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상상력으로 순문학과 SF, 환상 소설의 영역을 넘나들며 『퍼스트 컨택트』 『책에 갇히다』 『영원히 행복하게, 그러나』 『은하환담』 등의 앤솔로지를 통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이해를 섬세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해온 문녹주 작가의 첫 소설집 『지속 가능한 사랑』이 출간되었다. 문녹주 작가는 첫 소설집이라고 칭하기 어려울 정도로 능수능란하게 언어를 다루는 동시에, 자신이 구현해내는 세상에 대한 어느 누구보다 성실한 조사와 세밀한 설계로 독자들을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로 이끈다. 그리고 그 속에 자리하는 사람과 사람의 사이의 생동하는 마음에 대해 다방면으로 성찰해낸다.
목재가 절멸하고 이제 암기 노예를 ‘책’으로 부르는 세상 속에서 희망을 찾고자 하는 노예 소년 소녀의 이야기(「금서의 계승자」), 이미 죽은 사람이 제작한 가상 세계 속에서 전에 발견하지 못한 감정과 마주하는 이야기(「어머니의 도원향」)와 같이 환상과 SF적 설정이 정서적 파동을 일으키는 소설에서부터 한국에 짙게 베어 있는 공정성이라는 시선에 대해 통렬한 반전을 주는 단편(「누가 가장 불쌍한가」), 모녀 관계라는 복잡한 애증의 관계 속에 자리한 결핍을 그려낸 소설(「지속 가능한 사랑」)처럼 단단한 리얼리즘 소설들에 이르기까지, 문녹주가 그려낸 독창적인 세계관과 그 다종다양한 관계가 일으키는 정동의 파문 속으로 들어가보자.
그동안 여러 소설을 각종 앤솔로지와 지면에 발표해 오셨지만, 그 단편 소설을 모아 종이책 소설집으로 내신 건 처음입니다. 소회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읽은 출판물에서 줄기차게 접한 문장이 있습니다. “전부 편집부 덕분입니다.” 그 까닭을 이해했습니다. 전부 편집부 덕분입니다. 사람이 책을 내면 겸손해지는 게 아니라 솔직해지나 봅니다. 아직 한 권밖에 안 내봐서 잘은 모릅니다. 두 권 내면 어떤지 실험해 보겠습니다.
소설집 『지속 가능한 사랑』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속 가능한 사랑』은 문녹주라는 소설가가 2019년부터 쓴 단편 소설들을 모은 책입니다. 가슴 따뜻해지는 사랑 이야기부터 쌀에 대한 한국인의 집착까지 어디서 많이 본 것들을 모아 새롭게 뭉쳐봤습니다(이 문장을 쓰는 동안 고양이가 키보드를 밟았습니다). 읽고 싶은 이야기를 남이 안 써줘서 직접 써야 했습니다.
『지속 가능한 사랑』에 실린 SF소설들은 대개 동아시아 전통적인 이미지를 떠오르게 합니다. 그래서 많은 SF적 이미지가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생각나게 하는 반면, 이 책에 실린 SF는 오히려 옛된 사극의 풍경도 떠오르는데요. SF를 쓰실 때 특별히 동아시아 문화적인 것과 연결하고자 시도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동아시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 전반의 문화적 요소는 제게 중요한 재료입니다. 기본적으로 친숙한 데다 현지에서 현대적으로 어떻게 변용되어 왔는지 잘 압니다. 아무래도 많이 가져다 쓸 수밖에요.
『지속 가능한 사랑』에 실린 소설들은 서울의 이야기가 딱 하나입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촬영되는 충청남도부터 시작해 기후 변화 시대의 지리산, 책이라 불리는 인간 암기 노예들이 팔려나가는 전주 남부시장, 좀비 사태가 일어난 부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요. 심지어 서울이 나오는 「지속 가능한 사랑」은 여의도 국회 중심지입니다. 단편마다 등장인물들이 활동하는 지역을 다르게 선정하고, 또 지역 내의 계급도 상당히 구체적으로 구상하셔서, 이 또한 의도가 있을 거 같습니다.
제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들을 벌이는지 참으로 모를 일입니다. 소설을 쓸 지역을 정하면 출장을 가곤 합니다. 지역 향토사박물관도 들르고 명소도 찍어보고… 굳이 말하자면 오히려 수도권 관광객처럼 행동하지요. 그래도 돌아올 때면 자료를 잔뜩 들고 옵니다. 아무래도 지역성에 애착이 큰가 봅니다. 출생지는 서울이지만 집안은 양가 모두 남쪽 지역인 데다 어려서 읽은 소설 중에 자기 동네 자랑하던 것이 많아서 일이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저 그럴싸하기만을 빕니다. 자기 동네 얘기라고 반가워 해주시는 분들을 볼 때면 기쁩니다.
『지속 가능한 사랑』에 실린 소설들은 극단적으로 다른 두 방향에 있는 소설들이 섞여 있습니다. 어떤 소설은 너무 현실 같기도 하고, 어떤 소설들은 전에 들어보지 못한 신선한 상상력이 섞여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이런 두 가지 방향에도 불구하고, 모든 소설의 배경이 세세합니다. SF소설은 SF소설대로 과학적이거나 사회적인 설정이 탄탄하고, 사실적인 소설들도 저마다 배경이 확연히 다른데 빈틈이 없어 보입니다. 소설을 구상하실 때 이런 조사할 지점까지 미리 고민해 두시나요? 소설을 구상하고 현실화하기까지의 과정(조사 과정 등등)이 궁금합니다.
구상할 때는 아이디어 뭉치만 들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어느 정도 구체화할 때쯤에는 조사를 시작합니다. 출장을 갈 때도 있고, 해당 지역 주민이나 연고자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구할 때도 있습니다(어머니의 도원향은 언어학자 ‘주아’ 님의 도움을 받아 쓴 작품입니다). 그 다음엔 제일 지루한 대목입니다. 울면서 소설을 씁니다. 조사한 자료 중 태반을 못 써먹습니다. 다 쓰고 나면 이제 충분히 그럴싸한지 다시 살필 시간입니다. 특히 소설에 사투리가 등장할 때면 반드시 해당 사투리를 제1언어로 쓰는 사람의 검수를 받습니다.
벌써 많은 독자분들이 『지속 가능한 사랑』을 읽고 리뷰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다음 작품 계획은 어떻게 될까요? 혹시 간단하게라도 구상하시는 게 있다면?
장편을 쓰는 중입니다. 소위 ‘안 풀린’ 운동권 이야기겠네요. 생활인으로 자리 잡는 일에 실패한 86세대 운동권 부모와 대를 이어지는 전과자에 불과했던 사람들의 빛났던 청춘과 생활의 무게 앞에 혁명이란 말이 얼마나 덧없는지에 대한(이 문장을 쓰는 동안 고양이가 키보드를 또 밟았습니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며 자랐으면서도 결국 자기만의 운동을 찾아내고 마는 딸의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어떤 독자분들한테 『지속 가능한 사랑』을 추천하는지,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세요!
세상에 불만이 많으신 분. 잠깐 쉬다 가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지속 가능한 사랑
출판사 | 고블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