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동화, 청소년소설, 희곡 등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발표하며 우리 아동청소년문학에 흥미로운 질문과 충격을 안겨 주는 송미경 작가와 독보적 필체로 이야기에 생동과 감동을 더하는 장선환 화가가 그림책 『나는 흐른다』로 만났다. 일상의 중력을 거슬러 환상 세계로 홀가분하게 뛰어드는 ‘영아’의 이야기를 담았다.
자아가 흔들리고 성장하는 과정을 유영하는 구름, 하얗게 부서지는 물결, 햇살을 덮은 강물 등 아름다운 자연 풍경으로 표현하면서 낯선 ‘나’를 마주하고 포용하는 기쁨을 선물한다. 다채로운 물감의 농담,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붓의 필력, 청쾌한 색조로 찬란한 내적 성장의 순간을 그린다.
워낙 오랫동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오신 두 분이어서 그런지 이번 만남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나는 흐른다』를 통해 처음으로 함께 작업한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송미경: 글 원고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고 그림 작업을 해 주셔서 글을 따로 수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없었어요. 너무 추상적인 그림으로 흘러가지 않기를 바랐지만 제 의견을 따로 전달하진 않았어요. 그 어떤 원고보다 이 원고는 자유로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화가 선생님과 출판사와 디자이너가 더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도록 한발 물러서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책이 출간되었을 땐 갑자기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뻤습니다.
장선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작업을 시작하기도 하고 의뢰를 받아서 작업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이번 작업은 좀 특별한 경험이었는데요, 송미경 작가님의 글을 읽고 작업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재미있고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일상을 살아가는 나’와 ‘강물 속에서 헤엄치는 나’, 두 가지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아이의 일상과 상상이 쉽게 분간되지 않고 교차한다는 점에서 이야기가 환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셨나요?
송미경: 아주 어릴 때 우리 동네에 공사를 하다 멈춘 곳에 비가 내려 큰 물웅덩이가 생긴 적이 있어요. 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당장 뛰어들었고 우리 동네 아이들이 모두 그 구정물 속에 뛰어들어 신나게 놀았어요. 제 동생만 뙤약볕에 서서 우리를 보고 있었죠. 저는 신나게 놀다가도 이따금 동생을 보곤 했어요. 햇살 아래 흰옷을 입고 가만히 서서 헤엄치는 우리들을 보는 모습을요. 그 장면이 제게 굉장히 인상 깊었는지 자주 떠오르곤 했어요. 지금도 흘러가는 물을 보면 멈춰 서서 오래 지켜보곤 해요. 물론 이젠 물속에 뛰어들진 않죠. 옷이 젖거나 호주머니 속에 든 물건이 젖을 걸 먼저 생각하는 어른이 되었어요. 하지만 물속을 헤엄치는 제 모습을 상상하곤 해요.
“어제와 다르지 않은 날”이라는 구절이 반복되는 일상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어 마음에 특히 와닿았습니다. 분주하게 돌아가는 세상과 분리되어 나만의 세계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으신지, 또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송미경: 학창 시절엔 교과서나 공책 모서리에 낙서를 하는 게 저를 세상과 분리시키는 일이었어요.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음악을 듣기도 했죠. 점토로 인형 만들기도 한동안 했고요. 지금은 그런 시간에 노트에 아무 글이나 써요. 지금 내 귀에 들리는 소리,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사물들에 대해서요. 그리고 영화를 봐요. 다른 삶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일상이 조금 새롭게 보이는 것 같아요.
장선환: 일상에서 어떤 장소나 음악 등을 통해 추억과 기억 속으로 들어가곤 합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연속된 작업을 하다 보면 작업이 재미있어서 혹은 마감에 쫓겨서 몰입하게 되는데요, 그럴 때 시간과 공간을 잠시 잊고 꼭 다른 세계에 잠깐 다녀온 기분입니다. 마감에 쫓기는 작업이 아니고 즐거운 작업을 할 때 너무 행복한 기분이 듭니다.
주인공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는 듯한 강물이나 구름, 물결, 나무 등의 자연 풍경들이 인상적입니다. 어떻게 이런 장면들을 구상하게 되셨나요?
장선환: 여러 가지 드로잉 작업과 채색 샘플 작업을 통해 『나는 흐른다』 작업은 사실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집 안의 물건들, 일상의 풍경 등은 현실적으로 표현하고 강물은 다양한 묘사를 통해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표현해 주인공 ‘영아’의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강물이나 구름, 물결, 나무 등의 자연 풍경들은 작품의 여러 가지 느낌을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요소라 생각했습니다.
작업하시면서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이나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을까요?
송미경: 강가에 서 있는 나와 물속을 헤엄치는 내가 한 존재라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게 이 원고의 가장 큰 쟁점이었어요. 하나이면서 둘이거나 셋이 될 수 있는 우리의 영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려면 아이가 개를 산책시키거나 물병을 씻거나 교실에서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무게 중심을 잡아야 했고요. 마치 풍선이 날아가지 않도록 실 끝에 매단 작은 돌덩이처럼 주인공의 가족과 친구들의 관계, 주인공의 망설임 등을 명료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장선환: 내용 전개상 강물, 물의 형상을 어떻게 표현할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시간과 감정에 따라 독자가 어떻게 글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지가 물의 표현에 달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요, 책의 시작 부분에서는 잔잔한 물의 표면에서 점점 물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고, 물속의 나를 보다가 다시 현실로 나와 그 물을 볼 때는 찬란하게 빛나는 물결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영아의 모습은 현실을 깨고 나를 깨우는 순간이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세 번의 뛰어드는 장면 연출에 가장 신경을 많이 써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계획하고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송미경: 올해는 제가 직접 쓰고 그린 그림책 『토끼가 되었어』가 나왔고 김륭 시인의 시에 그림을 그려서 『햇볕 11페이지』를 냈어요. 그리고 『가정 통신문 시 쓰기 소동』이라는 동화책도 냈고요. 제가 글만 쓰거나 그림만 그리거나 글, 그림을 다 하는 작업들을 모두 경험해 보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창작 방식을 미리 정하지 않고 작품에 맞게 작업해 보고 싶어요. 대책 없이 하고 싶은 걸 다 하다가 세월을 빨리 흘려보내 버리지는 않을까 겁날 때도 있지만 조금 더 그렇게 가 보고 싶습니다.
장선환: 이번 작업처럼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읽고 대화하고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선로원』을 통해 아버지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출간했는데요, 좀 더 진솔하고 자연스러운 제 모습이 작업으로 나올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송미경: 내가 원하는 무엇인가에 온 마음을 다해 뛰어드는 경험을 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구정물 속에 뛰어들었던 어린 시절의 한순간이 지금도 제겐 큰 용기가 되거든요. 물론 저를 찾으러 온 할머니께서 집에 오시는 내내 작은 나뭇가지로 제 어깨를 콕콕 찌르며 잔소리를 하셔서 친구들 앞에서 망신을 당했고 집에 가서 벌을 서야 했지만, 그 순간은 잠깐이었고 저는 평생 즐거운 추억 하나를 가지고 살고 있으니까요. 저도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작품 속으로 뛰어드는 작가로 살아가겠습니다.
장선환: 그림책을 통해 생활에 활력을 얻고, 잠깐의 휴식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바쁜 세상에서 그림책을 보고 나면 여행을 다녀온 듯 천천히 쉬어 가는 시간을 갖게 되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