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의, 개와 인간의 시간
[김혜리 칼럼] 개론
개와 함께 하는 시간은 단선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시간의 가치를 재는 저울도 개와 인간은 다르다.
글: 김혜리
202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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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사람의 동거에 관한 이 칼럼은 앞으로 유쾌하다가 심란하다가 산란할 테지만, 대체로 개와 인간이 상호 시간에 끼치는 영향과 거기서 발생하는 새로운 차원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될 터다. 그러니 시작은 ‘개론’이 어떨까. 

 

우선 개와 인간은 수명이 다르다. 개의 나이에 7을 곱하면 인간의 해당 연령이라는 이론은 부정확한 가설로 판명됐다. 개의 발달 그래프가 인간의 그것과 다르므로 개의 첫 1년은 인간의 15년 정도에 해당하는 반면 두 살 이후로는 발달과 노화의 속도가 떨어진다고 한다. 예컨대 갓난 강아지는 5, 6개월 안에 세계의 윤곽과 개념을 파악해 낸다. 당신의 강아지는 상상 이상의 과업을 수행 중이다! 어쨌든 개는 장수해도 20년 남짓 산다. 그러므로 자식이나 연인, 친구와 맺는 관계와 달리 인간이 개를 반려하는 일은 ‘사별’을 전제로 사랑에 뛰어드는 비장한 결단이다. 영화 <컨택트>의 원작인 테드 창의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에는 외계인 헵타포드의 비선형적 시간관이 소개된다. 시작과 끝, 과거와 미래가 구분되지 않는 그들의 언어체계에서 시간은 전체로서 한눈에 인식된다. 소설의 주인공인 언어학자는 헵타포드의 시간관에 의해 미래의 딸이 일찍 죽으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의 출생을 받아들이고 마음껏 사랑한다. 내가 요리를 하느라 도마에 감자나 당근을 똑똑 썰기 시작하면 나의 개 아로하는 어김없이 주방 입구에 배를 깔고 앉아 내게 시선을 고정한다. 그 순간 나는 미래의 어느 날 저녁 식사를 준비하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고 눈물 흘리는 나를 볼 수 있다. 두 번째 개를 잃고 나서 생긴 타임슬립 능력이다. 알면서도 나와 아로하는 그 점을 향해 한 번에 하루씩 나아간다. 개와 함께하는 시간은 단선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명상을 지도하는 스승들이 강조하는 기본이 있다면 과거를 곱씹거나 미래를 근심하는 대신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라는 것이다. 이 가르침을 명상인인 김보라 영화 감독은 “커피를 마실 때는 커피만 마시는 것”이라고 깔끔히 정리한 바 있는데, 개는 이 분야에서 타고 난 대가다. 그들은 지금 코 앞의 고양이 똥 냄새와 발바닥에 닿는 토끼풀의 부드러움에 온전히 집중하고 흥분을 머금은 얼굴로 인간을 돌아본다. 개와 함께 있는 동안만큼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내가 초라해 보이는 시간은 없다. 시간의 가치를 재는 저울도 개와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변화의 결핍을 열등함의 징후로 여기고 희귀하고 특별한 시간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개는 반복을 사랑한다. 애니메이션 <환상의 마로나>에서 마로나는 거리 생활 끝에 곡예사 마놀과 가족을 이루지만 마놀이 성공을 원하기 시작하면서 작별이 다가온다. 마놀이 입단을 원하는 대형 서커스단은 개를 환영하지 않는다. “인간은 갖지 못한 걸 원한다. 꿈이라지만 행복을 모르는 소리다. 우리의 작은 집은 어딘가 달라졌다. 새로운 냄새가 났다. 나쁜 냄새, 불행의 냄새. 그에게 슬픈 냄새가 나는 건 싫었다.” 마로나는 한밤중에 몰래 마놀을 떠난다. 개가 반복을 지루해하지 않는 이유는 모든 반복에서 차이를 찾아내는 재능 때문이다. 개는 똑같은 길과 활동에서 매번 경이로움과 기쁨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개는 칸트다. 

 

배고픔의 정도, 해의 기울기도 시계 구실을 하지만, 개는 주로 후각으로 시간의 경과를 헤아린다고 알려져 있다. 인간이 외출한 다음 그의 냄새가 집안 공기 중에 희박해지는 정도로 몇 시쯤 됐는지 짐작한다는 설이다. 그렇다면 개들에게 우리는 서서히 사라지는 존재인 걸까? 냄새가 완전히 가시기 전에 돌아온다면 떠나지 않은 셈 쳐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반려인의 죄책감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도 같다. 개는 인간의 시간 감각을 다듬어준다. 일주일의 달력을 정하고 계절에 이름을 붙인 것은 인간이지만, 실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성향의 프리랜서인 나는 개를 얻고 나서야 주말의 고양감과 계절의 이행을 실감하게 되었다. 나의 개는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주말 산책을 더욱 즐거워하는데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흘리는 여유와 행복감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주말에 나들이와 모임에 나선 가족과 연인, 친구들은 더 많이 웃고 개에게 한층 친절하다. 식당의 야외 테이블은 맛있는 음식 냄새와 대화로 북적인다. 개는 인간의 흥을 냄새 맡고 덩달아 신이 난다. 계절에 관해 말하자면 개와 사는 사람들은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는 날짜를 특정할 수 있다. “오늘부터 봄이군!” 그들의 개가 풀 냄새를 맡고 땅을 파는 강도가 현저히 달라져 모를 수가 없다. 한편 반려인으로서 나의 입동(立冬)은 개가 산책 루트를 짧은 길로 변경하는 날이다.

 

역도 성립한다. 내가 개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 말이라 장차 이 칼럼에 다시 등장할 법한 말이 있다. 18세기 프랑스인 리바롤이 남긴 문장이다.

 

”우리가 동물들과 교섭관계를 갖게 될 경우 곧 극복하기 어려운 한 가지 난처한 문제가 생겨난다. 즉 우리는 동물들을 인간의 범주로 옮겨다 놓지는 못하면서 그들을 자신의 범주 밖으로 끌어낸 결과가 되는 것이다. 즉 개는 인간도 아니면서 이미 짐승답지 않은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에서 재인용, 로제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개는 자신의 행동이 인간에게 유발하는 반응을 경험을 통해 학습하고 원하는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행동하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한다. 일례로 나와 함께 산 개들은 주간지의 마감 주기라는 개념을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가장 총명하고 독립적이었던 개는, 목요일이 도래하면 “오늘이 그날이군” 감을 잡고 내가 뿜어내는 패닉의 농도를 가늠한 다음 커튼을 친 켄넬 안으로 들어가 4시간이고 5시간이고 나오지 않았다. 별 볼 일 없는 날이라는 걸 알아서다. 

 

제한된 경험에서 비롯된 견해지만, 1인 1견 가구의 시간은 식구가 여럿인 반려 가정의 시간과 꽤 다르다. 서로가 모두인 개와 인간의 시간은 간혹 피로할 만큼 단단히 묶여있다. 1인 1견 가구의 개는 인간이 언제쯤 돌아와 산책을 나갈 수 있을지 고대하고 인간의 일거수 일투족에서 신호를 해독하려고 초집중한다. 인간은 내 개를 홀로 두고 하는 일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회의하며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낸다. 두 존재의 불안과 불완전함이 합쳐져 행복과 가장 비슷한 무엇이 발생한다. 그것이 내가 아는 개와 인간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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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

테리어 믹스 아로하 샨티 킴과 서울에서 살고 있다. 팟캐스트 <김혜리의 필름클럽>, <조용한 생활> 운영. 『묘사하는 마음』,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그림과 그림자』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