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구의 시체 발견, 진실을 알고 싶었다…” - 하성란 『A』
하성란 작가의 소설은, 사회에 벌어지는 사건들에 민감하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이내 잊혀지는 화재, 납치 사건들은 그녀의 소설 속에서 활자로 새겨진다.
201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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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ident: 오대양 사건,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좋을
“그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어떤 사실도 밝혀지지 않은 채, 사이비 종교집단의 자살로 처리되었어요. 언론 보도 이면에는 과연 어떤 진실이 있을까.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오랫동안 생각했어요.”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오대양 공예품 공장식당 천장에서 32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손이 묶이거나 목에 끈이 감겨있던 시체는 오대양주식회사 공예품공장의 대표와 가족, 종업원이었다. 이 사건은 종교집단의 자살사건으로 처리되어 자세한 원인이나 경위는 밝혀지지 않은 채 마무리되어 잊혀졌다.
당시 혈기 넘치는 20대 문학청년, 하성란 작가는 이러한 사후처리를 지켜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 일이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고백했다. 20년도 더 지난 지금, 더 이상 사람들은 이 사건을 기억하거나 이야기하지 않지만, 하성란 작가의 신작 『A』는 오늘, 그날의 사건을 소환한다.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둔 엄마가 되었다. “그때 바로 썼다면 단순히 소재주의에 그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겠지만,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사건 너머 더 중요한 것을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오대양 사건을 얼핏 연상시킬 수 있는 소설이지만, 굳이 그 사건을 떠올리지 않아도 될 소설이에요. 마케팅에 필요해서 오대양 사건을 내세운 것 같은데, 어떤 것 같으세요?” 하성란 작가는 되려 인터뷰어에게 물었다. 한 날 한 시에 많은 사람들이 집단 자살을 했다는 충격적인 모티브만 따 왔을 뿐 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과 배경은 실제 사건과 다르다.
“만약 이 소설을 읽고 그 사건이 떠올려진다면, 잊혀졌던 사건을 다시 떠올리면서 어느 누군가가 최영주처럼 비밀을 캐려는 분이 있을지 모른다 싶었어요.” 그 소설과 연관짓는 게 내심 꺼려지는 까닭은 딱 하나다.
“그 사건에 관련되었지만, 살아남아서 여전히 트라우마를 갖고 계신 분들이 있을 테니까요. 잘 모르는 사람이 단지 소설의 소재거리로 썼다고 오해하실 지도 모르잖아요. 그분들에게 다시 한번 그 일을 환기시켜 또 다른 아픔을 주는 건 아닌가 싶어서요.”
Appease: 소설은 소셜(social)이다
하성란 작가는, 1996년 단편소설 「풀」로 등단, 이후 『루빈의 술잔』 『웨하스』 『삿뽀로 여인숙』 등의 소설을 통해 보이지 않는 삶의 이면을, 감각적인 묘사와 세밀한 기록으로 재구성해냈다. 하성란의 언어가 주축해낸 소설 세계는 동인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통해 인정받아왔다.
하성란 작가의 소설은, 사회에 벌어지는 사건들에 민감하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이내 잊혀지는 화재, 납치 사건들은 그녀의 소설 속에서 활자로 새겨진다. 다시 재현되고 기억된다. “창작하는 것들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면 별 의미가 없다고 봐요. 현실에 몸담고 있다면 거기서 소재거리를 찾아내야죠. 고민해야 할 것은 그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야기할 것인가 하는 거예요.”
그녀에게 소설은 곧 소셜social이다. 소설은 이 시대를 읽어내야 하고, 우리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포착해야 한다. 쓸 때마다 마음이 아프지만, 그럼에도 그 사건들을 소설로 남기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씨랜드 참사를 소재로 한 「별 모양의 얼룩」같이 사건이 전면에 깔린 소설 같은 경우, 우선 인물에 대해 먼저 상상해요.
그들 속에 이런 인물이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하고, 제가 그 허구의 인물이 되어 사건의 공간에 살아보는 거예요. 백퍼센트 그들의 고통을 겪어냈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게 하려고 노력은 하는 거죠. 작가가 되려면 수많은 경험을 하라고 하지만 직접 해낼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독서를 통해서도 경험의 한계를 느낀다면, 상상해서 경험해보는 수밖에 없어요.”
소설 『A』는 미궁의 집단자살사건과 동시에, 여성 공동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접목되어 있다. 시골의 한 마을, 초등학교 키밖에 되지 않는 작은 여자(어머니)가 들어와 세운 ‘신신양회’라는 시멘트 공장이 급성장을 이룬다. 어머니와 공장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자매처럼 지내며, 그녀들은 원하는 남자들과 아낌없이 사랑하고, 떠나는 사람에게 미련을 갖지 않는다.
기존의 한국 소설의 관습과는 달리, 아버지의 부재는 결핍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그녀들의 삶과 사랑은 건강하다. 이 역시 작가가 오래전부터 고민해왔던 또 다른 삶의 방식이다. “우리들에게 엄마, 어머니란 단어는 독립적인 단어였다. 이모들은 자신들이 만나고 사랑했던 남자들, 결국 ‘신신양회’ 아이들 중 누군가의 아버지이기도 했던 남자들에 대해 언제나 웃고 떠들며 이야기했다. (…)이모들에게 남자들이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존재로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거였다. 이모들 또한 바람과도 같아서 그 누구에게도 잡히지 않았다.(p.165)”
언뜻 이질적으로 보이는, 집단 자살사건과 여성 공동체 이야기는 시멘트 공장이라는 배경에서 상징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시멘트 공장은 쇠붙이로만 이뤄져 있고, 아름답지 않아요. 허허벌판에 서 있는 모습이 내 자신이 헐벗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 같았어요. 여의도만 봐도 고층 건물들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잖아요. 하늘에 치달으려고 하는 욕망. 그런 것에서 남성성의 상징을 느꼈어요.”
이러한 상상력 역시 현재의 사회 속에서 드러나는 남성성의 한계에서 출발한다. “저희 어머니 때는, 결혼제도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인륜이 천륜이다.’ 여기며 참고 살았잖아요. 결혼제도를 아예 깨뜨리자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해보자는 거예요.”
“더 나아가 남성성, 여성성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동안 세계가 남성성에 의해 지배되었고, 이제는 범죄, 전쟁으로 그 모순점이 드러나고 있잖아요. 해결책은 뭘까. 우리들 속에 흐르고 있는 여성성이 답이 될 수 없을까? 하는 거죠.”
A: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A들이 있었다
그리하여 제목 A,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가 연상되는 이 제목은 가장 여성의 고통을 잘 드러낸 소설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떠올렸다. 물론 소설 속 A는 주홍글씨의 A와는 다르다. “『주홍글씨』를 통해 호손이 보여주는 여성에 대한 시선이 무척 자유롭다고 느꼈어요. 지금 사회가 여성을 보는 시각에 대한 조롱이랄까요. 그런 식으로 A를 떠올렸어요.”
그리고 이어 이렇게도 강조한다. “이 소설 속에서 A는 중요하게 읽히는 코드이지만, A의 의미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됩니다.”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A들이 있었다. 주홍 글자A가 뭔가 큰 뜻을 담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그 글자를 보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생각한 거였다.”(p.276)
결국 A와 진실을 향한 미스터리. 그녀의 소설에서는 일관되게 미스터리, 컬트, 환상적인 요소가 눈에 띈다. 이것은 그녀의 성격과도 관련되어 있다. “좋아해요. 어떤 범인을 밝혀내야 하는 문제가 있으면, 끝끝내 풀어내려고 매달릴 거예요.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어요. 또 그런 요소들을 쓰지 않으면, 소설을 다채롭게 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고, 저에게도 잘 어울린다고 느껴져요.”
하성란 작가가 매번 미스터리하게 다가오는 질문은 이러하다. 진실이란 무엇인가? “진실은 사실과 달라서 당사자들에 따라 많이 달라지잖아요. 역사가 사실을 기록하고 있을까요? 굵직굵직한 얘기들을 다루고 있지만, 역사는 결국 승자의 기록이고, 문학은 패자의 기록이에요.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던 이면의 인물들을 쫒아 만나는 일이죠. 그렇다면 작가는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하고, 많은 정보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이런 일을 소설가 김별아씨가 잘 하고 있죠. 역사소설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미스터리하게 느끼는 부분도 그런 것들이에요. 과연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을까? 알려진 것 뒤에 숨겨진 것은 무엇일까? 그래서 제가 무서워하는 것도 깊은 바다예요.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물.” 이번 소설에도 이러한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
“신신양회 사건에 가장 크게 놀란 것은 그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에 대해서도 몰랐다는 사실에 자신들이 눈뜬장님이었다는 사실에 놀랐다.”(p.109)
Attempt : 소설 쓰는 일에 확신을 가졌다
장편소설 『내 영화의 주인공』(2001) 이후 9년만의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이 계간 <자음과 모음>과 연재되는 동안, 『A』가 하성란 작가의 야심작이 될 거라는 얘기가 나왔고, 이전과는 또 다른 전환기의 작품이 될 거라는 얘기도 들렸다. 출판사가 퍼트린 소문일 뿐이라며 고개를 내둘렀지만, “이제 소설 쓰기에 확신을 갖는다.”고 고백한 하성란 작가에게 『A』가 각별한 작품인 것은 분명했다. “데뷔 15년이 되었거든요. 이때쯤 되면, 내가 하는 일에 확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앞으로 ‘소설 쓰기 싫어, 지겨워’하지 않고, 내가 소설에 저항하면서 나아가겠다는 걸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소설이 완성도가 높다,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얘기들을 떠나서, ‘하성란이 소설을 쓰는 것에 이제 확신을 가졌다’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확신이란, 이런 거다. “제가 소설을 좋아하고, 이제 소설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소설을 쓸 거라는, 저 자신과의 약속이라고 할까요. 또 다른 장편소설을 쓸 수 있다는 각오가 생겼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제는 힘들다고 해서 발을 빼지 않을 거고요. 신인일 때와는 또 다르게 열심히 소설을 쓸 생각이에요.”
소설가로서 15년, 개인으로서는 이 소설을 쓰면서 마흔을 넘겼다. 이러한 시간이 소설에 앞서 본인에게 하나의 전환점으로 다가왔다. “마흔이 되면서, 앞으로 십여 년간은 장편소설을 열심히 쓰기로 했어요. 그동안 독자의 뒤통수를 치려고 하는 젊은 작가의 패기만 갖고 있었다면, 이제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 연민을 가지고 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호흡이 생겼어요.
40대라고 어느 날 갑자기 삶의 깊이가 생겨나는 건 아니겠지만, 그동안 알게 모르게 축적된 것들이 있다고 봐요. 무엇보다 사물과의 거리 두는 일이 가능해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치열하게 달라붙기만 했는데, 좀 더 물러서니까 먼 동선이 보인다고 할까요.”
Auther : 소설가로 살아가기
홍대의 한 출판기획사에서 2년째 근무하고 있는 하성란 작가. “엄마, 직장인, 아줌마, 아내, 소설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것이 ‘저’라는 인물”이라고 자신을 표현한 적이 있다. 그녀의 다양한 정체성들은 나름 사이가 좋은 편이다. “전부 다른 일들이잖아요. 이 일들이 각각의 일에 도움을 주는지도 모르겠어요.”
“소설을 쓰는 일이 제 주요한 일이라고 한다면, 다른 일은 좀 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큰 아이 축제에 가서 바자회를 가고, 떡볶이를 파는 일이 굉장히 즐겁고 재미있어요. 소설을 쓰는 일에서 두 발을 뺀 일이잖아요. 그런 게 휴식이 아닐까 생각해요.”
치밀한 묘사, 극단적인 상상이 요구되는 하성란표 소설쓰기는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작가를 몰아붙이는 일이다. “소설을 쓰며 사는 일은, 행복한 일보다 그늘진 일을 많이 보는 일이잖아요.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잊히지 않고 오래 가슴에 남아요.” 오히려 이런 자신에게 출판 기획이라는 또 다른 일이, 삶의 균형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된단다.
그럼에도 소설가란 정체성은 자신에게 가장 만족감을 준다. 소설가로 사는 삶이 결코 녹록치 않음에도 끊임없이 소설을 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소설 쓰는 일이 정말 재미있기 때문”이라는 소박한 대답이 돌아온다. 그녀는 이 얘기를 인터뷰 중 두 번, 세 번 힘주어 반복했다.
“수많은 재미있는 일을 해봤는데요. 소설 쓰는 일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는 것 같아요. 어떤 소재로 이야기를 써야 할까, 가끔은 아무것도 잡히지 않고 어둠 속을 걸어가는 것처럼 막막하지만, 소설 한 편 끝냈을 때의 쾌감은 대단하거든요. 지금 제 큰 아이가 문학을 하겠다고 해요. 예전에는 말렸는데, 이제는 하라고 해요.”
Amazones: 남성/여성의 잣대에서 해방되길
“여성성보다는 남성성이 강한 것 같아요.(웃음) 성실한 데에 있어서는 60퍼센트 정도만 성실해요. 가까스로 어떤 일들을 해내요. 아이들도 가까스로 길러내고요. 마무리가 덜 되어 있어서 제가 한 일에는 꼭 표시가 나요.(웃음) 그렇지만 소설만큼은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애초에 생각했던 차분한 이미지와는 달랐다. 하성란 작가는 오히려 쾌활하고 수더분한 쪽에 가까웠다. 물론 소설을 쓰는 소설가 하성란과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하성란의 모습은 다르다. 지금의 자신을 ‘소설가 하성란의 대변자’라고 표현했다. “긴 시간 모니터 앞에 앉아있으면, 저 자신을 잊어버려요. 소설이란 장르는 굉장히 인공적인 장르라서, 작가가 머리를 굴려야하는데도, 비이성적인 차원의 일이에요. 소재나 소설거리를 가져올 때는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이성적으로 사고하지만, 그 이후에는 이성 밖의 어떤 것들이 주재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 않다면, 지금 여기에 나와 있는 제가 그 많은 글들을 어떻게 썼겠어요.(웃음)”
그토록 즐겁다는 소설쓰기에 대해 더 물었다. 언제나 사물을 달리 감각하려는 그녀의 남다른 문장은, 적확함에서 비롯된다. “어떤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면, 그 상황을 가장 적합하게 묘사해줄 수 있는 문장을 골라요. 그래서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나면, 다음에 같은 주제로 청탁을 받았을 때 이전의 글에서 나아가지 못해요.
내가 썼던 문장을 깨는 일이 가장 어려워요. 좋은 소설이란 스토리나 그 속에 담겨 있는 어떤 이념도 중요하지만 가장 적확한 문장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 비문도 발견되지만, 가장 필요한 말만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첫 문장을 시작하는 일은, 누구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첫 문장을 길어 올리는 그녀만의 비책이 독특하다. “일단 빈 모니터 앞에 앉게 되면 난감하죠. 무슨 단어를 골라야 할지, 무슨 문장으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져요. 그럴 때면 모니터 한 페이지를 욕이란 욕으로 다 채워요. 저 욕 진짜 많이 알거든요.(웃음) 잘 하진 않지만. 욕을 한바닥 쓰고, 지운 후에 첫 문장을 시작해요.(웃음)”
“일단 시원하잖아요.(웃음) 욕이 소설을 향한 것일 수도 있고,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고요. 저는 저 자신에게 많은 말을 해요. 이 정도 밖에 못하나, 질책하기도 하고, 조금 더 힘내자고 응원도 하고요.”
이 소설에서도 드러나듯, 남성성/여성성이라는 이중 잣대에서 해방되고 싶은 것은, 소설가 자신의 문제와도 연관된다. 그녀는 여류작가의 꼬리표가 붙는 게 끔찍하게 싫었단다. 아마 이러한 점이 그녀가 다른 작가들에 비해 진중한 문제의식, 가볍지 않은 소재에 대해 글을 쓰게끔 추동한 힘이 되기도 했을 테다.
“옛날의 ‘여류작가’로 불리던 분들은 대단한 분들이셨잖아요. 여자가 글을 쓸 수 없는 시대에 글을 쓴 분들이고요.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고, 여자 남자 따로 없이 많은 분들이 글을 쓰고 있어서 여류작가라는 말이 시대착오적인 단어라는 반감이 있었어요. 저는 제 소설을 읽고, 딱 “아, 여자가 썼구나.” 이런 말을 듣기 싫어서, 굉장히 애썼어요. 소설을 시작할 때부터 내 정체성을 여자, 남자로 규정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오히려 소재를 찾는데 한계점도 있지만, 자유로운 면도 있고요.”
독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이러한 편견에서 해방된 독서를 해보라고 권유한다. “독자들이 책을 읽을 때 은연중에 이 작가가 남자인가, 여자인가 어떤 잣대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여자인가, 남자인가 뿐만 아니라 젊은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에도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 같아요. 다른 작가의 작품에 달린 리플들을 보며, 젊은 작가가 쓴 글은 비교적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이제는 그런 독서법에서 벗어나는 게 어떨까 제안하고 싶어요. 편견을 지우고 독서를 하면, 또 다르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하성란 작가는 나이 먹는 게 두렵지 않단다. “그만큼 얻어지는 게 분명히 있을 거란 생각 때문에요. 제게도 혜안이 생기겠죠. 박완서, 박경리 선생님처럼. 황석영, 박범신 선생님처럼. 현장에서 열심히 쓰고 계시잖아요. 그분들이 계셔서 제가 전범이 될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고요. 열심히 소설을 써서 좀더 색다른 소설을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녀가 자주 인용하는 데카르트의 말처럼. “어둠 속을 걷는 것처럼 천천히”
그렇게 나아가겠다는 말이다. 의지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지금 하성란에게 A는 무엇일까?
“작가 후기를 쓸 때 정말 외로웠거든요. 아마 또 바뀌겠지만, 지금의 A는 alone의 A입니다.(웃음) 네. 소설가는 정말 외로운 존재예요. 외로워요.(웃음)”
“그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어떤 사실도 밝혀지지 않은 채, 사이비 종교집단의 자살로 처리되었어요. 언론 보도 이면에는 과연 어떤 진실이 있을까.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오랫동안 생각했어요.”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오대양 공예품 공장식당 천장에서 32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손이 묶이거나 목에 끈이 감겨있던 시체는 오대양주식회사 공예품공장의 대표와 가족, 종업원이었다. 이 사건은 종교집단의 자살사건으로 처리되어 자세한 원인이나 경위는 밝혀지지 않은 채 마무리되어 잊혀졌다.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둔 엄마가 되었다. “그때 바로 썼다면 단순히 소재주의에 그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겠지만,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사건 너머 더 중요한 것을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오대양 사건을 얼핏 연상시킬 수 있는 소설이지만, 굳이 그 사건을 떠올리지 않아도 될 소설이에요. 마케팅에 필요해서 오대양 사건을 내세운 것 같은데, 어떤 것 같으세요?” 하성란 작가는 되려 인터뷰어에게 물었다. 한 날 한 시에 많은 사람들이 집단 자살을 했다는 충격적인 모티브만 따 왔을 뿐 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과 배경은 실제 사건과 다르다.
“만약 이 소설을 읽고 그 사건이 떠올려진다면, 잊혀졌던 사건을 다시 떠올리면서 어느 누군가가 최영주처럼 비밀을 캐려는 분이 있을지 모른다 싶었어요.” 그 소설과 연관짓는 게 내심 꺼려지는 까닭은 딱 하나다.
“그 사건에 관련되었지만, 살아남아서 여전히 트라우마를 갖고 계신 분들이 있을 테니까요. 잘 모르는 사람이 단지 소설의 소재거리로 썼다고 오해하실 지도 모르잖아요. 그분들에게 다시 한번 그 일을 환기시켜 또 다른 아픔을 주는 건 아닌가 싶어서요.”
Appease: 소설은 소셜(social)이다
하성란 작가는, 1996년 단편소설 「풀」로 등단, 이후 『루빈의 술잔』 『웨하스』 『삿뽀로 여인숙』 등의 소설을 통해 보이지 않는 삶의 이면을, 감각적인 묘사와 세밀한 기록으로 재구성해냈다. 하성란의 언어가 주축해낸 소설 세계는 동인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통해 인정받아왔다.
하성란 작가의 소설은, 사회에 벌어지는 사건들에 민감하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이내 잊혀지는 화재, 납치 사건들은 그녀의 소설 속에서 활자로 새겨진다. 다시 재현되고 기억된다. “창작하는 것들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면 별 의미가 없다고 봐요. 현실에 몸담고 있다면 거기서 소재거리를 찾아내야죠. 고민해야 할 것은 그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야기할 것인가 하는 거예요.”
그녀에게 소설은 곧 소셜social이다. 소설은 이 시대를 읽어내야 하고, 우리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포착해야 한다. 쓸 때마다 마음이 아프지만, 그럼에도 그 사건들을 소설로 남기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씨랜드 참사를 소재로 한 「별 모양의 얼룩」같이 사건이 전면에 깔린 소설 같은 경우, 우선 인물에 대해 먼저 상상해요.
그들 속에 이런 인물이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하고, 제가 그 허구의 인물이 되어 사건의 공간에 살아보는 거예요. 백퍼센트 그들의 고통을 겪어냈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게 하려고 노력은 하는 거죠. 작가가 되려면 수많은 경험을 하라고 하지만 직접 해낼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독서를 통해서도 경험의 한계를 느낀다면, 상상해서 경험해보는 수밖에 없어요.”
소설 『A』는 미궁의 집단자살사건과 동시에, 여성 공동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접목되어 있다. 시골의 한 마을, 초등학교 키밖에 되지 않는 작은 여자(어머니)가 들어와 세운 ‘신신양회’라는 시멘트 공장이 급성장을 이룬다. 어머니와 공장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자매처럼 지내며, 그녀들은 원하는 남자들과 아낌없이 사랑하고, 떠나는 사람에게 미련을 갖지 않는다.
기존의 한국 소설의 관습과는 달리, 아버지의 부재는 결핍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그녀들의 삶과 사랑은 건강하다. 이 역시 작가가 오래전부터 고민해왔던 또 다른 삶의 방식이다. “우리들에게 엄마, 어머니란 단어는 독립적인 단어였다. 이모들은 자신들이 만나고 사랑했던 남자들, 결국 ‘신신양회’ 아이들 중 누군가의 아버지이기도 했던 남자들에 대해 언제나 웃고 떠들며 이야기했다. (…)이모들에게 남자들이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존재로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거였다. 이모들 또한 바람과도 같아서 그 누구에게도 잡히지 않았다.(p.165)”
언뜻 이질적으로 보이는, 집단 자살사건과 여성 공동체 이야기는 시멘트 공장이라는 배경에서 상징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시멘트 공장은 쇠붙이로만 이뤄져 있고, 아름답지 않아요. 허허벌판에 서 있는 모습이 내 자신이 헐벗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 같았어요. 여의도만 봐도 고층 건물들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잖아요. 하늘에 치달으려고 하는 욕망. 그런 것에서 남성성의 상징을 느꼈어요.”
이러한 상상력 역시 현재의 사회 속에서 드러나는 남성성의 한계에서 출발한다. “저희 어머니 때는, 결혼제도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인륜이 천륜이다.’ 여기며 참고 살았잖아요. 결혼제도를 아예 깨뜨리자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해보자는 거예요.”
“더 나아가 남성성, 여성성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동안 세계가 남성성에 의해 지배되었고, 이제는 범죄, 전쟁으로 그 모순점이 드러나고 있잖아요. 해결책은 뭘까. 우리들 속에 흐르고 있는 여성성이 답이 될 수 없을까? 하는 거죠.”
A: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A들이 있었다
그리하여 제목 A,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가 연상되는 이 제목은 가장 여성의 고통을 잘 드러낸 소설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떠올렸다. 물론 소설 속 A는 주홍글씨의 A와는 다르다. “『주홍글씨』를 통해 호손이 보여주는 여성에 대한 시선이 무척 자유롭다고 느꼈어요. 지금 사회가 여성을 보는 시각에 대한 조롱이랄까요. 그런 식으로 A를 떠올렸어요.”
그리고 이어 이렇게도 강조한다. “이 소설 속에서 A는 중요하게 읽히는 코드이지만, A의 의미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됩니다.”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A들이 있었다. 주홍 글자A가 뭔가 큰 뜻을 담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그 글자를 보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생각한 거였다.”(p.276)
결국 A와 진실을 향한 미스터리. 그녀의 소설에서는 일관되게 미스터리, 컬트, 환상적인 요소가 눈에 띈다. 이것은 그녀의 성격과도 관련되어 있다. “좋아해요. 어떤 범인을 밝혀내야 하는 문제가 있으면, 끝끝내 풀어내려고 매달릴 거예요.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어요. 또 그런 요소들을 쓰지 않으면, 소설을 다채롭게 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고, 저에게도 잘 어울린다고 느껴져요.”
하성란 작가가 매번 미스터리하게 다가오는 질문은 이러하다. 진실이란 무엇인가? “진실은 사실과 달라서 당사자들에 따라 많이 달라지잖아요. 역사가 사실을 기록하고 있을까요? 굵직굵직한 얘기들을 다루고 있지만, 역사는 결국 승자의 기록이고, 문학은 패자의 기록이에요.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던 이면의 인물들을 쫒아 만나는 일이죠. 그렇다면 작가는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하고, 많은 정보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이런 일을 소설가 김별아씨가 잘 하고 있죠. 역사소설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미스터리하게 느끼는 부분도 그런 것들이에요. 과연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을까? 알려진 것 뒤에 숨겨진 것은 무엇일까? 그래서 제가 무서워하는 것도 깊은 바다예요.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물.” 이번 소설에도 이러한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
“신신양회 사건에 가장 크게 놀란 것은 그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에 대해서도 몰랐다는 사실에 자신들이 눈뜬장님이었다는 사실에 놀랐다.”(p.109)
Attempt : 소설 쓰는 일에 확신을 가졌다
장편소설 『내 영화의 주인공』(2001) 이후 9년만의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이 계간 <자음과 모음>과 연재되는 동안, 『A』가 하성란 작가의 야심작이 될 거라는 얘기가 나왔고, 이전과는 또 다른 전환기의 작품이 될 거라는 얘기도 들렸다. 출판사가 퍼트린 소문일 뿐이라며 고개를 내둘렀지만, “이제 소설 쓰기에 확신을 갖는다.”고 고백한 하성란 작가에게 『A』가 각별한 작품인 것은 분명했다. “데뷔 15년이 되었거든요. 이때쯤 되면, 내가 하는 일에 확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앞으로 ‘소설 쓰기 싫어, 지겨워’하지 않고, 내가 소설에 저항하면서 나아가겠다는 걸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소설이 완성도가 높다,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얘기들을 떠나서, ‘하성란이 소설을 쓰는 것에 이제 확신을 가졌다’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확신이란, 이런 거다. “제가 소설을 좋아하고, 이제 소설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소설을 쓸 거라는, 저 자신과의 약속이라고 할까요. 또 다른 장편소설을 쓸 수 있다는 각오가 생겼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제는 힘들다고 해서 발을 빼지 않을 거고요. 신인일 때와는 또 다르게 열심히 소설을 쓸 생각이에요.”
소설가로서 15년, 개인으로서는 이 소설을 쓰면서 마흔을 넘겼다. 이러한 시간이 소설에 앞서 본인에게 하나의 전환점으로 다가왔다. “마흔이 되면서, 앞으로 십여 년간은 장편소설을 열심히 쓰기로 했어요. 그동안 독자의 뒤통수를 치려고 하는 젊은 작가의 패기만 갖고 있었다면, 이제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 연민을 가지고 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호흡이 생겼어요.
40대라고 어느 날 갑자기 삶의 깊이가 생겨나는 건 아니겠지만, 그동안 알게 모르게 축적된 것들이 있다고 봐요. 무엇보다 사물과의 거리 두는 일이 가능해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치열하게 달라붙기만 했는데, 좀 더 물러서니까 먼 동선이 보인다고 할까요.”
Auther : 소설가로 살아가기
홍대의 한 출판기획사에서 2년째 근무하고 있는 하성란 작가. “엄마, 직장인, 아줌마, 아내, 소설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것이 ‘저’라는 인물”이라고 자신을 표현한 적이 있다. 그녀의 다양한 정체성들은 나름 사이가 좋은 편이다. “전부 다른 일들이잖아요. 이 일들이 각각의 일에 도움을 주는지도 모르겠어요.”
“소설을 쓰는 일이 제 주요한 일이라고 한다면, 다른 일은 좀 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큰 아이 축제에 가서 바자회를 가고, 떡볶이를 파는 일이 굉장히 즐겁고 재미있어요. 소설을 쓰는 일에서 두 발을 뺀 일이잖아요. 그런 게 휴식이 아닐까 생각해요.”
치밀한 묘사, 극단적인 상상이 요구되는 하성란표 소설쓰기는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작가를 몰아붙이는 일이다. “소설을 쓰며 사는 일은, 행복한 일보다 그늘진 일을 많이 보는 일이잖아요.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잊히지 않고 오래 가슴에 남아요.” 오히려 이런 자신에게 출판 기획이라는 또 다른 일이, 삶의 균형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된단다.
그럼에도 소설가란 정체성은 자신에게 가장 만족감을 준다. 소설가로 사는 삶이 결코 녹록치 않음에도 끊임없이 소설을 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소설 쓰는 일이 정말 재미있기 때문”이라는 소박한 대답이 돌아온다. 그녀는 이 얘기를 인터뷰 중 두 번, 세 번 힘주어 반복했다.
“수많은 재미있는 일을 해봤는데요. 소설 쓰는 일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는 것 같아요. 어떤 소재로 이야기를 써야 할까, 가끔은 아무것도 잡히지 않고 어둠 속을 걸어가는 것처럼 막막하지만, 소설 한 편 끝냈을 때의 쾌감은 대단하거든요. 지금 제 큰 아이가 문학을 하겠다고 해요. 예전에는 말렸는데, 이제는 하라고 해요.”
Amazones: 남성/여성의 잣대에서 해방되길
“여성성보다는 남성성이 강한 것 같아요.(웃음) 성실한 데에 있어서는 60퍼센트 정도만 성실해요. 가까스로 어떤 일들을 해내요. 아이들도 가까스로 길러내고요. 마무리가 덜 되어 있어서 제가 한 일에는 꼭 표시가 나요.(웃음) 그렇지만 소설만큼은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애초에 생각했던 차분한 이미지와는 달랐다. 하성란 작가는 오히려 쾌활하고 수더분한 쪽에 가까웠다. 물론 소설을 쓰는 소설가 하성란과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하성란의 모습은 다르다. 지금의 자신을 ‘소설가 하성란의 대변자’라고 표현했다. “긴 시간 모니터 앞에 앉아있으면, 저 자신을 잊어버려요. 소설이란 장르는 굉장히 인공적인 장르라서, 작가가 머리를 굴려야하는데도, 비이성적인 차원의 일이에요. 소재나 소설거리를 가져올 때는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이성적으로 사고하지만, 그 이후에는 이성 밖의 어떤 것들이 주재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 않다면, 지금 여기에 나와 있는 제가 그 많은 글들을 어떻게 썼겠어요.(웃음)”
그토록 즐겁다는 소설쓰기에 대해 더 물었다. 언제나 사물을 달리 감각하려는 그녀의 남다른 문장은, 적확함에서 비롯된다. “어떤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면, 그 상황을 가장 적합하게 묘사해줄 수 있는 문장을 골라요. 그래서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나면, 다음에 같은 주제로 청탁을 받았을 때 이전의 글에서 나아가지 못해요.
내가 썼던 문장을 깨는 일이 가장 어려워요. 좋은 소설이란 스토리나 그 속에 담겨 있는 어떤 이념도 중요하지만 가장 적확한 문장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 비문도 발견되지만, 가장 필요한 말만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첫 문장을 시작하는 일은, 누구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첫 문장을 길어 올리는 그녀만의 비책이 독특하다. “일단 빈 모니터 앞에 앉게 되면 난감하죠. 무슨 단어를 골라야 할지, 무슨 문장으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져요. 그럴 때면 모니터 한 페이지를 욕이란 욕으로 다 채워요. 저 욕 진짜 많이 알거든요.(웃음) 잘 하진 않지만. 욕을 한바닥 쓰고, 지운 후에 첫 문장을 시작해요.(웃음)”
“일단 시원하잖아요.(웃음) 욕이 소설을 향한 것일 수도 있고,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고요. 저는 저 자신에게 많은 말을 해요. 이 정도 밖에 못하나, 질책하기도 하고, 조금 더 힘내자고 응원도 하고요.”
이 소설에서도 드러나듯, 남성성/여성성이라는 이중 잣대에서 해방되고 싶은 것은, 소설가 자신의 문제와도 연관된다. 그녀는 여류작가의 꼬리표가 붙는 게 끔찍하게 싫었단다. 아마 이러한 점이 그녀가 다른 작가들에 비해 진중한 문제의식, 가볍지 않은 소재에 대해 글을 쓰게끔 추동한 힘이 되기도 했을 테다.
“옛날의 ‘여류작가’로 불리던 분들은 대단한 분들이셨잖아요. 여자가 글을 쓸 수 없는 시대에 글을 쓴 분들이고요.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고, 여자 남자 따로 없이 많은 분들이 글을 쓰고 있어서 여류작가라는 말이 시대착오적인 단어라는 반감이 있었어요. 저는 제 소설을 읽고, 딱 “아, 여자가 썼구나.” 이런 말을 듣기 싫어서, 굉장히 애썼어요. 소설을 시작할 때부터 내 정체성을 여자, 남자로 규정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오히려 소재를 찾는데 한계점도 있지만, 자유로운 면도 있고요.”
독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이러한 편견에서 해방된 독서를 해보라고 권유한다. “독자들이 책을 읽을 때 은연중에 이 작가가 남자인가, 여자인가 어떤 잣대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여자인가, 남자인가 뿐만 아니라 젊은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에도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 같아요. 다른 작가의 작품에 달린 리플들을 보며, 젊은 작가가 쓴 글은 비교적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이제는 그런 독서법에서 벗어나는 게 어떨까 제안하고 싶어요. 편견을 지우고 독서를 하면, 또 다르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하성란 작가는 나이 먹는 게 두렵지 않단다. “그만큼 얻어지는 게 분명히 있을 거란 생각 때문에요. 제게도 혜안이 생기겠죠. 박완서, 박경리 선생님처럼. 황석영, 박범신 선생님처럼. 현장에서 열심히 쓰고 계시잖아요. 그분들이 계셔서 제가 전범이 될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고요. 열심히 소설을 써서 좀더 색다른 소설을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녀가 자주 인용하는 데카르트의 말처럼. “어둠 속을 걷는 것처럼 천천히”
그렇게 나아가겠다는 말이다. 의지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지금 하성란에게 A는 무엇일까?
“작가 후기를 쓸 때 정말 외로웠거든요. 아마 또 바뀌겠지만, 지금의 A는 alone의 A입니다.(웃음) 네. 소설가는 정말 외로운 존재예요. 외로워요.(웃음)”
18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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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osasuna
2013.11.28
acanisijin
2013.11.28
기대되는 작가 하성란씨의 앞으로의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
adel007
2013.11.25
즐기는 자를 당하기는 어렵다는 걸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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