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연말 결산] 올해의 입소문 – 『세계 끝의 버섯』 김수기 현실문화 편집자
출간 직후 입소문을 타며 4쇄를 기록했고, 눈 밝은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추천하는 연말 화제작. 편집을 총괄한 김수기 현실문화 대표는 6년간의 과정이 방대한 역사, 생태, 문화적 전통을 탐색하는 여행 같았다고 말한다.
글ㆍ사진 김윤주
202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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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세계 끝의 버섯』이 기록한 성과는 눈부시다. 출간 직후 입소문을 타며 4쇄를 기록했고, 눈 밝은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추천하는 연말 화제작이 됐다. 편집을 총괄한 김수기 현실문화 대표는 6년간의 과정이 방대한 역사, 생태, 문화적 전통을 탐색하는 여행 같았다고 말한다.


출간 직후 반응이 놀라웠습니다. SNS와 블로그에서 후기가 계속 올라왔는데요. 

책 한 권이 지식, 문화계의 지형을 흔드는 느낌을 준 것 같아요. 사람들이 고민하는 지점을 정확히 건드린 거죠. 코로나19 이후, 지구의 재난이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손쓸 수 없는 큰 규모의 차원에서 다가온다는 걸 모두가 느낀 것 같아요. 특히 작가, 예술가들이 시대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니까 이 책을 먼저 알아봐 준 게 아닐까 싶어요.


계약부터 출간까지 6년이 걸렸다고요.

인류학, 환경, 생태 등 이 책이 다루는 주제가 방대하다 보니, 번역가를 찾는 것만으로도 1년이 걸렸어요. 번역에 2년이, 편집에도 3년의 시간이 흘렀죠. 초고를 받았는데 편집자로서 너무 욕심이 나더라고요. 책이 현재에 꼭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데다가, 소설보다 더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읽히거든요. 그래서 원문 대조를 철저하게 하고, 각주도 번역가와 충실하게 보충했죠.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담고 있다 보니, 책 전체에 ‘비인간’과 관련된 용어들이 많이 나와요. 이야기만으로도 흥미롭게 읽히지만, 좀 더 자세한 맥락을 전하고 싶었죠.


편집자로서 이 책의 매력 포인트를 영업하신다면요? 

이 책이 다루는 공간과 이야기가 워낙 방대해요. 저자는 미국 오리건주에서 일본까지 여러 공간을 넘나들고, 미얀마, 캄보디아 난민부터, 월남전에 참전했던 백인 남성 마초, 라틴아메리카에서 온 불법 체류자들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요. 이른바 ‘사회 부적응자’들이 미국 사회가 망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로키산맥 인근에서 송이버섯을 채집하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저자가 소설처럼 풀어내는데 깊은 여운이 남아요.


현대 철학에서 인간중심적 사고를 비판하는 논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이토록 학문적 깊이가 있으면서도 흥미진진하게 깨우쳐주는 책도 드물지 않나 싶어요. 사실 반려동물 등 비인간 존재들이 인간 못지않게 소중한 존재가 되었잖아요. 우리의 경험을 되돌아봐도 ‘이건 사실 너무 당연한 이야기구나’ 깨닫게 돼요.


출판사 리뷰에 “이 책을 몇 줄로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고 썼죠. 

세상에 이런 책 소개를 쓰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웃음) 보통 책 출간을 앞두고 보도자료를 쓸 때, 책의 내용을 잘 요약해야 하는데, 도저히 이 책의 풍부한 문제의식을 한 줄로 요약할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고백했습니다. 책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으니, 제가 다 전하지 못한 부분은 독자들이 채워줬으면 좋겠다고요.


‘세계 끝의 버섯’이라는 제목도 독특했습니다. 

제목에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송이버섯이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가장 변두리에 존재한다는 뜻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 폐허, 세상의 종말을 암시하기도 하죠. 저자는 전세계의 숲이 자본주의의 논리로 망가진 풍경을 보여줘요. 미국과 캐나다에서 벌목업자들이 소나무를 마구 벌목하고 그 자리가 완전히 망가지면 다음 숲으로 떠나죠. 일본도 본토는 물론 글로벌 무역을 통해 동남아시아의 나무들을 다 베어버렸고요. 자본주의가 지나간 길들이 다 쑥대밭이 된 시점에서, 송이버섯만이 다시 숲을 일궈내고 생명이 서식하게 만들어요. 그게 저자가 버섯에게서 발견한 삶의 가능성이죠.


저자 애나 로웬하웁트 칭은 온라인을 통해, 한국의 독자와 만나기도 했습니다.

애나 로웬하웁트 칭은 도나 해러웨이마저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학자예요. 그런데도 저자의 태도는 언제나 겸손하죠. 저자는 어머니가 중국계로, 동아시아의 배경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사유 방식이 우리와 잘 맞는 것 같아요. 저자 특유의 자연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들이 한국 독자에게도 호소력이 있죠.


전작에서 저자는 동남아시아의 소위 천민자본주의적인 기업가들이 어떻게 원주민을 착취했는지를 고발하는 논의를 전개해요. 그런데 『세계 끝의 버섯』에서는 격렬한 비판보다는 훨씬 느긋한 호흡으로 삶의 경험들을 풀어내죠. 목차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알아차림의 기술’이라니 제목만으로도 너무 흥미롭잖아요. 막상 들어가서 읽어보면 버섯에 관한 굉장히 촉각적인 표현임을 알 수 있어요. 초보자들은 땅의 표면만 보지만, 송이버섯 채집 전문가들은 땅이 어떤 모습인지 그 아래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다 안다는 거예요. 자연과 교감하기 위해서는 그런 알아차림의 기술이 중요하다는 거죠. 그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 삶의 영역을 떠올리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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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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