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적이고도 현실감 넘치는 이야기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남유하 작가의 청소년 소설 『가시 인간이 지구를 구한다』가 출간됐다. 제목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이 작품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선물을 받기는커녕 갑자기 손목에 가시가 돋아난 아이들의 놀랍고도 뭉클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서진 마음을 안은 채 지구를 구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제목부터 정말 인상적인 이야기가 탄생했습니다. ‘지구를 구하는 가시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떠올셨나요?
처음에는 ‘그냥 가시 인간’이 떠올랐어요. 저는 어떤 소재가 떠오르면 ‘만약’이라는 가정과 ‘왜?’라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데요. 이번에는 ‘왜?’가 중심이었어요. 그 아이에게 가시가 생긴 이유는 뭘까? 답은 이미 알고 있었어요. 외로움과 고립 때문이란 걸. 그리고 그 아이가 세상을 멸망시키는 열쇠가 되어 이 빌어먹을 세상을 없애야 하나, 고민하는 이야기로 상상이 뻗어 나갔지요. 그대로 썼다면 제목이 ‘가시 인간이 지구를 멸망시킨다’가 되었겠지만, 가시 인간에게 복수심이 아닌 사랑이 있다는 건 이야기를 써 나가면서 알게 된 것 같아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도요.
이번 작품은 청소년과 성인이 모두 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어떤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외로운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2023년 WHO는 외로움을 질병으로 분류했어요. 최근에는 외로움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시간당 100명이 사망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는데요. 외로움은 실제로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는 것과 맞먹을 정도로 해롭다고 합니다.
2018년 영국은 세계 최초로 외로움을 담당하는 부처를, 일본은 2021년 고립 고독 대책 담당실을 설치했는데요. 우리나라도 ‘외로움 없는 서울’ 사업이 시작되었고, 외로움 전담 차관을 지정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정책적인 변화도 중요하지만 코로나 이후에 고립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들의 마음을 문학이, 소설이 위로해 줘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작품 속에서 미처 사라지지 않은 블랙 버블이 대기권에 진입한 뒤, 작가님이 상상하신 '지구에 남은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지구에 남은 사람들은 검은 공동과 더불어 살아갈 텐데요. 갑작스레 생긴 검은 공동을 두려워하고 원망할 것 같아요. 광화문에, 한강 한가운데, 시민의숲에, 닿기만 하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생기는 거잖아요. 물론 공동 주변에는 위험 지역임을 알리는 노란 띠를 두르겠지만, 그래도 가끔 부주의로 혹은 다른 이유로 사고가 나고, 사람들은 상실을 경험하게 되겠지요.
절반의 디스토피아로 살아가는 그들은 가시 인간의 희생을 알지 못하겠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기억하는 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윤서와 예준처럼 생의 마지막으로 한 곳에 갈 수 있다면, 어떤 장소가 떠오르시나요?
스위스 취리히의 자그마한 언덕에 가고 싶습니다. 제 에세이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를 읽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희 엄마는 2023년 스위스에서 조력존엄사를 하고 그곳에 잠들어 계세요. 올여름도 2주기를 맞아 스위스에 다녀올 예정이고요. 사실 『가시 인간이 지구를 구한다』는 지난해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완성한 작품이에요.
윤서를 향한 예준의 믿음과 애정이 눈물겹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준을 향한 윤서의 감정은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윤서와 예준은 성격이 무척 다른 아이들이에요. 예준은 섬세하고 내향적이고, 윤서는 엄마의 사고를 겪기 전까지는 외향적인 아이였어요. 자기주장도 강하고요. 물론 윤서도 예준 못지않게 그 애를 좋아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 온전한 선택을 우선순위에 두었지요. 윤서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예준이 그런 윤서를 원망하지 않고 이해하는 지점이 멋지지 않나요?
작가님의 작품들은 청소년 독자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요.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계시다면, 어떤 이야기인지 살짝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새로운 작품에 대해 사람들에게 미리 이야기하면 완성하기 힘들다는 징크스가 있어서요. (웃음) 아주 피상적으로만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세 가지 청소년 장편을 구상하고 있는데요. 하나는 투명해지는 아이들의 이야기. 이 아이들도 예준과 윤서처럼 외로움을 품고 있을 것 같아요. 다른 하나는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는 아이가 거울 세계도 평행 세계도 아닌 어떤 곳으로 가는 이야기. 마지막으로 가상 현실을 통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시스템 오류가 나면서 미래에서 온 아이와 만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의 선한 의지를 믿는 작가님의 내면 또한 누구보다도 선하고 빛난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로 잔인하고 가차 없는 세상 속에서 끝끝내 선함을 믿는 작가님의 강한 내면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삶을, 사람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엄마에게서 물려받았다고, 아니 엄마의 신념이 스며들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성악설을 믿는 편이었는데요. 사회면에는 소설보다 더 잔인한 사건 사고들이 보도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그렇지만 일상을 살아가면서, 놀라우리만큼 선뜻 선의를 베푸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유지되고 나아간다고 생각했어요.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은 선과 악을 모두 지닌 존재이고, 중요한 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렸으니까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가시 인간이 지구를 구한다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