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함부로 뱉을 말은 아니에요
많은 독자들이 양은숙 작가와의 만남을 청했고, 한 곳에 모여 버스를 타고 그를 만나러 서울을 떠났다. 『들살림월령가』를 만나기 전, 음식점 ‘들밥’에 들렀다. 들에서 먹던 밥이라는 뜻이란다. 그곳에는 많은 도시인들이 잊고 있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글ㆍ사진 김이준수
2013.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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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월령가』는 조선시대 농민들의 일상적 삶을 담은 가사다. 조선 헌종 때 정학유(丁學游)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매달 하는 일과 의식을 노래에 맞춰 풀었다. 농사를 노동으로서만이 아닌 풍류를 담아 녹여냄으로써 그 가치는 더욱 중요하다. 『농가월령가』를 통해 우리는 조선시대 농가에서 행한 행사와 세세풍속, 미덕의 세목 등을 촘촘하게 엿볼 수 있다. 일상적인 농촌풍경을 서경적이고 흥미롭게 담아냈다는 점도 이 가사집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들살림 월령가』는 지금 이 시대가 담아낼 수 있는 또 다른 농촌 풍경의 하나다. 양은숙 푸드스타일리스트는 도시 생활을 접고 경기도 광주시 방등골로 삶터를 옮겼다. 그리고 자연과 어우러진 시골살림의 서정적이고 서경적인 일상의 흐름을 『들살림 월령가』로 옮겼다.

“한 톨의 곡식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있고 한 알의 음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 있습니다.”

거대자본이 주도한 공장식 노동은 이런 지당하고도 타당한 먹거리에 대한 기본 의식을 빼앗았다. 고마움과 미안함. 다른 생명을 먹어야 살 수 있는 동물성의 육체가 성찰하고 품어야할 지점이었다. 더불어 식당에서 노동하는 분들에 대한 고마움 역시. 인간이라는 한 존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는 모든 것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보여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러함으로써 그들도 우리를 아끼는 마음으로 먹거리를 생산하고 건네주는 선순환의 흐름이 형성될 수 있다.

“덕분에 살아가는 일이 어렵고 힘들고 아프지만 속도에 밀리지 않고 선한 삶을 믿으며, 생존에 지치지 않고 놀멘놀멘 걸어가며 살아가는 힘도 조금씩 붙었다. 더하여 한아한 세월의 흐름에 순응하며 나이를 갖고 늙어 가는 일은 제법 근사한 것이라는 것도 알아 간다.”(p.9)


방등골을 휘감는 여름향기

그렇게 들밥을 먹고 방등골에 도착하자, 양은숙 작가의 환한 미소가 독자들을 반긴다. 그리고 함께 방등골을 걷는다. 양은숙이 사랑해 마지않는 6월의 꽃들도 우리를 반긴다. 화려하지 않지만 향으로 자기존재감을 발휘하는 그들이다. 밤나무에서 피는 밤꽃냄새 가득한 방등골을 거닐며 만나는 터줏대감은 300여 년을 그곳에서 뿌리내리고 있는 느티나무다. 경기 광주 71호 보호수로서 높이가 24m, 나무둘레는 340cm에 달한다. 우리를 굽이 보는 느티나무의 위용에 주눅 들기보다는 생명의 경이와 위대함을 절감한다.

엊그제 내린 비로 떨어진 오디열매에 눈길을 주고, 모내기가 한창인 논을 바라본다. 따가운 여름햇살을 뚫고 방등골에 울리는 새소리가 햇살냄새와 맞물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평화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양 작가는 이 냄새를 맡으면 어릴 때가 자연스레 떠오른단다. 논에서 우렁이 잡던 그 시절, 그 추억. 길가의 보리수 앞에 멈춰선 양 작가 덕분에 새빨간 보리수열매를 마주한다. 그리고 손끝으로 보리수열매를 따서 입으로 가져간다. 입에서 터지는 알맹이가 도시에선 좀체 맞볼 수 없는 맛을 선사한다. 시골길을 걷다 보면 만나는 즐거움이다.

“햇살 한 줌, 바람 한 점, 인심 한 자락으로 여름날의 하루가 바삭바삭 고소해진다.”(p.165)
느릿느릿 걸어가면 세상이 분명 넓어진다. 땅은 감각적으로 지각되고, 냄새를 맡게 한다. 빠르게 빠르게만 요구하는 사회에선 볼 수 없는 놀랍고 경이로운 세계가 있다. 따라서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에 열어놓으면서 세계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도시에 사는 많은 우리가 경도당한 속도와 편의를 내려놓으면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책이나 미디어에 있지 않다. 온몸으로 느껴야 가능한 경험이야말로 진짜 삶이다. 사소하고 작은 것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방등골은 체감하게 해준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기어 다니는 거예요. 그걸 엊그제 봤어요. 체면이고 뭐고 ‘꺅~’ 소리를 지르면서 집까지 달려갔어요. 쌍둥이 소나무 보이죠? 어느 각도, 어느 계절에서 봐도 예뻐요. 저기 뽕나무 오디가 있네요. 굉장히 달고 맛있어요.”

제철 오디다. 더구나 내 손으로 딴 오디. 맛있고 달콤하다. 오디를 따 먹는데, 나비 두 마리가 연애중인 장면도 들어온다. 짝짓기 중인가. 나비 자체가 오랜만이다. 도시에선 보기 드문 노란나비가 반갑다. 이 오디, 자연의 맛을 만나자니 입안도 시원해지고 마음도 시원해진다. 손도 오디색으로 물들고 입도 물든다. 덩달아 마음도 물든다. 먹는 데만 정신이 팔려도 좋다. 세상이 무너진다손 이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진 않다.

느티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길로 들어서는데, 햇살이 비치는 곳과 확연하게 다르다. 시원하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하늘도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서늘하기까지 한 바람. 어디서 이 바람은 불어오는 것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평상을 놓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풀어놨으면 하는 바람도 뭉게뭉게. 그리고 한 농가로 발을 들여놓는다.

“곗돈을 붓지 않고도 계를 탄 기분이다. 장밋빛 인생이 거창한 것인가. 푸성귀를 나누며 훈정에 달뜨는 오늘이 바로 장밋빛 인생이다.”(p.137)


방등골, 파티를 열다

방등골의 어르신 신 회장님 댁으로 들어선다. 집 앞에 있는 비닐하우스에선 오이, 호박 등이 주렁주렁이다. 아침, 저녁으로 그 자라남이 남다르다고 양 작가가 설명한다. 토실토실 영글고 있는 유월의 열매들이 그저 반갑고 놀라울 따름이다. 생명을 접촉한다는 건 본디 그런 것이다. 이어지는 것은 하지감자를 캐는 행사다. 호미를 들고 감자밭을 파헤친다. 줄줄이 나오는 감자를 캐니,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다. 반갑다, 감자. 그렇게 감자를 만나니 깨달았다. 불량이니 우등이니 하는 감자 앞에 붙는 수식어, 철저히 인간의 시선에 갇힌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고맙고 놀라운 것에 왜 우리는 어쭙잖은 수식어를 갖다 붙일까.

“모가 부리를 내리고 단단해질 즈음이면 한식에 몸을 묻은 감자는 몸통을 불리고 가족을 불려 세상 밖으로 나온다. 하지 무렵에 캔다 해서 ‘하지 감자’라고 한다.”(p.124)

“신 회장님의 영농 솜씨는 마을사람들도 인정할 정도로 탁월하다. 무엇이든 그의 손을 거치는 작물은 윤기가 난다. “별 것도 없어요. 그냥그냥 넘들 허는 대로 심은 것뿐이어요”라고 말씀하시지만 사람이건 짐승이건 작물이건 정성을 쏟고 가축하는 대로 거두는 건 인지상정이다. 세상 만물은 손길 한 번, 발걸음 한 번, 눈길 한 번이라도 더 바친 정성과 노력을 거스르지 않는 법이다.”(p.114)
양 작가의 집까진 얼마 되지 않는다. 집에 도달하니 ‘아~’ 감탄사가 절로 입을 뚫고 나온다. 비밀의 정원처럼 펼쳐진 집 앞의 정원과 원두막이 어찌나 예쁘던지. 파티도 준비돼 있다. 수박칵테일의 붉은 핏물은 여름의 뜨거움을 상징하면서도 그 뜨거움을 날려버릴 수 있는 음용수다. 여름에 무난한 술떡, 신 회장님 댁에서 캔 하지감자와 어우러져 양은숙 작가의 푸드스타일링 클래스도 펼쳐진다. 과일과 어우러진 자연으로 만드는 푸드 스타일링이다.

“자연주의는 느낌에 따라 연출하면 되는 거예요. 여기 개똥참외가 있는데, 그 이름을 수용할 순 없어요. 봐요. 얼마나 색깔이 예쁜지. 손님이 오면 이 참외를 4등분해서 그릇에 다소곳이 담아주면 좋아요. 참외 껍질을 벗겨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벗어나시고요. 색감이 정말 좋지 않아요? 여기에 무심한 듯 잎사귀 하나만 놓아주면 푸드 스타일링은 완성되는 거죠. 무심한 듯해도 철저히 계산됐다고나 할까요(웃음).”

이어 수박의 등장이다. 디저트를 낼 때도 품격을 생각해서 무뚝뚝하게 썰어내기보다는, 입모양 때문에 다른 사람 앞에서 민망해질 수 있으므로, 큐브 모양으로 썬다. 그리고 단순하다. 큐브 모양으로 잘린 수박에 푸른 잎사귀를 깔아준다. 포크는 수해지역에서 가져온 가지로 만든 것을 내놓는다. 큐브조각을 낸 수박의 빈 통에는 허브 잎들을 꽂아줌으로써 상큼한 푸드 스타일링의 완성이다. 과일 하나로도 충분히 대접받는다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센스다.

“처지 곤란한 남은 수박을 버리지 마세요. 얼려서 슬러시를 한 뒤 유자청 등을 넣어서 먹어도 좋아요. 수박껍질도 김치를 담글 때 넣어도 상관없어요. 다만 입에 착착 들러붙진 않아요(웃음).”

테이블 세팅도 어렵지 않다. 소박한 음식을 차려도 꽃으로 장식을 해주면 충분히 돋보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양 작가의 설명이다. 꽃꽂이 공식도 따로 없단다. 기분대로 꽂아주면 끝. 싱그러운 초록만으로 유리병에 꽂아도 세련됨이 나올 수 있다. 꽃 이름을 알아주면 더 좋다. 꽃에 대한 예의니까. 박카스 병에 야생화 한두 송이를 꽂아주고 병목에 리본을 달아줌으로써 달라지는 풍경도 놀랍다. 사소하고 작은 것으로도 무미건조한 박카스 병이 다른 얼굴을 갖게 되는 마술이다. 감탄한다. 일상에서 길어 올리는 새 쓰임이다.

이런 것도 있다. 꽃병이 없다면, 투명한 봉투에 물을 넣고 조개 혹은 소라 껍질, 조약돌 등을 넣고 꽃을 넣어주는 방법. 그리고 그것을 오두막에 묶어줌으로써 순식간에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된 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돈 있고, 뭔가 갖춰져야만 가능한 것이 스타일링이 아니다. 양 작가는 내 눈 앞에 있는 별 것 아닌 재료로 얼마든지 스타일을 만들 수 있음을 몸소 알려준다. 삶은 그렇듯 언제나 놀라움과 새로움을 안겨다주는 법이다. 독자들이 작가들에게 물었다.




그날 그날 일상처럼 기록한 사진들이 인상적이에요. 또 길가에 있는 식물들이 먹을 수 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책을 만들겠다고 찍은 사진이 아니에요. 그렇게 했다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마 죽었을 거예요. 알고 보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게 굉장히 많아요. 이 마당에도 마트를 가지 않아도 한 상을 차릴 수 있을 만큼 풍성하고요. 어떻게 하면 되냐고요? 눈을 뜨고 관심을 가지면 돼요. 독초가 있긴 한데 눈에 잘 띠진 않아요. 용기를 갖고 도전해 봐도 좋을 거고요. 웬만한 꽃은 다 먹을 수 있고 맛도 다양해요.

“파 한 줄기도 마트에 가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세상인 것 같지만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면 지천이 밥상이다. 마음만 열면 자연은 많은 것을 허락한다.” (pp.31, 33)
전원생활 해보니 어떠세요?

전원생활, 그 말 함부로 뱉을 말은 아니에요. 많은 분들이 ‘나이 들면 전원생활 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는데, 나이 들면 되레 편해야 해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젊을 때 시도하는 것이 낫다고 보고요. 저는 여기에 2006년에 왔으니까, 8년차 정도 됐는데, 작정하고 온 건 아니에요. 하루하루 지내면서 한해한해 보내고 있는 건데요. 흠뻑 정이 들었어요. 더 오지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고, 여기도 처음에 왔을 때보다는 좀 더 오염됐다고나 할까요. 어쨌든 10년 가까이 여기서 지내면서 주민들하고도 친해졌고, 텃세에 대한 압박도 없었어요. 내가 마음을 여니 상대방도 열어주더라고요.

책은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된 건가요?

연재하던 것들이 있었고, 절반 정도는 새로 썼어요. 책을 준비하면서 행복했어요. 어느 순간에는 쓰다가 울컥했던 적도 있고요. 그만큼 젖어있었던 거죠. 책을 쓰고 이런 기회에 여러분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에도 감사하고요. 요즘 하루하루 감사하면서 충분한 삶을 살고 있어요.

“삶에 찾아오는 보드랍고 결 고운 순간이 달콤하고 행복하지만, 어지럽고 멀미나는 시간이라고 내 것이 아니라고 피할 순 없다. 그에 불행하다 여길 만큼 미숙하지는 않다. 때 묻어 눅눅한 생이라고 폐기 처분하지 않을 줄도 익히 안다. 행주를 삶으면서 시간도 함께 삶는다. 그저 나로서 살아온 시간에 고개 숙인다. “고맙습니다. 고요하고 겸허하게 새날을 맞겠습니다.” (p.281)
책 제목도 어떻게 나온 것인지 궁금해요.

연재 꼭지의 이름이었어요. 다른 제목의 후보군도 있었는데, 이 제목이 좋다는 의견이 많았고, 연재 꼭지 제목을 만들어준 분도 흔쾌히 승낙해주셔서 쓰게 됐어요. 제목이 결정되고 이걸 캘리그래피로 적어주신 분도 잘 해주셔서 기분이 참 좋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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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살림 월령가 양은숙 저 | 컬처그라퍼
『들살림 월령가』는 자연주의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들려주는 소박하고 건강한 시골살림 이야기다. 책 속에는 자연에 따라, 철에 따라 사는 건강함과 즐거움이 가득하다. 현대인들은 여름에는 에어컨과 겨울에는 난방기로 더위와 추위를 잊고,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고 저장해둔 재료를 사시사철 먹으며 계절 감각을 잊고 철 없이 산다. 하지만 저자가 들려주는 들살림 이야기에는 철 따라 사는 멋이 가득하다. 이 책은 철을 잊고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아련한 추억과 향수를 가져오는 동시에 우리의 삶에서 진정 소중한 게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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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숙 #들살림 월령가 #방등골 #전원생활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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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fxqlove74

2013.07.09

전원생활에 대한 꿈을 많이들 가지고 있는데요 기사내용처럼 그저 마음만 앞서서는 안되더라구요.
철저한 준비와 적응과정을 거친다면 멋진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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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ee78

2013.07.09

이야...정말 좋은 시간이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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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