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루타니 가오리 글그림/현승희 역 | 북폴리오
한자(황정은) : 오늘은 <삼자대책>에서, 아마도 처음이지 않습니까? 다 함께 만화를 읽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냥 : 그렇습니다!
한자(황정은) : 그냥 님이 추천한 책이었죠?
그냥 : 네, 제가 단호박 님의 책장에서 꺼내든 책이죠. 쓰루타니 가오리 작가가 쓰고 그리고, 현승희 번역가가 옮기고, 북폴리오에서 출간한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입니다.
단호박 : 띠지에 보면 “2019년 <이 만화가 대단하다!> 여성만화 부문 1위!”라고 쓰여 있어요.
한자(황정은) : 띠지가 매 책마다 붙어 있지 않습니까? 사실 책의 띠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은) 띠지 읽는 재미도 좀 있었어요.
그냥 : 맞아요. 1권부터 5권까지 띠지의 문구가 다 달라요.
한자(황정은) : “나이 차이는 58살, 두 사람은 BL 친구!” 이런 것도 있고 “마음을 적시는 ‘좋아한다’는 감정은 언제나 소중해!” 이런 문구가 들어가 있죠.
그냥 : 한자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58년의 나이차를 뛰어넘어 BL 친구가 된 두 여성의 이야기죠. 75세의 이치노이 유키 할머니와 17세 사야마 우라라라는 학생이 친구가 되는 내용입니다. 이치노이 유키 할머니는 지금 혼자 살고 있어요. 3년 전에 할아버지가 먼저 떠나셨고, 혼자 자신의 집에서 서예 수업을 하면서 생활을 하고 계신데요. 아주 무더운 여름날 이치노이 할머니가 우연히 더위를 피하러 서점에 갔다가 그림체에 이끌려 ‘너만 바라보고 싶어’라는 책을 골라 들게 됩니다. BL 만화인데 할머니는 어떤 내용인지 모르고 그림이 예쁘다면서 집어 드신 거예요 이 서점에는 우라라가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그 책을 계산하겠다는 소식에 우라라가 흠칫 놀라죠.
단호박 : 눈이 커지죠. BL 관련해서는 사람들이 더욱더 그런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이걸 공개적으로 읽는다고?’ 이런 느낌이 좀 있습니다.
그냥 : 그런 느낌이 있다는 걸 이 만화가 굉장히 잘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우라라가 BL을 아주 좋아하는데 주변의 친구들한테조차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래서 BL 작품들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는 시간과 경험이 없어요.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면 단호박 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지점이죠. ‘내가 이걸 좋아한다고 대놓고 이야기를 해도 되나?’라는 지점이 묘하게 있는 것 같아요.
한자(황정은) : 남에게 대놓고 말하기가 약간은 껄끄러운 취향이라고 게 생각을 하는 것 같고, 또 한편으로는 남하고 쉽게 공유하고 싶지 않은 취향이라는 마음도 있을 것 같아요.
단호박 : 우라라의 성격도 있죠. 꼭 BL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냥 우라라는 남들에게 쉽게 이야기를 먼저 걸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한자(황정은) : 그것도 있고, 단순히 우라라의 원래 성격이 그래서라기에는 우라라가 그 책들을 박스에 따로 담아서 숨겨두지 않습니까? 숨겨두고 싶은 취향이었던 거죠. 저는 할머니가 ‘너만 바라보고 싶어’라는 만화책을 발견하게 된 도입부터가 좋았거든요. 그 서점에 단순한 우연으로 가게 된 것이 아니라, 너무 무더운 여름날에 자기가 원래 가던 카페를 찾아갔는데 그 카페가 문을 닫았던 거죠. 예전에 할아버지랑 같이 가서 차도 마시고 했던 카페였는데 거기가 문을 닫아서 되게 난감한 상황이었던 거죠. 땀은 나고 목은 마른데 그래서 시원한 냉풍이 쏟아지는 그 서점 앞을 지나가다가 들어가서 이 책을 발견을 하게 됩니다. 시작이 되게 좋았어요.
그냥 : 그래서 이치노이 할머니가 BL 에 만화책을 사가서 그 밤에 읽게 되죠. 저는 할머니의 반응이 너무 귀여웠어요. 아마 처음 BL을 본 사람의 반응인 것 같은데...
단호박 : 처음이었을까요? 저는 할머니가 예전에 뭔가를 파본 경험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 예전에 만화책을 봤다는 얘기는 하죠.
한자(황정은) : 그건 하죠. ‘만화 얼마 만이지?’라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단호박 : BL로 장르화가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만화를 좀 봤다면 경험은 있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걸 처음 봤을 때 할머니의 그 반응이 있잖아요. 처음 이 작품 안에서 남자 주인공 둘이 뽀뽀를 했을 때 ‘어머’ 하면서 약간 볼을 약간 밝히시면서 입을 손으로 가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처음 봐서의 장면이라기보다는 그냥 이 작품에 빠져들었다는 어떤 입덕의 흔적이지 않았을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냥 : 아... 할머니가 반응을 하는 그 장면을 보면 ‘너만 바라보고 싶어’의 주인공 중 한 명이 먼저 얘기하잖아요. ‘나 사실 너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아’라고 하니까 할머니가 ‘...응?’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이어서 주인공이 ‘계속 좋아했다’라고 하니까 할머니가 ‘아이고야’라고 했다가 주인공이 고백을 하고 나서 ‘싫어해도 괜찮아’라고 하니까 ‘어이쿠?’ 그러신단 말이에요. 그러다 둘이 입을 맞추니까 ‘오모나’ 하고 입을 가리신단 말이죠. (웃음) BL을 조금 접해봤고 익숙한 사람이라면 ‘나 널 친구로 생각하지 않아’라고 할 때부터 ‘나올 게 나오는구나’ 하고 느낄 것 같은데 ‘오모나’ ‘...응?’ 이렇게 하시는 걸 보고, 저는 처음이신가? 이제 눈을 뜨셨나?라고 생각을 했어요.
한자(황정은) : 저도 처음이신 것 같습니다. 만화는 접했지만.
단호박 : 그렇군요.
그냥 : 이렇게 할머니는 하룻밤 사이에 1권을 독파를 하고, 심지어 다음 날 병원 가시는 길에 2권을 사서... (웃음)
단호박 : 다음이 너무 궁금한 거지. 얘네들이 어떻게 될까. (웃음)
그냥 : 키스에서 끝나면 ‘빨리 다음 작을 내놔라’ 이렇게 되죠.
한자(황정은) : 그러면서 우라라와의 접점이 늘어가는 거잖아요. 서점에서 일하는 우라라와의 접점이 늘어가고, 또 책을 구하는 과정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우라라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걸 보면서 저는 오래전에 90년대 초반에 제가 만화 잡지들을 기다렸다가 서점 가서 사서 봤던 경험들이 생각이 많이 났어요. 되게 그리운 감각이었고, 요즘은 없는 감각이거든요. 그래서 좀 향수를 자극 당했네요.
단호박 : 유키 할머니가 1권, 2권을 보고 나서 또 참을 수 없어서 3권을 보게 되지 않습니까?
3권까지 보고 나서 발간 일자를 보니까 1년 반 단위로 한 권씩 나오고 있단 말이죠. 그럼 본인의 수명하고 이렇게 계산을 하게 된단 말이에요. 내가 살아있는 동안 몇 권이나 볼 수 있을까. (웃음) 그래서 본인 수명을 한 10년 정도로 잡으시고 1.5로 나눠 가지고 ‘간신히 6권 정도 볼 수 있겠다’ 이런 계산을 하시죠.
그냥 : 그래서 의외의 작은 목표가 하나 생기죠. 내가 구순까지 잘 견뎌보겠다. (웃음)
한자(황정은) : 되게 중요한 동기죠. 수명 연장의 중요한 동기입니다. (웃음)
그냥 : 그러면서 두 사람이 더 가까워지기도 해요. 할머니가 4권을 기다리기 너무 무료하잖아요. 그래서 우라라에게 ‘혹시 추천해 줄 작품이 또 있냐’고 하면서 우라라가 책을 빌려주고 그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가까워지죠.
단호박 : 우라라가 이 할머니한테 전해주는 것이 그것뿐만이 아니라 문화에 대해서 점점 넓혀가지 않습니까? 동인전에 갑니다! (웃음)
한자(황정은) : (웃음) 만화 좀 읽는 독자들도 사실은 동인전까지 가지는 않지 않습니까?
단호박 : 그렇죠, 오프라인까지 가기는 쉽지 않죠. 하지만 할머니는 갑니다. 그 많은 인파와 더위를 해치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판매까지 하죠. 뭘 판매하는지는 비밀입니다.
그냥 : 궁금하시면 읽어보세요! (웃음)
그냥 : 이치노이 할머니가 가지고 있는 한 개인으로서의 특징들이 있는데, 저는 그게 진짜 부러웠거든요. 이치노이 할머니는 굉장히 쿨해요. 어떤 생각과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많이 머뭇거림도 없고요. 용감하고, 스스로 슬퍼지는 성향이 아니에요. 선뜻 다른 사람한테 말도 잘 걸고, 관계 지향적이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데 주저함이 없고,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새로 운 일을 겪고 싶어 해요. 그리고 자신보다 어린 세대를 굉장히 세심하게, 그렇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살펴주죠. 그런 어른의 모습이 있어요. 예를 들면 우라라를 보면서 지금 이 아이가 약간 곤란해 한다든지 뭔가 고민이 있다는 걸 캐치하지만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고 티나지 않게 보듬어 주는 면이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내가 이런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이런 할머니 되면 너무 좋겠다’ 그런 생각을 계속 했습니다.
한자(황정은) : 맞아요, 그런 인물이기도 해요. 그런데 저는 유키 할머니를 자신보다 어린 사람과 우정을 결심할 정도로 딱히 용기가 있다거나 이런 인물로 보지는 않았고, 그냥 대단히 열려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이 인물의 태도가 굉장히 좋았는데, 일단은 이 인물이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에 다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겠어’ 이게 아니라 사람을 그냥 사람 그 자체로, 어떤 사람의 언행을 그냥 그 언행 자체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뭔가를 흘려보내는 인물이에요. 그렇다고 관계에 욕심을 부리는 사람도 아니고. 그리고 저는 이 인물과 우라라 사이의 관계가 좋았는데, 띠지에 58살 차이라고 나와 있지 않습니까? 근데 저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연차가 느껴지질 않았어요. 그게 좋았습니다. 유키라는 사람이 우라라가 어린 아이라는 걸 의식을 안 하고 대하는 것 같아서, 그냥 사람에 대한 존중인 거예요. 타인에 대한 존중. 서로서로. 저는 그게 좋았고, 다만 둘 사이의 연차가 느껴지는 순간은 그런 부분들이었죠. 우라라가 유키 할머니의 육체적 노쇠함을 부분 부분으로 목격할 때. 예를 들어 비에 젖은 어깨라든지 자기보다 앞서서 계단을 올라가는 할머니의 발목이라든지 이런 걸 볼 때나, 이 사람이 나이가 많이 들어서 몸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걸 순간순간 깨닫잖아요. 그게 아니라 그냥 마주 앉아서 BL 만화에 대해서 얘기를 하거나 좋아하는 만화 작가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순간에는 우라라가 유키가 할머니라는 것 자체도 인식을 잘 못해요. 그래서 저는 이 관계가 대단히 좋았어요. 그래서 언제고 제가, 지금도 될 수 있고 혹은 앞으로 나이가 들어가는 모든 순간에, 내가 누군가와 또다시 관계를 새롭게 맺는다면 이런 관계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단호박 : 할머니를 만나면서 우라라도 변화하잖아요. 마지막 권에서의 어떤 변화가 있죠. 그게 작중에서의 BL만화와 어우러지면서 성장 느낌이 있죠.
그냥 : ‘너만 바라보고 싶어’의 이야기도 계속 삽입이 되지만, 그 작품을 그린 작가 코메다 유의 이야기도 삽입이 돼서, 갈수록 코메다 유와 우라라가 겹쳐 보이는 장면들이 있고 읽는 사람도 그렇게 머릿속에 그리게 되지 않습니까? 이치노이 할머니가 우라라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렇게 만화를 많이 읽으면 그리고 싶은 마음도 들 것 같다. 우라라 학생도 그려봐도 좋을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해요. 우라라는 ‘아니,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라고 하지만 천천히 조금씩 그리기 시작하거든요. 그러면서 코메다 유하고 겹쳐 보이는 지점들이 있는데, 저는 그걸 지켜보는 것도 즐거웠어요.
단호박 : 그리고 우라라가 만화를 그리면서 몰입의 경험을 하는 부분이 나오잖아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좋아하는 마음으로 인해서 사람이 변해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단호박 : 5권의 띠지에 ‘어떻게... 이토록 다정한 걸 만들었을까!’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작중에 나오는 ‘너만 바라보고 싶어’를 두고 할머니가 말하는 이야기지만, 이게 띠지에 들어가는 순간 독자들은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가 ‘이렇게 다정한 것’이라고 판단을 하게 되죠.
한자(황정은) : 맞아요. 편집자 선생님들이 이 만화를 향해서 보내는 찬사인 것 같기도 하고요. 정말 다정한 만화입니다.
단호박 : 그렇죠. 어떻게 이토록 다정한 걸 만들어냈을까요?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쓰루타니 가오리 작가가.
한자(황정은) : 다음에 저희가 같이 읽을 책은 제가 제안한 책인데요. 저의 책장에서 단호박 님이 『주기율표』를 가져가셨고, 그리고 단호박 님의 책장에서 그냥 님이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를 가져가셔서, 이게 이렇게 알게 모르게 특집이 된 게 저는 또 너무 다정해가지고 그 다정을 조금 더 연결을 해보자 라는 생각을 하고, 제가 그냥 님의 책장을 뒤져서 한 권을 골랐어요. 『당신이 나의 고양이를 만났기를』입니다. 우츠다 햣켄이 썼고요. 김재원 번역가가 옮긴, 봄날의책에서 출간된 책입니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