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철학자, 음식의 현미경으로 삶을 바라보다
『바나나와 쿠스쿠스』는 영국인 철학자가 들려주는 유럽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책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난해하고 심오한 철학적 이론이 아닌, 침샘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국적인 음식들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안에 감춰져 있는 ‘스토리’다. 하나의 음식이 탄생하고 변화하며 사랑받아 온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그것을 향유하는 주체들에 대한 서사이기도 하다. ‘이 음식은 왜,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을까?’라는 질문의 끝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유럽 각국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서로 다른 음식들을 만들어냈다. 자신에게 허락된 재료들로 요리를 하기 위해서, 문화적 혹은 종교적인 관습을 지키기 위해서, 새로운 터전에서 기억 속의 맛을 재현하기 위해서, 세상에 하나뿐인 음식들을 탄생시킨 것이다. 『바나나와 쿠스쿠스』가 유럽의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곳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할 수 있는 이유다.
음식이라는 현미경으로 삶을 들여다보는 철학자인 팀 알퍼는 “순전히 음식을 경험해보기 위해” 유럽으로 떠났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영국에서 출발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스위스, 독일을 거쳐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맛있는 탐험을 이어갔다. 『바나나와 쿠스쿠스』에 소개된 25가지의 음식들은 그 시간들의 기록이다. 저자는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으며 생생한 묘사와 따스한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한편 “음식이야말로 삶과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매개체”라는 믿음을 독자들에게 전파한다.
『바나나와 쿠스쿠스』 안에서 떠나는 유럽 음식 기행은 미처 알지 못했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은 ‘피시 앤 칩스’ 뿐이라는 편견은 진짜 영국의 맛을 보여주는 ‘셰퍼드 파이’ ‘당근 케이크’ ‘썸머 푸딩’ 앞에서 사라져버린다. 스페인의 무더운 날씨를 견디는 방법은 ‘시에스타’ 만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려준다. 그들에게는 우리의 냉국과도 같은 차가운 음료 ‘가스파초’가 있다. 또한 이 여행은 종종 우리를 황홀경에 빠지게 하는데 ‘열반의 경지에 든 라마승조차 빵으로 향하는 손길을 참아낼 수 없다’는 프랑스의 바게트는 그 맛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들뜨게 한다.
이미 유럽을 여행한 이들에게 『바나나와 쿠스쿠스』가 소개하는 음식들은 강한 향수를 자극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 만나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설레는 상상을 선사할 것이다. 팀 알퍼는 유럽의 음식을 이야기하며 이따금씩 한국의 음식을 떠올린다. 스페인의 가스파초를 냉국에 비유했듯 독일의 ‘사우어크라우트’와 러시아의 ‘마르코브카 파-레이스키’를 김치의 다른 버전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맛’을 ‘상상 가능한 맛’으로 바꿔놓는 이 작은 배려는, 9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는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는 한국인 아내와 결혼한 후 자신이 ‘요리 천국’이라 부르는 한국과 사랑에 빠졌다. 교통방송 PD와 대한항공 기내지 ‘모닝캄’의 기자로 일했고, 각종 매체에 푸드 칼럼을 연재했으며, 아리랑 TV와 올리브 TV 등의 음식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한 나라의 철학은 한 그릇의 음식에 담긴다
『바나나와 쿠스쿠스』가 유럽 음식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듯, 팀 알퍼와의 만남 역시 기대감을 자극했다. 홍어와 청국장과 과메기를 사랑하는 유럽인이라니, 그와 나누는 음식 이야기는 분명 흥미로울 것이라 예감했다.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성장하고 이제는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이기에 대화는 한층 다채로운 빛깔을 띠게 될 터였다. 요리에 대한 경험과 지식은 말할 것도 없다. 여덟 살 때부터 바나나 케이크를 만들고 호텔의 수 세프(sous chef)로 근무하기도 했던 그가 아닌가. 예상했던 대로 그와 함께한 시간은 시종일관 유쾌했고 넓고 깊은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바나나와 쿠스쿠스』는 유럽의 음식을 통해 삶과 문화를 이야기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책을 집필하면서 제가 원했던 건 음식 문화를 설명하는 것이었어요. 한국 문화를 잘 알고 싶을 때에도 음식 여행을 하면 도움이 되잖아요. 예를 들어서 된장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 알게 되면 한국 사람들이 예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이해하기 쉽죠. 다른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실제로는 그런 경우가 드물어요. 영국으로 여행을 갈 때 ‘피시 앤 칩스’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질문을 하지는 않죠. 그냥 가서 먹어보고 ‘이게 영국 사람들이 많이 먹는 음식이구나’ 하고 끝이에요. 음식을 시작으로 그곳의 역사나 철학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요. 『바나나와 쿠스쿠스』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음식에서 출발하지만 깊게 보면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죠.
유럽 여행을 시작한 이유는 ‘음식을 경험해보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한국을 방문하신 이유도 음식 때문이었나요?
제가 스포츠 기자로 일할 때 한국 축구를 취재하기 위해서 처음 왔었어요. 그때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한국 음식과의 첫 만남부터가 너무 좋았거든요. 저는 마늘, 매운 음식, 깊은 맛을 좋아하는데 한국 음식에 전부 있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저와 잘 맞았어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의 음식을 통해서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게 됐죠. 예를 들면 뚝배기는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그릇이거든요. 그래서 왜 한국에서만 뚝배기를 사용할까, 라는 질문이 생겼어요. 김치를 보관하는 장독도 어떤 재료로 만드는지 궁금했고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알게 되면서 한국 문화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유럽의 음식과 문화를 이해하는 방식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셨습니다. 음식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음식 안에 그 나라의 철학이 담겨있어요. 한국의 경우에는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건 함께 나눈다는 의미예요. 다른 나라에서는 밥을 만든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거든요. 최근 영국의 트렌드도 그래요. 그런데 한국 사람에게는 조금 다른 철학이 있죠. 같이 즐기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밥을 남기지 않고 많이 먹으면 좋아해요. 하지만 영국에서는 식사할 때 항상 뭔가 남아야 해요. ‘플레이팅’이니까요. 결국 다른 철학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차이들이죠.
유대인 가정에서 성장하셨는데요. 한국의 음식에서 발견한 삶과 문화는 유대인 공동체와 어떻게 다른가요?
유대인과 한국인은 많은 점에서 비슷해요. 유대인들은 매주 금요일에 가족 모임을 갖는데 참석하지 않으면 안 돼요. 가족끼리 모여 앉아 식사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한국인과 같죠. 그래서 한국에 와서 놀라기도 했어요. 유대인들만 그런 줄 알았거든요. 이와 달리 영국 사람들은 혼자 먹는 걸 좋아하고 편하게 생각해요. 가족들과 계속 있고 싶은 것보다 자유롭기를 바라는 거죠.
여덟 살 때 바나나 케이크를 직접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놀라웠습니다. 작가님께서 음식과 사랑에 빠진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렸을 때는 그냥 맛있는 걸 많이 먹으면 기분이 좋았어요. 아이들이 다 그렇잖아요(웃음). 그런데 나이를 들면서 다른 사람의 행복 때문에 음식을 만드는 즐거움을 알게 됐어요. 맛집을 소개해 주면서 같이 가자고 권하기도 하고, 집에 초대해서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 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거죠. 내가 만든 음식을 다른 사람이 잘 먹어주면 좋잖아요. 어렸을 때와는 정반대죠. 그때는 ‘맛있는 건 다 내 꺼’ 이런 식이였어요(웃음).
진짜 영국 음식은 런던 밖에 있다
책에서 유럽 각국의 음식을 지역별로 나누어 소개하셨습니다. 각 지방의 음식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나요?
요즘은 대도시가 많이 생겨서 어느 곳에서나 같은 음식을 먹을 수가 있어요. 패스트푸드 같은 경우가 그 예죠. 한국의 햄버거 프랜차이즈에서 먹은 음식을 영국에서도 먹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아직도 시골에는 오래된 문화가 남아 있어요. 그 지역의 재료와 날씨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음식들이 남아있는 거예요. 유럽 남부 지방에는 재료가 풍부하고 하나같이 맛있어요. 그래서 요리 방법도 복잡하지 않죠. 만약 이탈리아에 가서 음식 만드는 모습을 본다면 놀랄 지도 몰라요. 이탈리아 음식을 복잡하게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너무 쉽게 만드니까요. 재료 자체가 맛있기 때문에 그런 거거든요. 그런데 반대로 스칸디나비아에 가면 요리하는 과정이 조금 더 복잡할 수 있어요. 재료가 많지 않기 때문이죠. 지역 별로 토양이 다르기 때문에 음식이 달라지기도 하고요.
여행을 하다 보면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경험은 없으셨나요?
그런 적은 없었어요.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만나면 ‘왜 이곳에서 이런 입맛이 생겼는지’ 궁금해졌죠. 그리고 음식이 내 입에 맞지 않는다면 다른 음식을 찾으면 돼요. 그 음식 말고도 다른 음식이 있을 테니까요. 여행을 다니면서 모든 음식이 맛없는 곳은 없었어요.
한국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김치나 고추장을 가지고 갑니다. 그래서 낯선 곳의 음식을 경험해 보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국 사람만 그렇게 하는 건 아니에요. 영국 사람들은 스페인에 많이 가는데, 음식이 입에 맞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은 영국식 과자나 베이크드 빈스를 싸가지고 가기도 해요. 그런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조금 더 고민하고 용감해지면 입맛에 맞는 음식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거예요.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 중에도 마늘이 들어간 음식이나 매운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한국 음식이 얼마나 다양해요? 그 중에 입맛에 맞는 음식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요즘은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도 있고요. 『바나나와 쿠스쿠스』도 유럽 여행을 갈 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맛에 대해 설명한다는 것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특히 유럽 음식에는 한국인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맛과 향이 담겨 있으니까요.
비슷한 음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이건 그런 맛이겠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책에서 독일의 ‘사우어크라우트’를 김치에 비유한 것도 그런 이유죠. 저는 사우어크라우트를 먹어본 후에 김치를 맛봤는데요. 김치를 먹으면서 사우어크라우트를 떠올리지는 않았어요. 사우어크라우트는 아주 시원하지만 아무 맛도 없는 데 반해서 김치는 여러 가지 맛이 나거든요. 사우어크라우트는 거의 소금과 배추 맛 밖에 없어요. 그런데 김치는 생가, 고추, 젓갈처럼 다양한 맛이 있고 경우에 따라서 배나 생선과 같은 맛도 느껴지죠. 두 음식 사이에 비슷한 점은 만드는 과정이에요. 소금에 절여서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죠. 그래서 냉장고가 필요 없는 음식이기도 해요.
『바나나와 쿠스쿠스』는 음식의 유래를 소개함으로써 흥미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몽골의 영향으로 사우어크라우트가 생겨났다고 이야기해요. 독일 가까운 곳까지 몽골이 지배했었으니까요. 물론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궁금한 거죠. 파스타의 경우도 중국을 여행하고 이탈리아로 돌아온 마르코폴로가 전파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누군가가 사람들에게 새로운 음식을 보여주고 전파하는 과정이 흥미로운 것 같아요. 감자 역시 원래는 유럽에 없는 재료였죠. 처음에 선원들이 영국인에게 감자에 대해 말해줬을 때 그들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도 몰랐을 뿐더러 키우는 방법도 몰랐어요. 그런데 이제는 감자 없이 영국 음식을 설명할 수 없죠. 한국에 고추가 유입된 과정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추 없는 한국 음식은 상상할 수도 없잖아요.
에필로그에서 유대인의 전통 음식 ‘쿠스쿠스’를 소개하셨습니다. 유럽에서 음식이 확산된 과정은 유대인의 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유럽을 여행하면서 그 사실을 직접 느끼신 적도 있나요?
유럽에서 유대인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은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유럽 곳곳에 유대인들이 있었고 아직도 거주하고 있으니까 흔적들이 남아있죠. 유대인들은 각 지역의 음식들과 자신들의 문화를 조금씩 섞어왔어요. ‘피시 앤 칩스’도 유대인의 영향으로 탄생한 음식이죠. 다른 지역에서 감자튀김과 생선튀김의 조리방법을 배운 유대인들이 영국에서 그 음식들을 팔았던 거예요. 그런 식으로 여러 문화들을 조금씩 섞은 거죠. 이 이야기를 에필로그에 적은 이유는 유럽에 가서 유대인 음식을 드시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다른 음식 사이의 관련성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죠.
영국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피시 앤 칩스’만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진짜 영국을 만날 수 있는 음식을 추천해 주세요.
영국 음식을 드시고 싶다면 먼저 대도시에서 벗어나세요. 대도시에는 다 똑같은 맛이 있어서 특색 있는 음식을 만나기 어려워요. 인도 커리나 태국 음식, 일본 스시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당들은 있지만 영국식 요리는 찾을 수 없죠. 진짜 맛있는 피시 앤 칩스도 바다 옆에 있는 전문점에 있어요. 그 외에도 다른 음식들도 있는데 시골을 찾아가면 맛볼 수 있죠. 그곳의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의 음식을 맛본 경험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계속 자신들만의 음식을 만들어 왔고요. 당근 케이크는 당근이 정말 맛있는 지역에서 생겨났고, 소고기가 맛있는 지역에서는 셰퍼드 파이를 만들었어요. 바다 옆 마을에서는 피시 파이를 만들었고요. 피시 파이가 만들어진 과정을 보면, 어부들은 제일 비싼 생선은 대도시에 팔고 남은 생선으로 요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파이로 만들어 먹었던 거예요. 이 작은 시작에서 큰 문화가 생겨난 거죠. 그러니까 대도시를 벗어나서 호기심을 가지고 찾다보면 맛있는 음식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여행지에서 메뉴 선택에 어려움을 겪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 물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누구나 자신들의 문화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테니까 질문하는 걸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어요. 어떤 메뉴가 맛있는지 물어보면 자긍심을 느끼면서 설명해줄 거예요.
‘고든 램지’로 가득한 영국의 주방
『바나나와 쿠스쿠스』에는 요리 레시피도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작가님께서 직접 요리하시는 방식을 소개하신 건가요?
물론 저는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요리 칼럼을 쓰기도 했지만, 책 속의 레시피는 한국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에 중점을 뒀어요. 그대로 보고 만든다고 해도 아마 현지에서 먹는 맛은 아닐 거예요. 책에 나오는 음식의 맛과 비슷한 느낌을 느낄 수는 있겠죠. 그런데 진짜 그 음식의 맛을 보려면 해당 지역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거든요. 그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만들어야 같은 맛이 나니까요. 만약 영국에서 김치를 만든다면 한국에서와 같은 맛이 나올까요? 만들기 쉽지 않을 거예요. 한국에서 자란 무 마늘 배추를 구하기도 어렵고 다른 곳에서 재배된 재료는 조금 다른 맛일 거예요. 엄마가 담근 김치의 맛을 느낄 수는 없는 거죠. 그런 이유로 책의 레시피 대로 만든 음식이 현지에서 먹은 것과는 다른 맛일 수 있지만, 아직 먹어보지 않은 음식을 비슷하게 맛볼 수는 있을 거예요.
수 세프(sous chef)로 근무한 경력도 갖고 계신데요. 요리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일을 그만두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16살 때부터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요리를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펍에서 설거지를 했죠. 그러다 조금씩 경험이 쌓이면서 최종적으로는 수 세프의 자리까지 오른 건데요. 요리 공부를 한 적은 없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계속 요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어요. 그런데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서 생각이 달라졌죠. 사실 영국 세프들은 다들 ‘고든 램지’ 같거든요. 지금도 저는 고든 램지를 보면 옛날 생각이 나요(웃음). 요리사로 일하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저와 맞지 않았던 거죠. 요리는 취미로 하자고 생각했고,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글쓰기와 부엌에서 배운 경험을 접목시키고 싶었어요.
영국인이 바라보는 한국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계획은 없으신가요?
그런 내용의 책을 정말 쓰고 싶어요. 한국 사람에게 한국 음식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했어요. 한국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건 아니지만 생각하지 못한 포인트가 있을 수 있잖아요. 한국 음식에 대한 한국인들의 생각과 저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요. 기회가 된다면 다른 나라의 음식과 비교하는 작업도 해보고 싶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익숙한 음식이기 때문에 잘 모르는 부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 어렸을 때부터 먹은 음식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하지 않죠. 저 역시 그랬어요. 그런데 외국을 여행하면서 비교하다 보니까 영국의 음식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한국 사람들도 김치는 그냥 김치 맛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맛을 몰랐던 외국인들은 질문을 품게 돼요. 이 음식은 어떤 재료로 만들어질까, 그 재료는 왜 넣는 걸까, 이런 궁금증이 생겨나는 거죠.
홍어, 과메기, 청국장을 좋아하신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한국인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뉘는 음식이잖아요.
청국장이 냄새가 많이 난다는 이유로 먹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치즈의 경우에도 제일 냄새가 안 좋은 치즈가 제일 맛있거든요. 청국장도 같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주 심한 냄새를 풍기는 청국장을 만나면 꼭 먹어야 된다고 생각해요(웃음). 프랑스에도 아주 냄새가 심한 치즈가 있어요. 집 안에 보관하기가 힘들어서 발코니에서 먹어야 할 정도죠(웃음). 그런데 깊은 맛이 나요. 청국장과 비슷하죠.
독자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유럽 음식은 무엇인가요?
시간이 허락된다면 남부 지방은 꼭 가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정말 매력 있고 음식이 맛있는 곳이거든요. 프랑스 남쪽이나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는 정말 멋있어요. 그런데 유럽의 음식들을 비교해 보기 위해서는 다른 곳도 가봐야 하죠.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언어도 비슷하고, 음식이 비슷하지는 않지만 재료는 비슷해요. 건물이나 날씨도 비슷하고요. 이 두 곳만 가본다면 유럽은 다 그렇다고 생각하게 될 거예요.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영국만 가 봐도 서로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영국과 프랑스는 굉장히 가깝지만 음식 문화는 확연하게 다르죠. 만약 3개국의 음식 문화를 만날 수 있다면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를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를 추천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특히 프랑스 음식은 꼭 먹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프랑스 음식은 기술이고 미술이에요. 꼭 한 번은 프랑스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맛보시길 권해드려요. 『바나나와 쿠스쿠스』에도 썼지만 세계에서 사용하는 요리 용어는 다 프랑스에서 비롯됐어요. 세프, 레시피, 카페, 비스트로와 같은 단어들이 모두 불어죠. 그래서 프랑스에서 직접 그 문화를 체험해 보시길 바라고요. 어쨌든 저는 영국 사람이니까 영국의 음식도 맛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웃음). 그리고 이탈리아에 가보시면 프랑스 음식과의 차이를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프랑스 음식은 만드는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작은 실수로도 음식을 망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탈리아 음식은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는지 놀라울 정도예요.
프랑스 바게트에 대해 극찬하신 부분을 보고 그 맛이 너무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어렸을 때 파리에 있는 외가댁에 가면 외할아버지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빵을 사러 가곤 했어요. 그 일이 제게는 너무 행복했죠. 제일 즐거웠던 기억이에요. 출발할 때는 귀찮다고 생각했지만 빵집에 가면서 빵 굽는 냄새를 맡으면 너무 황홀했거든요. 프랑스 바게트는 오후 5시까지 먹지 않으면 딱딱해져서 먹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데, 이런 문화는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죠. 영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워요. 이탈리아에서도 독특한 풍경을 볼 수 있는데요. 시골에 가면 동네 할머니들이 다 같이 모여서 파스타를 만들어서 나누어 먹어요. 밀라노의 식당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죠.
『바나나와 쿠스쿠스』와 만나게 될 독자들에게 전하는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바나나와 쿠스쿠스』는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아니면 다녀온 직후에 읽으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여행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싶을 때 펼쳐 봐도 좋고요. 특히 ‘이 음식은 안 먹어봤는데 어떤지 궁금하다’ ‘그곳에 가면 이 음식을 꼭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좋을 거예요. 유럽을 가보지 않은 사람이나 갈 계획이 없는 사람도 관심만 있다면 ‘그곳에는 어떤 음식이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고요. 보통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면 꼭 봐야 할 크고 예쁜 건물들을 떠올리는데, 그런 것들은 부자들을 위해 만든 것이지 보통의 사람들을 위한 건 아니잖아요. 당시 보통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고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었는지, 왜 이런 음식이 생겼는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어요. 그리고 책을 읽은 독자들이 현지에 가면 다른 음식을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책에 소개된 음식을 먹었는데 저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았다든가, 그 음식의 유래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면 이야기를 들려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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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와 쿠스쿠스 : 요리하는 철학자 팀 알퍼의 유럽 음식 여행팀 알퍼 저/조은정 역 | 옐로스톤
유럽인이 유럽의 음식을 탐험하는 최초의 맛기행 책으로, 음식이 만들어진 역사와 유래, 저자 자신의 경험 등이 유머와 번뜩이는 비유로 묘사되어 있어 이름이 낯선 음식들에 당황함을 느끼며 책을 펼쳐들 독자들도 어느 순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낯선 유럽 어느 지역의 카페 한 귀퉁이에 앉아 그 음식을 먹어보고픈 유혹과 그리움까지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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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rkem
2015.03.13