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 어떤 공간에 닿을까
3주 동안 시간을 보냈던 디킨 대학교의 여름 캠프는 평일에는 수업과 토론 세미나가 이어졌지만, 주말에는 아무 일정이 없었다. 그야말로 어떤 것을 하든지 상관없는 완전한 자유가 주어졌다. 함께 수업을 듣던 미국 친구들은 자유 시간이 되자 비키니를 입고 드넓은 잔디가 펼쳐진 기숙사 뒷마당에 드러누워 선탠을 했다. 한국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여 패키지 투어를 예약하고는 부지런히 멜버른을 누볐다. 나는 그 사이 애매한 위치에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아직 홀딱 벗고 캠퍼스에 누워 있을 용기는 없었지만, 부지런히 관광지를 돌아볼 체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 나와 비슷한 성격의 느긋한 J 언니가 멜버른의 중심 광장에서 열리는 <미드섬마 페스티벌(Midsumma Festival)>에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주었다. <미드섬마 페스티벌(Midsumma Festival)>은 한여름 열리는 멜버른 최대의 퀴어 예술 축제이자 문화 다양성 축제이다. 한국에서는 ‘퀴퍼(퀴어 퍼레이드)’로 잘 알려진 축제와 비슷한 셈인데, 늘 ‘퀴퍼’를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해 냉큼 언니를 따라가겠다고 대답했다.
실은 한 번도 록 페스티벌이나 재즈 페스티벌 등의 축제에 가본 적이 없었다. 축제에 가는 건 여러모로 내게는 아주 큰 에너지를 쓸 결심을 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무대를 감상하는데 휠체어 구역이 지정되어 있지 않다면, 인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무대를 보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서 있는 사람 틈에 끼이면 휠체어에 앉아 있는 나는 무대를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자칫 깔리는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앉아서 돗자리를 펴고 무대를 보는 축제에도 가 봤는데, 제법 앞에 자리를 잡았지만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휠체어로는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된 적도 있었다. 그때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잠시 빠져나갔다가 자리로 돌아갈 수 없어 무대가 시작하기도 전에 그냥 집으로 가야 했다. 인파가 많은 곳에 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기도 했다. 나의 존재가 생경하다는 듯 한 번 더 돌아보는 시선들, 가는 곳마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눈과 원하지 않는 질문들,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하고 있자면 축제를 즐기기도 전 모든 체력이 소진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 내가 냉큼 J 언니를 따라 축제에 가겠다고 대답했다. 직전에 서핑을 경험해 자신감이 하늘로 솟아올랐을 때다. 많은 사람이 모인 곳이니 힘들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또 어떤 공간을 마주할 수 있을지 궁금함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이런 마음이 드는 내가 신기했다. 여행이 주는 용기일까, 아니면 이제까지 호주에서 마주했던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환경 덕이었을까. 고작 일주일의 시간이었지만 훨씬 적극적으로 변한 나를 발견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환대하는 마음
약간 비가 날리는 아침이었지만, 하늘은 흐리지 않았고 곧 따스한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축제가 열리는 광장과 조금 먼 기차역에서 내린 탓에 한적한 공원을 가로질러 광장으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예상외의 부스를 만났다. ‘Pride at Liberty Disability Services1 ’, 2018년 설립한 장애인용 서비스 및 지원 단체)라는 이름의 부스였는데, 방문객을 반기는 가장 맨 앞 입구에서, 혹시 올 수 있는 장애인 참여자들에게 적절한 보조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퀴어 예술 축제’이기 때문에 성정체성과 지향성에 국한된 부스만 있으리라는 것은 나의 완전한 착각이었다. 일순간, 무장해제되는 기분을 느꼈다. 휠체어를 타고 있다는 이유로 뒤로 물러서거나, 모두가 하는 체험에서 빠지지 않으리라는 것, 설령 참여가 어려운 것이 있다고 할 지라도 나의 참여를 위해 노력해 볼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내 예상은 아주 맞아떨어졌다. 그다음으로 향한 화장품 기업의 부스에서는 높은 단의 포토존에 경사로가 있었다. 굉장히 사소해 보이는 물건이었는데, 그 대단치 않은 물건을 처음 봤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모두가 올라와서 춤을 출 수 있는 무지갯빛 댄스 플로우에도 비스듬한 경사가 있었다. 마음을 내려놓고 축제를 즐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습니다’라거나, ‘모두가 함께하는 따뜻한 세상’이라는 문구를 큼지막하게 써 붙여놓는 것보다, 간단한 경사로가, 장애인 서비스 부스의 존재가, 더 간단하고도 강력하게 내게 안전함을 선사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 혹은 큰 행사에 갈 때면 ‘저는 괜찮아요.’하고 뒤로 물러서는 순간들이 많았다. 난 정말 내가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키지 않아서, 자의적으로 거부한 것이라고만 믿고 있었다. 정말 그랬을까. 남들의 도움 없이 포토존에 올라갈 수 있었다면, 무대에 올라가 몸을 흔들 수 있었다면 나는 그때도 밑에서 사람들을 올려다보고만 있었을까. 남아있는 관성 탓에 무대에 올라가 춤을 추는 지인을 바라보고만 있던 내게 마이크를 쥐고 춤을 추던 스태프가 올라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괜찮아요.” 하며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다는 걸 알았으니까. 대신 등을 돌려 휠체어 손잡이를 조금만 당겨줄 수 있냐는 신호를 보냈다. 내가 설명하기도 전에 그들은 내게 다가와 휠체어를 가볍게 당긴다. 무대의 작은 경사를 휠체어 뒷바퀴가 부드럽게 넘어간다. 사람들은 나를 둘러싸고 춤을 춘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가볍게 어깨를 털며 호응했다.
축제의 부스는 끝도 없이 다양했다. 농인이자 퀴어인, 가정폭력 생존자이자 퀴어인, 어보리진(호주 원주민)이자 퀴어인 사람들의 저마다의 단체 정보를 알리고 인사를 건네며 섞여 들고 있었다. 그야말로 ‘교차성’의 장이었다. ‘퀴어 축제’에서 말할 수 있는 것 역시 정해져 있을 것이라는 나의 판단은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러 정체성이 얽히고설킨 몸을 가지고 있으니까, 우리는 그렇기에 어디서든,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힘이 있는 몸이라는 걸 알았다. 메인 행사가 벌어지는 무대에는 ‘Accessible Viewing Area’(접근 가능한 관람 구역)’라고 쓰인 표지판이 무대 왼쪽 맨 앞에 붙어 있었다. 그곳에는 의족을 찬 사람이나 휠체어를 탄 사람이 돗자리를 펴놓고 다른 지인들과 무대를 감상하고 있었다. 무대 앞쪽은 비어 있어서, 누구나 나와서 춤을 출 수 있었다. 파란 레깅스를 입은 할머니가 한 공연이 끝날 때까지 혼자 흥겹게 스텝을 밟았다.
가장 나를 흥분시켰던 건, 어디서든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존재를 숨기려는 듯 조용히 있지 않았다. 무지갯빛 튀튀 치마를 입고, 휠체어 바퀴에 리본을 달고, 등에 휠체어만 한 큰 깃발을 매단 사람들이 내 곁을 계속해서 지나쳤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인사를 건넸다. 해방감이 들었다. 시끄러운 몸을 가진 사람들이 시끄럽게 존재하는 모습이 짜릿했다. 현장의 많은 사람들은 눈만 마주쳤다 하면 ‘네 드레스가 무척 마음에 들어”, “네 휠체어 끝내준다”, ”메이크업 멋진데” 등의 칭찬을 건넸다. 나는 그곳에서도 많은 순간 주목받는 몸이었으나, 그 순간만큼은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라는 게 너무 좋았다. ‘환대’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내가 느낀 환대는 ‘나 그대로 괜찮을 수 있는’ 분위기였다. 그곳에는 수많은 퀴어한(이상한) 몸들이 있었다. 우리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하기를 요구받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사회 속에서 재현되지 않는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고민한 적 없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폭력적 시선을 주렁주렁 매달고 사는 이들이. 그 시간을 통과한 사람들은 다른 몸들을 ‘환대’할 줄 안다. 그 공간의 모든 것들이, 많은 사람이 내게 이곳에서는 설명하지도, 양해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당연하고도 시끄러운, 이상한 내 몸이 좋았다.
1 Liberty Disability Services, 2018년 설립한 장애인용 서비스 및 지원 단체. https://libertydisabilityservices.com.au/
김지우(구르님)
휠체어가 굴러서 ‘구르님’. 김지우보다 익숙해진 이름으로 유튜브,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한다. ‘구르는’ 삶에 대해 할 말이 많아서 영상을 만들고 글을 쓴다. 쓴 책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 『오늘도 구르는 중』, 『우리의 목소리를 공부하라』(공저)가 있다. 장애의 과거와 미래보다, 살아가고 있는 '현재'를 이야기하고 싶다. 최근에는 홀로 여행하는 즐거움을 깨달았다. 계획을 세우는 데 소질이 없는 탓에 다음에는 어디로 구를지 알 수 없지만, 멀리 굴러갈 의지와 바퀴만은 탄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