 날에는 등산을 합니다. 산에 가면 스트레스가 풀리거든요. 그런데 사실 휴일이 거의 없어요. 쉬는 날에도 지지배 활동가들과 플로깅을 하러 가거나, 환경 독서 모임을 하거든요. 최근에는 강연 요청이 종종 들어와서 강연을 위해 공부하면서 휴일을 보내는 편이에요.
진정한 덕후네요.(웃음)
그런가요? 하하하. 이렇게 해야 제가 당당히 환경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지지배'의 리더인 제가 환경에 대한 공부와 현장에서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겸해야 사람들이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홍다경 지구가 걱정되어 잠이 안 오는 청년. 환경 동아리 '지지배(지구를 지키는 배움터)'의 리더이자 비영리 단체 '지구시민연합' 청년팀 팀장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환경 문제를 널리 알리고자 쓰레기 산 앞에서 뮤직비디오를 찍고, 댄스 챌린지를 기획했다. 유튜브 채널 <청년환경운동가 홍다경>을 운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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