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개봉한 영화 <어바웃타임>에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아버지와 아들이 나온다. 신비한 능력을 알게 된 아들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여성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실수를 하고 제대로 안 풀릴 때마다 과거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지만 이상하게도 조금씩 빗나간다. <사랑의 블랙홀>에서는 하루가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하루의 모든 일을 알기에 영웅이 되기도 하고, 잇속을 차리기도 하지만 결국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영화 <어바웃타임>스틸컷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누구나 같은 시간을 보내고, 언젠가는 죽는다. 하지만 시간을 초월할 수 있다면? 과거나 미래로 갈 수 있다면? 마음대로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시간을 거스르거나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다면 인생을, 역사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을까? 1895년에 나온 허버트 조지 웰즈의 『타임머신』은 과거와 미래를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는 기계를 보여준다. 과거의 역사를 살펴볼 수도 있고, 인류의 미래가 어찌 될 것인지 확인할 수도 있다. 『타임머신』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것은 미래다.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세상은 유토피아가 될 수 있을까? 그런 궁금증을 미래로의 시간 여행을 통해서 보여준다.
현재의 과학기술로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 이론적으로 가능성은 있다. 그 중 하나는 빛의 속도 이상으로 움직이는 우주선을 타고 여행하는 것이다. 우주선 속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지만 지구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간다. 냉동 수면 상태라면 시간을 뛰어넘는다고도 말할 수 있다.
영화 <혹성탈출>에서 먼 행성에 도착한 테일러는 원숭이들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을 만난다. 천신만고 끝에 탈출에 성공하지만, 자유를 찾은 해변에서 그는 오열한다. 부서진 자유의 여신상을 본 것이다. 그가 도착한 곳은 바로 미래의 지구였다. 흥미로운 설정이지만 이걸 ‘시간여행’이라 말하기에는 조금 망설여진다. 보통 생각하는 ‘시간여행’은 자유롭게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블랙홀이나 중성자별 등을 이용한 방법으로 다른 시공간으로 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시간을 여행하는 방법을 논리적으로 풀어낸다면 하드 SF가 될 것이고, 보통은 그냥 시간을 오가는 ‘기술’이 있다고만 설정해도 된다. 웜홀을 발견하거나, 시간과 공간을 특정하여 갈 수 있는 기계를 만들었다고.
자유롭게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의 고전 <백 투 더 퓨처>에서 마티는 부모가 고등학생인 시절로 돌아간다. 그리고 자칫하면 부모가 결혼은커녕 연애도 못할 상황에 빠진다. 그렇다면 미래의 마티는 사라져버린다. 과거를 바꿔버리면, 현재가 바뀐다. 현재를 바꾸면 미래가 바뀌는 것처럼. <백 투 더 퓨처> 2편에서는 디스토피아가 된 미래를 발견하고, 미래를 바꾸기 위해 현재의 사건을 바로잡는다. 과거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가장 큰 문제는 ‘타임 패러독스’다. 그래서 ‘시간 경찰’이 필요하다. <타임 캅> <루퍼> 등 시간경찰을 다룬 영화들은 수없이 많지만, 시간경찰의 고전은 역시 폴 앤더슨의 소설 『타임 패트롤』이다. 서기 19352년에 타임머신이 발명되고, 과거를 통해 미래를 바꾸려는 시간 범죄자들을 저지하기 위해 '타임 패트롤'이 창설된다. 1954년의 맨해튼에서 선발된 맨스 에버라드는 특수 훈련을 받고 자신의 시대에 배속된다. 20세기의 역사가 바뀌지 않도록 미래에서 오는 시간여행자들을 찾아내고 막는 것이 그의 임무다.
이처럼 ‘시간 여행’을 다룬 소설과 영화에서 가장 흔한 이야기가 바로 과거를 바꾸면 현재가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을 해 보니 복잡해진다. 누구나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그들이 각각 바꾼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까? 그 모든 사건들이 종합된 상태로 새로운 현재가 되는 것일까? 한 가지 이론은 바뀐 상황 모두 평행 우주가 있다는 것이다. 개인이 결정을 할 때마다 다른 결정에 의한 우주가 생겨나고 무한대로 중첩되어 있다는 이론도 있다.
영화 <백투더퓨처>포스터
DC와 마블의 슈퍼히어로 코믹스에서는 새로운 작가들이 투입되고, 캐릭터가 리부트되거나 다른 이야기에 끼어들면서 설정이나 사건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대부분 평행 우주로 처리한다. 그러다가 가끔 너무 복잡하고 꼬인 설정을 풀어내기 위해 『크라이시스 온 인피닛 어스』와 『제로 아워:크라이시스 인 타임』 같은 크로스오버 작품을 내놓는다. 그걸 개인의 상황으로 풀어내면 <나비 효과> 같은 영화가 된다. 끝없이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바꾸려 하지만 가면 갈수록 상황은 안 좋아지고 ‘나’는 변해버린 현재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혹은 우주 자체에 질서를 유지하려는 법칙이 있어서, 과거를 아무리 바꿔도 결국은 원래 존재하던 역사의 흐름으로 돌아간다는 주장도 있다. 과거를 바꾸면서 현재를 바꾸려한다는 계획은 그러니 모순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영원의 끝>이 보여주듯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방법에는 ‘타임 슬립’도 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미지의 포탈을 통해 시공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이 1889년에 발표한 『아서왕 궁정의 코네티컷 양키』는 타임슬립을 통해 아서왕의 시대로 날아간 양키의 이야기다. 다른 시공간으로 떨어진 과정이 ‘어떻게’ 된 것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아서왕 궁정의 코네티컷 양키>를 패러디한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3:아미 오브 다크니스>에서는 웜홀을 통해서 중세로 떨어진다. 과거로 가는 ‘타임 슬립’은 특정한 시대에서 ‘현대인’이 하는 역할을 보여준다. 과학지식과 함께 기술이 있거나, 총과 라이터 등 현대적인 도구가 있다면 중세까지는 거의 ‘신’이 될 수도 있다. 가까운 과거로 간다면 스포츠도박이나 주식을 사서 부자가 될 수도 있다. 가와구치 카이지의 만화 <지팡구>에서는 현대의 최첨단 구축함이 2차 대전으로 타임슬립한다. 누구는 최대한 역사에 개입하지 않으려 하지만, 누구는 능동적으로 개입하여 더 좋은 방향으로 역사를 바꾸려 한다. 선의로 역사를 바꾼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시간을 다루는 이야기는 소설 츠츠이 야스타카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 영국 드라마 <닥터 후> 등을 비롯하여 무수하게 많다. 시간을 오가는 것만이 아니라, 영화 <동감>이나 <시월애>처럼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이 겹쳐지면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도 있다. 누구에게나 동일한 시간. 하지만 나의 시간과 세계의 시간이 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현실의 우리에게 존재하는 시간은 변하지 않지만 우주의 시간, 꿈속의 시간은 달라질 수 있고 결코 고정되어 있지도 않다. 그렇게 때문에 시간을 둘러싼 이야기는 더욱 다양하게 확장되고 변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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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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