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문윤성SF문학상 대상 부문을 수상작 『크리스마스 인터내셔널』을 통해 많은 독자에게 사랑을 받았던 김원우가 첫 소설집 『좋아하길 잘했어』를 펴냈다. 데뷔 당시 “인류를 되돌아보게 하는 냉소적이지만 온기를 잃지 않는 시선”(김초엽 소설가), “속 깊은 유머, 사소할 수 있는 설정을 묵직하게 빚어내는 작가의 글솜씨”(이다혜 기자) 등의 평을 받았던 그의 특장이 이번 신작에서도 빛을 발한다.
수록된 세 편의 중편소설에는 좌충우돌하면서도 끝내 자기 삶의 방향을 찾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서툴고 사랑스러운 인물들의 걸음을 담겼다. 현실에 안주하며 시류에 영합하라는 삶의 낡은 규칙을 따를 줄 모르는 수많은 돈키호테와 로시난테가 소설 속에서 서로 눈 맞추며 요란하지 않은 우정으로 와글거린다. 유머와 선의, 용기로 가득한 소설을 선보인 소설가 김원우를 만나보자.
오랜만에 책으로 만난 독자분들에게 인사해주세요!
여름을 잘 건너고 계신가요? 2년이 살짝 넘는 기간 동안 쓴 글을 모아 엮은 책을 들고 이렇게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당기는 빛」과 「내부 유령」은 『크리스마스 인터내셔널』을 탈고한 직후부터 틈틈이 썼던 소설입니다. 마지막에 실린 「좋아하길 잘했어」는 지난해 겨울, 눈이 많은 지방을 여행하며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에서 시작된 소설이고요. 요즘 저는 일도 쉬고 글도 쉬면서 이런저런 취미 생활을 하는 비교적 한가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게임을 만들거나 만화를 그리거나 하면서요.
『좋아하길 잘했어』에는 세 편의 중편소설과 픽션적 에세이인 「작가의 말: 운석 줍기」가 실려 있어요. “타임머신이 나오고 초능력을 쓰고 개가 세상을 구하는, 서로 전혀 다른 세 가지 이야기지만 사실 모두 한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고 밝히시기도 했는데, 이 작품들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저 생각을 떠올렸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그때의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좋아하길 잘했어」의 뼈대가 거의 완성된 상태였고 저는 여전히 겨울 여행 중이었습니다. 극장에 앉아 입장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잘 알아듣지는 못해도 다른 나라의 작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렇게 멍하니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기는 빛」은 바라는 미래를 현재로 당겨오는 이야기라는 게 뚜렷한데, 그러고 보면 누군가를 구하는 것도 잘 보내주는 것도 미래를 바꾸려는 선택이 아닐까. 과거에 파묻히거나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선택. 그 미래가 일신의 안위도 과거로의 회귀도 아닌, 멀리 어딘가에 있다는 점도 서로 닮았구나. 그렇다면 이 세 소설을 하나로 엮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책의 제목은 “앞!”이다! 책 이름을 말할 때마다 미래를 향해 힘찬 걸음을 내딛는 주인공들처럼 앞! 하고 기합을 넣듯이 외치는 거야!’
그 방향성을 처음부터 한데 모으려고 했던 게 아니었기에 조금 신기하면서도 이것이 지금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제목은 바뀌었습니다만.
수록된 단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 혹은 독자분들이 제일 먼저 읽어주셨으면 하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고르기는 너무 어렵네요. 애들이 듣잖아요. 대신 읽는 순서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세 가지 이야기는 책을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읽는 온순한 독자를 가정하고 배치했습니다. 「당기는 빛」은 입구입니다. 비교적 단단히 짜여 있고 길이도 적당해서, 이 작품을 먼저 읽고 나면 이어지는 작품의 문법을 조금 더 쉽게 받아들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부 유령」이라는 짧은 복도를 지나면 출구 「좋아하길 잘했어」가 나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천천히 머무르다 가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건 주춧돌 - 기둥 - 지붕 같은 게 아니라서 순서를 바꾸거나 건너뛰어도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지금의 배치가 정답인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그렇게 순서를 정한 것까지가 이 책의 만듦새라고 생각하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해설을 쓴 심완선 평론가는 작품 속 화자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을 점성술식으로 이렇게 풀이했습니다.
“사교성이 뛰어나지 않고 대인관계에 서투르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를 어려워하는 탓이다. 사람을 사귀면 좁고 깊은 관계를 선호한다. 내심 자유롭고 충동적인 일면이 있으며 규범에 구속되기를 싫어한다. 감수성이 예민하여 작은 자극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
세 작품을 통틀어 이런 화자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 곁에 함께 둘 수 있어 기뻤던 인물은 어떤 작품의 누구였나요?
위에 언급된 인물형은 일반적으로는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사람은 아닐 거예요. 그런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사람은 「좋아하길 잘했어」의 화자 ‘승희’일 것 같습니다. “예민하면서 작은 자극에도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인데 자신의 기분을 돌발적이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면도 있죠. 이 감정의 파도를 그대로 받아내야 하는 사람이 수현이고요. 다행히 수현은 할 말은 하는 사람입니다. 무작정 응석을 받아주면서 속으로 스트레스를 쌓거나 반사적으로 밀쳐내지 않으면서요. 글을 쓰면서 승희 곁에 수현 같은 사람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과 저 자신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혹시 주위에 승희 같은 사람이 있다면 부디 친구가 되어달라고요. 승희가 제멋대로에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이긴 하지만, 사람은 착하잖아요.
수록작들에서는 대체로 과거 어떤 시절에 관한 기억이 굉장히 애틋하게 그려져 있어요. 하지만 단지 향수에 갇히거나, 반대로 과거와 철저하게 단절하는 식이 아닌, 그 소중한 기억 속에서 성장한 이들이 나아가고 살아간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책에서 과거는, 그리고 미래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과거는 낭만화되기 쉽습니다. 오래된 것이 곧 긍정적인 것이 되고 “그때가 좋았어”라는 말에는 운율마저 있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과거의 폭력을 희석하고 진보를 가로막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꽤 쉽고 요란하게 일어납니다. 트럼프의 선거 구호였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처럼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것에 맞설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과거에 대한 회상을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갈 수 있을까요? 그 첫걸음은 과거의 수많은 사건, 인물, 사물 등을 하나의 상징으로 뭉뚱그리길 멈추는 것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마치 동일해 보이는 것들 속에서 다양한 의미를 '재발견'하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이번 작품에서 그 점에 성공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저도 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번 작품을 쓰면서 새로 얻은 고민입니다.
고정된 과거와는 달리 미래는 변할 수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미래를 향해야 할 이유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소설에는 〈스타트렉〉이나 〈X 파일〉, 〈닥터 후〉 등 여러 SF 시리즈의 레퍼런스가 개입되어 읽다가 반가움을 느낄 수 있죠. 코니 윌리스를 좋아하신다고 이전에 인터뷰에서 밝히신 적도 있는데, 최근 2~3년 사이에 가장 재밌게 본 SF소설이 있다면 한 권 추천해주시겠어요?
얼마 전에 황모과 작가의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1923년에 일어났던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을 다룬 시간여행 SF입니다. 제가 현대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민호라는 인물에 금방 이입하게 됐는데,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시도하고 좌절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가까운 사건들을 떠올리며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슬픈 일이지요. 여러 입장에 있는 다양한 인물의 생생한 모습들도 인상 깊었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과거를 새로 쓰는 작업을 SF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시도하고 있다"고 밝힌 것처럼, 황모과 작가의 작품은 한국 SF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늘 기대되고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이 책에는 꼭 공인된 연인이 될 수 없더라도, 언젠가 잃고 헤어지더라도, 혹은 완전히 망해버리더라도 “좋아하길 잘했다”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작가님이 좋아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몇 가지 적어주세요!
저는 곧잘 후회를 하는 편입니다. 사실 인생의 대부분이 후회로 점철되어 있지요.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도 분명 전송 버튼을 누르자마자 후회할 거예요. 후회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했던 건 후회하지 않아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좋아하는 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그땐 끝을 생각하지는 않으니까요. 이별이 예정돼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을 주저하지 않는 마음 앞에서는 여전히 아득해집니다. 반려동물을 맞이하는 마음이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후기에 썼듯이 "용기라는 단어로는 이해할 수 없고 낙관이나 의지라는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지요. 이 책이 그런 마음으로 사랑을 시작하고 이별을 해야 했던 독자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복실이와 함께 잘 지내고 있을 거예요.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