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민한 연출과 자신만의 스타일로 독특한 미감을 만들어내는 일러스트레이터 박새한의 신작 그림책 『오늘의 잠에게』가 출간되었습니다. 책 속에 담긴 이야기와 작업 과정에 대해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살고 있는 작가와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 나누어 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박새한 작가님, 어제의 잠은 어땠나요? 안녕히 주무셨나요?
안녕하세요, 네 잘 잤어요. 사실 어제 동네 영화관에서 오컬트 영화 한 편을 봐서, 악몽을 꿀까 봐 잠시 걱정했는데, 아주 푹 잘 잤습니다.
잠이 지나가는 길목마다 속절없이 고꾸라지던 귀여운 사람들, 황새, 개구리, 고양이, 자전거, 등대, 열기구 등등이 마음에 남아 자꾸 웃음이 나게 하는 그림책입니다. 매번 정성스럽게 자기 몸을 누이는 잠 캐릭터가 정말 사랑스럽고요. 어떻게 이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나요?
되짚어 보면 이 그림책을 만들 때쯤 여러가지 어려운 일들이 있었어요.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전 세계적으로도요. 특히 끝없이 일에 매진하다 번아웃이 와 탈진한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에게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어요. 절망적인 상황에 혼자서 싸워야만 하는 주인공이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어 내는 이야기를 생각했지요. 처음에 쓴 글은 결말에서 잠이 영원한 잠에 빠지고, 그 후 이 세상 그 누구도 더 이상 잠들지 못하게 된다는 설정이었어요. 세상을 향한 잠의 복수랄까요! 이야기를 다시 손보면서 이 결말이 좀 가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프랑스 출판사 편집자 두 분이 번갈아 가며 저를 설득해 주셨어요(웃음). 처음에는 이 통쾌한 복수 서사를 포기하는 게 못내 아쉬웠지만, 지금 완성된 이야기의 구조가 만족스럽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 그림책 『오늘의 잠에게』는 프랑스의 에디시옹2024와 한국의 문학동네, 두 출판사에서 동시에 출간되었어요. 보통의 그림책 작업 과정과는 달랐을 것 같은데, 작가에게 이 경험은 어땠는지요?
한 권의 책을 서로 다른 편집자, 그것도 두 나라, 다른 문화권의 편집자와 동시에 작업한 건 처음이었어요. 작업을 진행하는 매 단계마다 두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피드백을 주셔서 재미있었습니다. 프랑스 편집자가 주목하지 않던 부분에 대한 의견을 한국의 편집자가 주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요. 가끔은 한 가지 주제를 놓고 상반되는 견해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작가로서 좀 더 입체적인 고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작업하는 과정 자체도 흥미진진했고, 또 배운 점도 많았던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단순한 도형과 반복을 주로 사용하는 작가님의 스타일은 강한 개성 덕분에 새롭고 예리한 느낌을 주는 것과 동시에 아날로그 수작업의 폭닥함, 보는 이를 무장해제시키는 위트, 대상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어서 그런지 한없이 따스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이런 상반된 특질이 동시에 깨우는 기분 좋은 감각이 『오늘의 잠에게』의 서사와 더없이 어울리지 않나 싶습니다. 평소의 작업 방식을 간단히 소개해 주시겠어요?
저는 2017년부터 지금까지 모든 그림은 종이에 펜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주로 디지털 작업을 했는데, 이곳에서 공부하는 동안 종이에 그리는 재미를 알게 됐어요. 그러고 나서 쭉 이 작업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디지털을 연상하게 하는 도형들은 모양자를 이용해서 그리고, 잉크를 말린 후 마커로 채색해요. 익숙하지 않은 주제가 주어질 때 평소와 다른 이야기를 쓰게 되는 것처럼, 제한적인 도구 안에서 이리저리 해결책을 찾아갈 때 예상치 못한 결과물이 튀어나오는 게 재미있어서 이렇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종이에 그린 그림은 Ctrl z로 되돌릴 수 없는데, 그 실수를 새로운 그림으로 만드는 과정이 의외로 즐거워요.
『오늘의 잠에게』를 만들며 특히 잘 전달하고자 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우선 독자들이 주인공 ‘잠’에게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야기의 화자와 주인공이 분리되어 있는 데다가,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을 원경으로 묘사하다 보니 매번 주인공이 콩알만 하게 나오는데요. 페이지를 넘기며 그를 따라다니다가 자칫 감정 몰입이 풀리는 일이 없기를 바랐어요.
한편으로는 독자들도 이 책을 읽다가 천천히 잠이 왔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지평선이 보이도록 모두가 잠든 풍경을 최대한 넓게 펼쳐 두었어요. 점점 어둡게 표현하여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다가오는 밤이 느껴지도록 했고요.
주인공인 ‘잠’은 항상 외롭고 불편하게 깨어 있어야 했기 때문에, ‘독자를 잠들고 싶게 만드는 것’과 ‘주인공 ’잠’을 잠 못 들게 만드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풍경은 풍경대로 잠들어 있고 잠은 잠대로 깨어 있는 상황 속에서 잠의 고독한 분투가 잘 표현된 것 같아요.
화자인 아이처럼 우리는 매일 같은 곳에서 잠들지만, 해가 지는 라인을 따라서 지구를 한 바퀴 바쁘게 도는 잠의 모습을 보면서 여기가 아닌 다른 세상, 다른 동네의 존재들을 자연스레 상상해 보게 돼요.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의 일상은 어떤지 조금 소개해 주세요.
사실 책 속에 이야기와는 상관없는 사소한 비밀이 있어요. 저에게 의미 있는 장소들을 책 속 곳곳에 숨겨 놓았거든요. 이야기가 시작될 때 ‘잠’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도시는 서울이에요. 저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서울타워, 하늘이 비치는 한강, 가파른 경사가 있는 동네 풍경과 머리 위를 가로지르는 전선과 전봇대 등, 제 기억 속의 서울을 떠올리면서 여러 요소들을 하나씩 그려 넣었습니다. 그리고 잠이 세상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오는 장소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스트라스부르의 한적한 근교, 알자스 지방의 풍경을 배경으로 만들었습니다. 주말에 머리를 식히러 자전거를 타고 근교에 갔다가 마주친 장면이에요. 나무 기둥에 철사를 대충 감아 놓은 울타리 옆으로 시냇물이 흐르고, 언제 지어졌는지 알 수 없는 오래된 창고들이 버려져 있고, 잡초가 무성한 넓은 언덕에 양들이 풀을 뜯고 있는, 오늘 찍었는데도 왠지 오래된 흑백 사진처럼 느껴지는 풍경이었어요.
여태껏 잠 못 들던 잠의 눈꺼풀이 마침내 까무룩 내려오는 장소의 배경으로 딱 알맞은 평화로움이네요. 마지막으로 이 그림책을 만날 독자들에게 인사를 부탁드려요.
저의 전작 『아빠 풍선』을 읽어 보신 분들, 『오늘의 잠에게』를 통해 저를 알게 되실 분들 모두 반갑습니다. 여러분도 모쪼록 이 풍경들 안에서 여러분만의 이야기를 발견하며 즐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잠과 반가이 만나시기를 바라며, 다음에 만나면 어떤 꿈을 꾸었는지도 들려주세요!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